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2화 (112/200)

강봉화 선장은 피항을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하는 듯했다.

하지만 최동석 선장의 반응은 떨떠름했다. 그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에도 이유는 있었다.

예인선단이 위기상황에 처하자 몇 가지 지키지 않은 안전 절차들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

우선, 이들은 출항 전에 항해 중 악천우를 만나게 되면 긴급피항을 할 곳을 정해놓지 않았다.

그리고 예인선단에 피항 등 문제가 발생해서 이로(항로를 벗어나는 것을 말함)가 발생하면 선박소유자와 예항 검사자에게 즉시 알려 필요한 조치를 통보받아야 하지만 이마저도 지키지 않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최동석 선장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통신을 종료했다. 예인선단의 책임자는 어디까지나 강봉화 선장이었기 때문이다.

* * *

-예인선 태성 S-5호의 선교

새벽 05시 17분경.

일등 항해사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서, 선장님, 큰일입니다. 예인선단이 심하게 떠내려가고 있습니다.”

“......!”

선장의 얼굴도 새까맣게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인천항 쪽으로 피항을 하려고 속력을 낮추면서 예인선단이 남동쪽으로 약 1마일 이상의 거리를 아무런 방해 없이 빠르게 밀려 내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강봉화 선장은 예인선의 침로를 인천항 방향으로 피항하기 위해 대각도로 변침한 상황.

그러나 바람이 심하게 불어 전진하지 못하고 예인선단은 계속 동쪽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선장님! 변침해도 부선이 끌려 오지 않고 있습니다!”

“......!”

“오히려 예인선들이 바람 때문에 부선 방향으로 끌려가고 있습니다!”

강봉화 선장이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항해사에게 말했다.

“피항을 포기한다.”

“네?”

“바람이 강해서 항행이 불가능하네. 원래 항로로 복귀하자.”

“네.”

강봉화 선장은 인천항 쪽으로 피항을 위하여 예인선들의 침로를 변침하였지만 대형 해상 크레인을 실은 부선이 끌려 오지 않고 풍파에 의해 계속 동쪽으로 밀려가면서 오히려 예인선들을 끌고 가자 피항을 포기했다.

이때 닻 정박 중인 유조선 “H 스피드”호는 선수방향을 약 340도로 향한 채 예인선단으로부터 약 190도 방향, 거리 약 1.7마일 근처에 위치한 상태였다.

* * *

-대산항 해상교통관제센터

새벽 05시 17분경.

이곳은 해상교통관제사들은 선박들이 항로 이탈하거나, 선박충돌 등의 위험이 있는지 관찰 후 해양사고 예방 관련 정보제공, 조선 및 지시 등을 하는 곳이다.

당직 관제사들이 오늘도 당직근무를 수행 중이었다. 하지만 교대시간을 앞둔 새벽근무시간.

“하아암!”

당직 관제사들의 얼굴에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때, 고요하던 관제실에 전화벨 소리가 울려 퍼졌다.

따르릉!

“음? 이 시간에 전화가?”

새벽 당직 근무로 눈이 충혈되어 있던 당직 관제사가 눈을 비비며 전화기를 들었다.

새벽에 전화라니? 안 좋은 예감이 드는 순간이었다.

“여보세요. 대산항 해상교통관제센터입니다.”

-아 네, 수고 많으십니다. 선박 충돌 징후가 보이는 선박이 있어서 신고를 좀 하려고요.

“아 예, 누구시죠?”

-저는 해신해운에서 일하는 장보고 일등항해사라고 합니다.

‘장보고?’

당직 관제사는 어디서 들어본 이름이라고 떠올렸다.

‘아 인수인계!’

당직 관제사는 인수인계 서류를 뒤적였다.

- 장보고, 사고 발생할 수 있다고 장난전화 수차례 함.

‘장난 전화는 아닌 것 같은데.’

고개를 갸웃한 당직 관제사가 전화통화를 이어갔다.

“선박 충돌 징후가 보이는 선박이라고요?”

-네, 맞습니다.”

“여기 대산항 근처에서요?”

-네, 저도 승선한 배로 피항처 근처로 이동하다가 멀리서 봤는데요.“

“네.”

-움직임이 이상한 선박이 있어서요. 예인선단입니다.”

“예인선단?”

당직 관제사는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심상치 않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대형 해상 크레인을 부선에 끌고 오는 예인선단이 있는데요. 지그재그로 사행 운항을 계속하는 모습이 아무래도 정상 운항을 못 하고 있는 상황 같습니다.”

“대형 크레인을 실은 부선이 사행한다고요?”

-네, 모니터 한번 확인해보시죠. 지금쯤 예인선단이 보일 때가 된 것 같은데.

“네, 한번 보겠습니다. 잠시만요.”

-그리고 근처에 혹시 유조선도 있지 않나요?

“네? 유조선? 음.... 맞습니다. 유조선이 한 척 있네요....”

- 바람이 부는 방향을 보니 아무래도 유조선이 있는 방향으로 떠내려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빨리 유조선에도 연락을 취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

-빨리 조치를 취해주세요. 저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이거 장난전화 아닙니다. 혹시 제 신분 확인이 필요하시면 해신해운 운항팀에 한번 연락해보셔도 됩니다.

당직 관제사는 장보고의 말을 듣고 급하게 모니터 화면을 돌리기 시작했다. 화면을 바라보는 그의 표정이 하얗게 질려가기 시작했다.

유조선 H 스피드호 기름 유출 사고 (2)

-대산항 해상교통관제센터 관제실

“어! 뭐야 이거?”

예인선단의 항적을 살펴보고 있던 당직 관제사가 눈을 크게 떴다.

“왜? 무슨 일인데?”

관제사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자 옆자리에 앉아 있던 관제팀장이 당직 관제사를 바라보며 물었다.

“팀장님, 이거 한번 보세요.”

“왜 그래”

“예인선단이 있는데 항적이 너무 왔다 갔다 하는데요.”

“뭐?”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던 팀장의 얼굴도 딱딱하게 굳어갔다. 당직 관제사에게 말했다.

“빨리 예인선 호출 좀 해봐!”

“네? 네.”

당직자 관제사는 급하게 통신을 시작했다.

사용한 채널은 VHF 채널 16. 그는 급하게 태성호를 비롯한 예인선들을 호출하기 시작했다.

지지직!

“태성 S-5호! 여기는 선교해상교통관제센터입니다!

“.......”

“태성 S-5호! 여기는 선교해상교통관제센터입니다!

“......”

예인선단의 항적을 의아하게 본 대산항 해상교통관제센터의 당직자는 새벽 5시 23분경 태성 S-5호와 부선을 VHF 채널 16으로 호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예인선단에서는 아무런 응답이 들리지 않았다.

“팀장님, 응답이 없습니다.”

당직 관제사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잠시만, 나도 유조선 쪽에 연락해볼게.”

관제팀장이 급하게 통신을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유조선 H 스피도호와의 통신은 이루어졌다.

관제팀장은 H 스피드호의 선장에게 닻을 감아 배를 이동할 것을 요청했다.

“이대로 있으면 충돌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당장 닻을 감아서 선박을 이동시키세요.”

-음…. 그게 안 됩니다.

“네?”

-이미 닻줄을 여유분 2절만 남기고 12절까지 모두 풀어준 상태입니다. 지금 거리에서 닻줄을 감으면 오히려 선박이 부선 쪽으로 전지하다가 충돌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본선에서 취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까?”

-음, 예인선단이 최근 접점을 지나 멀어지기를 기다려서 극미속 후진기관을 사용하여 닻을 끌면서 후진해보겠습니다.

“극미속 후진기관으로는 제 때에 이동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대로 있어도 어차피 충돌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으으음!

“닻을 감아서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최대한 빨리 이동해 주십시오.”

- 아! 본선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네?”

H 스피드호의 선장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들렸다. 통신기를 넘어 들려오는 내용에 관제팀장은 할 말을 잃었다.

- 미속후진과 반속후진을 연속으로 사용하다 보니 주기관 3번 기통 냉각청수 출구온도의 고온경보(M/Eng. #3 Cyl. C.F.W. Outlet. High Temperature Alarm)가 울렸습니다. 주기관 회전수가 자동 감속(Auto Slow Down)되어 기관 사용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 이, 이런….”

같은 날 06시 14분경.

예인선단이 남쪽으로 빠르게 표류를 계속하고 있었다. 표류 방향에 투묘 정박하고 있는 H 스피드호에 점점 접근하고 있었다.

예인선과 유조선 사이의 거리는 불과 약 0.5마일 내외에 불과한 순간이었다.

* * *

-예인선 태성 S-5호의 선교

새벽 06시 14분경.

예인선단이 남쪽으로 빠르게 표류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표류 방향에 H 스피드호가 투묘 정박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유조선과의 거리가 약 0.5마일 내외로 가까워졌다.

“서, 선장님! 유조선과의 거리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일등 항해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최대 출력으로!”

강봉화 선장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하지만 거센 파도와 바람 때문에 여전히 예인이 되지 않는 상황.

그 순간에도 예인선단은 빠르게 떠밀려 내려가고 있었다. 유조선과의 거리가 점차 가까워졌다.

일등 항해사가 선장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유조선 선수와 거리 260m입니다!”

다급한 표정을 짓고 있던 강봉화 선장이 VHF로 H 스피드호를 호출하기 시작했다.

“귀선의 닻이 끌리고 있습니다. 주기관을 준비하고 닻을 올려 이동해 주십시오!”

강봉화 선장이 다급하게 일항사를 향해 외쳤다.

“300도로 변침!”

양 선박의 접근 거리를 넓히기 위하여 태성 S-5호와 함께 침로를 약 300도로 변침하였다. 하지만 강한 파도와 바람 때문에 제대로 된 예인이 불가능했다.

그리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H 스피드호는 닻을 올려서 주기관을 이용해 후진하지 않고 있었다.

‘큰일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강봉화 선장은 충돌의 위험이 높다고 판단했다.

상황이 급박하여 최대 출력으로 예인하고 있는 상황.

예인선이 최대 출력으로 대형 해상 크레인이 실려 있는 부선을 예인을 하면서 거센 파도와 바람의 영향으로 주 예인선인 태성 S-5호의 예인줄에 과도한 장력이 점차 가해지고 있었다.

그 순간.

쾅!

마치 번개가 치는 듯한 소리가 바다 위로 울려 퍼졌다.

“음?”

일등 항해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가기 시작했다.

이때 부선으로부터 급하게 호출이 들어왔다.

“서, 선장님! 큰일입니다! 태성 S-5호의 주 예인줄이 끊어졌습니다!”

대형 해상크레인이 실린 부선을 끌고 있던 주 예인선 태성 S-5호의 예인줄이 선미로부터 약 50여m 뒤쪽 부분에서 파단 된 것이다!

휘청.

예인줄이 끊어지면서 태성S-5호도 크게 휘청거렸다.

강봉화 선장은 선교 밖으로 뛰쳐나가 부선을 살폈다.

다행히 부예인선인 태호 S-3호의 예인줄은 끊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부선도 크게 휘청거리고 있었다. 물론 부선 위에 놓인 대형 해상 크레인도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위태로워 보였다.

주 예인선인 태성 S-5호의 예인줄이 파단 된 상태.

1척의 부예인선인 태호 S-3호의 예인만으로는 실질적인 예인력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다.

“서, 선장님!”

일등 항해사의 표정은 경악 그 자체.

그는 대형 크레인이 실린 부선이 떠내려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강봉화 선장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

침을 꼴깍 삼키며 해상크레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와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 출항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출항 전에 걸려온 한 통의 전화가 떠올랐다.

어떻게 전화번호를 알아낸 것인지 그 남자는 다짜고짜 출항을 미루라고 말했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새파랗게 젊은 청년이었다.

‘그 사람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장난전화라고 해도 무슨 상관인가….’

자신보다 경력이 한참 짧은 청년이 일등 항해사라며 날씨가 어쩌고, 기상상황이 어쩌고 하며 훈수를 두었다. 자격지심 때문인지 빈정이 상했던 순간이었다.

강봉화 선장의 얼굴이 후회로 가득 차 있었다.

그사이 해상크레인을 태운 부선은 풍하 측의 H 스피드호를 향해 빠르게 떠내려갔다.

부선은 유조선 H 스피드호의 바로 앞까지 접근했다.

“......!”

일등 항해사도, 강봉화 선장도 아무런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이들의 표정이 서서히 하얗게 질려가고 있었다.

보조예인선 태호 S-3호의 선장 최동석 선장이 닻을 비상투하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