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1화 (91/200)

압둘 아라이와 부바카라가 영어를 잘 구사했던 것이 기억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시간 끌긴가? 아니면 재판상 통역의 문제를 나중에 시비 걸 생각인가?’

저놈들은 분명히 영어를 잘 썼는데?

재판부도 통역으로 실랑이를 벌이는 과정이 답답한 듯 짧게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재판장님!”

나는 방청석 구석에서 손을 번쩍 들었다.

“조용히 하세요!”

내가 갑자기 손을 들고 발언을 시작하자 법정 경위가 달려와 저지했다.

재판장도 살짝 미간을 찌푸리더니 나를 바라보았다.

“음? 무슨 일입니까?”

“저는 오늘 증인으로 출석하기로 되어있는 장보고 이등항해사입니다. 피랍될 위기에 처했었던 해신해운의 선박 줄리엣호에서 승선했던 항해사입니다.”

“아, 네. 그런데 증인신문 절차는 아직 많이 남았습니다. 잠시 기다리십시오.”

“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꼭 알려드려야 할 내용이 있습니다.”

“음?”

“저 해적들 말인데요. 할 줄 압니다.”

“네?”

“영어요. 해적들 영어 할 줄 압니다. 꽤 잘합니다.”

“······!”

웅성웅성.

기자들이 앉아있는 자리가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내 말에 놀란 재판장이 고개를 돌려 해적들을 바라보았다.

그와 동시에 소말리아 해적들도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나의 얼굴을 확인한 그들은 원망스런 표정을 지어 보였다.

‘꼼수 부리지 말고, 여기까지 왔는데 죗값은 받아야지.’

나는 하얀 건치 미소를 뽐내며 활짝 미소를 지었다.

해적재판 (2)

- 부산지방법원 형사법정 301호 법정

재판장은 소말리아 해적들이 영어를 꽤 잘한다는 말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피고인들에게 물었다.

재판장의 목소리는 살짝 화가 난 듯 피치가 올라가 있었다.

“저 사람이 한 말이 사실입니까?”

“Is what he just said true?”

법정에 있는 영어 통역인이 재판장의 말을 영어로 옮겼다.

이번에는 법정에 있는 통역인 중 영어를 소말리아어로 통역하는 통역인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재판장이 소말리아어로 통역하지 말 것을 지시했기 때문이었다.

“······.”

피고인들인 소말리아 해적들은 재판장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있었다.

방청석을 가득 채운 사람들의 시선이 조용히 피고인인 해적들에게로 모아졌다.

피고인 소말리아 해적들을 본 재판장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지고 있었다.

재판장의 질문을 들은 그들의 동공이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도 그들의 태도를 보고 해적들이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 순간이었다.

법정의 공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법정의 분위기가 해적들을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듯했다.

“후우······.”

중압감을 참지 못하고 한숨을 내쉬는 이가 있었다.

그들 중 가장 어린 해적인 부바카라였다. 그가 결심한 듯 짧게 한숨을 내쉬더니 드디어 입을 열었다.

“Yes, we can actually communicate in English.”

통역인이 부바카라의 말을 통역했다.

“네, 사실은 우리는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합니다!”

웅성웅성.

법정이 잠시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모두 조용히 하세요!”

법정 경위가 뒤에서 사람들에게 경고했다.

해적들의 말에 법정에 들어선 사람들이 모두 놀란 기색.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 중에서 가장 놀란 사람은 따로 있었다. 바로 그들의 국선변호인에 앉아 있는 변호사였다. 소말리아 해적들에게는 국선변호인이 지정된 상태였기 때문에 변호사의 조력을 받아 재판이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피고인석 옆 변호인 자리에 앉아 있는 국선변호인을 바라보았다.

그 국선변호인은 나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바로 백경운 변호사.

그가 속한 부산지방변호사회의 추천을 받아 법원은 해적들에 대한 국선변호인으로 백경운 변호사를 지정했던 것이다.

‘전생이랑 같구나.’

그는 전생에서도 소말리아 해적사건을 국선변호인으로 활동했었다.

백경운 변호사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증인이자 일종의 피해자인 이 사건에 자신이 국선변호인을 맡게 되어 심경이 복잡한 표정인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백경운 변호사는 자신의 일을 하는 것뿐이니 그럴 마음을 가질 필요도 없고 이유도 없다. 아무리 흉악한 범죄자로도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후의 재판 절차는 매끄럽게 진행됐다.

소말리아 해적들이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재판 절차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재판부는 소말리아어로 피고인들인 해적의 의사를 명확히 확인할 필요가 있는 경우 외에는 영어 통역으로 재판을 진행했다.

‘새끼들, 제법 긴장했나 보네?’

나는 샤크 해적단의 부두목 압둘 아라이를 바라보았다.

그는 대답을 할 때면 내가 있는 쪽을 향해 힐끔 바라본 후 대답을 하곤 했다. 겁을 잔뜩 먹은 표정이었다. 가장 중한 형을 선고받을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압둘 아라이는 재판에 제법 집중하는 표정이었다. 재판장과 통역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집중하고 확인하면서 신중하게 재판에 임하고 있었다.

전생에서는 통역으로 인해 1시간 반가량 진행되었던 진술거부권을 고지 및 인정신문 절차가 20분도 채 걸리지 않아 마무리되었다.

인정신문이 마무리되어 갈 무렵이었다.

“재판장님!”

백경운 변호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발언 기회를 요청했다.

“음, 변호인 무슨 의견이 있습니까?”

“네, 인정신문을 마무리하기 전에 재판 절차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고 싶습니다.”

“음? 무엇인가요?”

재판장이 살짝 의외라는 표정으로 변호인을 바라보았다.

인정신문 단계에서 재판 절차에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본 변호인이 판단하기로는 이 사건은 재판의 토지관할권 위반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음, 재판관할권이요?”

“네, 이번 소말리아 해적 사건과 관련해서 부산지방법원이 재판할 수 있는 관할권이 있는지에 대한 판단을 먼저 구하고자 합니다.”

“한번 자세히 말씀해 보시죠.”

백경운 변호사가 말을 이어갔다. 그는 자리에 일어서서 당당한 표정과 포즈로 의견을 개진하고 있었다.

“피고인들을 우리나라 선적 선박인 줄리엣호에서 생포한 것은 국제 해양법 조약에 의거해 가능한 일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국내로 송환하는 절차입니다.”

백경운 변호사가 한 호흡 쉬고 의견을 이어갔다.

“대한민국 헌법 제12조는 국민의 신체의 자유를 규정하면서 법률에 의한 적법절차원리, 고문 금지, 영장주의,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등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피고인들은 체포된 후 아무런 절차법에 근거함이 없이 대한민국으로 이송되었습니다. 피고인들은 영장에 근거하여 체포되지도 않았고, 대한민국으로 이송되는 상당한 기간 동안 사후 영장이 발부되지도 않았으며, 변호인의 조력을 전혀 받지 못하였습니다. 따라서 피고인들의 현재지인 부산은 적법절차를 위반한 위법한 강제에 의한 것이므로, 부산지방법원에 토지관할이 없다는 것입니다.”

“음······.”

재판부는 백경운 변호사의 의견에 잠시 숙고하는 표정을 지었다.

재판부를 구성하는 3명의 법관이 잠시 마이크 뒤에서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잠시 뒤 합의를 마친 후 재판장이 말을 이어갔다.

“변호인 측의 법리적 의견도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재판관할권 위반 문제는 재판부가 직권으로 판단할 사항입니다. 따라서 이에 대한 결론은 이 사건 판결을 선고할 때 판단을 함께 내리겠습니다.”

재판부의 말에 백경운 변호사도 자리에 착석했다.

백경운 변호사도 관할권 위반 여부를 재판부에서 바로 인정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은 듯했다.

‘쉽게 넘어가지 않겠다는 시그널을 보내는 건가?’

해적들에 대한 국민 여론이 뜨거워 검사 쪽의 일방적인 재판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었다.

하지만 백경운 변호사의 공격이 제법 매서운 순간이었다.

해적 재판에서 검사와 변호사 간에 팽팽한 공방이 예상되는 순간이었다.

“재판을 잠시 휴정하고 오후에 모두 진술부터 재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웅성웅성.

사람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법정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 * *

- 부산지방법원 301호 형사법정

같은 날 오후.

재판이 재개되었다.

재판장이 검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검사님, 공소요지를 낭독해 주시죠.”

“네.”

공판검사가 자리에 일어서 공소장에 적힌 범죄사실의 요지를 낭독하기 시작했다.

“피고인 ‘압둘 아라이’는 소말리아 푼틀랜드 갈카요 출신 해적으로 두목인 공소외 ‘아브디 샤크’로부터 지시를 받아 이를 다른 해적들에게 전파하고, 납치할 선박을 발견할 경우 신속히 선박에 다가가 사다리를 올릴 수 있도록 고속 보트를 조종하며, 무장한 채로 납치한 선박의 선원들을 감시하고 해적 소탕을 위하여 접근하는 군함 또는 헬기 등이 있는지를 감시하는 등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한 부두목입니다.”

검사는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부두목을 제외한 나머지 이 사건 해적들은 인질 석방 대가를 받기 위해 두목과 부두목의 지시 및 동료 간 의사결정에 따라 납치할 선박을 발견할 경우 무장한 채로 소형 보트 등을 타고 가 선박에 승선한 다음, 납치한 선박의 선원들을 감시하고 해적 소탕을 위하여 접근하는 외부 세력이 있는지를 감시하는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지목을 당한 피고인들은 표정을 살폈다. 이들도 긴장한 표정으로 검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들 피고인들은 공모하여, 피해자 회사인 해신해운이 운항 중인 줄리엣호에 강제로 올라타 한국 선원들이 시타델에 감금되어 있는 상황을 이용하여 선박을 강취하였습니다. 그리고 피고인들은 승선 과정에서 피해자 해신해운의 이등항해사 장보고를 비롯한 선원들에게 총격을 가하여 살해하려다가 미수에 그쳤습니다. 그리고 공해상 해적 진압에 관한 군인들의 정당한 공무집행을 방해하고 총격을 가하였으나 상해를 가하는 데 그침으로써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미수에 그쳤습니다.”

“음!”

재판장이 고개를 살짝 끄덕인 후 고개를 돌려 백경운 변호사를 바라보았다.

“변호인 공소사실에 대한 의견은 무엇입니까?”

“네.”

백경운 변호사가 자리에 일어섰다. 그리고 공소사실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피고인들은 공소사실을 부인합니다. 피고인들이 공소장 기재의 공소사실과 같이 승선 과정에서 총격을 가한 사실은 인정합니다. 다만, 살해하려거나 상해를 가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으며 단순한 위협사격에 불과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해신해운의 선원들이 총에 맞은 일이 없고, 해군들의 경우에도 저항과정에서 가벼운 상해를 입은 것 외에 총격 등에 피해를 입은 일은 없었다는 취지입니다.”

타다닥! 타다닥!

피고인인 해적들이 범죄를 부인한다는 소식에 기자들이 빠르게 타이핑을 시작했다.

해적들은 백경운 변호사가 말을 하는 와중에 힐끔힐끔 내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아마도 내가 여기 있는 것이 신경 쓰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흐흐흐. 이거 웃기는 놈들이네?’

나는 해적들이 주장하는 변론의 내용을 듣고 속으로 실소를 흘렸다.

뭐? 살해의 고의가 없어? 단순한 위협사격이었다고?

빨리 피하지 않았으면 생명이 위태로웠을지도 몰랐다. 총에 맞을 뻔했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마터면 진짜로 죽을 뻔했다고!

< 띠링! >

+ 스킬 [고소고발 Lv.6]을 사용합니다. +

- 논리력이 상승합니다.

- 추리력이 상승합니다.

* * *

- 부산지방법원 제301호 형사법정

재판은 증인신문 절차를 앞두고 있었다.

재판장이 내가 있는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증인으로 출석하신 장보고 이등항해사 증인석으로 나오시죠.”

“네.”

내가 짧게 대답을 하고 일어서 증인석으로 걸어갔다.

나는 오늘 증언을 하는 자리가 법정이고 세간이 관심이 집중된 사건인 것을 감안해서 오랜만에 항해사 정복을 꺼내 입었다.

“와아......”

흰 모자를 왼쪽 옆구리에 끼고 검은색 더블 버튼 정장 차림과 비슷한 항해사 정복을 멋지게 입고 나타나자 방청석에 앉은 여기자들 사이에서 짧은 탄성이 새어나왔다.

“증인선서를 낭독해 주시죠.”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 증인 장보고.”

“네, 자리에 앉으시면 됩니다.”

재판장은 증언 절차와 관련된 안내를 짧게 마친 후 검사를 바라보았다.

“검사님, 시작하시죠.”

“네, 주신문을 시작하겠습니다.”

검사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장보고 이항사님, 지금부터 증인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네.”

“사실대로 경험한 사실만 말씀하시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증인신문이 시작되자 법정에 들어선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이게 뭐라고 살짝 떨리는 기분이네.

< 띠링! >

+ 스킬 [마도로스의 심장 Lv.7]을 사용합니다. +

- 냉정한 심리상태를 유지합니다.

+ 스킬 [고소고발 Lv.6]을 사용합니다. +

- 논리력이 상승합니다.

- 추리력이 상승합니다.

- 기억력이 상승합니다.

검사가 질문을 시작했다.

“증인은 해적들이 피랍을 시도했던 해신해운의 선박 줄리엣호에 승선하였던 선원이지요?”

“네, 당시 이등항해사로 승선했습니다.”

검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피고인들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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