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욱 팀장이 잠시 고민하더니 말을 이어갔다.
“다른 선택지가 없잖아. 아무리 생각해 봐도.”
“네?”
“어차피 이대로면 아무리 이번에 성과급을 많이 받아도 원금 갚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잖아. 이자는 몰라도.”
“그건 그렇겠죠······.”
“그러니까 어차피 돈 못 갚으면 죽은 목숨 아니냐 이 말이야!”
“······.”
“돈 빌려준 놈들 아주 독한 놈들이라며?”
“네, 거경파 놈들은 저쪽 세계에서 아주 독종으로 유명한 놈들이에요. 잘못하면 우리 장기 털린다는 말은 제가 농담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왜 하필 그런 놈들한테 돈을 빌려서······.”
“그놈들 말고 이미 도박 빚이 잔뜩 있는 우리한테 돈 빌려줄 놈들이 어디 있습니까?”
안민준 과장의 말에 강욱 팀장도 할 말이 없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
‘······!’
그나저나 이놈들의 대화가 제법 놀라웠다.
거경파!
역시, 이놈들은 거경파 놈들과 연결이 되어 있는 것이 분명했기 대문이다.
< 띠링! >
+스킬 [고소고발 Lv.12]을 사용합니다. +
-추리력이 상승합니다.
-범인을 추적합니다.
일단 지금까지의 대화를 통해 추측할 수 있는 내용은 이렇다.
이놈들은 거경파와 관련이 있으며, 도박 빚을 갚기 위해 거경파로부터 돈을 빌린 상황.
그리고 이자도 제때 내지 못하는 형편이라 나를 협박하는 대가로 지난달 이자 지급을 유예받았다는 것인데.
참으로 딱한 놈들이 분명했다.
겨우 이놈들 이자 때문에 내가 이 세상을 하직할 뻔했다니? 참으로 화가 나는 순간이었다.
안민준 과장이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우리가 정수호 이사 몰래 보물을 좀 빼돌리더라도 우리가 처리할 방법이나 있어요?”
이런 보물은 바다에서 인양한다고 해서 일이 끝나는 게 아니었다.
뒤탈 없이 그리고 소문이 나지 않게 잘 처리하는 것이 중요했다.
나는 물론 인양만 마치면 최부자를 통해 일을 처리할 계획이었지만 이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 분명했다. 잘못하다가는 추적당해 보물을 빼돌린 것이 탄로 날 수도 있기 때문.
강욱 팀장이 말을 이어갔다.
“우리가 직접 처리하는 건 무리니까. 외부에 맡겨야지.”
“외부? 누구요?”
“어디긴 어디야 거경파에 맡겨야지. 부산에서 활동하는 놈들이라며? 일본 야쿠자 같은 놈들한테 물건을 넘기거나 아니면 국내에 힘 있는 놈들 통해서 처리할 수 있지 않을까?”
“음!”
강욱 팀장의 말에 안민준 과장이 일리가 있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나도 강욱 팀장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거경파라.’
이놈들의 계획대로라면 거겅파와 나는 참 지독한 악연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좋은 기회일지도 모르겠어.’
어쩌면 이번 기회에 거경파 놈들을 참교육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103화 악연 (1)
-오션플래닛 직원들 숙소 아래 골목길
인적이 없는 어두운 골목길 한쪽 구석.
가로등도 없는 깜깜한 골목 구석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두 명의 사내.
그 모습은 얼핏 봐도 수상해 보이는 그림이었다.
범죄를 공모하는 현장이라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나는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강욱 팀장과 안민준 과장의 범죄 공모 현장을 주시하고 있었다.
강욱 팀장과 이야기를 나누던 안민준이 담배를 꼬나물고 불쾌한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그럼 일단 말씀하신 대로 해볼 테니까, 팀장님은 먼저 올라가세요. 저는 거경파 쪽에 한번 전화해 보고 따라 들어갈게요.”
“아! 그래, 알았어. 한번 잘 이야기해 보고 알려줘.”
“네, 알았어요. 먼저 가서 쉬세요.”
강욱 팀장이 자리를 먼저 자리를 떠나자 안민준 과장은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웃기는 놈이네. 보물을 훔치자고? 골 때리네. 흐흐흐.”
안민준 과장은 비릿한 웃음을 지어 보이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두 손으로 전화기를 들고 있는 모습은 제법 공손한 자세.
‘누구랑 전화하는 거지?’
< 띠링! >
+스킬 [잡입 Lv.4]을 사용합니다. +
- 도청 능력이 상승합니다.
통화를 시작하는 안민준 과장의 얼굴도 제법 경직되어 있었다.
-여보세요.
“아 예, 형님. 저 안민준입니다.”
-그래 무슨 일이냐?
스킬 덕분인가? 상대방의 걸걸한 목소리가 명료하게 들려왔다. 마치 스피커 폰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다름이 아니고 이번 달 이자 지급하기로 한 것 말인데요. 좀 시간 좀 더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뭐? 이 새끼가 미쳤나? 이제 안된다고 했잖아. 너네 사정 봐주다가 내가 형님들한테 맞아 죽게 생겼다고 이 새끼야!
휴대폰 전화기 너머로 큰 소리가 들리자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며 통화하던 안민준 과장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허공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형님”
-아무튼 안 돼! 장기라도 팔아서 돈 만들어 와!
“형님, 제가 그냥 맨입으로 연기해달라고 하는 건 아니구요.”
-음?
“사실 좋은 건수가 있습니다.”
-좋은 건수?
“네, 사실 말씀하신 장보고 일항사 있잖아요. 그놈이 지금 저희 회사에 맡긴 일이 있습니다.
-그래 그건 이야기했잖아.
“그게 사실은 수중 공사 이런 게 아니고 침몰한 보물선에서 보물을 인양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뭐? 보물?
“네.”
-진짜 보물이 있는 거야?”
“내일부터 인양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하니까 진짜로 있긴 있나 봅니다.”
-그래서? 뭐 어쩌겠다는 거야?
“강욱 팀장하고 둘이서 한번 물건을 빼돌려 볼까 합니다.”
-으으음. 얼마나?
“티 나게는 하다가 걸리면 안 되니까요. 전부 빼돌리는 건 불가능하고요. 제일 좋아 보이는 것들로 몇 개 하고 금괴 챙겨서 찾아뵙겠습니다.”
-그걸로 이자를 갚겠다는 거야?”
“이자라니요. 지금 대충 이야기 나오는 추정 금액만 계산해봐도 제법 비싼 물건들이 틀림없습니다. 거경파에서 물건 처리하고 수수료만 받아도 저희가 빌린 원금과 이자는 전부 제하고도 남을 겁니다.”
-이 새끼가 장사 하루 이틀 하나. 수수료는 따로지. 못해도 수수료로 판매 금액의 30%는 받아야 될 거야. 그건 내가 형님들하고 이야기해 볼게.
“네······.”
수수료는 별도로 30% 이상 받아야 된다는 말에 안민준 과장의 인상이 잔뜩 찌푸려졌다.
“시발 새끼들! 벼룩의 간을 빼먹네! 개자식들!”
안민준 과장은 휴대폰을 얼굴 멀리 떨어뜨려 왼손으로 막았다. 그리고 들리지 않게 작은 목소리로 연신 욕설을 내뱉었다.
휴대폰 속 목소리가 말을 이어갔다. 제법 흥분한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리고 이런 일은 아는 놈들이 적어야 되니까. 그놈은 이번에 돈 회수 안 될 거 같으면 그냥 제껴버려. 그 거지 같은 새끼.
“네? 누구요? 장보고 일항사?”
‘컥!’
뭐? 이 미친놈들이!
조용히 안민준 과장의 말을 듣고 있던 나는 깜짝 놀라 귀를 쫑긋 세웠다.
휴대폰 속 목소리가 말을 이어갔다.
-그 새끼는 우리가 따로 손봐줄 계획이니까. 이번에 겁만 줬으면 내버려 두고.
“네, 그럼 누구?”
-누구긴 누구야! 돈 빌려가고 안 갚는 놈이지.
“가, 강욱 팀장이요?”
-그래, 뭐 정 안 되면 물건 전달받을 때 우리가 처리하든지 할 테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
통화를 마친 안민준 과장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에이 시발! 이거 큰일이네. 시키는 대로 안 하면 나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을 텐데.”
안민준 과장은 급하게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꺼내 들었다.
거경파의 인물과 통화를 마친 그의 안색도 담배처럼 까맣게 타들어가는 듯했다.
안민준 과장은 담배꽁초를 발로 밟아 끄고는 숙소로 올라갔다.
쓰레기통 뒤에 숨어있던 나는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슬쩍 모습을 드러냈다.
“거경파 이 미친놈들이 진짜 선을 넘는구나!”
거경파 놈들의 행동이 점점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신조선 인수 사건 때는 차진혁 경감의 손을 빌려 썩은 물을 걷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구속을 피할 수 없었던 사건의 핵심인물들인 박대룡 국회의원과 대한중공업의 조영일 전무는 구속되어 징역형을 살고 있다.
하지만 배후가 있을 것으로 의심되었지만 추가 수사로는 확대되지 않았다.
그 결과 거경파의 핵심인물들도 요리조리 수사망을 피해나갔다는 후문.
보이지 않는 큰손이 작용한다며 한숨을 내쉬던 차진혁 경감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번에는 직접 손을 쓰는 게 나을지도.’
조폭들을 상대할 생각을 하니 삼항사 시절 싱가폴에서 범죄조직 흑룡회를 상대할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시간이 지나 보니 제법 흥미진진했던 순간이었다.
그래, 그동안 너무 얌전하게 살았어.
오랜만에 직접 실력행사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느낌.
전의를 불태웠다. 결투를 앞두고 살짝 흥분되기 순간이었다.
* * *
-충남 태안 인근의 해상 바지선박 ‘오션호’.
며칠 후.
보물 인양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바지선 오션호에 마련된 상황실에서 정수호 이사와 함께 작업 현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나저나 대박이네.’
전생에 최부자한테서 들은 이야기보다 훨씬 많은 양이 바닷속에 잠들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야말로 노다지.
금광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작업을 하는 오션플래닛 직원들의 표정도 밝았다.
고된 작업이었지만 큰 보상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다들 열과 성의를 다하고 있었다.
아! 전부는 아니다. 잔대가리를 굴리는 두 명이 있으니까.
나는 고개를 돌려 정수호 이사를 바라보았다.
신난 표정으로 작업 지시를 하는 그의 얼굴에도 활기가 넘쳐 흐르고 있었다.
“음?”
정수호 이사는 내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고개를 돌렸다.
“왜? 할 말 있어?”
“허허허. 아니요. 기분이 좋아 보이시길래.”
“기분? 좋지. 춤이라도 추고 싶네.”
정수호 이사는 근육으로 가득 찬 두 팔을 들어 올렸다.
“대박이다! 대박이구나!”
그리고는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노래를 흥얼거리며 덩실덩실 어울리지 않는 춤 동작을 취하기 시작했다.
“······.”
나는 더 이상 안구 테러를 당할 수 없어 급하게 화제를 전환했다.
“이사님, 지금 얼마나 남았다고 했죠?”
“이제 한 80% 정도는 진행된 거 같은데?”
“그러면 한 2~3일 정도만 더 하면 될까요?”
“그 정도면 마무리 작업까지 하고 철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뭐 급한 일 있어?”
“날씨가 안 좋아질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요.”
“음? 날씨?”
정수호 이사는 미리 확보한 기상정보 자료를 확인하더니 말을 이어갔다.
“뭐, 일기예보상으로는 큰 이상은 없긴 한데. 며칠 뒤부터 비구름이 좀 있을 것 같긴 한데….”
“네, 괜히 불안해서요. 가급적 2~3일 안에 마무리하고 철수 준비를 했으면 좋겠어요.”
“오케이. 거의 다 했으니까 문제는 없을 거야.”
정수호 이사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수중 인양 작업은 위험한 작업이기 때문에 일을 급하게 하는 것보다 안전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만약 작업 기간이 길어지면 곧 닥쳐올 황천(비바람이 심한 날씨)에서 더 큰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높았다.
“음?”
상황실에서 수중 모니터링 시스템을 화면을 확인하고 있던 정수호 이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이사님, 무슨 일이에요?”
내가 수중 모니터링 시스템 화면 근처로 다가서며 물었다.
“이상하네, 이거 보이지, 잠수사 수중위치를 추적하는 장비거든.”
“그런데요.”
“움직임이 좀 이상한데.”
“수심이?”
“25~30m 사이 같은데?”
나는 그 말에 유심히 화면을 바라보았다.
움직임이 적은 다이버가 다른 다이버들과 동떨어져 있는 모습이 관찰되었다.
“누군데요?”
“음, 강욱 팀장인 것 같은데. 왜 혼자 있어?”
‘음?’
강욱 팀장?
나는 지난 며칠 전 몰래 엿들은 안민준 과장의 전화 내용이 떠올랐다.
정수호 이사는 급하게 통신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강욱 팀장! 강 팀장!”
-……
지금 현장에 투입된 잠수사들은 수중 통신을 할 수 있는 장비를 갖추고 있었지만 응답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혹시?”
불길한 예감이 빠르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자 메시지창이 빠르게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