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6화 (96/200)

“그래 그럼, 나도 가볼까.”

나는 바닥에 놓여 있던 망치를 꺼내 들었다. 이대성 삼등 항해사는 내 손에 들린 망치를 보자 흠칫 놀라는 표정.

“일항사님, 그런 흉악한 물건은 왜?”

“음? 망치? 다 필요할 때가 있어.”

나는 살며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 * *

- 선박 M.V 헤라호의 탱크 바닥 어딘가.

탕! 탕! 탕!

어두운 탱크 안에서는 쇠가 서로 부딪치는 충격음이 탕탕 울려 퍼졌다.

어두운 탱크 안.

한쪽 구석에서 랜턴 빛이 보이고 그곳에서 둔탁한 타격 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보면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보일지도 몰랐다. 망치를 들고 선체의 격벽을 신나게 두들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주인공은 바로 나였다.

나는 선박 가장 밑 부분인 탱크 바닥까지 내려와 탱크의 도장 상태를 확인하고 있었다.

나의 난동(?)을 지켜보다가 도저히 참지 못한 사내가 소리쳤다.

“저, 저기요! 저기요! 장보고 일항사님!”

내가 그 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망치질을 계속하자 내 옆에선 사내의 표정이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자, 잠깐만요. 일항사님!”

“왜요?”

“이렇게 세게 두들기면 사고 납니다!”

“허허허. 사고요?”

나는 그 말에 살며시 웃으며 망치질을 멈췄다.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조선소의 담당 직원이었다.

나는 말을 이어갔다.

“이 큰 배가 바다로 나가서 어떤 파도를 만날지 모르는데 제가 망치로 좀 두들겼다고 사고가 납니까?”

“으으흠!”

그는 내 말에 답변이 궁색해진 듯 별다른 대답을 하지 못하고 헛기침만 하기 시작했다.

나는 랜턴으로 바닥을 비추며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이건 어쩌실 겁니까?”

“네?”

“여기 이렇게 페인트들 다 떨어지는 거 보이시죠? 발라스트 탱크 같은 곳은 해수가 들어왔다가 나가는 곳인데 도장이 이렇게 엉망이면 되겠습니까?”

“도장이라는 게 원래 다 그렇습니다. 사용하다 보면 어차피 마모되기 때문에 좀 떨어진다고 문제가 있는 게 아니거든요.”

“허허허. 그래요?”

‘내가 지켜보고 있다.’

나는 내 표정이 잘 보이게 랜턴으로 턱 밑을 비췄다.

그리고 크게 씩 웃어 보였다. 사악하지만 아름다운 미소가 내 입가에 드리워졌다.

“헉!”

그는 랜턴 위로 비친 내 살벌한 미소를 보며 순간 깜짝 놀라며 몇 발자국 뒷걸음쳤다.

“뭐, 뭡니까?”

“왜요?”

망치를 들고 살벌한 미소를 짓는 내 표정이 무서웠던 것일까?

아니면 내가 검사하는 곳들의 결함이 들킬까봐 걱정하는 것일까?

켕기는 것이 있는지 그는 연신 땀을 삐질 흘려대고 있었다.

“그런데 땀은 왜 그렇게 흘러요?”

“더, 덥네요.”

“그래요? 망치질은 내가 하는데 왜?”

“······.”

내가 살벌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일단 알았습니다. 그럼 일단 여기서는 이쯤 하고 이동하시죠.”

“네, 어디로?”

“옆 탱크로 가야죠?”

“또 탱크? 탱크만 계속 보실 겁니까?”

“네, 저는 바닥만 계속 훑을 예정입니다.”

“네? 도대체 왜?”

“저는 원래 신조선 인수하러 오면 선체 부분만 봅니다. 감항성 유지가 제일 중요하잖아요?”

“······.”

내 말에 그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물론 나는 그의 표정이 변하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조선소 직원이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대뜸 물었다.

“신조선을 인수할 때마다 그런다고요? 일항사님은 신조선 인수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들었는데요·····.”

“······.”

아놔, 전생에서는 해봤다고!

그런데 뭐야? 이놈들이 내 뒷조사라도 하는 건가?

< 띠링! >

+ 스킬 [고소고발 Lv.11]을 사용합니다. +

- 관찰력이 상승합니다.

- 범인을 추적합니다.

- 거짓말을 감지하는 능력이 상승합니다.

‘거짓말 탐지? 좋은데?’

레벨이 오른 탓인지 스킬을 사용할수록 부수한 효능이 좋아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조선소 담당자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런데 탱크에 들어가서 선체 상태를 확인하겠다는데 왜 그렇게 놀라십니까?”

“네? 놀라는 건 아니고요······.”

+상대방의 심장 박동수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

요놈 봐라?

“뭐 탱크에 문제라도 있습니까?”

“문제라니요? 그런 건 아닙니다.”

+상대방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합니다! +

도둑이 제 발 저리는 심정이 이런 건가?

“페인트는 왜 이렇게 떨어집니까? 이거 딱 봐도 불량인데 이런 것도 검수 안 하나요?”

“불량이라니요. 원래 페인트가 탈락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뭐, 확인해보면 알겠죠.”

“······.”

담당자의 안색이 눈에 띄게 경직되어 가기 시작했다. 나의 질문에 땀을 뻘뻘 흘리며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니 이런 대담한 범죄행각을 주도할 정도의 강심장은 가지고 있지는 않은 사람으로 보였다.

‘그래도 뭔가 알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하긴 지금 배의 문제점은 조선소 담당자도 절대 모를 수 없는 상태. 절망적인 수준이었다.

의도적으로 눈을 감았거나 아니면 상사의 지시에 의해 묵인했겠지. 이런 일은 이런 하급 담당자들 손에서 결정될 문제는 아니었다.

‘지금 이 사람을 다그친다고 끝날 일은 아니니까.’

담당자를 괴롭히는 것은 이쯤하고, 더 못된 놈들을 잡는 것이 중요했다.

나의 목표는 이런 담당자가 아니었다. 나의 시선은 저 위에 있는 더 크고 더러운 놈들을 향하고 있었다.

M.V. 헤라호 침몰사고 (1)

- 조선소 근처에 위치한 횟집

조선소 근처 제법 큰 규모의 횟집. 가장 구석진 자리에 방이 마련되어 있었다.

홀에는 제법 사람들이 있었지만 방 근처에서는 사람들이 없어 한산한 분위기가 흘렀다.

그리고 횟집의 한쪽 구석 방 안에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는 세 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곁에 있는 사람들만 겨우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마치 다른 사람들이 절대 들어서는 안 되는 이야기를 나누기라도 하는 모습.

이들의 정체는 조선소의 임원, 하청회사인 도장회사의 사장 그리고 선급회사에서 파견 나온 선체검사관이었다.

선체검사관이 가장 어려 보이는 외모였다. 그는 살짝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선급은 선박의 구조 등에 대한 검사를 통해 산정된 선박의 등급을 말한다.

국제항행을 하는 선박들은 검사를 받고 합격한 증서를 선박 내에 비치해야 하기 때문에 선급검사는 필수였다.

하지만 그동안 신조선 건조 과정을 검사해왔던 선급의 담당 검사관은 현재 건조 중인 M.V. “헤라”호의 불법 건조 과정을 철저하게 묵인했다.

그 이유는 바로 회사 상사로부터 지속적인 압력이 들어왔기 때문.

선급 검사관의 상관인 선급협회의 임원은 “조선소와 마찰을 일으키지 마라. 융통성이 있어야지 세상을 어떻게 원칙대로 살아가냐.”며 건조과정에서 사소하게 발생하는 결함들을 묵인하도록 지시했던 것이다.

어색한 침묵이 깨졌다.

조선소의 하청회사 사장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이거 정말 큰일 아닙니까?”

“이사장, 허어! 큰일이라니! 말이 씨가 될 수도 있네.”

조선소 임원이 하청회사의 사장을 바라보며 안광을 크게 빛냈다. 이사장이라고 불린 하청회사의 사장이 그 말에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말을 이어갔다.

“조 전무님, 아니라니까요 오늘 있던 이야기를 들었지 않습니까? 완전히 제대로 미친놈이 하나 나타난 것 같습니다.”

“으흐흠!”

조 전무라고 불린 조선소의 담당 임원이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그는 지금 선박 인도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새로운 골칫거리가 생긴 것이 매우 불쾌했던 모양이다.

“이사장, 그나저나 그놈 이름이 뭐라고?”

“해신해운의 일등항해사라고 하던데요. 장보고?”

“장보고? 허!”

“알아보니 제법 유명한 사람이던데요?”

“그놈이 유명하다고 왜?”

“왜 예전에 그 일 있지 않습니까? 몇 년 전에 해신해운 선박이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피랍될 뻔했던 사건.”

“그래, 아! 그때 그놈인가? 언론에서 바다의 젊은 영웅이라고 한참 떠들어 댔던 그놈이 선박인수팀에 있어?”

“네, 맞습니다.”

“허허허! 미치겠네. 왜 하필 그런 놈이!”

조 전무라고 불린 중년 남성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랐다.

그는 곧 부사장 승진이 확실시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지금 상황이 몹시 더 당황스러웠기 때문이다.

조 전무가 선급에서 나온 선체검사관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나저나 문제가 뭐라고?”

“어휴.”

“웬 한숨이야?”

“진짜 몰라서 물어보시는 건가요?”

“뭐?”

얼굴이 살짝 달아오른 선급 검사관이 살짝 흥분한 듯 목소리를 높였다.

그동안 그가 이런 모습을 보인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조 전무라고 불린 조선소의 임원도 당황한 눈빛.

선체검사관은 그런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전무님, 지금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까딱하다가는 저까지 큰일 나는 거 아닙니까? 급한 부분이라도 다시 보강 작업을 하든지 조치를 하는 게 어떻습니까?”

“보강 작업을 해도 제때 인도가 가능한가?”

“그건 아무래도 힘들겠죠.”

그 말에 조 전무가 인상을 팍 쓰더니 고심하는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그건 안 돼.”

조 전무라고 불린 사내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언성을 높였다.

“이사장! 내가 그러게 적당히 남겨 먹으라고 하지 않았나!”

하청업체 이사장은 괜히 불통이 자기에게 튀자 당황한 듯 얼굴을 붉혔다.

‘돈은 지가 다 처먹어놓고 괜히 나를 탓하는구나. 도둑놈이 따로없구나.’

도장업을 하는 하청업체 이사장은 조 전무의 타박에 화가 잔뜩 났지만 입 밖으로 불만을 토로할 수는 없었다. 이 조 전무는 자기의 밥줄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곧 부사장으로 승진할 것이 확실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아직 눈 밖에 날 순 없었다.

조선소 담당 임원인 조 전무도 이 상황이 몹시 짜증 나긴 마찬가지.

이미 자신이 빼돌린 돈은 곧 있을 정기인사를 위해 이미 사용했다. 이미 자기가 줄을 대고 있는 부사장에게까지 돈이 올라간 것도 제법이다.

부사장이 자신에게 돈을 상납할 곳이 있으니 비자금 조성을 직접 지시하지 않았던가. 돈이 필요한 이유는 정치 쪽과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확인하지는 않았다. 그가 바란 것은 그 대가였기 때문이다. 물론 부사장은 대가를 약속했다. 곧 있을 정기인사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하는 것이 바로 그 대가였다

문제는 상납한 돈이 횡령금의 전부인 것도 아니었다. 빼돌린 자금 중 상당 부분을 유흥비로 탕진한 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조 전무는 그 외에도 이번 건조 과정에서 비자금 수억을 따로 챙겼다. 골프 및 술값 등 개인 유흥에 사용했기 때문에 이제 와서 건조 기간이 연장되고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보강공사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잘못하다가 건조기간이 늘어나 선박의 인도 시기가 늦어지기라도 한다면 그 책임을 전부 뒤집어쓸지도 모르는 상황. 그리고 혹시 감사팀이나 본사에서 비용에 대한 검증이 이루어지기라도 한다면 꼬리가 밟힐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조 전무가 두 사람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일단, 내가 한번 힘을 써보겠네.”

“네? 어떤 방법을?”

“그 일등항해사도 아직 한창 젊은 나이가 아닌가? 언론에서 영웅이니 뭐니 몇 번 떠들어댔다고 해서 뭐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줄 알겠지만 다를 게 있겠나?”

조 전무는 비릿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선체검사관은 탐탁지 않은 표정이었지만 그저 조 전무를 믿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이제 와서 달리 좋은 방법도 없었기 때문이다.

* * *

- 조선소 인근 장보고의 숙소

해신해운에서 파견된 신조인수팀원들이 숙소로 잡은 호텔로 돌아온 장보고는 책상에 앉아 신조인수과정에서 발견한 사실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일단 공급된 자재들도 너무 문제가 많아.’

선체 특히 잘 티가 나지 않는 탱크 안쪽이나 격실 같은 곳들에 사용된 자재들이 너무 부식이 심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도장 상태도 엉망이었기 때문에 바다에 취항하기도 전에 상당한 부식이 발생하고 있는 실정.

망치로 탱크 내부를 두들기자 제대로 마르지 않은 페인트들이 우두두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그 안에는 이미 부식이 심하게 일어난 상황.

‘그리고 장비들도 문제가 많아 보였어. 이 부분은 따로 한번 확인해볼 필요가 있겠어.’

몇몇 장비들이 장보고의 눈에 들어왔다. 신규 장비 대신 중고 장비를 사용한 흔적이 발견되었기 때문.

아마도 제대로 형식승인 등 관련 법규에서 요구되는 인증을 마친 회사의 제품을 구입하지 않은 것이 분명해 보였다.

전생에 이 사건은 조선소 횡령 사건으로 시작했지만 정치인의 뇌물 사건까지 이어지는 큰 사건이었다.

문제는 배가 침몰되는 등 사고가 발생한 이후에 그러한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에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다는 것.

전생에 이 사건에 가담한 조선소의 담당임원, 선급회사의 직원, 하청업체 대표이사 등은 업무상횡령, 리베이를 건넨 혐의로 배임증재, 선박안전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진다.

당시 공개된 판결문 등에 따르면 조선소 담당 임원을 거래업체에 대금을 과다 지급한 뒤 돌려받는 등의 수법으로 비자금을 만들었다.

그리고 하청업체의 사장은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불량 제품을 납품받아 공사를 진행하고 아낀 돈으로 ‘하도급 계약 유지, 물량 확보, 단가 책정 등 업무에 편의를 봐달라.’는 청탁을 하는 데 사용했다.

도장업체 외에도 조 전무는 다양한 하청업체를 활용해 비자금을 마련했다. 담당 임원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하청업체의 관계자들은 대신 ‘물량을 챙겨달라.’는 청탁과 함께 수억 원을 리베이트로 돌려주는 방법으로 조선소 담당 임원들에게 다시 전달했다.

당시 사건을 판결한 재판부는 “조선소 담당 입원이 업무 규정에 따르지 않고 부정하게 업무를 처리했다.”며 “그 대가를 적극적으로 요구해 2년 이상 장기간 금품을 받았으므로 엄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실형을 선고하기도 했다.

어찌 보면 단순한 횡령사건일 수 있었던 이 사건의 불똥이 엉뚱한 곳으로 튀게 된다.

조 전무의 계좌를 추적하던 수사기관이 정치계 인사와 연결되는 수상한 흐름을 포착한 것.

그리고 그 돈은 상당한 거물 정치인에게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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