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6화 (116/200)

“그래, 근데 그놈들이 숨겨놓은 곳이 어딘지 알아서?”

“제깟 놈들이 숨기면 어디 숨기겠어요. 오늘 오션호 밑 구석에 몰래 달아놓은 걸 제가 확인했습니다. 아마도 내일이나 기회를 봐서 몰래 가지고 올라올 생각이었겠죠?”

“이 새끼들이······.”

“흐흐흐. 화내지 마세요. 어차피 그놈들의 수작질은 다 제 손바닥 안입니다.”

나는 바닥에 이는 메쉬백을 들어 보였다.

“들어가서 보물을 이걸로 교체해 놓으려구요.”

메쉬백 안에는 시장에서 구해온 물건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 * *

- 다시 현재. 충청남도 대산항 창고.

안민준 과장은 세상 억울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야 저 눈빛은?’

진짜 도둑놈이 나를 도둑 보듯 쳐다보고 있는 상황이라니?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어이가 없네······.”

참으로 어이가 없는 순간이었지만 그건 안민준 과장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반성할 생각이 전혀 없는 도둑놈이 건달 두목에게 달려가 고자질을 하기 시작했다.

“혀, 형님! 저놈입니다. 저놈이 보물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으음.”

변도수가 신음 소리를 흘리더니 오른손을 들어 올려 안민준 과장의 뒤통수에 손바닥을 올렸다.

그리고 손에 힘을 줘 안민준 과장의 뒤통수를 꽉 치며 말을 이어갔다.

“민준아, 네가 이러면 다른 사람들이 이 변도수를 뭐라고 생각하겠냐? 응? 아무리 급해도 거경파와 내 얼굴에 먹칠은 하지 말아야지.”

“네?”

“나는 건달이지 강도가 아니다.”

변도수는 나름 건달의 멋이 있는 사내였다. 강도나 양아치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무턱대고 남의 물건을 강취한다는 것은 그에게는 내키지 않는 일이었던 것이다.

건달의 마지막 자존심이라도 지키려는 것일까?

멋이 있는 사내 변도수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어이 젊은 친구, 그러지 말고 제법 재주가 있다고 들었는데 어떤가? 이번 일은 우리와 같이 일할 생각이 없냐? 어차피 물건을 처리하기가 힘들 텐데?”

“네? 제가 원체 시간이 없고 또 담이 작아서요.”

“음?”

“겁나서 건달하고 일을 하겠습니까?”

“뭐야?”

“그리고 고래가 어떻게 개 밑에 들어가서 일을 합니까?”

“······! 으하하하!”

정작 변도수는 웃어 보일 뿐 화난 기색은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 충성하는 부하들은 달랐다.

변도수 뒤에 서 있던 검은 정장의 사내들이 앞다투어 욕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제법 흉흉한 가세를 나를 향해 뿜어냈다.

“이 미친 새끼가 누구 앞이라고!”

“형님, 말만 하십시오! 제가 지금 바로 죽여 버리겠습니다.”

그때 변도수 다음으로 서열이 높아 보이는 분위기의 사내가 손을 들어 올렸다. 그는 어울리지 않게 어두운 창고 안에서도 검은 선글라스를 벗지 않고 있었다.

장내가 조용해지자 검은 선글라스를 쓴 사내는 한발 앞으로 나서 변도수에게 귓속말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건달들이 조용히 귓속말을 쑥덕거리자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띠링!>

+스킬 [잠입 Lv.4]을 사용합니다. +

- 도청 능력이 상승합니다.

검은 선글라스의 사나이가 조용히 말했다.

“형님, 저놈은 우리 조직에 막대한 피해를 준 놈입니다. 저놈을 처리해도 그렇게 명분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흥! 건달 주제에 무슨 명분을 찾냐!’

“으으음.”

변도수는 그래도 내키지 않는 표정. 검은 선글라스의 사내가 말을 이어갔다.

“안민준 이야기를 들어 보니 인양한 보물의 양이 어마어마하다고 합니다. 이 기회에 저놈으로부터 그동안 입은 피해를 회복할 손해배상을 좀 받는다고 해도 큰형님께서 크게 나무라지는 않으실 겁니다.”

“그래도 좀…….”

“그리고 저놈 때문에 윗분들이 화가 많이 나서 큰 형님도 고초를 겪었다는 말이 있었지 않습니까? 저놈을 처리하고 보물을 회수하면 아마 윗분들도 크게 기뻐하실 겁니다.”

‘뭐? 윗분?’

두 사람의 대화를 귀 기울여 듣고 있던 나는 대화 내용에 흥미가 생겼다.

경상도 짜르

-충청남도 대산항 인근 창고

변도수는 오히려 검은 선글라스 사나이의 말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윗분이라는 단어가 그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었다.

“음, 그놈들을 기쁘게 하는 것도 내키지는 않는데.”

“형님! 듣는 사람이 많습니다.”

“흥! 내가 그놈들을 상대로 겁이라도 낼 것 같으냐?”

“형님! 그런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큰 형님께서 말조심하라고 여러 번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쳇! 나는 말이다. 너에게만 하는 말이지만 요즘 우리가 건달인지 정치꾼인지 알 수가 없구나. 큰형님도 그놈들 때문에 많이 변하셨어.”

“형님!”

검은 선글라스의 사내가 변도수에게 큰 소리를 냈다. 하지만 변도수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검은 선글라스의 사내가 변도수에게 말을 했다.

“좋은 기회입니다. 이번 기회에 장보고 저놈을 깔끔하게 처리하시죠.”

그의 말에 변도수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으으음. 그래, 어차피 큰 형님도 기회를 봐서 저놈을 따로 손봐 주겠다는 말을 하셨으니까. 따로 기회를 기다릴 필요가 없겠지.”

뭐? 나를 거경파의 큰형님이 손봐 주려고 했다고?

그리고 윗분들은 또 뭐야? 그놈들이 왜 나 때문에 열을 받았다는 거야?

변도수가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나는 민간인이라고 이 미친놈아!’

거경파 놈들은 건달들이 지켜야 할 강호의 도리를 쓰레기통에 갖다 버린 잡놈들이 분명했다.

건달들이 민간인을 노리고 있다니?

그래도 제법 근본 있는 놈들인 줄 알았건만 이놈들은 건달이라고 부를 가치도 없는 양아치 같은 놈들이 분명했다.

“쯧쯧.”

나도 모르게 혀를 짧게 찼다.

그 소리에 변도수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어이 젊은 친구. 품위 있게 행동하는 게 좋을 거야. 아직 자네를 어떻게 처리할지 결정한 게 아니거든. 예의를 지키라 이 말이야.”

“허허허. 요즘 건달들은 예의도 챙깁니까?”

“크하하. 자네는 참 겁이 없군. 자네는 내가 누군지 아나?”

“모르는데요.”

나는 숨어서 이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기 때문에 이 눈앞의 사내가 거경파의 간부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체를 모르는 척했다.

“흐흐흐. 그래 모르겠지. 나는 변도수라고 하네.”

“아, 네, 그러시군요.”

“흐흐흐. 자네는 모르겠지만 나도 이쪽 세계에서는 제법 유명한 사람이라네. 뭘로 유명하겠나?”

나는 대답도 하지 않았는데 변도수는 주먹을 들어 보이며 자세한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바로 이놈이야. 이 주먹. 이 주먹 하나로 이 바닥에서 명성을 얻었다네. 러시아 친구들이 나에게 ‘짜르’라는 별명을 지어줬다네. 무슨 뜻이겠나? 주먹의 황제라는 뜻이 아니겠나?”

음! 짜르?

짜르라면 전생에서도 들어본 별명이었다.

전생에 나도 부산에서는 제법 성공한 사업가. 사업을 하다보면 경상도에서 활약하는 주먹들에 대한 이름을 들어본 일이 있었던 것이다.

제법 의리 있는 주먹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하지만 경상도 짜르가 유명해진 사건은 따로 있었다.

이 사람이 말년에 살인 교사 사건에 연루된 것이다.

이 살인 사건은 세간에 화제가 되었는데 그 이유는 그 피해자의 신분 때문이었다.

피해자는 다름 아닌 전직 해양수산부 차관 출신의 사업가였다.

경사도 짜르는 언론에 자신은 사건에 개입한 일이 없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자신은 살인 교사를 한 적이 없다고. 하지만 그의 부하 중 한 명이 자백한 이상 경상도 짜르는 유죄를 피할 수 없었다.

억울함을 호소하던 경상도 짜르는 유죄 판결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그는 억울하다는 유서를 쓰고 교도소에서 목을 매고 자살하면서 인생을 마무리했다.

전생에 제법 유명한 사건이었기 때문에 나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사건이었다.

그나저나 짜르가 이렇게 생긴 사람이었구나. 나는 경상도 짜르 변도수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제법 멋진 별명이네? 잘 지은 별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당한 그의 체격과 호쾌한 성격은 주먹세계에서 ‘짜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하하하. 물론 러시아 친구들은 러시아 마피아를 이야기하는 거라네.”

변도수는 ‘러시아 마피아’라는 말을 할 때는 자기도 모르게 어깨를 살짝 으쓱거렸다.

이놈은 러시아 마피아 이야기를 하면 내가 겁이라도 먹을 줄 알았던 걸까? 아니면 국제범죄 조직에도 명성이 알려져 있는 거물 행세라도 하고 싶은 건가?

하지만 나는 제법 국제 범죄 조직들과 인연이 많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런 일로 겁을 먹을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그동안 상대한 놈들이 흑룡회, 러시아 마피아 그리고 소말리아 해적까지 한둘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그 유명한 삼합회는 나와 의형제랑 다름없는 놈들이라고!

‘의형제까지는 아닌가?’

아무튼 러시아 마피아 놈들은 이미 겨뤄본 상대. 나에게 그리 두려운 존재들이 아니었다.

변도수는 내가 별다른 대답이 없자 겁을 먹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젊은 친구, 돈은 전염병 같은 거야. 독하고 전파력이 세거든. 그러니 괜한 객기로 인생을 포기하지 말게.”

나는 주먹으로 유명해진 사나이치고는 제법 혓바닥이 긴 스타일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건달 생활을 열아홉에 시작했다네. 그 나이 때 달건이 시작한 놈이 백 명이라 치면 이 자리까지 올라오는 사람은 몇이나 될 것 같나?”

“······.”

“응?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겠나? 다 죽였다네. 잘난 놈, 못난 놈 그리고 안민준 이 새끼처럼 배신하는 놈까지. 내가 다 죽였다 이 말이야.”

이제야 겨우 장황한 자기소개가 끝이 난 듯 보였다. 그는 긴 소개를 마치고 이제야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는 짜르라는 별명답지 않게 입은 좀 가벼운 스타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바다에서 들어 올린 물건들이 있다고 들었네. 물건들이 어디에 있나?”

“음? 그건 제 보물들이니까요. 제 물건들에는 관심 끄시고요.”

“음?”

“그리고 열아홉에 시작한 건달 생활이 오늘 끝날지도 모르니까 각오하는 게 좋을 겁니다.”

“뭐? 하하하. 이거 천하의 변도수가 이런 취급을 당하다니! 크하하하!”

나의 말에 변도수가 크게 웃어댔다.

“하하하!”

“으하하하! 형님 죽여 버리시죠 그냥!”

그리고 그의 충실한 수하들도 형님을 따라 큰 웃음소리를 흘리며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변도수가 손을 들어 올렸다.

챙! 착착착!

변도수의 신호에 따라 뒤에 서있던 조직원들이 각자 흉기를 꺼내 들었다.

야구방망이, 각목, 그리고 회칼을 꺼내 든 놈까지 무기가 제각각이었다.

‘이 새끼들이 비겁하게!’

나는 변도수를 향해 소리쳤다.

“뭡니까? 건달이 민간인 상대로 연장을 씁니까?”

“하하하. 우리는 토끼를 상대할 대도 최선을 다하는 주의라네.”

거경파 놈들은 자존심도 없는 놈들이 분명했다. 무리를 붕붕 휘두르며 한 발씩 내 앞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싸움을 앞두고 나는 고개를 돌려 정수호 이사를 바라보았다.

정수호 이사는 아무 말 없이 무표정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는 조용히 호주머니에서 가죽 장갑을 꺼내 들어 손에 끼우기 시작했다.

“장갑?”

“그래, 이런 일이 있을 줄 알고 방검장갑 하나 챙겨왔지.”

“한 개만 챙겨왔어요? 저는요?”

“음? 한 개밖에 없는데?”

“······.”

이 사람이 진짜! 자기 혼자 살겠다고?

“하하하. 보고야, 너는 발차기가 주특기라며?”

“그건 그런데요.”

“형은 이거라도 껴야지. 안 끼우면 죽어.”

“네?”

“그냥 맨주먹에 그냥 맞으면 죽는다고.”

“누가요?”

“누구긴 누구야 쳐 맞는 놈들이지.”

정수호 이사는 지금 순간에도 전혀 긴장한 기색이 없었다.

“음, 거경파 놈들이 10명도 넘는데······. 괜찮겠죠?”

“물론.”

정수호 이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자신감이 있으니 괜찮겠지.

“흐흐흐. 나는 뭐 우리 두 명만 있어도 문제는 없는데, 너는 괜찮겠냐? 저 덩치도 한 주먹 하는 거 같은데.”

그 말에 내가 웃으며 대답했다.

“이럴 줄 알고 제가 미리 준비를 좀 했습니다.

“음?”

“누가 우리 둘뿐이라고 했습니까?”

그 순간.

부우웅!

창고 밖에서 들리는 자동차 소음 소리가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다.

‘얼추 시간을 맞췄나 보네.’

끼이익!

브레이크 소리가 들리고,

쨍그랑!

창고의 창문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깨진 창문 사이로 검은 그림자가 창고 안으로 날아들었다. 말 그대로 한 편의 무협지 속 주인공처럼 검은 그림자가 창고 안으로 날아들었다.

갑자기 요란하게 등장한 검은 그림자. 그는 테러리스트들이나 사용할 법한 검은 복면을 쓰고 있었다.

“뭐, 뭐야?”

“저 새낀 또 뭐야?”

거경파 조직원들이 탄탄한 체격의 복면 사내를 바라보았다.

요란하게 등장한 그의 포스가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도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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