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5화 (115/200)

“네. 그렇습니다.”

안민준 과장은 챙겨온 보물들을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다.

안민준은 장보고에게서 들은 설명을 기억해냈다.

“이 보물들은 저희가 미리 빼돌린 것들이지만 같이 발견된 유물들은 모두 청나라 이전 시대의 유물이라고 했습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중국과 동남아에서 일본군 장성이 빼돌린 물건들이라고 합니다.”

“오호! 그래? 뭐 보기에는 그럴싸하네.”

잔뜩 긴장한 안민준 과장은 땀을 삐질 흘리며 변도수의 표정을 살폈다.

다행스럽게도 안민준 과장의 설명에 변도수가 다소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다행이다.’

오늘 아무도 모르게 콘크리트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려면 이 물건들이 그의 마음에 들어야 했다.

변도수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더니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래도 내가 본다고 뭐 아나? 전문가가 봐야지 이 박사!”

“네.”

“앞으로 와서 여기 물건 한번 봐주시죠.”

“알겠습니다. 제가 한번 볼까요. 흐흐흐.”

변도수의 말에 검은 사내들 뒤에 서 있던 작은 체구의 중년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기분이 좋은 듯 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잠들어 있던 유물이 세상에 나왔다.

그것을 처음 감정하는 일은 좀처럼 만날 수 없는 큰 기회였다. 유물 감정사인 그에게는 이보다 즐거운 일은 없었다.

‘음? 박사라고?’

안민준 과장이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지만 처음 본 사람이었다.

그는 오래된 유물 감정에 일가견이 있는 뒷세계에서 감정의 재야의 고수로 불리는 사람이었다.

밀수 같은 어두운 세계에서 벌어지는 거래에서 활약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안민준이 그를 알아보는 것은 무리였다.

하지만 이 박사라고 불린 중년 남성이 돋보기를 들고 보물들을 하나하나 들어 꼼꼼하게 살피는 것을 보니 그가 보물을 감정하기 위해 나온 것이라는 것을 안민준 과장도 짐작할 수 있었다.

안경을 쓴 중년 남성이 천천히 걸어와 캐리어 안에 있는 물건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으음!”

중년 남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눈을 비비더니 손을 뻗어 보물과 유물들을 들어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으으음······.”

그가 계속 신음 소리를 흘리자 변도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변도수가 이 박사라고 불린 감정사에게 다그치듯 물었다.

“어이 이 박사! 뭐 그런 골동품을 그렇게 오래 보시오?”

“허허허······.”

“박사가 슬쩍 보면 답이 딱 보면 나오는 것 아니오?”

“그게 참······ 좀 이상하군요?”

“뭐가 말이오?”

이 박사가 물건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것들 1940년대에 침몰된 선박에서 이번에 끌어 올린 물건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음?”

이 박사의 말에 변도수가 안민준 과장을 바라보자 안민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안민준이 이 박사의 질문에 경직된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침몰된 선박에 잠들어 있던 것을 이번에 꺼내 올린 겁니다.”

“으음, 그래요?”

이 박사가 비릿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는 코를 물건들에 갖다대더니 킁킁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그런데 너무 깨끗해. 그리고 냄새도 그렇고.”

갑자기 돌변한 눈빛의 이 박사가 들고 있던 도자기를 냅다 집어 던졌다.

Made in China

- 충청남도 대산항 인근 창고

이 박사가 바닥으로 내던진 도자기가 쨍그랑 소리를 내며 깨졌다.

“어! 뭐 하는 겁니까!”

이 박사가 힘들게 꺼내 올린 유물을 바닥으로 집어 던지자 안민준 과장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흥! 이건 그냥 쓰레깁니다. 쓰레기!”

이 박사는 깨진 도자기 파편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이 박사가 안민준 과장에게 도자기의 파편을 건넸다.

“뭐, 뭐야?”

도자기의 바닥 파편에는 “Made in China”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 이, 이게 무슨!”

안민준 과장이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유물이 들어 있는 가방을 뒤적거리며 말했다.

“그럼 여기 있는 것들이 다 전부······?”

“맞습니다. 전부 다 쓰레깁니다. 그것도 최하품의 조잡한 물건들입니다.”

이 박사가 더 볼 필요도 없다는 듯 실망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뒤로 돌아 변도수에게 다가갔다.

“멀리서 헛걸음했습니다. 이런 쓰레기 보려고 이곳까지 왔다니.”

이 박사의 말에 변도수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그의 불같은 시선이 안민준 과장을 향해 쏟아졌다. 안민준은 그의 시선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혀, 형님! 이럴 리가 없습니다. 분명히 제가 바다에서 끌어 올린 물건인데 어떻게······.”

안민준 과장은 넋이 나간 표정.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혀, 형님 아닙니다. 이게 도대체 어, 어떻게 된 일이지······?”

드르륵!

노기가 가득한 얼굴의 변도수가 의자를 끌며 벌떡 일어섰다.

우당탕!

“안민준, 기회를 주려고 해도 이번에는 참을 수가 없구나.”

변도수가 앉아 있던 의자를 뒤로 집어 던져 버린 후 안민준 과장에게 다가왔다.

안민준 과장은 마치 저승사자라도 본 것처럼 뒷걸음을 치기 시작했다.

“이런 조잡한 속임수로 나를 속이려고 했던 거냐?”

“아, 아닙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안민준이 손을 들어 올려 빠르게 저어댔다. 안민준 과장은 뒷걸음치고 있었다.

뒷문으로 도망이라도 치려는 것일까? 그가 고개를 돌려 창고의 뒷문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철컥!

뒷문이 열렸다. 그리고 두 명의 검은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그리고 이곳의 분위기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쾌활한 목소리가 창고 안에 울려 퍼졌다.

“제가 알려드릴까요?”

“······! 뭐냐?”

“흐흐흐. 도둑놈하고 깡패하고 토론한다고 답이 나옵니까?”

안민준 과장이 창고로 들어선 그림자를 보며 말했다.

“자, 장보고 일항사?”

안민준 과장은 장보고의 뒤를 따라오는 근육질의 사내를 발견하고는 소스라치듯이 놀랐다.

“저, 정수호 이사님······!”

창고로 들어선 사람은 정수호 이사와 장보고였다.

* * *

깜빡깜빡 불이 들어왔다가 나갔다가 하는 고장 난 전등.

창고 특유의 퀴퀴한 냄새, 그리고 바닷바람까지. 어두컴컴한 창고 안의 분위기가 제법 을씨년스러웠다.

‘제법 분위기가 있네?’

나는 안민준 과장과 거경파 직원들이 있는 창고로 들어서며 생각했다. 바닷바람이 창고 안까지 불어와 제법 스산하고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

거경파 놈들을 혼내주기에 딱 좋은 날씨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수호 이사가 앞으로 나서며 안민준 과장에게 물었다.

“민준아 도대체 왜 그랬냐? 이제 이런 생활에서 손을 뗐다고 하지 않았냐?”

“······.”

“도박 빚 때문에 그러는 거냐?”

안민준 과장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 모습을 보고 내가 안민준 과장에게 말했다.

“민준 과장님, 오늘 우리 이사님이 상처를 좀 받으셨습니다. 알잖아요? 우리 이사님이 의리파라는 거. 지금이라도 잘못했다고 하고 용서를 비세요.”

안민준 과장은 내 말에 고개를 들었다. 그는 힐끔 고개를 들어 눈앞에 있는 변도수를 힐끔 쳐다보더니 다시 고개를 땅에 떨어뜨렸다.

역시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지 말라는 말은 틀린 법이 없었다.

조폭 생활을 하던 놈을 사람 구실을 하게 만들어 주었더니 이놈은 새 출발을 도와준 은인인 정수호 이사를 배신한 것이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순간이었다.

“뭐 하는 놈들이냐?”

딱 봐도 한 주먹 할 것 같은 놈이 나를 노려보며 물었다. 변도수였다.

그때 그 뒤에 서있던 검은 정장의 사내가 변도수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했다.

“형님, 저놈이 그 장보고입니다.”

변도수가 그 말에 고개를 빠르게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방금 전에는 없던 호기심이 어려 있었다.

“음? 저놈이?”

“네, 그놈이 맞습니다.”

“크하하하! 이야기가 여러 번 들려 어떤 놈인지 궁금했는데 이제 보니 저렇게 새파랗게 어린놈이었구나?”

“······!”

뭐? 새파랗게 어린?

얼굴이 아무리 동안이라도 나도 이제 제법 나이를 먹은 상태.

그리고 전생의 기억까지 더하면 나는 살아온 인생이 90살에 육박하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나는 변도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음, 이 사람이 역대급 노안이 아니라면 지금은 나보다 나이가 많을 것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이 박사!”

나는 감정사를 불렀다. 그리고 바지 주머니에서 물체를 꺼내 그에게 툭 던졌다.

“음? 뭐요?”

“이 박사, 그거 한번 감정 해보세요.”

이곳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이 박사의 손에 들린 반짝이는 물체를 향하기 시작했다.

보석이 박혀 있는 유물로 보였다. 오래되어 보이는 물건이었지만 보석에서는 영롱한 빛이 반짝였다.

“그거는 돈 좀 되겠습니까? 그것도 메이드 인 차이나인 건 마찬가지일 텐데요. 허허허.”

나의 말에 떨떠름한 표정으로 손 위에 들고 있는 물건을 살펴보던 이 박사가 자세히 물건을 살피기 시작했다.

이 박사는 큰 기대를 하지 않는 눈치. 하지만 그의 표정이 빠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음? 어?”

이 박사의 눈에 갑자기 이채가 번쩍였다.

“······!”

이 박사가 침을 꼴깍 삼키더니 변도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그의 얼굴에 혈색이 돌기 시작했다. 돈 냄새를 맡은 것이다. 그 말은 그의 손에 들려 있는 물건은 안민준 과장이 가져온 것과는 달리 진품이라는 뜻이었다.

나는 이 박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 제법 보는 눈이 있는 분이시군요? 건달들이랑 어울려서 가짜 전문가인 줄 알았더니 제법 실력이 있는 분이신가 보네요.”

가짜 전문가라는 말에 이 박사가 나를 노려보는 사이, 안민준 과장이 이 박사에게 달려들었다.

안민준 과장이 이 박사의 손에 있는 보물을 낚아챘다. 그리고 요리조리 살펴보더니 눈을 크게 부릅뜬 채로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도, 도대체 어떻게? 이 물건은? 분명히 내가 미리 빼돌려뒀던 건데……? 내 거라고 이건 내 거야!”

안민준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지랄 발광을 해대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그저 방긋 웃음을 짓고 있었다. 안민준 과장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궁금하지?’

그래도 알려줄 생각은 없었다.

* * *

며칠 전. 보물 인양작업을 위한 오후 일과를 마친 시간.

오션플랫사의 바지선 “오션”호의 갑판 위에서 서서 나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보고야, 직원들 전부 퇴근했다. 이제 오션호에는 우리 둘밖에 없어.”

정수호 이사가 내게 다가오며 말했다.

“네 이사님, 그리고 강욱 팀장이 쓴 실린더 안에 기체 확인해 봤어요?”

“그래, 누가 손을 댄 것이 분명해. 수치가 달라.”

안민준 과장의 짓이 분명했다. 그것도 거경파의 사주를 받아서 벌인 짓일 것이다.

“그래 이제 어떻게 한다고?”

“일단, 밑에 들어가야죠.”

“밑? 어디?”

나는 손을 들어 올려 오션호의 밑을 가리켰다.

“바다?”

“네, 오션호 밑으로.”

“물에는 이 늦은 시간에 왜 들어가?”

“보물을 빼돌린 놈들이 있거든요?”

“뭐라고?”

“인양할 때 보물을 미리 빼돌린 놈들이 있어요. 숨겨놓은 물건을 찾아야죠.”

“뭐, 빼돌렸다고 도대체 누가?”

“누구긴 누구겠어요?”

“안민준 과장?”

“네, 아마 강욱 팀장이랑 같이 벌인 짓이겠죠.”

“으으음. 이 새끼들이! 그럼 안민준 그 새끼는 강욱 팀장이랑 같이 보물을 빼돌려 놓고 혼자 다 처먹으려고 강욱 팀장의 실린더에 손을 댔다는 말이야?”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믿을 놈이 하나 없구나.”

정수호 이사는 고개를 땅으로 떨어뜨렸다. 실망감에 가득 찬 표정으로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네, 이사님. 그럼 들어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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