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미 부선과 H 스피드호의 간격이 이미 너무 가까워지고 있었다. 떠내려가는 부선의 충돌을 막기에는 너무 늦은 순간처럼 보였다.
“아아!”
강봉화 선장이 신음성을 흘렸다.
부선이 점점 유조선 H 스피드호에 가까워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추, 충돌합니다!”
일등 항해사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쾅!
벼락같은 소리가 바다 위에 크게 울려 퍼졌다.
태성 S-5호에 있는 강봉화 선장의 귀에서 또렷하게 충돌 소리가 들릴 만큼 강한 충돌이 발생한 것이다.
20XX년 XX월 X일 07시 06분경.
충남 태안군 원북면 신도타서 등대로부터 진방위 약 252도 거리 약 5.1마일 해상인 북위 36도 52분 07초․동경 126도 03분 07초의 위치.
태성 S-5호가 예인하던 부선 위의 대형 해상 크레인 붐 끝 화물고리(Hook)가 유조선 H 스피드호의 선수 갑판 마스트 상부에 처음 충돌하는 순간이었다.
쾅!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벼락같은 소리가 또다시 울려 퍼졌다.
부선의 좌현 선수부가 H 스피드호의 좌현 1번 화물탱크 현측외판 수선 상부를 그대로 충격한 것이다.
끼기긱! 쾅쾅쾅!
기분 나쁜 금속성이 바다에 울려 퍼졌다.
부선의 선체가 H 스피도호 좌현외판과 계속 접촉한 채 선미 측으로 밀려 내려가면서 추가로 모두 8회 더 충돌이 일어났다.
“······.”
“······.”
유조선과 충돌한 부선을 바라보는 예인선단의 선장 강봉화의 얼굴은 핏빛 하나 없이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 * *
대산항 해상교통관제센터(VTS:Vessel Traffic Service)의 관제실
20XX년 XX월 X일 07시 06분경.
관제실의 팀장과 당직 관제사는 눈이 빨갛게 충혈된 상태였다.
꿈은 아니겠지?
당직 관제사는 밤새 모니터를 봐 빨갛게 충혈된 눈을 비비며 다시 한번 모니터를 확인하고 있었다.
“크, 큰일입니다!”
“······!”
“추, 충돌했습니다! 부선으로 보이는 선박이 유조선 H 스피드호의 좌현에 충돌한 것 같습니다!”
예인선단의 항적을 살펴보고 있던 당직 관제사가 비명을 크게 질렀다.
옆에서 같이 지켜보고 있던 팀장도 입만 크게 벌리고 있을 뿐 별다른 대답을 하지 못했다.
H 스피드호의 선장과 전화통화를 한 당직 관제사가 전화기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팀장님, 예인선단의 해상크레인이 실린 부선과 H 스피드호가 충돌한 게 맞답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팀장이 손을 들어 올려 자기 뺨은 한 차례 때리더니 말을 이어갔다.
“어, H 스피드호는 유조선이라고?”
“네, 유조선입니다.”
“공선 상태는 아니지?”
“네, H 스피드호는 원유 총 약 263,944.5톤을 적재한 상태임을 확인했습니다.”
“기름은 유출되고 있다던가?”
“그건 확인 중이라고 합니다!”
“······해경에 빨리 연락하고! 방제 회사에 바로 연락해서 방제선 좀 빨리 수배해!”
“네? 네! 알겠습니다.”
당직 관제사가 급하게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긴장한 탓일까 수화기를 들고 있는 그의 손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네? 어디에 있다고요? 피항?”
전화기를 내려놓는 당직 관제사의 얼굴이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몇 분 후.
“네, 남해에 작업 나갔다고요? 언제 올 수 있다고요?”
관직 관제사가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이 업체가 이 근방 해역에서 부를 수 있는 마지막 방제업체였다.
“어휴······.”
당직 관제사가 짧게 한숨을 내쉬자 팀장이 다가와 물었다.
“또?”
“네, 이곳이 마지막이었는데 없답니다. 피항 보냈거나 다른 곳에 작업을 나갔답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해양경찰 쪽에서는 뭐래?”
“자기들도 알아보고 있는데 근방 업체들은 동원 가능한 곳이 없다고 하네요. 연락 가능한 곳은 오후 늦게는 되야 도착할 수 있답니다.”
“으으음. 그러면 그사이 기름이 많이 유출될 텐데.”
관제팀장의 입에서 작은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재수가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관제팀장의 오랜 경험에도 이렇게 재수 없는 일이 연이어 발생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예인선 줄이 끊어지고, 유조선은 기관이 제대로 작동을 안 하고 불운의 연속처럼 느껴졌다.
그때였다.
따르릉!
“여보세요. 관제실입니다.”
다시 관제실의 전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당직 관제사가 전화기를 들어 올렸다.
“뭐, 뭐라고요? 방제작업을 실시한다고요?”
당직 관제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네? 누구라고요? 누구? 자, 장보고 일등 항해사?”
당직 관제사는 크게 눈을 뜬 채로 고개를 돌려 팀장을 바라보았다.
팀장도 입을 벌린 채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1유조선 H 스피드호 기름 유출 사고 (3)
-충청남도 태안 인근 해상 유조선 “H 스피드”호의 선교
선교 안에 있는 선원들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
유조선 “H 스피드호”의 선장은 눈을 크게 뜨고 예인선단의 부선에 실린 대형 해상 크레인이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선장의 비상 버튼을 누르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댕댕댕! 댕댕댕!
H 스피드호의 비상벨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예인선단의 부선에 실려있던 대형 해상크레인 붐 끝의 화물 고리(Hook)가 유조선 “H 스피드호”의 선수 갑판 마스트에 부딪치는 1차 충돌이 발생하기 직전.
유조선의 선장이 선내 비상벨(General Alarm)을 울렸다.
댕댕댕! 댕댕댕!
비상벨 소리가 선내에 가득 울려 퍼지자 선내의 선원들이 모두 비상 대책에 따라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선원들이 우르르 갑판 위로 달려 나왔다. 선원들은 비상부서배치에 따라 구명정 앞으로 집합하기 위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무, 무슨 일이야?”
“충돌한 거 아니야?”
“침몰하는 건가?”
선원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웅성거렸다. 유조선 “H 스피드호”에 승선한 선원들이 대부분 구명정 앞에 선원들이 모두 집합했다.
긴장한 표정의 선장이 집결한 선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방금 전 모두 충격 소리를 들었겠지만 충돌이 일어났다. 지금 일등 항해사가 충격 부위를 확인하러 갔으니 모두 비상상황을 대비해 여기에서 잠시 대기하도록. 비상탈출을 해야 할 수도 있으니 준비를 시작하게!”
“네!”
선원들은 큰 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선원들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잠시 후 충돌 부위를 확인하러 떠났던 일등 항해사가 도착했다. 일등 항해사는 선장에게 달려와 보고를 시작했다.
“오! 일항사 왔나?”
“네, 헉헉! 선장님, 후우… 충돌한 부위를 확인하고 왔습니다.”
일등 항해사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래 일항사, 고생했네. 선체의 상태는 괜찮던가?”
“예인선단의 부선 좌현 선수부가 본선 좌현 1번 화물탱크 현측외판 수선 상부에 선수미 교각 약 20~30도 내외로 부딪쳐 파공이 발생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충격 이후 부선이 본선의 좌현외판과 계속 접촉한 채 선미 측으로 밀려 내려가면서 추가로 충돌하면서 3번 좌현 및 5번 좌현 화물탱크 등 총 세 곳에 추가 파공이 생겼습니다.”
“으으음! 파공이라, 침몰 가능성은?”
“그나마 다행입니다. 파공이 일어난 부위가 수면에서 제법 떨어져 있는 곳이라 당장 침몰 위험은 없는 것 같습니다.”
“아아, 그건 다행이군.”
일등 항해사의 보고를 들은 선장이 신음 소리를 흘렸다.
총 4곳의 파공. 큰 피해였지만 침몰 가능성이 높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다.
긴장한 표정의 선장이 아직도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일등 항해사에게 계속 물었다.
“기름은? 바다로 기름 유출이 발생하고 있나?”
“네, 적재 중이던 원유화물이 선 외로 일부 유출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음! 육안으로 확인한 것인가?”
“네, 기름이 유출되는 것이 갑판 위에서도 보입니다.”
“으으음. 큰일인데….”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이상한 일?”
“네, 이미 본선 주위로 오일펜스를 치고 방제작업을 하는 선박이 나타났습니다.”
“뭐? 벌써?”
“네, 반대편 쪽을 보시면 선박 주위로 오일펜스를 치고 있는 방제선이 보이실 겁니다.”
선장은 그 말에 난간으로 달려가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오션플래닛사의 방제선 ‘플래닛’호였다.
오션플래닛사의 직원들은 숙달된 실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거센 파도와 바람에도 불구하고 벌써 “H 스피드”호의 주변으로 오일펜스를 치는 작업을 시작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떻게……?”
H 스피드호의 선장은 방제선을 바라보았다. 유조선 “H 스피드”호 주위로 오일펜스가 빠르게 설치되고 있는 상태.
유조선의 선장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이렇게 빠른 대처라니?
눈으로 보고 있지만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마치 사고가 발생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던 것처럼 신속한 대응이었다.
* * *
잠시 후.
오션플래닛 직원들과 장보고가 승선하고 있는 오션플래닛 사의 방제선 “플래닛”호는 오일펜스를 치는 방제작업을 빠르게 마쳤다.
작업을 마무리한 “플래닛”호는 유조선 “H 스피드호”를 향해 접근하고 있었다.
나는 그사이 이번에 부여된 퀘스트의 내용을 확인하고 있었다.
< 띠링! >
+
<메인 퀘스트를 시작합니다.>
시나리오 진행에 따른 메인 퀘스트를 진행합니다.
“기름 유출 위험이 있는 유조선이 있습니다. 기름 유출을 최소화하고 확산을 막아내세요!”
세부 퀘스트 : 기름 유출
클리어 조건 : 기름 유출 최소화 / 확산 억제
제한시간 : 기름 확산 전까지
보상 : 명성 + 100, 글로벌 명성 상승
실패 시 : 환경 오염, 생태계 파괴
+
기름 유출 최소화? 확산 억제?
‘역시 전생과 달리 이번에는 기름 유출량이 현저히 적다!’
나는 “H 스피드”호의 좌현에 생긴 파공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기름이 새어 나오고 있는 모습은 보였지만 전생의 기억과는 확연히 달랐다. 확실하게 적은 양의 기름이 유출되고 있었다.
선박의 구조 차이 때문이 분명했다.
이중선체 유조선이 아니면 국내 입항을 허가할 수 없게 만드는 이중선체 강제법안을 오재민 의원이 발의해 시행되고 있었다.
물론 그 법안의 아이디어를 오재민 의원에게 제공한 것은 나였다.
이중선체는 말 그대로 선체 외벽 안에 일정 공간을 두고 또 하나의 외벽을 갖춘 이중으로 된 선체를 말하는 것.
선박 충돌과 같은 외부 충격으로 선체에 구멍이 나더라도 선체 내부와 외부는 여전히 차단되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기름 유출이 발생할 경우 단일선체에 비해 상당한 장점이 있다.
다만, 굳이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 이중으로 선체를 만들 특별한 이유가 없기 때문에 과거에는 대부분 단일선체 구조로 선박을 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전생에서는 국제해사기구(IMO)는 2010년부터 단일선체 유조선의 운항을 전면 금지하는 규정을 권고하는 수준의 대응.
하지만 그 규정도 각국의 사정에 따라 유예기간을 두게 되면 이 사고를 막을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나는 그래서 오재민 의원을 설득해서 국제 기준보다 빠르게 이중선체 유조선이 아니면 국내의 항구에 입항할 수 없도록 하는 강제 법안을 발의하도록 설득한 것이다.
물론 유조선 업체의 반발이 있었지만, AP사의 도움과 해운업계의 참여로 이중선체 강제 법안을 관철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그 효과를 톡톡히 보게 될 것이 분명했다.
“보고야, 올라가자.”
옆으로 다가온 정수호 이사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가 승선한 방제선 “플래닛”호가 어느새 유조선 “H 스피드”호 옆으로 도착했다.
우리는 빠르게 외벽에 설치된 비상계단을 이용해 H 스피드호로 올라섰다.
유조선의 선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저는 이 배의 선장입니다.”
“아 네, 저희는 선박 구난업체입니다. 기름 유출을 차단하는 것이 우선이라 먼저 오일펜스를 설치했습니다.”
정수호 이사가 말했다. 선장과 본인을 이 배의 일등 항해사라고 소개한 자신을 선원이 고맙다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이들은 갑자기 발생한 사고 때문인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 양반들이!’
지금 이렇게 한가하게 있을 때가 아니라고!
느닷없는 충돌에 정신이 없었겠지만 이 사람들은 전생에도 선박 충돌 이후 화물유의 선외 유출을 막기 위한 조치가 미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