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시간이라면 이들은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고 그저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것이 분명한 순간이었다.
답답한 심정에 내가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선장님, VHF로 해상교통관제센터에 신고는 하셨나요?”
“네? 아직....”
“바로 신고를 하시고, 필요한 조치를 빨리 취해달라고 하십시오.”
“네? 네.”
선장이 일등 항해사에게 말했다.
“일항사, VHF로 해상교통관제센터에 해양오염의 발생을 신고하게!
“네, 알겠습니다.”
일등 항해사가 선장의 지시에 따라 관제센터와 통신하기 위해 선교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선장을 보며 말을 이어갔다.
“그럼, 모든 화물탱크의 액면고(Level)와 평형수 탱크, 보이드 스페이스(Void Space) 같은 탱크들에 대하여 화물유나 해수 등의 유출입 여부를 확인하려면 측심(Sounding)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네?”
“저희가 이미 측심 업체를 불렀으니 곧 도착할 겁니다. 검사원들이 도착하면 바로 측심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좀 해주십시오.”
“네? 네, 알겠습니다.”
선장이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정수호 이사에게 말했다.
“이사님, 먼저 기름이 추가로 유출되는 것을 막아야겠습니다.”
“그래, 알았어.”
정수호 이사가 선장에게 말했다.
“그럼 저희는 일단 화물유출을 막기 위하여 좌현 화물탱크 파공부에 방수매트(Collision Mat)를 설치하는 작업을 바로 실시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이후에 제가 신호를 주면 화물탱크에 부압(負壓)이 형성되어 대기가 유입되는 것을 막아 주세요. 불활성가스발생장치(IGS. Inert Gas System)를 가동시켜 불활성가스(Inert Gas)를 이들 화물탱크 내에 주입해 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선장은 정수호 이사에게 여분의 무전기를 내밀었다.
“통신이 필요하시면 이 무전기를 사용하십시오.”
“알겠습니다.”
정수호 이사는 무전기를 들고 빠르게 달려갔다. 직원들을 동원해 파공 부위를 막는 작업을 실시할 예정.
다행인 점은 전생과 달리 이중선체 구조라 유출량이 현저히 적다는 것. 파공 부위를 막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아 보였다.
나는 선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일단 선교로 가서 기관장님을 불러야 될 것 같습니다. 화물유 펌프를 가동시켜 화물탱크의 화물유를 상부가 비교적 많이 비어 있는 중앙 화물탱크와 파공이 일어나지 않은 화물 탱크로 이송을 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선장은 그제야 정신을 차린 표정이었다. 자기가 할 일을 깨달은 얼굴이었다.
몇 시간 뒤.
나는 갑판 난간에 기대고 서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방제 작업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고 있었다.
정수호 이사의 전문적인 솜씨 덕분에 화물유 유출 억제 작업도 빠르게 완료되었다.
전생에서는 유출 사고가 발생한 지 무려 약 37시간이 지난 후, 그리고 약 12,547킬로리터(약 10,900톤. 약 78,918배럴)의 원유가 유출된 이후에야 완료했던 작업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고 발생 이후 채 3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중선체 구조 덕분에 기름 유출도 현저히 줄었고, 유출된 소량의 기름마저도 우리가 미리 설치한 오일펜스 덕분에 확산되는 것을 미리 차단하는 데 성공했다.
‘성공이다.’
전생과 달리 태안의 앞바다는 여전히 깨끗한 푸른빛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두두두. 두두두.
그때 하늘 위에서 헬기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해양경찰이라고 적힌 헬리콥터가 머리 위를 돌고 있었다.
촤라락!
해양경찰들이 로프를 타고 갑판 위로 내려섰다.
“해양경찰입니다.”
갑판 위로 내려선 해양경찰들이 나에게 달려오며 말했다.
보물 감정
- 충청남도 태안 해상 유조선 “H 스피드”호의 갑판
“이 선박의 승무원이신가요?”
“아닙니다. 저는 방제 작업 때문에 승선했습니다.”
“아! 안 그래도 관제센터에서 이야기 들었습니다. 빨리 조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됐습니까? 아직도 유출되고 있습니까?”
나는 해양경찰관의 말에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기름 유출을 막는 작업은 거의 마무리되었습니다. 이제 목판과 방직포로 파공된 화물탱크의 임시수리만 마치면 원유 유출은 완전히 정지될 것 같습니다.”
나의 말에 해양경찰이 당황한 듯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네? 벌써요?”
“네.”
“그, 그럼 유출된 기름은요?”
“이미 오일펜스로 완벽히 차단시켜 놨습니다. 확산될 일은 없을 겁니다.”
“......!”
해양경찰관들은 놀란 듯 서로를 마주 보며 눈을 깜빡였다.
해양경찰이 도착하기도 전에 사고 현장의 방제 작업이 벌써 일이 끝났다니? 이런 일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 띠링! >
+
<메인 퀘스트를 달성을 축하합니다.>
메인 퀘스트 달성을 축하합니다.
“당신의 활약으로 최악의 기름 유출 사고를 예방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보상 :
- 명성이 급격하게 상승했습니다.
- 당신의 글로벌 명성이 상승했습니다.
-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당신의 명성이 울려 퍼집니다.
- 칭호 [바다의 수호자]를 획득했습니다.
- 태성중공업의 경영진이 당신의 활약에 크게 감동합니다.
+
* * *
며칠 뒤.
나는 자동차를 운전하고 있었다.
“하아암!”
조수석에 앉은 사내가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했다. 작업을 마치고 피곤한지 하품을 하는 정수호 이사였다.
그러게 편하게 쉬시라니까 여기까지 왜 따라와서······.
사실 정수호 이사가 같이 와서 다행이긴 했다. 그의 성난 근육이 오늘따라 든든하게 느껴졌다.
“이사님, 심심하면 이거라도 보세요.”
나는 조수석에 앉아 있는 정수호 이사에게 슬쩍 신문을 전달했다.
“신문? 뭔데?”
“한번 보세요. 재밌던데.”
“음?”
나는 살짝 찌푸려지는 정수호 이사의 미간을 보며 활짝 웃음을 지어 보였다.
우리는 보물을 빼돌린 안민준 과장의 뒤를 추적하고 있었다.
* * *
- 충청남도 대산항을 향하는 도로 위
+
신라일보,
“검은 띠 막아라! 긴급 방제 작업을 실시하는 사람은?”
x일 오전 x시 반 유조선 ‘H 스피드’호 충돌 사고가 발생한 충남 태안군 원북면 앞바다 사고 해역에서 방제회사 소속 방제선이 바다에 오일펜스를 설치하고 있다.
“사고해역 파도 높고 바람 거세 확산 우려 있었으나 빠른 대처로 방제 성공.”
7일 충남 태안군 앞바다에서 발생한 유조선과 해상 크레인선의 충돌 사고로 기름이 유출되었지만 발 빠른 대처로 방제작업에 성공했다.
해양경찰청 관계자는 “최악의 기름 유출 사고가 우려되었지만 초기 대처에 성공해 성공적으로 방제작업을 마쳤다.”고 밝혔다.
대산해양수산청 관계자는 “해상교통관제센터에서 예인선에 유조선이 주변에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호출을 했지만 응답이 없었다 하지만 사고 현장에 있던 방제선이 즉시 방제작업을 실시해 큰 사고를 예방했다.”고 밝혔다.
업계 전문가는 “유조선에 실린 화물의 양을 고려했을 때 최악의 경우 이날 사고로 유출된 기름은 국내 최대 기름 유출 사고로 기록됐던 1995년 7월 유조선 ‘씨프린스호’의 침몰 당시 유출 기름양(8,381kl)의 갑절 수준에 이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초기 대처에 성공하여 확산 피해가 없어 피해는 경미 할 것.”이라며, “이 모든 활약은 초기 방제 작업에 착수한 영웅들의 공.”이라고 말했다.
충남 서산시의 가로림만 어도어촌계장 김창수 씨는 “우리 지역은 사고가 난 곳에서 조금 떨어져 있지만 조류를 타고 기름띠가 흘러들면 양식장이 망가질 우려가 있었다. 기름이 확산되지 않았다고 하니 천만다행.”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사고의 초기 방제에는 소말리아 해적 사건 당시 피랍을 막은 아덴만의 영웅 장보고 일등항해사가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세간의 놀라움을 자아냈다.
(중략)
신라일보, 유혜영 기자
+
신문기사를 읽는 정수호 이사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
“왜요?”
나는 그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떨떠름한 표졍.
“보고야 이거 뭐냐? 뭐가 재밌다는 거야? 그리고 왜 우리 이야기는 하나도 없어?”
“네?”
“실제로 방제 작업하면서 개고생한 건 우린데 왜 우리 회사 이야기는 한 줄도 없냐고!”
“······.”
그걸 왜 나한테 따져요. 기자한테 따져야지. 그리고 한 줄은 있잖아요.
정수호 이사는 화가 난 듯 신문을 대충 접어서 뒷자리로 집어 던졌다.
저 사람이! 저렇게 중요한 기사가 실렸는데!
내가 정수호 이사를 슬쩍 노려보자 그가 콧방귀를 꼈다. 정수호 이사가 정면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나저나 다 와 가냐?”
“네, 이제 거의 도착한 것 같아요.”
“이 새끼들 다 뒤졌어.”
정수호 이사가 양손을 들어 올려 스트레칭을 했다. 그의 성난 근육이 꿈틀거렸다.
곧 도착할 장소는 안민준 과장이 거경파와 접선할 것으로 예상되는 장소였다.
* * *
- 충청남도 대산항 근처의 한 창고
어두운 창고.
그 안에는 초조한 기색의 한 사내가 우두커니 서있었다.
오션플래닛의 직원 안민준 과장.
그의 얼굴에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오늘 이곳에서 만나기로 한 사람을 생각하면 안민준 과장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거경파에서 제법 서열이 높은 사람이 이곳에 온다는 이야기를 이미 들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끼이익!
닫혀있던 창고의 철문이 기분 나쁜 마찰음을 일으키며 열렸다.
그 뒤로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사내들이 우르르 들어섰다.
꿀꺽.
‘저, 저 사람은?’
들어오는 검은 정장의 사내들 가운데 있는 덩치가 큰 남자를 확인한 안민준 과장은 긴장한 탓에 침을 삼켰다. 잘못하면 내일 해를 보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까지 생겼다.
범죄조직 거경파의 No.3. 경상도 최고의 주먹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사람이 이 자리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은 변도수.
거경파 두목의 오른팔로 불리는 무시무시한 사내였다.
변도수가 안민준 과장을 노려보며 다가왔다.
안민준 과장은 변도수를 확인하고 쪼르르 앞으로 달려가 허리를 90도로 바짝 숙였다.
“형님, 오셨습니까?”
“그래 안민준, 좋은 물건이 있다고?”
“네, 그렇습니다.”
안민준이 고개를 들어 올려 변도수를 바라보았다.
듣던 대로 무서운 인상이었다.
원래 험상궂은 얼굴이었지만 오늘은 대단한 아우라가 그의 등 뒤에서 흘러넘치고 있었다.
변도수가 말했다.
“흐흐흐. 네놈의 말대로 이번에는 돈이 되는 물건이어야 할 텐데…….”
“네? 무슨 뜻이신지……?”
“흐흐흐. 우리가 이렇게 멀리까지 왔으니 말이야. 헛걸음이라도 하는 날에는 글쎄 우리가 안민준 너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
비릿한 웃음을 짓던 변도수가 말을 이어갔다.
“이번에도 우리를 실망시킨다면 내가 너를 살려둬야 할 이유가 있을까?”
“네?”
“빌려간 돈도 갚을 생각을 하지 않고, 시키는 일은 계속 실패하는데 말이야. 네놈을 우리가 살려둘 이유가 있나? 장기라도 떼다가 파는 게 그나마 남는 장사가 아닐까 싶은데 말이지.”
“……!”
안민준 과장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려갔다.
하지만 변도수의 뒤에 있는 그의 부하들은 이 상황이 재밌는지 비릿한 웃음을 흘려댔다.
“하하하.”
“형님, 그냥 이번에 깔끔하게 정리하시죠.”
침을 꼴깍 삼킨 안민준 과장이 다시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빌었다.
“혀, 형님, 한 번만 기회를 더 주십시오. 이번에는 실망하시지 않으실 겁니다.”
“흐흐흐, 그래 지금 당장 널 어쩌겠다는 뜻은 아니니까.”
“감사합니다. 형님.”
“그래 일단 물건부터 봐야지.”
“네, 알겠습니다.”
안민준 과장은 그 말에 뒤로 달려가 세워둔 검은 다이버용 대형 캐리어를 끌고 왔다.
캐리어를 조심스럽게 끌고 온 안민준 과장은 변도수 앞에서 물건들이 보이게 천천히 캐리어의 지퍼를 열었다. 안에 들어 있는 보물들이 깨지기라도 할까봐 매우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캐리어 안에는 골동품으로 보이는 유물들과 보물들 그리고 금속 공예품으로 보이는 물건들이 들어있었다.
“음, 이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