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4화 (104/200)

그는 내가 보여준 신문기사를 읽었기 때문에 더욱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니 내가 거짓말을 한 것 때문인지 살짝 열받은 표정이랄까?

“허허허. 이사님 제가 거짓말을 한 건 아닙니다.”

“음?”

“이 선박의 선체에 새겨진 이름은 엘리자베스호가 맞습니다. 하지만 진짜 이 배의 정체는 일제 강점기 시절 미군의 감시망을 피해 영국 화물선으로 위장한 선박이었습니다. 진짜 이름은 ‘시카마루 37호’입니다.”

“......! 시카마루 37호?”

“선명을 들었으니 아마 다들 유추하셨을 겁니다. 시카마루 37호는 민간 화물선으로 위장한 일본의 선박이었습니다.”

“......!”

웅성웅성.

순식간에 장내가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내 말을 들은 오션플래닛 소속 직원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너 나 할 것 없이 크게 부릅뜬 눈으로 옆 사람을 쳐다보며 한마디씩 떠들기 시작했다.

‘많이 놀랐죠? 저도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랬습니다.’

나는 전생에 최부자로부터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가 떠올랐다.

그리고 더 놀라운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시카마루 37호는 당시 일본군이 식민지로 삼은 동남아, 중국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약탈한 보물들을 일본으로 옮기 위한 화물선이었습니다.”

“......!”

“실소유자는 당시 일본군 장성들이었다고 합니다. 일본군의 장성들이 군대를 통해 약탈한 장물들을 운송하기 위한 구입한 선박이 바로 이 시카마루 37호. 그게 이 엘리자베스호의 진짜 정체입니다.”

“......!”

나는 말을 마쳤지만 장내의 사람들은 한동안 입을 크게 벌리고 있을 뿐 침묵을 깨는 이가 없었다.

보물선 엘리자베스호 (2)

-충남 태안 인근의 바다 해상 바지선 오션호의 갑판

나의 말에 장내는 순간적으로 조용해진 상태.

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하나하나 돌아보며 다시 설명을 이어나갔다.

사람들의 눈빛은 이전과 다르게 진지한 빛으로 변해있었다.

허황된 이야기로 보였던 보물선 인양사업에 실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갖기 시작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나는 보물선의 정체 “시카마루 37호”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표정은 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오래된 전설이나 민담을 듣는 아이들처럼 호기심에 가득 차 있었다.

“시카마루 37호는 194x년 x경 보물과 금괴 등을 싣고 항해하다가 바로 이곳 태안 인근 해상에서 미군의 폭격을 받고 침몰했습니다.”

“음, 그런데 침몰선의 선명이 엘리자베스호라고 세간에 다르게 알려진 이유가 뭡니까?”

“배의 진짜 소유자들이었던 일본군의 장성들은 정보가 빠져나갈 것을 두려워해 침몰한 선박이 영국의 화물선이라는 허위 정보를 퍼트렸고 후일을 기약하며 인양을 미루었습니다.”

“보물선이 분명하다면 아직까지 방치된 이유가 있습니까?”

“일본군 장성들이 정보를 엄격히 통제했습니다. 그들은 마지막 순간에 우리나라를 빠져나가면서도 다시 곧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다고 합니다.”

“이런 씨벌 놈들이!”

“하하하.”

누군가 크게 욕설을 뱉었다. 그 소리에 사람들이 한바탕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일본군 장성들의 예상과 달리 2차 세계대전에 패배한 일본군은 그 이후에 다시 돌아올 기회가 없었습니다. 보물선을 인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없었다는 뜻이지요.”

“이 정보는 어디서 입수한 것입니까?”

나는 그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빙긋 웃어 보였다.

“그건…… 비밀입니다. 허허허.”

“으음…….”

“그렇겠지. 아무래도.”

다들 내가 정보원을 비밀로 하는 것은 이해하는 눈치.

맨입으로 그런 정보를 달라고 하는 것도 염치없는 일이긴 했다.

그리고 내 영업비밀이기 때문에 함부로 발설할 수는 없는 정보이기도 했다.

어차피 사실대로 말해도 믿을 가능성이 없었다. 전생에 최부자한테 들은 기억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전생에 최부자는 부산과 일본을 사이를 중계 무역 하는 일본의 사업가에게 들은 정보였다고 말했다.

그 일본인 사업가의 할아버지가 군대에서 모시던 상관이 바로 이 시카마루 37호의 실소유자 중 한 명이었다고.

우연한 기회에 그 정보를 취득해 후손들에게 비밀리에 전해준 이야기였으나 후손들은 그 말을 믿는 사람이 없었다.

그 이야기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따로 있었다. 바로 최부자.

술자리에서 시작된 농담을 들은 최부자가 국내외 전문가들을 고용해 비밀리에 보물선을 추적했다고 한다.

국내외 전문가들을 통해 보고를 받은 최부자는 다각적인 검토 끝에 이 보물선에 당시 100t 이상의 금괴와 보물들이 실려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인양작업에 착수했다.

수심 약 55미터 근방에 침몰한 이 선박에는 2~5톤의 중국 주화와 은화, 외국의 보물과 다량의 금괴가 인양되었다고 한다.

최부자는 전생에 나에게도 당시 인양한 구체적인 보물의 가치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았다.

지나가는 말로 대략 50억 정도라고 이야기한 사실은 있지만 최부자의 성격상 그게 전부일 리 없었다.

‘최소 2배에서 4배까지는 될 게 분명하다.’

모두 인양될 경우 최소 100억이다. 아니 최부자의 수전노 기질을 생각하면 못해도 200억 원을 훌쩍 넘을 게 분명하다.

다시 설명을 이어나갔다.

“아무튼, 일본군이 불법적인 약탈을 통해 모은 자금이라고 합니다. 마음 놓고 우리가 챙기면 될 것 같습니다.”

“옳소!”

내 말에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나는 손을 들어 손가락을 펴며 큰 소리로 말했다.

“한 가지 더!”

나의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모였다.

나는 계약서를 꺼내 들었다.

“이건 제가 준비해온 비밀유지각서입니다. 물론 회사와 체결한 약정서가 따로 있으실 겁니다. 이 비밀유지각서를 추가로 작성하신 분들에게는 작업이 끝나면 약속한 인센티브를 2배 지급하겠습니다. 물론 이 비밀유지각서의 내용은 매우 엄격하게 작성되어 있으니 비밀을 유출하면 큰 손해배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내 말에 크게 환호성을 질렀다.

어차피 비밀유지의무가 있는 상태. 두 배의 보너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니 좋을 수밖에.

시카마루 37호에 대한 배경 설명을 마치자 오션플래닛 사람들의 눈빛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오션플래닛의 직원들은 보물들을 성공적으로 인양할 경우 별도의 인센티브 계약이 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성공만 한다면 자신들의 성과급도 두둑이 지급될 예정.

사람들 사이에 갑자기 활기가 넘치기 시작했다.

* * *

바지선(동력이 없는 부선을 말함) 오션호 위에서는 잠수를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다.

정수호 이사는 작업 시작 전 브리핑을 시작했다.

“오늘은 우선 목표지점을 정확히 찾아 침몰선의 상태와 안전 확보를 위한 조사에 집중합니다.”

“네.”

“다들 알겠지만 침몰선이 위치한 곳의 수심은 55m 정도로 예상됩니다. 슬로프 지역이다 보니 선수 부분은 약 40m, 선미 부분은 55m 정도의 수심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정수호 이사가 말을 이어갔다.

“따라서, 오늘 잠수에서 스쿠버다이빙 장비를 이용하시는 분들은 한계 수심을 초과하지 않도록 조심하시고, 상승 시에는 다이빙 컴퓨터를 참고해서 감압에 주의하십시오.”

“네.”

정수호 이사는 나를 바라보았다.

나도 처음 작업에 동행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수중에서 오래 작업을 진행할 예정인 다른 직원들과 달리 나와 정수호 이사는 스쿠버다이빙 장비를 착용하고 잠수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그는 나를 보며 주의를 줬다.

그가 이렇게 주의를 주는 이유는 바로 감압병 때문.

잠수하는 수심이 깊어질수록 감압병. 흔히 잠수병이라고 말하는 감압병이 발생할 위험이 상대적으로 커지기 때문이다.

다이버들이 잠수하는 경우 수심 10m당 1기압에 상당하는 수압이 증가한다.

깊은 수심 속에서 다이빙을 하는 다이버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기압에서 압축된 공기로 호흡을 하게 되는데 이 압축된 공기가 상승하는 과정에서 다이버들에게 위험할 수 있다.

수면 근처로 상승을 하게 되며 낮은 수압 환경에 노출되었을 때, 체내에 녹아 있던 난용성 가스가 기화되어 공기 방울을 만들게 되면서, 이 공기 방울 때문에 정신을 잃거나 심하면 심정지에 이르게 되는 증상 및 질환 등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

이 증상이 보통 잠수를 하는 사람들에서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잠수병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잠수를 하지 않아도 급격한 압력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환경에서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보다 정확한 명칭은 감압병(Decompression sickness)이라고 한다.

흔히 일상생활에서 취미로 스쿠버다이빙을 하는 것을 이른바 레크레이션 다이빙이라고 부르는데, 레크레이션 스쿠버다이빙을 교육하는 단체들은 일반적으로 레크레이션 다이빙의 한계 수심을 40m로 설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초과하는 잠수를 금지하고 있었다.

“보고야.”

브리핑을 마친 정수호 이사가 나에게 다가왔다.

“네, 이사님.”

“꼭 들어갈 필요는 없잖아? 조류가 생각보다 강하고 수심이 어떨지 몰라.”

“한번 들어가 보고 위험하면 상승할게요.”

“그래, 무리하지 말고. 국내 바다는 시야도 안 좋고 어망 등이 많아서 위험하니까 알겠지?”

“네, 알았어요.”

준비를 마친 우리는 흔히 라스(LARS:Diver Launch and Recovery System)라고 부르는 잠수사 이송장치를 향해 걸어갔다.

잠수사 이송장치는 잠수사를 작업 수심까지 안전하게 내려보내고 선박 위로 상승시키는 승강장치를 말한다.

다이빙 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시점이 하강과 상승 시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산업잠수사들에게 잠수사 이송장치는 필수적인 안전장치라고 할 수 있다.

기계식 엘레베이터와 같은 외형의 잠수사 이송장치에 탑승하자 우리는 바다 밑으로 하강을 시작했다.

잠수사 이송장치가 수면 아래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탑승하고 있던 우리의 몸도 서서히 물속으로 잠기기 시작.

나는 손에 쥐고 있던 스쿠버다이빙 호흡기를 꺼내 물었다.

실린더 속의 공기가 차갑지만 왠지 신선하게 느껴졌다.

“쓰읍! 후! 쓰읍! 후!”

머리까지 수면 아래로 잠기자 주변의 소음이 순간적으로 사라졌다. 잠수사 이송장치의 기계음만 들릴 뿐.

‘헉!’

문제는 바닷속 시야였다.

예상보다 혼탁한 서해의 누런 빛의 바닷물이 눈앞에 펼쳐졌다. 누가 바닷속에 진흙이라도 뿌려놓은 것처럼 주변이 탁하게 보일 뿐이었다.

‘1미터도 채 안 보이겠구나.’

내 예상보다도 훨씬 더 나쁜 상태의 수중 속 시야였다.

서해가 괜히 황해라고 불리는 게 아니구나.

제주도와 울릉도 등 국내 바다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한 경험이 있었지만 서해는 나도 처음 경험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체감 난이도는 훨씬 어려운 바다가 분명했다.

‘아무리 서해라고 해도 이 정도로 나쁠 줄은 몰랐는데…… 생각보다 힘든 작업이 되겠구나.’

나는 걱정스런 마음에 잠수사 이송장치를 타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표정을 살폈다.

‘음?’

하지만 내 예상과 달리 다른 사람들은 전혀 동요가 없었다.

국내의 험한 바다에서 작업을 여러 차례 수행한 산업잠수사들답게 서해의 거친 바다도 이들에게는 익숙한 환경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를 태운 잠수사 이송장치는 목표수심 40M에 도달했다.

40m 부근에서 하강해 선체 주변의 위험요소를 확인하기로 한 다이버들이 바닷속으로 잠수를 시작했다.

나도 정수호 이사의 뒤를 쫓아 침몰선 선수 부근을 향해 열심히 핀(오리발)을 차기 시작했다.

우리는 시카마루 37호의 선수가 위치하고 있는 수심 40m 부근에 도착했다.

정수호 이사를 포함한 다이버들은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기 시작했다. 나도 랜턴을 꺼내 선체의 외관을 살피기 시작했다. 선박의 측면에는 영어로 ‘엘리자베스호’라는 선명이 적혀 있었다.

침몰선의 선명을 확인한 나는 정수호 이사에게 신호를 보냈다. 정수호 이사는 알았다는 수신호로 보냈다.

‘다행이다! 생각보다는 괜찮네.’

예상했던 것보다 침몰선 선체의 상태가 나쁘지도 않아 보였다.

선박 내부로 진입을 해봐야 확인할 수 있겠지만 언뜻 보기에는 작업을 하는 데는 무리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다른 문제가 있었다.

그건 바로 조류.

하루 중 조류가 가장 약한 시점을 기다려 입수했지만 수심 40m 부근에서 예상보다 강한 조류가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조류가 강하게 흐르자 뱉어내는 공기 방울이 상승하지 않고 대각선 방향으로 빠르게 흘러갔다.

정수호 이사가 수신호로 나에게 조심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나는 손을 들어 ‘ok’ 모양을 만들었다.

알았다는 신호로 만국 공통의 수신호인 ok 사인은 다이버들도 사용하는 수신호였다.

그때!

< 띠링! >

+ 경고 : 조심하세요! 급격한 상승조류가 예상됩니다! +

‘뭐? 상승조류?’

나는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창을 확인했다.

바다 밑에서 만나는 것 중에 가장 위험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상승조류였다.

다이버들이 예상치 못한 상승조류를 타게 되면 급격하게 상승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감압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체내의 질소 등이 팽창하면서 감압병이 발생할 수 있는 환경에 노출될 위험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선수를 잡아야겠다.’

나는 빠르게 핀을 차기 시작했다. 내가 선수 부근으로 다가가 난간을 손으로 잡았다.

탕탕탕!

그리고 공기통 탱크를 쳐서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수중에서 울리는 금속성을 들은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모이라는 신호를 보내자 정수호 이사가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다급하게 모여들어 선체를 잡기 시작했다.

마지막 한 사람까지 모이자 한 차례 강한 상승조류가 우리를 휘감고 지나갔다.

마치 몸이 크게 붕 뜨는 기분.

탕탕탕!

사람들이 모여 있었던 탓에 등 뒤에 매고 있던 공기통 실린더들이 부딪치며 금속성이 바닷속에 울려 퍼졌다.

내가 매고 있는 공기통 실린더에도 주변의 사람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행히 상승조류의 위험은 무사히 피해나간 듯싶었다.

그 순간.

< 띠링! >

눈앞에 메시지창이 빠르게 떠올랐다.

+ 경고 : 조심하세요! 당신을 노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