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1화 (101/200)

차진혁 경감이 고민하는 표정을 짓자 나도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갸웃했다.

“어! 보고야! 빨간불! 빨간불!”

갑자기 교차로 신호등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끼이익!

박대룡 국회의원이 탄 차가 멈췄다.

“보고야! 앞에 차 조심해!”

“네? 어이쿠!”

나는 다소 과장스럽게 큰 소리로 반응했다.

“야 브레이크 밟으라고!”

“아! 네 엄마야!”

급하게 밟는다고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브레이크 성능이 좋지 않은 듯 우리가 탄 차는 바로 멈추지 않고 한참을 천천히 진행했다.

끼이익! 쿵!

우리가 탄 차량이 아주 살짝 박대룡 국회의원의 차 뒤 범퍼와 추돌했다.

나는 손을 들어 올려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아이고! 어쩌지? 사고가 나버렸네요?”

“이거 진짜 미친놈이네?”

차진혁 경위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박대룡 의원이 탄 승용차에서도 비서가 내려 뒤 범퍼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나는 뒷좌석으로 손을 뻗어 편의점에서 사온 봉투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맥주캔을 꺼내 들었다.

“야? 뭐 하는 거야?”

“보면 알아요.”

나는 맥주를 턱 밑으로 흐르게 해서 상의와 바지에 술 냄새가 풍기게 만들었다.

그리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나의 발걸음은 술에 취한 사람들처럼 비틀거렸다.

나는 운전기사에게 다가서며 물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신호가 갑자기 바뀌어서 브레이크를 좀 늦게 밟았네요.”

“젊은 사람이! 운전을 조심히 해야죠!”

“죄송합니다. 뭐 보니까 크게 부서진 곳은 없네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이 차가 누구 차인 줄 알고!”

“네? 누구 차인가요? 어디 높으신 분 차량인가요?”

“으흠흠. 그건 당신이 알 거 없고. 그나저나 운 좋은 줄 알아요! 별로 흔적이 없으니 보험 처리할 것도 없이 그냥 수리비만 주시오.”

“에이 그럴 수야 있나요. 보험회사 불러서 정식으로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음, 뭐 그럴 필요까지는 없고, 그냥 간단하게 열처리만 하면 될 것 같으니 현금으로 주고 치웁시다.”

“차 주인이 누군지 몰라도 고급차인데 그렇게 처리해서야 되겠습니까.”

나는 의뭉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박대룡 의원의 승용차 트렁크 쪽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차량을 살펴보는 척하다 슬쩍 트렁크 위에 손을 올렸다.

“혹시 안에 깨지면 안 되는 물건이라도 있는거 아닙니까? 열어서 확인해봐야 되지 않나요?”

내가 자동차 트렁크에 손을 갖다대자 운전기사가 급하게 달려들며 나를 밀어냈다.

“어어어! 뭐 하는 겁니까 남의 차에 손을 대고!”

박대룡 의원의 운전기사는 코를 킁킁거렸다. 나에게서 나는 술냄새를 맡았다.

“뭐야 이 사람? 당신 지금 술 마셨어?”

“네, 아, 아닙니다. 술 안 마셨습니다.”

나는 손을 들어 올려 당황한 듯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지금 이렇게 술냄새가 나는데! 이거 합의금을 받아야겠구만!”

운전기사는 내 약점을 잡은 게 기쁜 듯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그가 큰 소리를 버럭 지르자 자동차 뒷좌석 문이 열렸다. 그리고 제법 체격이 육중한 사내가 차에서 내려서 다가왔다.

박대룡 국회의원이었다.

그는 나이에 비해 체격이 건장하고 기력이 좋은 사내로 카리스마 넘치는 인상이었다.

“박 기사! 지금 갈 길이 바쁜데 안 가고 뭐 하는 거야?”

“아, 예 의원님, 죄송합니다. 그런데 글쎄 이 사람이 음주운전을 했네요?”

“뭐? 요즘이 어떤 시댄데 음주운전을 해!”

“젊은 사람이고 해서 그냥 좋게좋게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음주운전을 한 것을 알 게 됐으니 도저히 그냥 보낼 순 없지요.”

“뭐? 이런 어린놈의 새끼가 내가 누군지 알고!”

박대룡 의원은 얼굴이 벌게진 채로 나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너냐? 음주운전을 한 놈이?”

“.......”

“너 이 새끼! 내가 누군지 알아?”

“.......”

‘미친놈인가?’

아니 제대로 미친놈이 분명했다. 보자마자 욕설이라니.

전생의 기억으로 박대룡 의원의 성격이 안하무인에 자의식 과잉일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을 몰랐다.

교통사고가 났는데 자기가 누구인지 아냐고 묻는 것은 제정신인 사람이 하는 소리라고는 보기 어려웠다.

실수(?)로 교통사고가 발생했는데 앞차가 누구 차인지 알 리가 없잖아?

나는 불같이 화를 내며 얼굴을 들이미는 박대룡 의원의 눈을 차분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유명하신 분이신가 봐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

“뭐 이 새끼야!”

“왜 욕을 하세요.”

“아, 뭐 됐고, 젊은 놈이 벌써부터 음주운전을 하다니 이거 콩밥 먹게 해줘야 정신을 차리겠네? 어디 경찰에 신고해서 정신 바짝 차리게 해줘? 어?”

“허허허. 그거 잘됐네요”

“뭐? 이 새끼가 뭐라는 거야?”

“제가 차에서 내리기 전에 벌써 신고했거든요. 아 저기 오네요!”

나는 손을 들어 올려 반대편을 가리켰다.

“우리나라 경찰 참 빠르네요.”

경찰 사이렌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경찰차가 다가오는 것을 확인한 순간 시종일관 당당한 표정을 유지하던 박대룡 의원의 얼굴에도 살짝 긴장한 빛이 서리기 시작했다.

항상 이런 식이다.

경찰을 부르자고 하는 놈은 경찰이 오면 긴장을 하고, 법대로 하자고 난리 치는 놈들은 법을 아는 놈이 없었다.

영장 있어?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들이 도착했다. 젊어 보이는 경찰관 두 명이 우리에게로 다가오며 말했다.

“교통사고 때문에 신고하셨죠?”

“네, 경찰관님 수고가 많으십니다. 여깁니다. 여기!”

“허! 저 미친 새끼……. 뭐야 진짜.”

내가 손을 번쩍 흔들어 경찰들을 부르자 운전기사와 박대룡 의원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음주운전을 한 놈이 스스로 자수하는 꼴이니 황당할 수밖에.

경찰관이 다가와 물었다.

“신고하신 분입니까?”

“네, 맞습니다.”

그때 박대룡 의원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는 젊은 경찰관들을 향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아, 다들 고생이 많네.”

“....... 누구?”

경찰관들은 대뜸 자신들을 보며 하대하는 박대룡 의원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쯧쯧.’

저것도 일종의 스타병이다.

다들 자기를 알아볼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스타도 무대 위에서나 빛나는 법. 정치에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는 옆집 아저씨나 마찬가지였다.

살짝 얼굴이 상기된 박대룡 의원이 경찰관들에게 언성을 높였다.

“아 흠흠! 뭐, 그건 그렇고 내 차는 별 피해가 없으니 돌아들 가게.”

젊은 경찰관이 그 말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네? 저희는 신고받고 왔는데요. 신고하신 분은 따로 있는데 왜 선생님이 그러세요?”

“뭐? 선생님? 내가 누군지 알고!”

“누군데요 도대체?”

그때 운전기사가 경찰관에 다가가 말을 건넸다.

“아이고, 경찰관님들 고생이 많으시죠. 박대룡 국회의원이십니다. 제가 운전기사입니다.”

“네, 국회의원이요……? 아 박대룡 의원?”

이제야 경찰관이 들어본 사람들이라 듯 고개를 살짝 숙여 묵례를 했다.

“네, 뒤에서 후방 추돌당한 거라서요. 저희가 100% 피해자입니다. 원만히 합의했으니 돌아가시면 됩니다.”

“합의는 알아서 하시고요. 저희는 신고받고 온 거니까 간단하게 조사할 건 하고 가겠습니다.”

“뭐?”

젊은 경찰관의 대답에 박대룡 의원의 분노가 폭발했다.

“너 이 새끼! 어디 서에서 나왔어! 건방진 놈이!”

박대룡 의원은 진심으로 화가 난 듯 보였다. 어디서 일선 교통경찰 따위가 국회의원의 앞길을 막는단 말인가?

“오늘 마가 끼었나 어디서 이런 놈들이 자꾸 나타나는 거야. 이거 오냐오냐했더니 도저히 안 되겠군.”

박대룡 의원은 바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어 머리 위로 올렸다.

그리고 자기가 누구에게 전화를 하는지 잘 보란 듯이 과장된 동작으로 전화번호를 누르기 시작하더니 차량 뒤로 걸어가 대화를 시작했다.

“여보세요?”

“어! 그래 김 서장. 나 박대룡일세.”

-예, 의원님 이 시간에 어쩐 일이십니까?

“급한 일이 있어서 전화했네.”

-네?

“요즘 경찰들 기강이 너무 흐트러졌어! 자네 부하들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건가 도대체!”

-네? 도대체 무슨 소리십니까?

박대룡 의원은 자신의 승용차 뒤쪽에서 통화를 하고 있었지만 동네가 떠나가라는 듯이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대고 있었기 때문에 여기서도 대화 내용을 대충 들을 수 있었다.

박대룡 의원의 말은 공무 때문에 갈 길이 바쁜 자신을 어느 버릇 없는 경찰관이 막아섰다는 내용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경찰관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국회의원이 경찰서장에게 전화를 건다고 하니 살짝 긴장된 표정을 짓는 경찰관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옆에 있는 동료에게 조용히 말을 걸었다.

“선배님, 어쩌죠? 진짜 서장님한테 전화한 거 같은데요?”

그 말에 선배라고 불린 경찰관은 별다른 대답은 하지 않고 실소만 흘렸다.

‘허, 신기한 사람이네?’

눈앞에서 직속 상관인 서장이랑 통화하는 모습을 보고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강심장이거나 또라이거나 둘 중 하나가 분명했다. 대개 이런 경우에는 후자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 문제였다.

따르릉!

선배라고 불린 경찰관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네, 팀장님.”

-뭐야? 너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무슨 소리예요? 교통사고 신고받고 출동했는데.”

-서장님이 직접 전화했어. 국회의원이 피해차량이라며 합의했다고 급하게 가야 한다니까 사건 접수하지 말고 바로 보내드려.

“가해차량은 사건 접수를 하겠다는데요?”

-뭐? 굳이 왜?

“모르죠 저는. 그리고 벌써 했습니다.”

-뭘?

“사건 벌써 접수했다고요.”

탁!

젊은 경찰관은 자기는 할 말을 다 했다는 듯 일방적으로 휴대폰 통화를 종료했다.

‘역시 또라이네.’

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박대룡 의원은 뭐 이딴 새끼가 다 있지 라는 표정을 얼굴에 그대로 표현하고 있었다.

젊은 경찰관이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의원님 통화 잘하셨죠? 금방 끝나니까요. 간단하게 조사만 하겠습니다.”

박대룡 의원은 포기한 듯 손을 저어댔다. 할 가면 빨리 끝내라는 뜻.

경찰관은 나에게 다가와 물었다.

“직접 운전하셨습니까?”

“네.”

“음? 혹시 술 드셨습니까?”

“아, 아니요. 술자리에서 옆에 있다가 술을 쏟았습니다.”

“그래요? 그럼 조사를 빠르게 마치고 차량을 옮긴 후에 테스트를 한번 해보겠습니다.”

“네, 채혈해도 됩니다. 한 잔도 안 마셨거든요.”

“혹시 음주운전인 경우에는 이동 거리도 알아야 되니까요. 어디서부터 운전하셨습니까.”

“xxx동에서 출발했습니다.”

“xxx동이면 네 VIP 클럽에서 출발했습니다.”

내 말에 옆에 있던 박대룡 의원과 운전기사가 깜짝 놀라며 어깨를 들썩였다.

“......!”

운전기사가 깜짝 놀라 박대룡을 의원을 바라보았다.

젊은 경찰관은 제법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 두 사람의 반응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해냈다.

“의원님, 왜 그렇게 놀라십니까?”

“으흐흠. 내가? 무슨 소린가? 빨리 조사나 하고 보내주시게. 나도 공무가 바쁜 사람이라네.”

박대룡 의원의 기세는 방금과는 달리 무슨 이유에서인지 다소 누그러져 있었다.

눈앞의 경찰이 서장 말도 듣지 않는 또라이라서? 아니면 내가 VIP클럽에서부터 자신을 따라왔다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일까?

차량을 살펴보던 경찰관이 말을 이어갔다.

“뭐, 육안으로 봐도 큰 피해는 없는 것 같네요?”

“그, 그렇다니까. 그래서 내가 없던 일로 하겠다는 거 아닌가!”

박대룡 의원이 대답했다. 경찰관이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내가 트렁크 근처로 다가서며 말했다.

“경찰관님, 그런데 제가 의원님 차량도 VIP 클럽에서 먼저 출발하는 걸 봤거든요.”

“네? 그런데요?”

“주차장에서 잠시 대기하는 중에 웬 사람들이 의원님 차량 트렁크에 물건을 꽤 많이 싣는 것을 제가 봤거든요.”

“네?”

“꽤나 비싼 물건 같던데. 사람들이 부서지면 안 되는 물건을 옮기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트렁크에 옮기는 것을 봤습니다.”

“......?”

“혹시 모르니까 지금 확인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음, 굳이?”

“네 지금 확인해야 나중에 보험 처리를 하려고 해도 보험 처리가 되지 나중에 물어내라고 하면 곤란하지 않을까요?”

“음…… 그 말도 일리는 있네요.”

젊은 경찰관이 고개를 돌려 박대룡 의원을 바라보았다.

이들의 얼굴은 눈에 띄게 창백해져 있었다.

“어, 어! 피, 필요 없네. 트렁크에 뭐가 있다고! 별거 없으니 확인해보지 않아도 괜찮네.”

“네?”

젊은 경찰관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이 상황이 제법 아이러니하게 느껴졌기 때문일까?

가해차량의 운전자가 피해 보상을 하기 위해 트렁크 안에 파손된 물건이 있는지 확인하자고 하는데 피해차량의 소유자가 오히려 반대를 하는 상황.

이런 경우는 한 가지 경우밖에 없다. 숨기고 싶은 물건이 있는 경우가 아닐까?

경찰관이 박대룡 의원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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