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들어 정수호 이사의 가슴팍에 그려진 고래 꼬리 모양의 문신을 가리켰다.
“뭐야? 왜 그렇게 놀라?”
정수호 이사가 나의 반응을 보더니 방긋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다이버가 문신한 거 처음 보냐?”
“그, 그건 아닌데요.”
“다이버들 중에는 고래 꼬리 문신하는 사람 많은데 몰랐나보네.”
“아…….”
“다이버들 사이에는 고래 꼬리가 행운의 상징이라는 말이 있거든.”
정수호 이사가 어딘지 모르게 씁쓸한 표정으로 웃으며 자신의 목에 걸려있는 목걸이를 들어 보였다. 그의 손에는 고래 꼬리 모양의 목걸이가 들려 있었다.
“산업잠수사로 일하다 보면 이래저래 사건 사고를 많이 목격하게 되거든. 이런 미신이라도 믿고 싶어지는 법이거든.”
“음…….”
“아무리 경험 많은 산업잠수사나 스쿠버 다이버라도 바다 앞에서는 그저 한낱 미물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 바다 앞에서는 항상 겸손해야지.”
그는 목에 걸려있는 제법 오래되어 보이는, 그리고 사연이 있어 보이는 낡은 은색 빛의 고래 꼬리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나는 그의 말에 그저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평소 활기찬 정수호 이사답지 않게 그의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대답을 하지 못했다. 목걸이는 그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 물건이 분명해 보였다.
그나저나 나도 오늘 있었던 일 때문에 아무래도 간이 작아진 것이 분명했다.
‘그나저나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더니 내가 딱 그 꼴이구나!’
겨우 고래 꼬리 문신을 보고 그렇게 놀라다니.
정수호 이사가 거경파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정수호 이사가 거경파와 관련이 있다면 나는 그야말로 죽은 목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망상에 불과한 생각이었지만, 그 순간에는 나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내 거경파의 문신은 저런 꼬리 목양이 아니라 큰 고래 모양이라고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정수호 이사에게 물었다.
“이사님, 여기 온 직원들 중에도 문신한 사람들 많죠?”
“뭐, 다이버들은 뱃사람들처럼 문신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고래 문신한 사람이 있어요?”
“나도 직원들이 어떤 문신을 하고 있는지 까진 정확하게 모르니까. 한번 확인을 해봐야 알 거 같은데.”
“네, 혹시 고래 문신을 한 친구가 있는지 좀 알아봐주세요.”
“고래? 내가 한 고래 꼬리 같은 문신?”
“그런 꼬리 모양 말고 등 같은 곳에 색이 들어간 문신 있잖아요. 생활하는 사람들이 하는 현란한 스타일.”
“생활?”
“네, 조폭들이 하는 그런 스타일이잖아요. 형형색색으로 화려한 스타일.”
“음……!”
조폭이라는 말에 정수호 이사가 얼굴을 살짝 굳혔다.
어떤 작은 실마리가 정수호 이사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도 고민하는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조폭이라고 하니까 생각나는 사람이 한 명 있긴 한데……”
“누구죠?”
“너도 잘 아는 사람이긴 한데…… 왜 안민준 과장이라고 있잖아.”
“안민준 과장이요? 전혀 그렇게 안 보이던데……”
“하하하. 뭐, 옛날이야기니까. 어릴 때 방황하던 시절 이야기 같던데.”
‘안민준 과장이 예전에 조폭 생활을 했었다고?’
나는 정수호 이사가 지목한 안민준 과장을 떠올렸다.
외모만 봐서는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안경을 쓰고 항상 예의가 바른 모습의 점잖은 사내였기 때문이다.
* * *
-오션플래닛 직원들의 숙소
며칠이 지난 후 늦은 오후.
오션플래닛의 직원들의 숙소에 몇 명의 직원들이 모여있었다.
지난 며칠간의 수중 작업은 문제없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보물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창고로 진입하기 위한 진입 통로를 만드는 수중 작업도 마무리된 상황.
이제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창고 안의 물건들을 수면 위로 인양하는 작업이 진행될 예정이었기 때문에 다들 들뜬 기분이었다.
제법 난이도 있는 작업을 오늘 무사히 마쳤기 때문에 오션플래닛 직원들은 숙소에 모여 가볍게 맥주를 한잔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도 이 자리에 참석했는데, 그 이유는 예의 주시하고 있는 두 명의 직원이 이 자리에 함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민준 과장과 강욱 공무팀장.
안민준 과장은 정수호 이사가 일전에 이야기한 어린 시절 방황을 했던 조폭 출신 직원이고, 강욱 공무팀장은 산업잠수사들을 관리하는 책임자였다.
그동안의 조사 결과 거경파와 연계되었을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은 이 둘 중 하나로 추측되는 상황이었다.
정수호 이사로부터 강욱 팀장이 최근 개인 사정 때문에 퇴직금을 중간정산 받아 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기 때문에 강욱 팀장도 요주의 인물이었다.
특히 직원들을 수소문한 결과 강욱 팀장의 개인 사정이라는 것은 다름 아닌 도박 빚 때문이라는 소문이 파다한 상황이었다.
그간 지난 몇 년간 강욱 공무팀장이 불법도박장에서 잃은 돈이 억 단위가 넘어간다는 소문이 이미 직원들 사이에 널리 퍼져있었다.
도박 빚을 빌미로 어떤 불법적인 일에 가담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문제는 이런 하수인들이 아닌데.’
나는 강욱 팀장과 안민준 과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만약 배후에 거경파가 있다면 이번 기회에 이놈들을 정리하는 것이 중요했다. 지금 이곳에 있는 자들은 하수인에 불과했기 때문에 이들을 잡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거경파는 해운조선 업계의 비리에 깊게 연관된 놈들이었는데 제법 권력이 있는 정계, 재계의 인사들과 관련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얼마 전 신조선 인수 사건 당시 차진혁 경감이 거경파에 대한 수사를 확대하려고 하자 상부의 거센 압력으로 수사를 확대하지 못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이번 기회에 어떻게든 거경파 놈들에 대한 실마리를 잡을 필요가 있었다.
안 그러면 앞으로 이놈들이 사사건건 나를 방해하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기분 좋게 맥주를 나눠 마시고, 분위기가 무르익어가자 나는 강욱 팀장에게 슬쩍 다가섰다.
그리고 그가 좋아할 만한 주제의 이야기를 꺼냈다.
“강욱 팀장님! 심심한데, 우리 재미로 카드나 한판 칠까요?”
“카드? 장보고 일항사 카드도 치나?”
나는 어리숙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흐흐흐. 잘하는 건 아니고요. 배에서 선장님들이 심심해하시면 가끔 재미 삼아 상대해드리는 정도죠.”
“허허허. 그래? 재미 삼아 그렇게 해야지. 안 그러면 큰일 나……”
“강욱 팀장님은 카드 좋아하시나 봐요?”
“나? 나는 이제 끊었어. 옛날에는 좋아했지.”
대답하는 강욱 팀장의 목소리가 어딘지 가라앉아 있었다.
그때 안민준 과장이 우리 대화를 듣고 다가와 말했다.
“하하하. 장보고 일항사님, 속지 마세요.”
“네?”
“강욱 팀장님은 우리 회사에서 소문난 타짜니까 속지 마세요. 잘못하면 속옷까지 탈탈 털릴지도 몰라요.”
“에이! 무슨 소리! 그건 다 옛날이야기지. 이제 아니야.”
강욱 팀장은 옆에 앉아 있던 안민준 과장의 말에 손사래를 쳤다. 그의 표정은 어딘지 씁쓸해 보이기도 했다.
그 말에 안민준 과장이 강욱 팀장의 옆구리를 콕콕 찌르며 말했다.
“팀장님, 그러지 말고 장보고 일항사님 돈 좀 따서 한턱 쏘세요.”
“뭐?”
“그 소문 못 들었어요? 장보고 일항사 엄청 부자라고 영도 바닥에 소문이 파다한데.”
“그, 그래?”
안민준 과장의 말에 강욱 팀장이 슬쩍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살짝 고민하는 눈빛.
하지만 이내 온순하던 그의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갑자기 눈동자에서 날카로운 빛이 감돌았다.
‘부자인 호구.’
아마도 그 유혹을 이기기 힘들었을 것이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 부자인데 호구라니?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의 표정같이 그의 얼굴에 갑자기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글쎄, 과연 뜻대로 되는지 한번 볼까?’
나는 안민준 과장의 말에 슬쩍 웃으며 준비해온 카드를 앞으로 슬쩍 내밀며 말했다.
“허허허. 뭐, 재미 삼아 하는 건데요. 크게는 못하고요.”
내가 내민 카드를 보자 강욱 팀장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리기 시작했다. 카드를 보자 참아왔던 욕구가 솟아오른 것이다.
안민준 과장이 다가와 강욱 팀장에게 귓속말을 하더니 옆구리를 쿡쿡 찌르기 시작했다.
강욱 팀장이 고개를 가볍게 흔들더니 말했다.
“그럼 장보고 일항사, 가볍게 재미 삼아 한번 해볼까?”
“네, 그러시죠.”
우리를 바라보는 안민준 과장이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재미 삼아 적은 돈을 걸고 시작한 카드 판은 어느새 제법 규모가 커져 있었다.
강욱 팀장은 도박에 중독된 사람이라고 하더니 정말 제법 실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아이고! 또 지셨네. 우리 일항사님! 이거 어쩌나?”
“으으음! 안민준 과장님이 왜 좋아하실까?”
“흐흐흐, 팀장님이 따면 뭐라도 한턱 쏘시겠지.”
돈을 딴 건 강욱 팀장인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신난 사람은 안민준 과장처럼 보였다.
“허허허. 잘 안되네요. 정말 쉽지 않네요.”
나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웃으며 또다시 현금 다발을 꺼냈다.
강욱 팀장은 타짜라는 별명답게 판돈을 싹쓸이하고 있었다.
호구처럼 쉽게 돈을 잃자 나를 털어먹기 위해 강욱 팀장과 안민준 과장은 판돈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재미 삼아 한다더니 이제는 정말 도박판이 되어가고 중이었다.
강욱 팀장은 오랜만에 하는 게임이라더니 그의 얼굴에는 지난 며칠 동안 찾아볼 수 없었던 활력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이제 분위기는 충분히 달궈진 듯 보였다.
‘그럼 나도 슬슬 시작해볼까.’
< 띠링! >
+스킬 [고소고발 Lv.12]을 사용합니다. +
-거짓말을 간파하는 능력이 상승합니다.
-관찰 능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강욱 팀장은 제법 실력자였지만 결국은 아마추어.
스킬을 사용한 이상 거짓말 탐지 효과를 벗어날 순 없었다.
그가 바닥에 놓인 카드에 손을 뻗어 자신의 패를 슬쩍 확인했다.
< 띠링! >
+상대방의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립니다. +
제법 좋은 패를 잡은 것이 분명했다.
< 띠링! >
+카드를 확인한 손끝이 미세하게 흔들립니다.
< 띠링!>
+상대방의 목소리 톤이 올라갔습니다. +
스킬을 사용한 이상 그의 동공, 손 떨림, 미세한 목소리의 차이가 거짓말탐지기처럼 감지되기 시작했다.
‘스킬을 사용해서 미안하긴 한데.’
비겁해도 어쩔 수 없었다. 나도 목숨이 달린 일일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내가 보고 싶었던 것은 강욱 팀장의 반응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판돈을 싹쓸이하고 있었다.
초심자에게 연달아 패배하자 강욱 팀장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돈을 잃은 것보다 호구로 생각했던 나에게 당하는 현실이 그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기세가 무르익었다.
흥분하기 시작한 강욱 팀장이 판돈을 점점 키우기 시작했다.
분위기에 맞춰 나도 마지막 판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철저하게 설계된 손놀림.
< 띠링! >
+스킬 [잠입 Lv.4]을 사용합니다. +
-당신의 손놀림이 빨라집니다.
나의 손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촤르륵!
촥촥촥!
“뭐, 뭐야?”
갑자기 누구보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카드를 정리해나가자 안민준 과장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이거 뭐, 꾼 아니야? 팀장님 우리가 당한 거 같은데요?”
안민준 과장의 말에 강욱 팀장은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고 그저 나의 손놀림을 주시했다.
강욱 팀장이 도박판에서 봐왔던 그런 고수들의 손놀림이었다.
타짜들은 소리가 눈보다 빠르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의 손은 소리보다도 빠르게 움직였다.
카드를 받아 든 강욱 팀장의 눈이 순간 반짝거렸다.
< 띠링!>
+상대방의 호흡이 미세하게 흔들렸습니다. +
+심장 박동수가 미세하게 빨라지고 있습니다. +
그는 내가 던진 미끼를 물어버린 것이 분명했다.
“으으음!”
카드를 확인한 나는 신음성을 흘렸다.
누가 봐도 좋은 패를 들고 있다는 신호로 보이는 행동이었다.
< 띠링! >
+스킬 [협상 Lv.14]을 사용합니다. +
-설득력이 올라갑니다.
나의 표정을 확인한 강욱 팀장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새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