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5화 (95/200)

“......! 뭐? 그, 그게 정말인가?”

대답하는 도형준 상무의 입이 살짝 벌어져 있었다.

자신도 해신해운의 동남아지역본부장으로 근무하는 동안 여러 번 계약을 뚫기 위해 시도했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했던 곳이 바로 인도네시아 에너지였다.

국영기업인 탓에 텃세가 심하고 회사 규모도 컸기 때문에 신규로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어려움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놀라움이 커졌다.

나는 도형준 상무의 놀란 표정을 쳐다본 후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상무님, 이번 기회만 잘 살리면 인도네시아에서 탱커선, LNG선 장기 운송계약도 쉽게 따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물론이지! 어디 그것뿐인가 인도네시아에 가장 큰 기업 중 한 곳이 아닌가? 인도네시아 에너지의 3자 물류 사업을 맡을 수 있다면 앞으로 큰 성장 가능성이 있을 것이네. 인도네시아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시장이니까.”

도형준 상무가 눈빛을 크게 빛내기 시작했다.

해신해운은 해운업에서 강세를 보이는 전통적인 해운회사였지만 해운회사 사이에 경쟁이 심화되는 추세 속에서 경쟁력을 기르기 위해 해운업 외에도 다양한 사업을 추진 중에 있었다.

그중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분야가 바로 3자 물류 시장이었다. 3자 물류란 물류회사가 고객기업에 배송·보관·유통가공 등 두 가지 이상 물류 기능을 종합적으로 제공하는 물류 서비스를 말하는데 해신해운 입장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사업 분야였다.

도형준 상무가 이어 말했다.

“장보고 이항사, 마헨 수비안토 장관은 언제까지 한국에 머무르신다고 하던가?”

“아직 며칠 여유가 있습니다.”

“음! 내가 당장 사장님께 보고를 올리겠네.”

“네, 장관님을 한번 모시고 회사로 올까요?”

도형준 상무가 깜짝 놀라 물었다.

“그, 그게 가능하겠나?”

“네, 한번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허허허.”

그는 나를 바라보며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상무님, 마헨 수비안토 장관이 여기 왔을 때 서류라도 하나 써놓고 가야 안심이 되지 않겠습니까?”

“물론 그러면 물론 좋겠지. 그럼 마헨 수비안토 장관님이 귀국하시기 전에 해신해운에 방문하실 수 있도록 힘을 써주게.”

“알겠습니다.”

“허허허.”

도형준 상무가 내 말에 웃음을 한바탕 터트렸다. 그가 그토록 노력했던 일이 이렇게 쉽게 풀리는 것이 신기했기 때문이다.

* * *

- 해신해운 본사 9층 회의실

며칠 뒤 해신해운 본사 9층 회의실.

해신해운 본사 9층은 사장실과 회장실이 위치한 공간으로 경영진이나 VIP들이 방문했을 때 이용되는 회의실이 있었다.

회의실에서는 마헨 수비안토 회장과 박원용 회장이 서명식을 가진 후 일어서 악수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 앞으로 신문기자들이 플래시를 터트리기 시작했다.

찰칵 찰칵!

“자, 한 번만 다시 찍겠습니다.”

밝은 표정의 홍보팀장이 소리쳤다. 간만에 대규모 계약이 성사되는 분위기. 해신해운 사람들의 표정이 밝았다.

나는 회의실 한쪽에 마련된 자리에 앉아 도형준 상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미스터 장!”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마헨 수비안토 장관이었다.

“기념으로 같이 사장 한 장 찍읍시다. 앞으로 오시죠.”

순간 회의실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나를 향했다.

“네, 장관님.”

나는 앞으로 나가 장관 옆에 섰다.

기자들 앞에 서서 어색한 미소를 짓자 플래시가 터지기 시작했다.

‘이번 하선 휴가 기간은 유독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 느낌이네.’

하선 휴가 동안 벌어진 일들이 머릿속으로 빠르게 지나갔다. 차라리 배로 나가 승선생활을 하는 것이 더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2달의 휴가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다시 바다로 나갈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다음 날.

+

신라일보,

“해신해운, 인도네시아 물류 사업 진출.”

해신해운이 인도네시아 국영 석유회사인 인도네시아 에너지(Indonesia Energy)와 합작회사를 설립하고 인도네시아 해운 물류 사업에 본격 진출한다.

해신해운은 서울 여의도구 해신해운빌딩에서 인도네시아의 마헨 수비안토 해양투자조정부 장관, 박원용 해신해운 사장 및 인도네시아 에너지의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인도네시아 연안의 석유 및 가스 운송을 위한 합작법인을 설립키로 합의하고 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x일 밝혔다.

인도네시아 에너지는 자원부국인 인도네시아의 원유 생산 및 원유 수송, 석유화학제품 생산 및 판매 등 석유 사업 중심의 인도네시아 최대 기업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해신해운의 홍보팀 관계자는 “향후 해신해운이 인도네시아 에너지의 화물을 운송하기 위한 초석이 마련됐다. 안정적인 물량 확보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의 수출입 화물 운송 사업에 진출할 수 있는 큰 기회가 되었다”고 설명했다.

해신해운은 인도네시아에서 탱커선, LNG선을 시작으로 벌크선, 컨테이너선, 3자 물류 등으로 적극적인 신사업 기회 창출에 나서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해신해운 관계자는 “인도네시아 에너지는 해신해운이 오랬동안 희망했던 비즈니스 파트너.”라며, “이번 계약의 체결 배경에는 몇 년 전 인도네시아 쓰나미 사건 때 선원들과 인도네시아 국민들을 구조한 해신해운 선박에 승선했던 항해사의 도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유혜영 기자.

+

* * *

그리고 몇 년의 시간이 흐른 후.

한국의 대형 조선소 정문.

해신해운 선원들이 무리를 지어 이동하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힐끔힐끔 돌아보았다. 앞장선 사람의 외모 때문이었다.

“저, 저 사람 뭐야?”

“오늘 무슨 영화나 드라마 촬영이라도 하는 건가?”

사람들이 잘생긴 남자를 보며 수군거렸다.

큰 키에 균형 잡힌 몸매. 탄탄한 근육. 마치 영화배우 같은 비주얼. 그가 지나가자 근처의 사람들이 눈을 떼지 못했다.

그때 뒤따르던 젊은 남자가 달려오며 말했다.

“장보고 일항사님!”

그 말에 앞장서서 걷고 있던 사람이 고개를 뒤로 돌렸다.

등 뒤로 빛살이 밝게 빛나자 그를 바라보는 사람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다고 생각했다.

앞장서서 걷고 있던 사람은 해신해운의 일등 항해사 장보고였다.

“장보고 일항사님도 신조선 인수하는 건 처음이시죠?”

“뭐, 그렇지.”

장보고 일항사에게 말을 건넨 사내는 이대성 삼등항해사였다. 해적 피랍 사건 당시 선박 줄리엣호에 실항사로 근무했던 이대성은 어느덧 삼등 항해사가 되어 있었다.

장보고 일등 항해사를 바라보는 이대성 삼등 항해사의 눈빛은 존경심으로 가득했다.

< 띠링! >

+

<상태창>

이름 : 장보고

나이 : 27세

클래스 : 항해사

세부클래스 : 일등 항해사

직업레벨 : Lv.21

명성 : + 3235

스킬 : [항해술 Lv.19], [기관술 Lv.5], [태권도 Lv.8], [고무고무킥 Lv.9], [인명구조 Lv.10], [고소고발 Lv.11], [협상 Lv.12], [잠입 Lv.4]. [마도로스의 심장 Lv.9], [명사수 Lv.4]

칭호 : [수성의 달인], [인도네시아를 구한 영웅], [인도네시아의 국민 사위], [구조의 달인], [부산사나이], [용감한 시민], [최연소 이등항해사], [항로계획의 달인], [응급처치의 달인], [해신해운의 핵심인재], [바다를 사랑하는 젊은 청년], [국감스타], [용감한 선원]. [최연소 일등항해사], [화물의 달인]

Remark: 전직을 위해서는 경험치가 좀 더 필요합니다!

+

신조선 인수

- 조선소 정문

나에게로 다가와 말을 건네는 이대성 삼등 항해사의 표정이 밝아 보였다.

“삼항사, 무슨 일 있어? 왜 그렇게 기분이 좋은 거야?”

“신조선 인수하러 가니까 좋은데요. 마치 새로 구입한 자동차를 인수하는 그런 기분?”

“허허허.”

“장보고 일항사님, 그래도 새로 나온 선박을 인수하는 거니까 아무래도 승선 생활 하는 것보다는 편하겠죠?”

“흐흐흐. 과연 그럴까?”

“네?”

“내가 김호영 일항사님 대신 이 일을 지원했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나?”

“······.”

“흐흐흐.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나는 이대성 삼등항해사의 말에 실소를 가볍게 흘렸다.

신조선을 인수하는 일은 꽤나 귀찮은 일이기 때문이다. 대형 선박을 인수하는 일을 새 자동차를 인수하는 일과 비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나와 이대성 삼등항해사는 신조선 인수팀에 합류한 상태. 우리는 적어도 2주 이상 함께 조선소에 머물면서 선박을 검사하고 인수 준비를 할 예정이었다.

새로 건조되는 선박을 인수하면 체크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무수히 많은 해사 규정들에 부합하는지도 일일이 확인해야 되고 장비와 선박의 기기들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사용상 문제가 없는지도 하나하나 확인해야 하는 작업을 필수로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선소에서 공급하기로 한 예비 부속품들이 충분히 있는지, 새로 도입되는 장비에 대해서도 익숙해져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신조선 인수는 페이퍼 워크의 지옥이라 불릴 만했다.

인수인계하는 선박에는 잘 구비되어 있는 서류들이 신조선에는 하나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운항 전에 필요한 서류 작업들을 모두 마쳐야 하기 때문에 신조선 인수는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기 때문에 서류 작업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기피하는 일 중 하나였다.

그리고 신조선을 인수하면 사전에 테스트를 거쳤더라도 꼭 문제가 발생한다. 각종 누수나 누유가 발생하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장비들이 생기기 때문에 사전에 이를 발견해서 최대한 예방하는 것이 중요했다.

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실소를 흘렸다. 이대성 삼등 항해사는 나의 음산한 웃음소리를 듣자 흠칫 놀라는 표정.

“음? 그 표정은 무슨 표정?”

“아, 사실 삼등 항해사들 사이에서는 이미 소문이 파다하거든요.”

“무슨 소문?”

“장보고 일항사님이 한 번씩 살벌한 미소를 지을 때가 있는데 그렇게 웃을 때면 꼭 큰일이 터진다고 하던데요······.”

“······.”

“해적들 나타나기 전에도 그렇게 웃으셨던 거 같긴 한데······.”

“······.”

뭐, 사실 틀린 소리는 아니네? 나도 딱히 할 말은 없었다.

사실 내가 이번 신조선 임무를 자청한 이유가 있었다.

전생에서도 그렇고 현생해서도 이번 일은 원래 비너스호에 함께 승선했던 김호영 일등항해사에게 배정된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 일과 연루되어 상당한 고초를 겪게 된다.

‘다시 그런 일이 벌어지게 할 수는 없지.’

나의 눈빛이 날카롭게 반짝 빛나고,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 띠링 ! >

+

<메인 퀘스트를 시작합니다.>

시나리오 진행에 따른 메인 퀘스트를 진행합니다.

“침몰 위험에 처한 선박이 있습니다. 숨어 있는 결함을 찾아주세요!”

세부 퀘스트 : 신조선 인수

클리어 조건 : 결함 발견

제한시간 : 신조선 인수 전까지

보상 : 명성 + 100, 글로벌 명성 상승, 사내 명성 상승

실패 시 : 선박 침몰

+

‘퀘스트의 내용이 제법 살벌하네?’

실패의 대가가 컸다. 선박 침몰이라니?

나는 고개를 들어 조선소 정문 뒤로 보이는 거대한 조선소의 골리앗 크레인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곧 발생할 대형 선박사고와 관련된 전생의 기억이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 * *

20xx년 x월 xx일 대형 선박 사고 사건이 뉴스에 대대적으로 보도된다.

바로 해신해운 소속의 컨테이너선 “M.V. 헤라”호가 인도양을 항해하던 중 선체 균열이 발생해 선박의 중단 부분이 끊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는 소식.

뉴스에 실린 사진은 놀라웠다.

대형컨테이너선이 말 그대로 두 동강 난 채로 표류하다가 침몰한 초유의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선박이 반 토막 난 채로 컨테이너를 싣고 표류하는 사진은 마치 조작된 느낌마저 들었다.

당시 선박 “M.V. 헤라”호는 컨테이너 5,293개를 선적하고 싱가포르항을 거쳐 두바이를 향해서 운항 중인 상태였다.

사고지점은 육지에서 약 200해리(약 370km) 떨어진 해상.

갑자기 선체 중앙부에 커다란 금이 가기 시작했다.

선박은 결국 행해를 계속할 수 없는 상황에 빠졌다. 선장은 즉시 퇴선을 결정하고 조난 신호를 보냈다.

다행히 선원들은 모두 조난신호를 듣고 빠르게 달려온 독일선사 소속 컨테이너선박에 의해 구조되었다.

하지만 선박은 결국 침몰하고 말았다.

이 사고로 인해 헤라호에 적재되어 있던 컨테이너 역시 선체와 함께 표류하다가 전부 침몰하였다. 단일 사고에서 가장 많은 컨테이너를 잃은 사건으로 역사에 남게 되는 사건이었다.

문제는 선박 침몰의 원인이었다. 신조선으로 인수한지 얼마 되지 않은 선박이 바다에서 두 동강이 난 사건이다 보니 원인을 둘러싼 다툼도 치열하게 전개됐다.

결국 한참이 지나서 밝혀진 사실이지만 같은 시기에 제작된 자매선박들을 점검한 결과 총 5척의 자매선에서 선체하단 중앙부가 손상되었다는 사실이 추가로 확인되었다.

이 사고는 향후 해운업계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국제해사기구는 화물 총중량 검증제도(Verified Gross Mass, 일명 VGM)를 측정하지 않은 화주의 화물에 대해서는 선적을 금지하는 내용의 규정이 새로 발효되는 데 큰 영향을 미친 것이다.

해신해운은 운송 중인 선박과 컨테이너를 전부 잃었지만 다행이 보험으로 경제적 손실은 상당 부분 회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업계의 신뢰였다. 선박의 건조 과정의 문제라는 것이 해신해운의 주장이었지만 선박을 건조한 조선소는 선박의 건조과정에서 발생한 결함이 아니라 선박을 운항하는 해운사의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선박을 운항하는 해운사가 과적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해운사와 조선소의 다툼이 치열하게 전개되었지만, 그 진실과는 무관하게 이 사건으로 인해 해신해운과 조선소 모두 매출과 이미지에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 * *

- 신조선 M.V. 헤라호의 갑판

며칠 뒤. 신조선 임무는 바쁘게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이대성 삼등 항해사와 이항사를 불러놓고 약간의 꼰대짓을 하고 있었다.

“귀찮아도 선박 전체를 눈으로 일일이 확인해야 된다. 알았지?”

“네.”

“톱 브릿지(Top Brigde)부터 탱크 바닥까지 반복해서 확인하고, 설치된 장비들은 제대로 고정되어 있는지 잡고 흔들어서 확인하고······.”

“문이 달린 것들은 전부 다 열어서 문이 제대로 열리는지 직접 다 확인하고! 맞죠?”

“······그래.”

“어젯밤에도 말씀하셨잖아요!.”

“허허허. 그랬나?”

“네, 일항사님 시키시는 대로 열심히 하고 있으니 걱정 좀 하지 마세요.”

“그래, 나는 탱크 바닥 부분을 중점적으로 살펴볼 생각이니까 갑판 위로는 이항사하고 의논해서 잘 살펴보도록 알겠지?”

“네, 알겠습니다.”

이대성 삼등 항해사와 이등 항해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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