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경고 메시지를 확인한 나는 까무러칠 듯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육상도 아닌 바닷속에서 이런 경고 메시지를 받는다면 아무리 나라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지금 위치한 곳은 시야가 채 1미터도 나오지 않는 혼탁한 서해의 바닷속
그것도 수심 40m의 깊은 바다였다.
이런 곳에서 나를 노리는 사람이 있다고?
“쓰읍! 후! 쓰읍! 후!”
느닷없는 경고 메시지에 크게 당황한 나는 격한 호흡을 뱉기 시작했다.
호흡 소리가 가빠지기 시작했다.
두근두근.
수심 40m는 수면 위의 소음으로부터 거의 차단된 깊은 곳이다.
이 고요한 바닷속에서 지금 들리는 것은 나의 심장 소리와 호흡 소리뿐이었다.
보물선 엘리자베스호 (3)
-충청남도 태안 인근 무인도 근처 수심 40m
예상치 못한 상황.
수심 40m 극한의 환경 속에서 이런 상황을 맞이하면 누구라도 긴장할 수밖에 없다. 나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후우…….”
나는 점차 호흡이 가빠지는 것을 느꼈다. 깊게 호흡을 내쉬었다.
수심 40m의 깊은 바다에서 나를 노리는 사람이 있다는 말에 나는 순간적으로 평점심을 잃을 뻔했다.
몸을 빙글 돌려 주변을 빠르게 스캔했지만 특이사항은 보이지 않았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할 필요가 있었다.
잘못하다가는 패닉 다이버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계 수심 40m를 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다이버들이 응급 상황에 처하는 경우가 있다. 간혹 이성을 잃고 정신 나간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패닉 다이버라고 부르곤 했다.
그리고 수심 30m 이하로 잠수할 때에는 고압의 질소가 잠수 중인 인체에 마취작용을 일으키는 이른바 질소 마취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질소 마취 상황에 처하면 마치 술에 취해 이성을 잃은 사람들처럼 행동하는 경우도 있다.
마음을 단단하게 먹어야 되는 순간이다.
< 띠링! >
+ 스킬 [마도로스의 심장 Lv.10]을 사용합니다. +
-심박수가 정상으로 돌아옵니다.
-과호흡 상태가 해소됩니다.
-평점심을 유지합니다.
호흡이 정상적으로 돌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빠르게 정신을 추스르고 상태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수중에서 다이빙하는 동안 가장 위험한 것은 아무래도 공기가 고갈되는 것이다.
나는 공기통에 남아 있는 공기의 양을 확인하기 위해 오른손을 뒤로 뻗어 게이지를 찾았다.
‘어라? 벌써?’
50bar밖에 안 남았다고?
출발 전에 확인한 공기량은 200bar가 넘는 양.
평소대로라면 여유를 두더라도 40분에서 한 시간가량은 충분히 다이빙을 할 수 있는 양이었다.
하지만 지금 입수한 직후의 시점에 공기통에 남은 공기의 잔량이 50bar도 채 되지 않는다는 것은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누가 장비를 만졌구나.’
누군가 의도적으로 내 장비에 손을 대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문제는 일반적인 스쿠버 다이빙 장비는 50bar 이하에서 정확한 수치를 담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언제 공기가 부족해 제대로 호흡이 되지 않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라는 점이 나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나는 급하게 고개를 돌려 정수호 이사를 찾았다.
정수호 이사도 나의 행동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가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나는 오른손을 들어 목을 가로 긋는 시늉을 했다.
이 수신호는 다이버들 사이에 정해진 수신호로 공기가 고갈되어 간다는 의미였다.
-공기가 고갈됐습니다.
가슴 높이로 들어 주먹을 살짝 쥐는 것은 공기가 모자란다는 뜻이지만 손을 들어 목을 긋는 시늉을 하는 것은 이미 공기가 고갈된 급박한 상황이라는 뜻이었다.
내가 보낸 수신호를 본 정수호 이사가 눈을 크게 떴다.
그는 빠르게 손을 들어 올려 게이지를 손바닥 위로 작은 원을 그리는 신호를 보냈다.
-남은 공기 잔량이 얼마야?
나는 손을 들어 올려 손가락 4개를 표시했다
-40bar!
정수호 이사가 손가락 4개를 들어 확인했다.
-40bar?
나는 손을 들어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맞습니다.
정수호 이사는 마스크 사이로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는 빠르게 엄지손가락을 들어 수면 위를 가리켰다.
수면 위로 상승을 시작하라는 지시였다.
나는 오케이 사인을 했다.
-알겠습니다.
수신호를 마친 나는 다시 손을 뻗어 공기 잔량을 확인하기 위해 게이지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에도 빠르게 공기량이 감소하고 있는 것이 실시간으로 확인되고 있었다.
그사이 공기량이 빠르게 줄어 지금은 30bar를 가리키고 있었다.
‘큰일이다.’
나는 주변을 빠르게 찾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이 정도 공기량이면 어찌어찌 수면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도 몰랐지만 지금은 어디서 공기가 빠르게 새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
언제 공기가 고갈될지 모르는 위기감이 커지기 시작했다.
< 띠링! >
+스킬 [인명구조 Lv.11]을 사용합니다. +
-잠수 실력이 향상합니다.
-수영 실력이 향상합니다.
-공기 사용량이 현저히 줄어듭니다.
‘다행이다.’
스킬 덕에 시간을 벌 수 있게 되었다.
스쿠버 다이버들은 비상상황을 대비해서 여분의 호흡기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지금 현장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스쿠버다이빙 장비를 착용하지 않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공기를 나눠쓰면 작업을 중단하고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때 머리 위에서 기계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음? 이 소리는?’
나는 머리를 들어 위를 바라보았다.
탁한 수중이었지만 어렴풋한 실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머리 위에서 들리는 소음은 추가 인원을 태우고 내려오는 잠수사 이동장치(Lars)에서 나는 기계음이었다.
‘다이빙 벨(Bell)!’
나는 잠수사 이송장치 라스에 탑재된 다이빙 벨(Bell)에는 긴급상황을 대비해서 별도의 호흡 기체를 준비해 둔다는 사실이 머릿속에 갑자기 떠올랐다.
다이빙 벨은 오랜 시간 잠수를 하는 잠수사들이 휴식을 취할 수도 있는 공간으로 긴급상황에는 다이버들이 사용할 여분의 공기도 있었던 것.
나는 잠수사 이송장치가 근처로 내려오자 빠르게 이송장치로 다가갔다.
나는 손을 들어 올려 다시 목을 가로 긋는 수신호를 보냈다.
-공기가 고갈됐습니다.
탑승하고 있던 사람은 나의 수신호를 보고 살짝 놀라는 표정을 짓더니 빠르게 나를 다이빙벨로 탑승시켰다.
“후우……”
좁은 다이빙벨에 들어서자 나는 비로소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끼이익 끼이익!
기계음 소리가 나면서 수면을 향해 상승하고 있었다.
나는 공기통의 잔량을 확인하기 위해 게이지를 들었다.
숫자는 마지막 한 칸 숫자 10을 가리키고 있었다.
‘10bar!’
게이지에 표시된 공기 잔량은 게이지의 마지막 한 칸도 채 남지 않은 적은 양이었다.
처음 게이지를 확인하는 시점이 늦었다면 위험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미리 공기의 잔량을 확인했던 것이 신의 한 수였구나.’
문제는 도대체 누가 감히 나에게 이런 발칙한 짓을 했냐는 것인데.
나는 같이 동행하고 있는 오션플래닛 직원들의 면면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범인의 정체가 도무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특별히 원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박은 한정된 곳. 이 한정된 곳이라면 범인이 나의 추리망을 피해나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것이다.
‘반드시 찾는다.’
< 띠링 ! >
+스킬 [고소고발 Lv.12]을 사용합니다.
-범인을 추적합니다.
-추리력이 상승합니다.
나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나기 시작했다.
* * *
-충남 태안 인근 해상 바지선 ‘오션’호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바지선 오션호의 갑판 위로 올라온 나는 스쿠버 다이빙 장비를 해체한 후 장비를 분해해서 부품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공기가 고갈된 원인과 관련해서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첫 번째는 처음부터 공기량이 적은 공기통을 나에게 배정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아무래도 가능성이 낮아 보였다. 보다 높은 가능성은 나의 개인 호흡기 장치에 미리 장난질을 해놨을 가능성이었다.
‘아무래도 후자겠지. 전자라면 입수 전에 공기량을 체크할 때 걸러질 가능성이 크니까.’
전자는 스쿠버다이빙을 하는 사람들의 습관을 고려하면 실패의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단순히 협박용으로 이 일을 벌였다 하더라도 이 방법을 택한다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이 일에는 오션플래닛 직원 중 한 명이 가담한 것이 분명했다.
‘그 말은 스쿠버 다이빙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분명하다는 뜻이지.’
나는 공기통에 연결되는 호흡기 세트를 꺼내 들어 분해를 시작했다.
“음? 역시.”
문제의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공기통과 호흡기를 연결하는 부품의 불량.
공기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밀봉하는 기능을 하는 고무 부품이 훼손되어 있었다. 고무링이 훼손되어 있으니 공기가 빠르게 새어나가는 것은 당연한 일.
문제는 부품이 파손된 이유였다. 누군가 칼이나 날카로운 물건으로 고무링 끊어 놓은 흔적이 분명해 보였다.
간혹 이 부분이 삭아서 공기가 새어나가는 일은 있어도 이렇게 절단까지는 나는 경우는 그동안 본적이 없었다.
그 말은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한 일이라는 뜻이었다.
‘도대체 누가?’
아니 이유가 뭘까?
잘못하면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무서운 일이었다.
이 정도 일을 벌일 이유? 이들이 나를 해하려고 할 동기가 뭐지?
아무리 생각해도 나와 오션플래닛 직원들 사이에는 이렇다할 원한이 없었다.
‘원한이라면……’
나는 현생에서 엮인 악연들을 떠올려보기 시작했다.
그동안 제법 많은 사건 사고들을 수습하면서 악당들에게 이른바 ‘참교육’을 시전한 일들이 떠올랐다.
나에게 앙심을 품을 만한 놈들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제법 큰 악당들을 처리하지 않았던가?
가장 최근에 문제가 되었던 신조선 인수사건 당시 정체가 까발려져 옥살이를 하고 있는 ‘국회의원 박대룡’과 대한중공업의 ‘조영일 전무’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들은 선고를 받고 법정 구속이 되는 순간에도 반성을 하지 않는 지독한 놈들이었다.
두 사람은 지난 사건으로 재판 결과 중형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두 사람 다 아직도 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상태였다.
하지만 이들 정도 되는 위치에 있는 자들은 직접 움직이지 않더라도 교도소 밖에 있는 하수인들을 통해 나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자들이었다.
‘음, 하수인이라면?’
그때 머릿속으로 나와 악연으로 엮여 있고, 이들의 하수인 역할을 하던 범죄조직의 이름이 갑자기 떠올랐다.
‘거경파!’
거경파 조직원들은 어깨 한쪽에 작은 고래 모양 문신을 새기고 있다는 정보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