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2화 (92/200)

“증인은 저기 있는 피고인들을 알고 있습니까?”

나는 검사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피고인석에 앉아 있는 해적들을 얼굴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해적재판 (3)

- 부산지방법원 301호 형사법정

나와 눈이 마주친 해적들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쯧쯧쯧. 평소에 잘했어야지.’

나는 고개를 돌려 차분한 목소리로 질문에 대답했다.

“네, 저는 저 피고인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피고인들은 제가 승선했던 줄리엣호를 피랍하려고 시도했던 소말리아의 해적들입니다.”

“그럼, 피고인들이 어떤 일들을 했는지 설명을 해주실 수 있나요?”

“네, 우선 피고인 압둘 아라이는 소말리아 해적단인 샤크 해적단의 부두목이라고 들었습니다. 영국 해군이 줄리엣호를 장악한 마지막 순간까지도 숨어서 줄리엣호의 선장님을 인질로 삼으려고 시도했던 자입니다.”

내 말에 압둘 아라이가 고개를 땅으로 떨어뜨렸다.

“하지만 해적들 중에 수사에 협조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압둘 아라이는 해적들 브로커에 대한 정보를, 그리고 부바카라는 피랍을 위해 배에 올라탄 해적들 중 부두목인 압둘 아라이에 대한 정보를 영국 해군에 제공해서 수사와 체포에 협조한 공로가 있었습니다. 이들 피고인들은 벌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수사에 협조한 부분도 있으니 재판부에서 참작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압둘 아라이와 부바카라가 나의 말에 표정이 다소 밝아졌다.

검사가 질문을 이어갔다.

“그럼, 나머지 해적들에 대해서도 기억이 납니까?”

“네, 이들은 승선과정에서 소총을 들고 사격을 했던 자들입니다. 3번, 4번 피고인은 AK 소총으로 위협사격을 하면서 저를 향해 총격을 가한 자들입니다. 특히 3번째 자리에 앉아 있는 피고인은 물대포를 쏘는 저를 정확히 겨냥해서 총격을 가한 자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기억을 할 수 있습니다.”

“......!”

“그리고, 마지막에 있는 피고인은 줄리엣호에 올라타기가 쉽지 앉자 RPG를 들고 위협을 가한 자입니다. 이들은 체포된 이후에도 달리 수사에 협조하였다거나 수색을 도운 사실이 없습니다. 엄중하게 처벌하여 주십시오.”

“피고인들은 위협사격을 하였을 뿐이라고 주장하는데 그것이 사실입니까?”

“절대 아닙니다. 제가 해적들을 저지하기 위해서 물대포를 쏘자 해적들이 제가 있는 곳을 정확히 겨냥해서 총격을 가했습니다. 제가 저를 노리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만약 일 초라도 피하는 것이 늦었다면 저는 분명히 총상을 입었을 것입니다.”

“음, 그럼 굉장히 위험한 순간이었겠군요?”

“네, 당시 저는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웅성웅성.

기자들이 빠르게 타이핑을 쳐내려 가는 소리가 들렸다.

검사가 말을 이어갔다.

“증인, 부바카라가 해양경찰에서 진술한 내용에 따르면 압둘 아라이가 줄리엣호의 선장을 인질로 삼으려고 할 때 총을 휴대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사실인가요?”

“네, 맞습니다. 압둘 아라이는 AK 소총을 들고 선장님을 인질로 삼으려고 했으나 선원들의 제지로 총을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이후에는 누가 압둘 아라이를 제압했나요?”

“포위된 압둘 아라이가 저에게 달려들며 공격을 가했고 제가 직접 그를 제압해서 영국 해군에 인계했습니다.”

“꺄아악!”

‘음?’

방청석에서는 내 활약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작은 비명 소리 같은 것이 들려왔다.

이후 검사의 증인신문을 마치고 백경운 변호사의 반대신문이 이어졌다.

백경운 변호사는 유능한 변호사였지만 워낙 증거가 확실한 사건에서 그가 활약할 수 있는 여지는 없어 보였다.

몇 시간 후.

재판장이 증거 조사를 모두 마친 후 검사와 변호인 측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것으로 증거조사를 마치겠습니다. 검찰 측 의견 말씀해주시죠.”

“네.”

검사가 검사석에서 일어나 배심원들이 있는 곳을 바라보며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피고인들이 저지른 해적들의 기본 범죄만으로 우리 형법상의 해상강도와 인질강도 혐의를 적용해 무기징역 이상의 형벌이 가능하고, 가중행위인 해상강도 살인미수, 선박위해법 등의 혐의를 적용해 최저 무기징역에서 최고 사형이 가능한 범죄혐의라고 판단됩니다.”

검찰의 의견에 깜짝 놀란 해적들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검사가 말을 이어갔다.

“피해자인 해신해운 선원과 선사가 입은 육체적 정신적, 경제적 피해가 너무나 크고, 피고인들이 비교적 경미한 혐의만 인정할 뿐 자신들이 저지른 범행을 인정하거나 반성하지 않고 있으며, 무엇보다 해상강도나 인질강도 살인미수죄 등은 돈을 벌 목적으로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해 저지르는 가장 악질적인 범죄 중 하나이므로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고 선처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검사가 말을 잠시 쉬고 압둘 아라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특히 핵심 피고인인 압둘 아라이의 경우 자신이 저지른 대부분의 혐의를 부인하고 반성의 모습도 보이지 않고 있으며, 무방비 상태의 민간인인 선장을 최후의 순간에 납치하려고 시도하기까지 했습니다. 해적의 잔인함과 집요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압둘 알라이는 그 말에 고개를 땅에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다.

“다만, 가장 죄질이 나쁜 부두목 피고인 압둘 아라이와 부바카라가 체포 이후 수사에 협조한 점 등을 감안하여 최종 구형 의견을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피고인 압둘 아라이에 대해서는 무기징역, 피고인 부바카라에 대해서는 징역 25년, 나머지 피고인들에 대해서는 무기징역의 형을 선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음.’

나는 검사의 구형을 듣고 전생을 기억을 떠올렸다.

전생에 압둘 아라이는 삼해 루비호 선장에게 총을 난사한 혐의가 인정되어 법정 최고형인 사형이 구형되고 결국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부바카라와 나머지 해적에 대해서도 해적행위에 단순 가담하는데 그치지 않고 선원들에 대한 폭행과 살해위협, 사전 공모를 통해 인간방패로 내몬 점(살인미수)등이 인정되어 각각 무기징역형이 구형되었다.

이와 비교하면 구형이 낮아졌지만 전생에서는 피랍에 성공한 사건이었기 때문에 죄질이 훨씬 나쁘다는 점을 고려하면 여전히 중한 구형이었다.

검사의 구형을 들은 해적들의 얼굴을 삽시간에 딱딱하게 굳어갔다. 예상외의 중한 형을 구형받은 해적들은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재판부가 검사의 구형을 듣고 변호인 백경운 변호사를 바라보았다.

“변호인 최후변론 하세요.”

“네.”

백경운 변호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배심원들을 바라보며 최후변론을 시작했다.

“검찰이 많은 증거자료를 제시하고 있지만, 직접적으로 해적들이 사람을 향해 직접적인 총격을 가하였다는 점을 증명할 결정적 증거는 하나도 없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검찰의 공소의견 대부분을 의지하고 있는 선원들의 진술에도 일관성이 떨어지고 신뢰성을 의심할 만한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배심원들의 표정을 한차례 살핀 백경운 변호사는 한 호흡 쉬고 말을 이어갔다.

“'공소장에 기재된 공소사실은 감찰이 가정적 상황을 유추해 억지로 피고인들이 행한 범죄의 고의성과 사전모의 가능성을 주장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당시 해적들이 갖고 있던 무기는 AK소총 7정과 로켓포 1발, 기관총 1정 등 9정뿐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당시 배를 납치한 해적들 전원이 총기를 소지하고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입증되지 않는 공모관계를 적용할 것이 아니라 해적들 각자가 실제로 행한 죄를 입증해 그에 맞는 처벌을 하는 것이 형사소송법이 정하고 있는 죄형법정주의에 부합하는 판결이라고 할 것입니다.”

백경운 변호사의 목소리가 또랑또랑하게 법정에 울려 퍼졌다.

“설령 피고인들의 행위를 유죄로 인정하더라도 이미 피고인들이 인정한 해적행위만으로도 큰 처벌이 예상됩니다. 그런데 이미 두목을 비롯한 해적단의 중요인물이 미군에 의해 체포되어 해적단이 괴멸되었다는 점을 참작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18세로 미성년자인 부바카라는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범죄의 늪에 빠졌습니다. 이런 소년범에게 무기징역은 너무 과도하다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피고인들도 대부분 단순가담자에게 무거운 책임을 지우는 것은 과도하므로 최대한 관대한 형을 선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피고인들의 최후변론이 이어졌다.

압둘 아라이를 비롯한 해적들은 다시 해적질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부바카라는 형 집행 후 한국정부에 시민으로 살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말하고 싶다며 또다시 귀화의사도 밝혔다.

재판장이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피해자로 출석한 장보고 씨도 재판을 마치기 전에 특별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추가로 있으십니까?”

“네, 기회를 주시면 의견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네, 피해자들을 대표해서 진술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방청석에서 일어나 배심원들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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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또렷한 목소리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그리고 배심원 여러분. 소말리아 해적은 우리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는 것은 물론 인류 전체에도 중대한 범죄행위를 일삼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사건을 벌인 샤크 해적단은 해신해운의 선박뿐만 아니라 전 선계의 많은 선박들을 대상으로 한 거대한 범죄조직으로 소말리아 해적단들 중에서도 가장 큰 해적단 중 하나라고 들었습니다.”

나는 잠시 말을 마치고 방청석에 앉아 있는 기자들을 가리켰다.

“지금 방청석에는 전 세계에서 온 유수의 언론인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이번 재판을 눈여겨보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 만큼 해적들에 대한 우리나라와 국민들의 강력한 의지와 메시지를 보내야 합니다. 소말리아 해적들은 비단 선원들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우리나라 선박들이 수에즈 운하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수에즈 운하를 지나가는 선박의 선원들은 매 순간 해적들의 위험에 공포를 느끼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 소말리아 해적들이 여러분들의 가까운 가족, 친척 혹은 친구와 선후배를 위협하는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결코 저 멀리 소말리아 해역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거나 나와 무관한 일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나의 말에 법정 안의 공기가 조용히 가라앉았다. 오로지 나의 목소리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번에 생포된 해적들은 줄리엣호를 납치하고 시타델로 대피한 선원들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감금했습니다. 가까스로 영국 해군이 출동하여 우리는 피랍을 면했지만 그 과정에서 피고인들을 포함한 해적들은 총격을 가하고 격렬히 저항했습니다. 선원과 군인들에게 총을 겨냥해 총격을 가하는 살인행위에 해당하는 중대한 범죄행위를 일삼았다는 뜻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소말리아 해적들에 국내로 송환하여 해적 재판을 하는 것은 우리나라 역사에도 처음 있는 일이고 전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라고 들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판단이 소말리아 해적들의 잔당들에게도 강력한 경고가 될 것입니다. 재판부와 배심원의 결정이 바다 위에서 힘들게 승선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선원들에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재판부와 배심원들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짝짝짝짝!

내가 말을 마치자 갑자기 방청석 한구석에서 박수를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옳소!”

소리친 사람은 해양경찰관 차진혁 경위였다. 수사를 담당했던 차진혁 경위도 재판결과를 보기 위해 법정에 앉아 재판을 방청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나를 바라보며 느끼하게 윙크를 한 후 오른손을 올려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짝짝짝!

그리고 그 주변에 앉았던 사람들이 하나둘 따라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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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해주십시오!”

박수 소리가 잦아들 때쯤 법정 경위가 방청석의 사람들을 자제시키기 시작했다.

재판장도 나를 바라보며 흐믓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고 있었다.

재판장은 변론이 종결되었다는 것을 알린 후 배심원에게 사건의 쟁점과 증거, 적용할 법률, 판단 원칙에 관하여 간단하게 설명을 마쳤다.

재판장이 말했다.

“그럼 잠시 휴정하고 배심원 평의 이후 이를 참고하여 판결을 선고하도록 하겠습니다.”

용감한 선원

- 부산지방법원 301호 형사법정

판결 선고를 앞두고 사람들이 다시 부산지방법원 301호 법정을 가득 채웠다.

웅성웅성,

“모두 일어서 주십시오.”

법정 경위의 외침에 사람들이 모두 기립했다. 재판부가 들어와 사람들을 항해 묵례를 했다.

“모두 앉아 주십시오.”

재판장이 피고인석과 방청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바라본 후 말을 이어갔다.

“모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본 사건에 대한 판결을 선고하겠습니다.”

재판장의 말에 법정에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법관은 판결문으로 말하는 법. 해적들의 운명이 이제 판결문을 낭독할 법관들에게 달려 있었다.

피고인 해적들도 긴장한 빛이 역력했다.

선고를 하는 순간은 긴 재판 과정에서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20xx고합xxxx 판결을 선고하겠습니다.”

법대 가운데 앉은 재판장이 카리스마 있는 목소리로 낭독을 시작했다.

“피고인 압둘 아라이를 징역 25년에, 피고인 부바카라를 징역 15년에, 그 외의 피고인들을 징역 20년에 각 처한다. (중략)······.”

“······!”

타다닥. 타다닥!

잠시 웅성거리더니 노트북 키보드 소리만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방청석에 있던 기자들이 속보로 기사를 올리기 위해 노트북으로 원고를 만드는 소리였다.

‘음, 그래도 전생보다는 경한 형이 선고되었구나.’

전생에서도 소말리아 해적재판 1심 선고 결과는 예상치 못한 중형이었다는 법조계의 평가가 있었다.

전생에서의 사건은 훨씬 죄질이 나쁜 사건이었다. 실제로 선장이 생명을 잃을 뻔한 사건이 발생했고, 선원들과 해군들이 상해를 입은 일도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부두목 압둘 아라이는 삼해 루비호 선장에게 총을 난사한 혐의 등이 인정되어 무기징역, 가장 어린 해적 부바카라에게도 25년형의 중한 형이 선고되었다.

하지만 현생에서는 이들의 공로가 참작되었고, 전생과 달리 해적들이 선박을 성공적으로 피랍하지 못했다. 그리고 줄리엣호의 선원들이 안전하게 시타델로 대피하였기 때문에 선원들의 신체나 생명에 직접적인 상해 등을 가하지 못한 점 등이 양형에 참작된 것이다.

‘전생과 비교하면 이번에는 사건의 결과 자체가 경미하니 선고형도 낮아질 수밖에 없었겠지.’

하지만 그건 지켜보는 사람의 입장일지도 몰랐다.

전생이나 현생이나 재판을 받는 피고인들이 체감하기는 매우 중한 형일 것이기 때문이다.

재판부가 판결 결과를 선고하기 직전까지만 해도 부두목 압둘 아라이는 비교적 평온하고 여유 있는 자세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재판장의 선고가 내려지자 압둘 아라이는 손을 들어 올려 이마를 짚더니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눈치.

예상치 못한 중형 판결이었던 시선을 방청석 쪽으로 돌리더니 재판 결과가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가장 나이가 어린 해적 부바카라는 충격이 더 큰 듯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부바카라는 얼굴이 붉어지더니 급기야 법정에서 엉엉 울기 시작했다.

웅성웅성.

판결이 선고되고 사람들이 법정을 떠나기 시작했다.

나는 301호 법정 밖으로 나와 복도에서 백경운 변호사를 기다렸다.

백경운 변호사가 허탈한 표정으로 내게 다가왔다.

“변호사님, 고생하셨습니다.”

내가 백경운 변호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닙니다. 장보고 이항사님이야말로 고생 많으셨습니다. 증인으로 법정에 나선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닌데······.”

“허허허. 뭐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내가 살짝 웃음을 지어 보였다.

“백경운 변호사님!”

그때 미리 복도로 나와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변호사님, 선고 결과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시겠습니까?”

“해적재판을 마친 소감이 어떠십니까?”

기자들은 백경운 변호사에게 인터뷰를 요청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백경운 변호사가 나에게 양해를 구하고 인터뷰에 응하기 시작했다.

“음, 변호사의 공적책임을 생각하면 해적들에 대한 변호를 맡았다고 해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최선을 다해서 준비했고 큰 죄를 저지른 해적들이지만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보장하는 피고인들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조력한 것뿐입니다. 재판부와 배심원들에게도 존경의 마음을 표합니다. 특히 이번의 재판 진행 과정은 아주 공정했고 우리나라 사법부의 신뢰를 보여줄 수 있는 재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항소 여부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건······.”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나는 백경운 변호사에게 가볍게 묵례를 한 후 자리를 떠났다.

“저기요! 장보고 이등항해사님!”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뭐, 뭐야?’

내가 고개를 돌리자 나를 향해서 복도에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이 우르르 달려오기 시작했다.

“이등항해사님, 오늘 해적재판을 마친 결과에 대해서 한 말씀 해주시죠?”

“증인으로 나선 소감이 어떠십니까?”

“피고인들이 반성하며 용서를 구한다고 하는데 합의나 용서를 해주실 생각은 있으십니까?”

“해적들의 승선을 직접 막아내셨다고 하는데 그 과정 좀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저희 신문사에서 특집으로 보도하겠습니다.”

나에게도 기자들의 질문세례가 계속 이어졌다.

* * *

- 부산 영도 장보고의 집

다음 날 아침.

나는 어제의 해적재판 결과에 대한 기사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신문을 펼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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