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3화 (103/200)

여러 달이 지난 후.

나는 하선 휴가를 맞아 부산 영도에 위치한 수중공사 및 샐비지(선박구조)업체 오션플래닛을 방문했다.

이곳은 전생에 내가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를 했던 회사이기도 했고, 나에게 고급다이빙 교육을 해준 다이빙 스승님이 근무하기는 곳으로 인연이 깊은 곳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있었던 신조선 분쟁이 있었던 M.V. 헤라의 수중 검사를 진행했던 곳이기도 했다.

주식회사 오션플래닛.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수중공사업체로 많은 수의 산업잠수사를 보유하고 있는 곳이다.

산업잠수사는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직업이었지만 잠수장비를 이용해서 바다 등 수중에서 각종 공사나 연구조사 등을 수행하는 직업으로 전문적인 직종 중 하나.

소득도 제법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그 이유는 작업환경에 있었다.

수중환경은 작업하는 곳에 따라 조류나 수압에 의한 위험이 상시 존재한다.

이런 위험들을 대비해 장비가 고도화되고 여러 가지 안전장치들이 개발되고 있었지만 여전히 많은 사고의 위험을 직면하면서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것도 현실.

그런 이유 때문에 산업잠수사는 업무의 특성상 높은 수준의 체력과 기술이 요구되는 직업이었다. 때로는 극한의 환경에서도 작업을 수행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주식회사 오션플래닛은 영도의 조선 관련 업체들이 모여 있는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었다.

회사 정문으로 들어서자 한쪽에는 오션플래닛이라고 적힌 선박들이 여러 척 눈에 들어왔다.

이들 선박은 선박의 구난 작업 등에 사용하는 선박들로 대형 바지선(무동력선을 말함)과 방제선 등이었다.

바쁘게 작업하는 사람들을 지나 본사 건물에 다가서자 나를 반기는 얼굴이 있었다.

“어이! 장보고!”

그는 내 스쿠버다이빙 사부이자 M.V. 헤라호 수중 검사 업무를 담당했던 정수호 이사였다.

“이사님! 잘 지내셨어요?”

“그래, 잘 지냈지. 진짜 왔네?”

“네, 당연하죠. 흐흐흐. 제가 보낸 기사 보셨죠?”

“그런데 진짜냐? 뭐 나는 돈 준다고 하니까 상관없긴 한데…….”

“말이 안 되는 건 또 뭐가 있어요.”

“뭐, 세상에는 워낙 사기꾼들이 많으니까. 그러지, 보물선이라는 게 말이 되냐? 이건 누가 들어도 딱 사기라고 생각하지 않겠냐?”

“허허허. 뭐 속고만 살았습니까?”

“사람들한테 물어봐 다들 사기라고 하지.

“저를 믿으세요.”

“그래서 더 고민이지.”

“허허허.”

그가 이런 의심(?)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누가 믿겠나?

서해 태안 근처에 보물선이 침몰되어 있다는 허황된 이야기를?

“이거 한번 보실래요?”

“뭔데?”

“15년 전 신문기사인데요. 그때나 지금이나 아무도 관심이 없는 기사이긴 합니다.”

나는 스크랩해둔 한 장의 오래된 신문기사를 내밀었다.

그건 70년 전 침몰한 영국 보물선 엘리자베스호에 대한 국내 작은 언론사의 기사였다.

보물선 엘리자베스호 (1)

-부산 영도 수중공사업체 주식회사 오션플래닛

정수호 이사는 내가 건네준 오래된 신문 기사를 읽어 내려갔다.

신문 기사를 읽고 있는 그의 눈동자에서 이채가 빛나기 시작했다.

‘이제야 흥미가 생겼나? 흐흐흐.’

기사를 읽어 내려가는 정수호 이사는 입술을 조용히 씰룩거렸다.

정수호 이사가 오른쪽 입술을 높이 치켜들었다. 이른바 썩소가 그려진 것.

살짝 시니컬한 성격인 정수호 이사의 버릇이었다. 재밌는 일을 앞뒀을 때 나타나는 표정.

이제 그도 제법 호기심이 생긴 것이 분명해 보였다.

+

백제신문.

“보물선 엘리자베스호의 전설을 믿는 사람들.”

70여 년 전 침몰한 영국 화물선이 충남 태안의 연안 근처에 있다는 소식이 전해져 지역 경제가 들썩이고 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관계자들은 국내 해안에서도 최초로 보물선이 발견될 가능성이 있다며 관련 소식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연안에 침몰한 보물선이 있다는 소문만 무성했을 분 보물선이라고 불릴 만한 침몰선이 실제로 발견된 경우는 없었다.

하지만 국내 최초의 보물선 발견 가능성은 지난 2월부터 태안 앞바다에 침몰한 영국 화물선이 사실은 영국의 화물선으로 위장한 보물선이었다는 내용의 기재가 적힌 공식 기록이 발견되면서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이 기록을 발견한 충청대 역사학과 A모 교수는 그동안 한국에서 유일하게 국내 연안에 침몰한 보물선을 추적해온 연구자라는 점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그는 “태안 인근 연안에서 중국의 주화가 다량 발견된 사실이 있다.”며 “곧 목표로 했던 보물선을 발견한 후 금괴를 인양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주장한 바 있다.

(중략)

+

“음! 그럴싸하네?”

정수호 이사가 짧은 신음 소리와 함께 신문기사를 내게 내밀었다. 그리고 말을 이어갔다.

“오호! 아주 터무니없는 소리는 아니었구나?”

“네? 저를 뭘로 보시고? 제가 그럴 리가 없잖아요.”

“뭐, 뱃사람들은 원체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많이 하니까.”

“누가요? 제가요?”

이렇게 사람에 대해 불신이 넘치는 세상이라니?

배신감! 이 사람도 그동안 나의 활약상을 반신반의하고 있었구나!

“흐흐흐, 아니 뭐 내가 본 적이 없으니까.”

“지난번에 제가 비리 국회의원 때려잡는 거는 직접 보셨잖아요.”

“그건 그렇네 하하하.”

정수호 이사는 신조선 인수 사건 당시 선박을 직접 수중검사했던 사람이 아닌가?

내 활약상을 목격한 사람이 이런 소리를 하다니?

정수호 이사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내 추궁을 피하기 위해 대화의 주제를 빨리 전환시키고 싶은 것이 분명했다.

“그나저나 보고야, 작업을 할 위치가 충남 태안 인근이라고 했지?”

“네. 태안 근처에 무인도가 있는데 그 주변이에요.”

“제법 시간이 걸리겠군.”

“이사님, 그리고 어차피 돈 다 받잖아요. 보물선 발견 못 하면 또 어때요?”

그럴 리는 없겠지만.

이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한다면 그것도 나름 괜찮았다.

보물선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착수금을 줄이고 인센티브를 올려야 한다. 하지만 보물선이라고 생각하면 착수금을 올리고 인센티브를 줄일 수 있다.

보물선이 있을 것이 100% 확실한 내 입장에서는 인센티브를 줄이는 것이 이득인 상황.

“어차피 착수금은 다 드렸잖아요. 실패해도 제가 손해 보는 건데 이사님이 무슨 걱정?”

“하하하. 그건 그렇지. 뭐, 나는 뭐 돈만 벌면 되니까.”

“그러니까요. 거기다 두둑이 성공 인센티브까지 드리기로 했으니 말이죠.”

“그런데 이 큰 바지선하고 잠수 장비들 다 빌리는 데 돈이 한두 푼이 아닌데 이 비용은 정말 네가 다 내는 거냐?”

“당연하죠. 그럼 누가 내요?”

“허허허, 신기하네. 이렇게 큰 비용을? 다른 투자자가 있나?”

“있긴 있어요.”

그럼 그렇지. 정수호 이사는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행이네, 사실 직원들 사이에는 재벌집 아들 아니냐며 그런 소리를 하는 놈들이 있거든.”

“하하하. 재벌집 아들은 아닌데요. 그거랑 비슷하다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하하하. 뭐? 하여간 이 미친 새끼. 농담은!”

“.......”

뭐야?

농담한 거 아닌데?

나는 정말로 지난 몇 년 동안 자갈치 쩐주 최부자를 통해 어마어마한 수익을 거둬들인 상태였다.

물론 나의 투자자문 덕분이었지만.

내가 거둬들인 수익과 자산의 일부만 공개해도 이들은 까무러칠 수준.

성공한 청년 자산가로 신문 기사에 올라도 부족함이 없었다.

물론 아직은 이것을 세상에 공개할 생각은 없었다.

마지막 한 수를 위해 자금력을 감춰 둘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아직 배를 타는 이유는 나에게 꼭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고, 돈 때문에 승선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은 물론 아니었다.

‘그래도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네.’

내가 계획한 승선 생활도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았다. 이번 휴가를 마치고 마지막 한 항차를 더 한 후 나는 육상직으로 전직을 신청할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알 리 없는 정수호 이사는 내 말을 그저 농담으로 치부하는 듯했다.

“보고야.”

“네?”

“형이 너 진짜 좋아하는 거 알지?”

“네?”

“그러니 이 형이 진지하게 충고 좀 해도 될까?”

“네?”

“항해사들이 젊은 나이에 연봉 좀 비교적 많이 받는 건 사실이지. 그래도 재벌 어쩌고 그런 헛소리 하고 다니면 안 된다. 사람들이 미친놈인 줄 알아!”

“......!”

이불킥 각인데 이건?

나중에 혹시라도 내가 가진 자산을 알게 되면 이 사람은 이불킥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정수호 이사가 말을 이어갔다.

“그럼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곧 출항할 준비가 될 거야.”

“네.”

“그럼 장보고 고객님, 커피 한잔하시면서 제 방에서 편히 쉬고 계시면 제가 나중에 모시러 가겠습니다.”

정수호 이사는 나에게 엄지를 들어 보인 후 출항 준비를 위해 달려갔다.

< 띠링! >

+

<메인 퀘스트를 시작합니다.>

시나리오 진행에 따른 메인 퀘스트를 진행합니다.

“잠들어 있는 보물선이 있습니다. 보물선에서 보물을 인양하세요!”

세부 퀘스트 : 보물선

클리어 조건 : 침몰한 보물선에서 보물을 인양

제한시간 : 1개월

보상 : 명성 + 100, 글로벌 명성 상승, 칭호(보물사냥꾼), 스킬[보물 감정 Lv.1] 획득

실패 시 : 금전적 손해(대규모)

+

* * *

-충청남도 태안군 연안의 어느 무인도 근처 바다

며칠 후.

지난 며칠 동안 우리는 영도에서 충남 태안 인근의 해상으로 이동했다.

수면에 비친 햇살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목표로 했던 곳에 도착하자 오션플래닛 직원들은 약 한 달 정도는 진행될 장기 프로젝트를 위한 준비에 한창이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 인근에 바지선 “오션호”과 탐사선 “플래닛호”를 정박시켰다.

우리는 인근의 관할 지방항만청을 비롯한 행정당국으로부터 공유수면점용 사용허가와 매장물 발굴 승인을 받아 둔 상태.

보물선을 발견하기 위한 모든 준비는 마쳤다. 수중 탐사는 내일부터 시작될 예정이었다.

나는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20XX년 X월 XX일.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하는 보물선 사기 사건이 발생한다.

러일전쟁에서 침몰한 러시아 제국군 장갑순양함 블라디보스토크함 을 발견했다고 주장한 사기 사건이었다.

사기 사건이 발생하기 직전에 설립한 정체불명의 회사인 구일산업이 대대적인 언론전을 통해 보물선 사기 사업을 벌였다.

이 구일산업의 회사의 실체는 건강기능식품 제조업체로 블록체인 사업과 자판기 사업을 주로 하는 회사였다.

X월 XX일 구일산업은 "103년 만에 세계 최초로 100조짜리 보물선을 찾았다."라는 자극적인 문구를 공지한 후 보물선 인양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언론플레이를 통해 재미를 본 구일산업은 이후 다른 회사를 M&A 한다거나 블록체인 사업을 한다는 등 허위정보를 올려 주가조작으로 상당한 재미를 본다.

주가조작으로 재미를 본 구일산업은 보물선 인양 사업에도 대규모 투자자를 모집한다. 100조 원의 수익이 예상되는 보물선 인양 사업에 투자하면 수익을 투자 비율 대로 나눠주고 원하는 경우 구일산업이 실시하는 블록체인으로 100% 환불을 약속했다.

하지만 이 100조 보물선 인양 사업은 결국 사기 사건으로 마무리되고 구일산업에 휘말린 투자자들은 막대한 금전적 손실을 입게 된다.

만약 사건이 여기서 끝났다면 어쩌면 그냥 흔한 사기 사건 중 하나에 불과했을 것이다.

재밌는 일은 이 사건이 있은 후 20년이 지난 후 발생했다.

20년이 지나 구일산업이 보물선이 있다고 주장한 곳 인근 해역에서 진짜 보물선이 발견된 것이다.

구일산업의 보물선 사기 사건 당시 막대한 금전적 손실을 입은 자산가가 있었다.

지방에서 유명한 알부자인 이 자산가는 자신이 사기 사건으로 피해를 입었다는 것을 큰 치욕으로 여겼다고 한다.

그는 자신에게 막대한 손실을 끼친 보물선 사업에 집착을 버리지 못했다.

그리고 결국 이 자산가는 약 20년 후 진짜 보물선을 찾아 보물을 인양하는 데 성공해낸다.

하지만 이 진짜 보물선 인양 사건은 당시 언론에서 크게 다뤄지지 않았다.

이 사업을 추진한 자산가가 철저히 비밀로 사업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 보물선에 대한 정보가 언론에 알려질 경우 똥파리들이 꼬일 것을 두려워했다. 그리고 혹시라도 과거의 구일산업과 같은 사기꾼 취급을 당할 것도 우려한 것이다.

그때 발견한 이 보물선이 바로 엘리자베스호. 그리고 그 알부자는 바로 나의 쩐주이자 멘토인 자갈치 쩐주 최부자였다.

* * *

-충청남도 태안군 연안의 어느 무인도 근처 바다 바지선 오션호 갑판

정수호 이사는 이번 작업에 참여한 팀원들을 모아놓고 작업에 대한 사전 브리핑을 실시하고 있었다.

작업계획 및 안전문제에 대한 진단을 마친 후 내가 사람들 앞으로 나섰다.

오션플래닛 소속 산업잠수사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어린아이들도 웃어넘길 보물선 인양사업에 막대한 돈을 투자하는 정신 나간 투자자.

그게 바로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지금부터 그동안 비밀로 해왔던 진짜 정보를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내 말에 사람들은 빠르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진짜 정보라는 말이 그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

나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어갔다.

“사실 이 바다 밑에 잠들어 있는 배의 선명은 엘리자베스호가 아닙니다.”

“뭐?”

그 말에 더 놀란 것은 정수호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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