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6화 (106/200)

어쩌면 작은 실마리를 찾은 기분이 드는 순간이었다.

* * *

몇 시간 뒤.

바지선 오션호에 설치된 회의실.

이곳 바지선 오션호에 컨테이너를 이용해 설치된 회의실에는 오션플래닛 직원들이 모여서 한창 토의 중에 있었다.

오션플래닛의 직원들이 모두 모여 오늘 있었던 작업을 복기하고 내일 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활발한 토론이 한창 진행되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정수호 이사가 주변을 둘러보며 오늘 일정을 마무리했다.

“...... (중략) …… 그리고 안전에 다들 유의하고, 특히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다들 장비들은 더블 체크 하는 것도 있지 말고 알겠지?”

“네!”

“그럼 모두 해산!”

“수고하셨습니다!”

정수호 이사의 말에 오션플래닛의 직원들이 다들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창문 너머로 대답하는 오션플래닛 직원들의 면면을 살피고 있었다.

우르르.

회의가 끝나자 오션플래닛 직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회의실 문 앞에 서서 문을 열고 나오는 직원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간단하게 묵례를 하는 이들도 있었고, 나를 본체만체하며 그냥 지나가는 직원들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나는 직원들의 표정을 유심히 관찰했지만 특이한 점을 아직 발견할 수는 없었다.

오션플래닛의 다른 직원들이 모두 자리를 떠났지만 이 현장의 책임자인 정수호 이사는 여전히 회의실에 남아있었다.

그는 책상에 그대로 앉아 내일 있을 작업을 위해 서류를 챙겨보기 시작했다.

나는 오션플래닛 직원들이 모두 빠져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회의실을 모두 빠져나가자 나는 천천히 회의실 문으로 다가섰다.

똑똑똑!

벌컥!

나는 노크를 한 후에 문을 열고 회의실로 들어섰다. 노크 소리를 들은 정수호 이사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정수호 이사를 보며 방긋 웃으며 말했다.

“이사님, 늦게까지 고생하시네요.”

“어, 보고야 왔냐?”

“네. 잠시 시간 괜찮으세요?”

“그래, 들어와. 그쪽에 앉아.”

정수호 이사는 내가 들어오는 것을 발견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서 나에게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보고야, 아까 바닷속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야?”

정수호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나를 보며 물었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이 살짝 경직되어 있었다.

고래 문신

-충남 태안 인근 해상 바지선 오션호

정수호 이사의 표정에 나는 살짝 웃어 보였다.

나는 범인의 정체를 밝혀내기 전까지는 비밀을 유지할 생각이었다.

범인을 몰래 추적하기 위해서는 비밀을 유지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선은 걱정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 정수호 이사를 안심시켜줄 필요도 있었다.

“너무 오랜만에 다이빙을 해서 그런가 봐요.”

“음? 뭐? 오랜만에 다이빙을 해서 그렇다고?”

“네, 다이빙을 한 지 6개월도 넘었거든요. 스쿠버 장비도 미리 오버홀을 해뒀어야 했는데 급하게 오느라 신경을 못 썼네요.”

“그……래?”

정수호 이사는 내 말에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손을 들어 올려 턱을 살짝 긁으며 의뭉스런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는 내가 평소에 얼마나 장비를 잘 관리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는 좀처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물론 오랜만에 다이빙을 하는 경우에는 긴장한 탓에 과호흡이 발생할 수도 있고, 장비를 자주 사용하지 않으면 부식되는 등 장비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뭔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분명히 있었다.

특히 나는 정수호 이사에게 다이빙 고급 과정을 배운 상태였기 때문에 그는 나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다. 이미 준프로 레벨이라고 할 수 있는 다이버 레벨이었기 때문에 이런 실수를 한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을 것이 분명했다.

내 말에 고개를 갸웃하던 정수호 이사가 말을 이어갔다.

“뭐, 어쨌든 내일부터는 물에 안 들어간다고 했지?”

“네, 내일부터는 작업에 방해될 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위에 있을게요.”

“그래 나도 선박에서 대기하면서 작업을 지휘할 계획이니까. ”

“그런데 안에는 시카마루 37호의 상태는 괜찮던가요? 침몰된 지 너무 오래돼서 작업하는데 위험하지 않던가요?”

나의 말에 정수호 이사가 활짝 웃어 보였다. 예상보다 상황이 좋았던 눈치.

“흐흐흐. 배 상태는 생각보다는 훨씬 괜찮던데?”

“오! 그거 다행이네요.”

“일단은 선박 안에서 창고로 들어가는 출입구를 확보하는 게 우선인데 아마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이네. 내일부터 계획대로 작업을 시작할 생각이야.”

“뭐, 보물 같은 거 좀 보이는 게 있던가요?”

“하하하. 아니, 발견된 건 없던데. 아직 선박 내부를 다 살핀 건 아니니까. 실망은 하지 말고, 특히 보물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던 선실이나 창고 쪽은 아직 진입도 못 했으니까.”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보물이 있다면 숨겨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 아마도 창고 등에 잘 봉인된 상태로 잠들어 있을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네, 그리고 전에 말한 대로 방제 작업 같은 건 준비가 다 된 거죠?”

“그래 일단, 필요한 조치는 다 해놓고 할 테니까 환경오염 같은 건 걱정하지 말고.”

“뭐, 침몰된 지 하도 오래돼서 추가 유출될 기름 같은 건 없을 것 같긴 한데……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요?”

“그래, 네가 부탁해서 방제장비는 다 싣고 왔으니까.”

“그것도 들고 왔죠? 그때 보여준 오일펜스?”

“응, C타입 스피스 스윕 오일펜스도 저기 실려 있지.”

정수호 이사는 손을 들어 바지선 위에 실려 있는 컨테이너 박스를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다.

“뭐, 가져오긴 했는데 침몰된 지 오래돼서 그렇게 대규모로 방제할 일은 없을 거 같긴 한데……..”

“흐흐흐.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요. 기름이 유출될 수도 있고.”

“뭐, 우리야 고객님이 원하시는 대로 해드려야죠.”

내 말에 정수호 이사는 오른손을 들어 올려 엄지와 검지를 비벼댔다.

고객이 왕이라면 고객이 돈만 주면 시키는 대로 한다는 농담이었다.

오션플래닛은 수중공사뿐만 아니라 해양오염 방제분야에서도 가장 뛰어난 실적을 보이고 있는 곳이었다.

특히 가장 강점을 보이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바다에 유출된 기름을 방제하는 작업.

선박이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하면 침몰선에 잔존하고 있는 선박유 등이 유출되지 않도록 수중에서 탱크의 밸브 등을 밀봉하는 작업이 필요한데 이때 오션플래닛의 다이버들이 침몰된 곳으로 들어가 수중 용접 등을 통해 기름 유출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치하는 일을 수행한다.

그리고 수면 위에서 선박들이 충돌하거나 사고가 발생해 해상에 기름이 유출되면 수면 위에서도 이를 방제하는 작업도 필요한데, 이때 사고가 발생하면 해양경찰에서 가장 빠르게 방제 조치를 요청하는 곳이 바로 이 오션플래닛이었다.

나는 이번 작업에 앞서 오션플래닛이 갖고 있는 방제 장비들을 모두 동원해 줄 것을 미리 요청해둔 상태였다.

요청을 한 명목상의 이유는 수중 작업 중에 시카마루 37호에 잔존하는 기름이 혹시라도 유출될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시카마루 37호는 침몰된 지 70년이 넘어서 아직도 기름이 선박 내에 잔존하고 있는지 여부도 알 수 없는 상태였지만 유출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사실 이건 명목상의 이유에 불과했다.

내가 방제장비를 갖추고 지금 이 시점에 보물 인양 작업을 실시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진짜 문제는 시카마루 37호의 잔존하는 기름이 아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전생에 이곳 충남 태안 인근에서 발생한 대형 해양 사고 때문이다.

* * *

전생의 기억대로라면 몇 주 뒤 이곳에서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기름 유출 사고가 발생할 예정이었다.

곧 발생할 우리나라 해상 사고 역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하는 역대급 대형 재난사고.

“H 스피드”호 기름 유출 사고가 발생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20xx년 xx월 x 일. 오전 7시경.

해상에서 예인 중이던 크레인선이 지나가던 유조선 “H 스피드”호와 충돌 원유 12,547㎘가 유출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는 지난 십 년 동안 일어난 유출사고의 유출량을 전부 합한 것보다 더 많은 양이었다고 한다.

문제는 이 역대급 사고가 발생하는 사고 지점이다.

H 스피드호 기름 유출 사고의 발생지는 지금 우리가 있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충청남도 태안군 소원면 만리포해수욕장 북서방 8km 해상이었다.

이 사고를 막아야 하는 이유는 이 대형 사고로 인한 피해와 후유증이 전 국가적으로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유조선이 충돌하면서 발생한 기름 유출의 피해는 상상을 초월했던 것. 특히 풍랑주의보 때문에 해양경찰을 비롯한 관계 당국은 초기방제에 실패해 원유가 충남 서해안을 넘어 남해까지 퍼져나갔다.

유조선에서 유출되는 기름도 2일째가 되어서야 겨우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사이 유출된 기름 피해는 이미 눈덩이처럼 불어난 상황.

특히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은 이곳 태안과 서산 일대의 양식장과 어장이었다. 양식장과 어장의 어패류가 떼죽음했으며 기름으로 뒤덮인 철새들의 모습이 연일 언론에 보도되었다.

정부는 초기 방제도 실패하고 사고 이후에도 제대로 된 수습책을 마련하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이때 태안 바다를 살린 것은 정부도, 거대 기업도 아닌 어마어마한 수의 자원봉사자들이었다.

전국에서 구름처럼 몰려온 국민들이 직접 기름을 제거하기 시작했고,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이곳 태안의 바다도 천천히 원래의 모습을 조금씩 찾아가기 시작했다.

* * *

나는 사실 이 사고를 대비해 몇 년 전부터 준비를 해왔다.

이 사건은 해운조선업계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에게도 큰 피해를 끼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몇 년 전 오재민 의원을 설득해 발의안 유조선 이중선체 강제 법인이 바로 이때를 위한 사전 작업이었다.

그 법안 덕분에 현재 우리나라를 입항하는 유조선들은 이중선체 구조인 경우에만 입항이 가능한 상태였다.

‘사고가 나더라도 전생 같은 큰 피해는 아닐 거야.’

이중선체 유조선이라면 충돌이 있다고 해도 전생의 단일선체 때와는 비교해서는 기름 유출이 비교적 적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은 시간이 남아있었고, 일단은 이곳에서 먼저 처리해야 할 급한 일도 있는 상황.

그건 바로 범인을 색출하는 작업이 우선이었다.

아무리 나라를 살리는 일이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일단 내가 살고 봐야 될 일이 아닌가?

나는 곧 있을 대형 사고에 대한 생각을 잠시 미뤄두기로 하고 정수호 이사를 찾아온 본론을 조심스럽게 꺼내기 시작했다.

“저기, 이사님.”

“음?”

나는 목소리를 최대한 조용히 낮췄다.

주변을 잠시 둘러본 후 인기척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말을 이어갔다.

“이사님, 이번에 같이 온 직원 중에 새로 들어온 직원들이 있습니까?”

“음? 그건 왜?”

“아무래도 작업이 위험하다 보니 직원들 인적사항이나 경력을 저도 알아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요.”

“음, 그래?”

정수호 이사는 고개를 갸웃하면 내 표정을 잠시 살피더니 말을 이어갔다.

“내 입장에서는 직원들 실력을 의심하는 거라면 그리 유쾌한 질문은 아니긴 한데…….”

“아! 그런 뜻은 아니었습니다.”

“하하하. 그래 뭐, 너라면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가 있겠지?”

“.......”

나는 대답 대신 그저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눈빛을 빛냈다.

“음, 회사에 신입직원들이 있긴 한데.”

“이곳에도 있습니까?”

“아니, 이번 작업에는 그래도 경력이 있는 사람들로 뽑아왔거든.”

“그래요? 그럼 가장 최근에 입사한 친구가 언제?”

“가장 최근에 입사한 사람도 적어도 2년 이상은 됐으니까.”

“그렇군요.”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노리고 최근에 입사한 직원은 없어 보였다. 보물선 프로젝트도 정수호 이사를 비롯한 몇 명 인원들만 사전에 알고 있던 내용이기 때문에 이 일을 대비해서 직원들을 잠입시킨다는 것은 그리 가능성이 높지 않은 이야기이긴 했다.

이것보다는 아마 사주를 받았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그리고 그런 동기는 대부분 ‘돈’이다.

“그럼, 혹시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한 직원 중에 최근에 돈 문제 같은 거나 집안 문제로 고민 같은 걸 토로한 직원이 있었을까요?”

“돈 문제?”

“네, 뭐 최근에 도박 빚을 크게 졌다거나 뭐 그런 일이 있는 친구들 있잖아요.”

“글쎄, 직원들 사이의 소문은 있을지 몰라도 내가 들은 건 없는데.”

“뭐, 임금을 좀 일찍 지급해 달라거나 퇴직금 중간 정산 같은 걸 해달라고 한 그 친구들이 있으면 확인이 가능할 텐데요.”

“글쎄, 그건 나도 잘 모르는데. 인사팀에 한번 확인해봐야 할 것 같은데.”

“죄송한데 인사팀에 확인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음, 한번 알아볼게. 그런데, 질문이 좀 이상하네.”

“네?”

나의 계속되는 질문에 정수호 이사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물었다.

“보고야, 혹시 오늘 있었던 일도 관련이 있는 거냐?”

역시, 정수호 이사는 제법 예리한 사람이었다.

그가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을 마주하자 나는 차마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나는 주변을 한 번 둘러본 후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으으음!”

정수호 이사가 짧게 신음을 흘렸다.

회사 직원 중 한 명이 고객의 스쿠버 다이빙 장비에 장난질을 쳤다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정수호 이사 입장에서도 그냥 넘길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떤 새끼가…….”

정수호 이사도 이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자 화가 잔뜩 난 듯 얼굴이 붉어졌다.

“하하하. 이사님, 아직은 정확하게 밝혀진 게 없어서요. 흥분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 뭐라도 나오면 꼭 알려줘. 가만두지 않을 테니.”

말을 마치고 팔짱을 끼자 우락부락한 그의 팔 근육이 오늘따라 더 화가 난 듯 부풀어 올랐다.

“좀 더 알아내면 그때 알려드릴게요.”

“음, 그래. 나도 한번 따로 알아볼게.”

“일단은 제가 혼자 조용히 알아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사님까지 나서면 시끄러워져서 범인을 더 찾기가 힘들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런가?”

“네, 그리고 이사님은 우선 보물찾기에 집중하셔야죠. 흐흐흐.”

“끄으응! 그 말도 맞네.”

정수호 이사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쉬운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그래, 뭐 더 궁금한 건 없고?”

“아! 이사님 혹시 다이버들 중에 문신한 사람은 없어요?”

“문신?”

“네, 뭐 고래 문신이라든지……?”

나는 거경파 조직원들이 고래 모양의 문신을 하고 다닌다는 소문을 떠올렸다.

“이런 거 말하는 거야?”

정수호 이사가 셔츠 단추를 풀어 헤치더니 늑골 밑 가슴팍이 드러나게 셔츠를 열어젖혔다.

“……!”

정수호 이사의 오른쪽 늑골 밑에는 고래 꼬리 모양의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타짜

-충남 태안 인근의 해상 바지선 ‘오션호’

나는 고래 꼬리 모양의 문신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 소리쳤다.

“헉! 고래 모양 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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