검은 그림자의 정체는 내가 특별히 부른 조력자였다.
나는 요란하게 등장한 조력자 옆으로 다가서며 조용히 물었다.
“형, 빨리 오셨네요.”
“그래, 이런 일이 있으면 미리 좀 말해주지 그랬냐? 멀리서 온다고 고생했다.”
“하하하. 저라고 저놈들 일정을 미리 아는 게 아니니까요. 그나저나 또 연차 쓰고 왔어요?”
“그래. 이놈아! 너 때문에 휴가 다 쓰게 생겼으니 꼭 보답해야 된다.”
“하하하. 이거 미안해서 어쩌죠?”
“흥! 거경파 놈들 못 잡아서 천추의 한이 될 뻔했는데 이런 판이 있으면 나도 당연히 껴야지.”
복면을 쓴 검은 그림자가 기분이 좋다는 듯 실소를 흘렸다.
“그나저나 우리 쪽은 3명뿐이야?”
“네. 허허허.”
“흥! 겁을 상실한 건 여전하구나?”
거경파 조직원들을 노려보던 그는 고개를 돌려 정수호 이사를 바라보았다.
정수호 이사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더니 그가 말했다.
“음? 저 사람은? 뭐, 세 명만 있어도 큰 문제는 없겠네. 하하하.”
정수호 이사를 본 복면의 사나이가 혼잣말을 했다.
‘뭐야 둘이 아는 사인가?’
검은 그림자의 정체는 윗선의 압력으로 거경파에 대한 수사를 공식적으로 중단해야 했던 비운의 해양경찰관.
하지만 지금은 연차를 쓴 공무집행 중이 아닌 사나이. 바로 차진혁 경감이었다.
“뭘 기다려! 처리해!”
한 명에 불과했지만 원군이 도착한 것을 보고 변도수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조용히 손을 들어 올려 까닥 손짓했다.
그 신호에 맞춰 부하들이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네!”
“으아아악!”
거경파 조직원들이 일제히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저놈은 네가 상대할 생각이지?”
차진혁 경감이 변도수를 가리키며 물었다.
“네, 당연하죠.”
“그래, 그럼 우리가 나머지를 처리할게.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나한테 말하고.”
“저도 도움은 필요 없습니다. 흐흐흐.”
차진혁 경감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달려오는 거경파 조직원들을 상대하기 위해 앞으로 걸어 나갔다.
퍽퍽퍽!
‘뭐야, 권투 그런 건가?’
차진혁 경감의 동작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발차기를 하거나 주먹을 내지를 때마다 거경파 조직원들은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쿵!
그리고 반대쪽에서는 정수호 이사가 성난 근육들을 꿈틀거리며 거경파 조직원들을 땅에 패대기치고 있었다.
‘참, 듬직한 사람들이네?’
주변 상황은 두 사람에게 맡기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의 상대 변도수를 찾기 시작했다.
변도수는 예상외의 강자들의 활약을 본 탓일까?
차진혁 경감과 정수호 이사의 활약상을 바라보는 변도수는 좀 전과는 달리 살짝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무리 경상도를 대표하는 주먹이라고 하더라도 차진혁 경감과 정수호 이사는 쉬운 상대가 아닐 것이 분명했다.
그나저나 나는 아직 변도수룰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는 중이었다.
그 이유는 전생에 그가 연루된 살인사건이 찝찝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거경파는 어두운 곳에서 재벌이나 정치인들의 뒤처리를 해주면서 성장한 놈들이다.
짜르 변도수도 분명히 그런 일들을 많이 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 놈이 도대체 왜?’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거경파의 간부인 변도수가 해양수산부 차관 출신 사업가를 살해했다는 것은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어쩌면 밝혀지지 않은 음모가 있었을지도 모르겠어.
나는 나를 노려보며 다가오는 짜르 변도수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자세히 보니 건달치고는 제법 순진하게 생긴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리파 주먹이라.
주먹은 강하고, 단순한 성격. 딱, 이용해먹기 좋은 스타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띠링! >
+스킬 [고소고발 Lv.12]을 사용합니다. +
- 범인을 추적합니다.
- 추리력이 상승합니다.
토사구팽
-충청남도 대산항 창고
토사구팽.
이 순간 나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단어였다.
‘전생에 거경파에서 변도수가 처한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일지도 모르겠군.’
억울하게 몰려 죽임을 당한 변도수의 전생을 설명하기에는 이보다 더 적합한 말은 없었다.
변도수가 선글라스를 쓴 부하와 나눈 이야기를 토대로 빠르게 몇 가지 가설을 떠올렸다.
일단 변도수는 지금의 거경파에 불만이 많은 상태로 보인다.
그리고 그 이유는 정치인인지 건달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거경파의 최근 행보 때문이다.
변도수는 원래 울산을 기반으로 활동하던 작은 범죄 조직의 수장이었다. 그러던 그에게 어느 날 부산, 경남에서 세력을 크게 확장한 현 거경파의 두목이 찾아온다. 그리고 변도수는 거경파에 합류한다. 소문에 따르면 거경파 두목의 건달답지 않은 비전에 변도수가 감복했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거경파의 두목은 초심을 잃은 듯 보였다. 싫은 소리를 하는 변도수는 No.3로 불렸지만 허울뿐인 말이었다.
그리고 현재 거경파에게 발생하는 문제는 이른바 ‘윗분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개입되어 있었다.
이것은 거경파가 최근 크게 성장하고 있는 배경을 고려해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거경파는 재벌이나 정치인들의 비호를 받아 최근 빠르게 성장세를 구가하는 조직이었기 때문이다.
‘저들이 말하는 윗분들은 아무래도 재벌이나 정치인일 가능성이 높겠군.’
하지만 아직은 이들에 대한 정확한 실체를 알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변도수의 표정을 살폈다. 불만 어린 얼굴.
거경파의 최근 행보에 불만이 있는 사람. 나는 어쩌면 변도수를 활용할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진짜 건달이다.
이 사람이 나에게 순순히 협조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이런 사람을 설득하는 방법은 한 가지뿐일지도 몰랐다. 건달이라면 승부에 승복하지 않을까? 이 사람이 진짜 건달이라면 말이다.
변도수 앞으로 다가가자 그도 나를 바라보았다.
“저기 부하들은 괜찮겠습니까?”
손을 들어 최진혁 경감과 정수호 이사를 가리켰다. 두 사람은 거경파 조직원들을 어려움 없이 처리하고 있었다.
열 명이 넘는 조폭들을 상대하면서도 여유로운 모습.
“음, 도대체 어디서 저런 괴물들을 데리고 왔나?”
두 짐승들을 바라보던 변도수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가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내가 빨리 자네를 처리해야 될 것 같군. 부하들을 좀 도와야 해서 말이야.”
“글쎄요…. 한번 와보시죠.”
나는 씩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변도수가 나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은 듯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빠르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휙!
변도수가 오른손을 뻗어 주먹을 휘두르자 빠른 주먹질에 바람 소리가 일어나는 듯했다.
탁탁탁! 뒷걸음을 치며 손을 휘둘러 그의 주먹을 어렵지 않게 막아냈다.
“생긴 것과 다르게 제법이구나! 하지만 계속 피할 수 있겠느냐?”
변도수가 빠르게 따라붙으며 공격을 이어갔다.
팍!
나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고 그가 가까이 다가왔을 때 빠르게 몸을 빙글 회전했다. 그리고 오른발 돌려차기로 그의 얼굴을 노렸다.
많은 대련 상대들을 쓰러뜨린 비장의 기술로 내가 자신 있어 하는 발차기 동작!
하지만 변도수는 ‘경상도의 짜르’라는 별명답게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그는 순식간에 펼쳐진 내 비장의 발차기도 양손을 얼굴 앞으로 들어 올려 막아냈다.
“음! 정말 제법이구나.”
그는 피해 없이 나의 발차기를 막아냈지만 이제 나의 실력을 알아본 듯했다.
“우리 조직에도 이만한 실력자는 몇 없을 것 같은데……. 도대체 뭐 하는 놈들이냐?”
그의 말에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 내기 한번 하실래요?”
“내기? 무슨 소리냐?”
“당신 부하들이 먼저 쓰러질까요? 아니면 제가 당신 손에 쓰러지는 게 먼저일까요?”
“하하하. 이 건방진 놈!”
“부하들에 대한 기대가 없나 봐요?”
“흥! 시끄럽다!”
변도수가 얼굴이 살짝 상기된 표정으로 다시 한번 달려들기 시작했다.
변도수가 나에게 달려들며 주먹을 빠르게 휘둘렀다. 그의 오른손 주먹이 나의 턱을 노렸다. 하지만 나는 왼손을 들어 변도수의 공격을 가볍게 흘려냈다.
하지만 그 순간 변도수의 몸이 빙글 회전하더니 그의 오른팔 팔꿈치가 나의 왼쪽 머리를 노렸다.
“헉!”
당황한 나는 급하게 오른손을 들어 공격을 막아냈지만 충격 때문에 몸을 비틀거렸다.
파파팍!
변도수가 연이어 주먹을 휘두르며 공세를 취했지만 나는 양손을 휘둘러 공격을 막아냈다.
“오호! 이때까지 이 공격을 제대로 막은 놈은 정말 몇 명 없었는데….”
이쯤 되니 변도수가 진심으로 나의 실력에 감탄하는 듯했다.
‘흐흐흐. 이거 어쩌나? 나는 아직 제대로 시작도 안 했는데?’
하지만 나는 아직 내 실력을 제대로 선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제 나도 더 이상 방어만 할 생각은 없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압도적인 실력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 필요했다.
< 띠링 ! >
+ 스킬[태권도 Lv.8]을 사용합니다. +
- 공격력과 방어력이 상승합니다.
+ 스킬[잠입 Lv.4]을 사용합니다. +
- 민첩성이 상승합니다.
스킬들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신체 능력이 향상되는 것이 느껴졌다. 나에게서 좀 전과는 다른 기운이 강하게 발산되는 느낌이랄까?
“뭐. 뭐야 갑자기?”
변도수도 싸움의 고수. 그는 갑자기 변한 나의 분위기를 감지한 것이 분명했다.
“제대로 한번 시작해볼까요?”
다다닥!
나는 변도수에게 빠르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한 마리의 새처럼 가볍게 날아올랐다.
파파팍!
공중에서 날아올라 변도수를 향해 화려한 발차기를 연이어 선보였다.
“윽!”
변도수는 매섭게 이어지는 나의 발차기를 양손으로 바쁘게 휘둘러 막아냈다. 그사이 땅으로 내려선 나는 빙글 돌아 돌려차기로 변도수의 복부를 그대로 후려 찼다.
퍽!
변도수의 시선이 빠른 나의 발차기 속도를 전혀 따라오지 못하고 있었다.
“큭!”
발차기를 그대로 적중당한 변도수가 순간 신음 소리를 토하며 뒤로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굴욕. 이런 애송이한테 일격을 허용하다니, 변도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는 그런 그를 보며 조용히 말했다.
“그렇게 부끄러워하실 것 없어요. 뭐, 보는 사람도 이제 없으니까요?”
“음?”
나의 말에 변도수가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펴보았다.
이미 거경파의 조직원들 중에는 두 발로 서 있는 이가 없었다.
그리고 어느새 장내를 정리한 차진혁 경감과 정수호 이사가 내가 있는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변도수가 우리 세 사람을 한 번씩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는 압도적인 전력 차이에 체념한 듯 고개를 땅으로 떨어뜨렸다. 그리고 조용히 양손을 들어 올렸다.
항복 표시. 그도 이제는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나는 변도수를 포섭할 생각이었다.
‘그래도 좀 아쉬우니까?’
하지만 거경파에게 당한 게 있으니 이대로 얌전하게 끝낼 생각은 없었다.
나는 조용히 그에게 다가섰다. 그리고 말했다.
“일단 항복하더라도 제대로 한 대는 맞읍시다.”
“뭐?”
“잠시 쉬고 계세요.”
< 띠링! >
+ 스킬[고무고무킥 Lv.9]을 사용합니다. +
퍽!
“크억!”
변도수는 뒤통수에 나의 필살 발차기를 얻어맞고 단발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그의 신형은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져 내렸다.
차진혁 경감이 나에게 달려오며 말했다.
“야! 보고야, 뭐 항복한 사람한테 그렇게까지 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