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가죽옷의 사내 핸드폰을 확인하던 나는 메모장에서 한 가지 눈에 띄는 기록을 찾아냈다.
-X월 XX일 XX시, VIP(백) 전달(거경파 연락) ··· (생략) ··· -
VIP라면 그 사람인가?
나는 이 사건 배후에 있는 정치계의 인물을 떠올렸다. 전생에 조영일 전무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전달받은 것으로 알려졌던 인물이다.
거경파를 통해서 전달하는 거라면······ 돈?
나는 휴대폰을 다시 검은 가죽옷의 사내 품에 넣어두고 쓰러져 있는 검은 정장의 사내들을 살펴보았다.
거경파라.
분명히 익숙한 이름이었다.
이놈들도 거경파에서 온 놈이겠지.
그나저나 거경파라면 분명히 어디서 들어본 이름이 분명했다.
나의 머릿속으로 전생에 재벌과 연루된 범죄조직에 대한 이야기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 띠링! >
+
<돌발 퀘스트를 시작합니다.>
시나리오 진행에 따른 돌발 퀘스트를 진행합니다.
“부정부패에 연루된 국회의원이 있습니다. 체포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세요.”
세부 퀘스트 : 부정부패
클리어 조건 : 비리 국회의원의 체포
제한시간 : 비리 국회의원이 장관에 임명되기 전까지
보상 : 명성 + 100, 글로벌 명성 상승
실패 시 : ???
+
* * *
전생의 기억에 따르면 거경파는 그리 큰 조직은 아니었다.
그런 까닭에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어둠의 세계에서는 제법 이름이 있는 곳이었다.
부산, 울산, 경남권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지역 조폭이었기 때문에 일본 야쿠자를 비롯한 해외 조직과 교류가 활발했고 역사가 오래된 조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규모 면에서는 아직 전국적으로 명성을 날리는 수준은 아니었다. 이른바 전국구 조직으로 거론될 정도는 아니라는 뜻.
하지만 거경파의 이름이 우연히 전국에 알려지게 된다.
20xx년 이들이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된 계기가 발생한 것이다.
그 일은 재벌가의 사소한 일탈에서 비롯되었다.
대기업 조선소를 계열사로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재벌가.
그 재벌가 총수의 막내아들은 유독 그룹 총수인 아버지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재벌가의 막내아들은 어느 날 친구들과 부산으로 여행을 왔고, 술에 취한 상태에서 고급 룸살롱의 종업원과 시비를 붙게 된다.
하지만 재벌가의 아들이라는 몰랐던 것일까 술집의 종업원 5명이 집단으로 재벌가의 둘째 아들을 폭행하고 제법 심한 부상을 입게 되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들은 재벌가의 총수는 예뻐하는 막내아들을 폭행한 놈들을 찾아 보복을 하기로 결심한다.
이때 이 재벌 총수가 동원한 조폭이 바로 거경파였다.
거경파 조직원들이 대거 투입되어 술집을 샅샅이 뒤졌다. 그리고 폭행 사건에 가담한 종업원 5명을 붙잡아 산으로 끌고 갔다.
조직원들이 땅을 깊게 판 후 종업원들을 묻었다. 그리고 뒤늦게 재벌가의 총수가 직접 깊은 산속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재벌가의 총수는 직접 쇠파이프를 들고 와 종업원 중 책임자를 불러 세운 후 심하게 매타작을 심하게 가했다고 한다.
당시 이 사건은 재벌가의 총수가 직접 조폭들을 동원하여 벌인 폭행 사건으로 큰 화제가 되었다.
뒤늦게 알려진 사실이지만 당시 폭행을 가한 술집 종업원들은 상대방이 재벌가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여론의 일각에서는 피해자가 재벌가의 아들이 아니라면 두들겨 맞고도 합의금 몇 푼에 만족해야 했을 것이라며 오히려 아버지의 정당한 응징이라며 옹호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당시 이 사건이 세간에 화제가 된 이유는 또 있었다.
이 사건을 일으킨 재벌가에서 사건을 축소하기 위해 사법기관과 정계에 무차별적으로 로비를 했던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당시 조선소 등 해양 관련 계열사를 다수 보유하고 있던 재벌가와 연관된 정, 관계 인사들의 명단이 공개되었는데 이들은 해양수산부 출신 관료들이었다는 게 밝혀졌고 세간에 ‘해피아’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 재벌가가 소유한 계열사 중 한 곳이 바로 이곳 대한중공업이었다.
* * *
-조선소 인근 번화가
며칠 뒤.
나는 조영일 전무를 만났던 허름한 외관의 술집 근처에서 몸을 숨기고 있었다.
마치 잠복수사를 하는 형사와 같이 몸을 은밀히 하고 있었다.
아니 실제로 잠복수사를 하는 중이라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었다.
“보고야, 아직이냐?”
나의 어깨에 두꺼운 손이 올라오더니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쫌! 기다려보세요. 좀 더 기다렸다가 들어가야 된다고요.”
“확실한 거지?”
“네, 제가 직접 봤다니까요.”
“아니면 혼난다. 형 연차까지 써서 온 거라고 했지.”
“음······.”
조폭 5명을 앞에 두고도 겁을 내지 않았던 나였지만 이 사람은 좀 걱정되네?
이안 요원도 그 앞에서는 한 수 접었던 사나이.
내 등 뒤에서는 해양경찰 차진혁 경감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새끼손가락을 귀를 후벼 파며 내 등을 날카롭게 노려보고 있었다.
국회의원 박대룡
-대한중공업 인근의 번화가
끼이익!
검은색 고급 대형 세단이 도착했다.
“쉿.”
차진혁 경감이 눈빛을 빛내더니 나를 향해 검지를 세워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차진혁 경감은 씨프린스호 사건에서 마약 밀수조직을 소탕한 공로로 사건 직후 1계급 특진을 한 상태였다.
검은 세단 앞 좌석에서 기사가 내렸다. 그는 뒤로 빠르게 달려가 오른쪽 뒷좌석의 문을 공손한 자세로 열었다.
그리고 세단 오른쪽 뒷좌석에서는 머리가 희끗한 중년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음? 역시 내 예상대로 저 사람이 맞구나!’
나는 차량에서 내리는 사내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다.
검은 가죽옷의 사내 휴대폰에 적혀 있던 VIP.
그는 내가 예상했던 바로 그 인물이었다.
국회의원 박대룡.
그는 대한중공업이 있는 이곳의 지역구 의원으로 3선을 내리 당선된 중진의원이었다.
지역구 살림은 제법 잘 챙긴다는 평가를 받아 지지도가 높은 인물.
박대룡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에서는 제법 인기가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더 높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내리 3선에 당선한 그의 욕심은 지역구 국회의원의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내각에 들어서기를 원했던 그는 전생에 오재민 의원이 해양수산부 인사청문회에서 낙마하자 그 자리를 꿰찬 인물이다.
문제는 원하던 장관직에는 올랐지만 개인적인 비리뿐만 아니라 정책적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에 산업계에서의 평가는 좋지 않았다.
이후 해운조선업계를 10년 이상 후퇴시킨 인물로 평가받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나는 검은 가죽옷의 사내 휴대폰에서 발견한 메모의 내용을 떠올렸다.
‘VIP는 박대룡 의원이 맞군. 거경파를 통해 전달하려는 물건은 뭐지?’
그때.
끼이익!
또다시 검은색 고급 대형 세단이 도착했다.
이번에 차에서 내린 인물은 조영일 전무였다.
‘왔구나.’
조영일 전무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긴장한 표정으로 빠르게 술집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나는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형, 촬영하고 있죠?”
여러 사건을 거치면서 제법 친해진 상태. 나는 차진혁 경감을 형이라고 불렀다.
차진혁 경감은 삼각대를 설치한 후 카메라로 현장을 촬영하고 있었다.
“응. 촬영은 하고 있는데, 좀 부족한데.”
“뭐가요?”
“같은 술집에 들어갔다는 것 정도로는 부족하지. 아무것도 입증이 안 되는데.”
“좀 더 기다려 보시죠. 혹시 아나요? 집에 갈 때 한 상자씩 들고 갈지.”
“그리고 다른 문제도 있어.”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돌려 차진혁 경감을 바라보았다.
“문제요?”
“그래, 저 사람 국회의원이라며?”
“네, 여기 지역구 국회의원이잖아요. 몰라요?”
“국회의원이 한둘이냐?”
“그런데 국회의원인 게 왜요?”
“국회의원은 체포하는 게 쉽지 않으니까 하는 소리지.”
맞는 말이다.
국회의원에 대한 체포는 체포 동의안을 국회에서 가결해야 한다.
체포 동의안은 국회 재적의원의 과반이 출석하고 출석 의원의 과반이 찬성해야 가결되기 때문에 국회의원을 체포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실제로 국회의원에 대한 체포 동의안 가결은 헌정 역사상으로도 20번을 넘지 않는다.
명확한 증거를 확보한다고 해도 쉽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뭐, 그래도 증거가 있으면 되겠죠?”
“그건 그렇지.”
차진혁 경감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그도 확신에 찬 표정은 아니었다.
차진혁 경감은 최근 굵직한 일들을 해결하면서 남해지방해양경찰청의 에이스라고 불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현직 국회의원을 체포하는 일은 그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 * *
몇 시간 후.
“보고야 나온다!”
차진혁 경감이 조용히 말했다.
술집 문이 열리고 주차장 근처로 검은 정장의 사내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저놈들이 거경파 놈들이라고?”
“네.”
차진혁 경감이 눈빛을 빛내며 예의주시하기 시작했다.
끼이익!
검은색 승합차가 빠르게 달려오더니 주차장 구석으로 다가섰다.
검은 정장의 사내들은 승합차로 달려가 빠르게 박스를 옮기기 시작했다.
여러 번 해본 일인 듯 이들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보고야, 저 자동차가 그 국회의원이 타고 온 거 아니야?”
차진혁 경위가 손가락으로 트렁크가 열려있는 검은 세단을 가리켰다.
거경파의 조직원들이 승합차에 있던 사과 상자를 박대룡 국회의원이 타고 온 세단 트렁크로 옮기고 있었다.
잠시 후.
술집에서 사람들이 몰려나왔다.
대한중공업의 조영일 전무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태도로 낮게 굽신거리며 중년 사내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앞장선 사내는 박대룡 의원이었다.
“의원님 그럼 살펴 가십시오.”
박대룡 의원의 뒤를 따르던 사내들이 모두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박대룡 의원은 별다른 대꾸 없이 손을 들어 올렸다.
끼이익!
박대룡 의원의 차가 정문 앞으로 다가오자 조용일 전무는 빠르게 달려왔다. 매우 공손한 자세로 문을 열었다.
조영일 전무는 박대룡이 의원이 탄 차가 멀리 사라질 때까지 조영일 전무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나는 차를 주차해놓은 방향으로 뛰어가며 차진혁 경감을 바라보며 말했다.
“형, 차 가지고 올게요. 장비 챙기세요.”
“어디 가는데?”
“빨리 쫓아가야죠.”
“뭐? 박대룡?”
“네!”
차진혁 경감은 연차휴간데 더 피곤하다는 둥 혼자서 중얼중얼거리며 빠르게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
“빨리 타세요!”
나는 차진혁 경감을 태우고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 되지 않아 박대룡 국회의원이 탄 차 바로 뒤로 따라붙을 수 있었다.
“쫓아오긴 했는데….. 이제 어쩌지?”
차진혁 경감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쩌긴요. 차를 세워야죠. 현행범이잖아요.”
“그렇긴 한데, 그게 좀 애매한데.”
차진혁 경위가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공식적인 수사가 아니었다. 수사 중이 아닌 경찰관이 아니었기 때문에 검문을 위해서 차를 막을 수도 없는 상황.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속한 남해지방해양경찰청 관할 사건도 아니었다.
“체포를 할 수도 없고, 그냥 보내기도 그렇고. 방법이 없을까?”
차진혁 경감이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 말에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형님, 일단 저지르고 보시죠?”
“뭐 뭘 저질러? 어떻게?”
“기회를 만들어 봐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