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9화 (89/200)

선장도 들킨 것을 눈치채고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그의 품에는 가방이 있었다.

아무래도 그는 내가 타고 온 제트스키를 노리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술에 취한 놈이 저렇게 빨리 달릴 수 있나?’

그는 술에 취한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빨라도 배 위에서 내 추격을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선장과의 거리가 좁혀지고, 나는 날아오르며 외쳤다.

“거기서!”

퍽!

나는 빛처럼 빠른 속도로 달려가 그 속도 그대로 선장을 향해 날라차기를 시도했다.

“으아앗!”

우당탕!

나의 킥이 선장의 등을 그대로 가격했다. 선장은 넘어지면서 손에 들고 있던 가방을 놓쳤다.

“안 돼!”

선장이 큰 소리로 외쳤다. 그의 손은 하늘을 향해 있었다.

그의 손을 떠난 가방이 갑판 난간을 넘어 바다로 떨어질 상황. 내 눈에는 지금 이 상황이 마치 슬로 모션처럼 천천히 느껴졌다.

선장의 표정이 다급해 보였다.

‘중요한 물건 같은데.’

이 와중에서 선장이 꼭 챙겨서 들고 도망치려고 하는 것이라면 그 가방 안에는 제법 중요한 물건이 있을 것이 분명했다.

가방이 방수 기능이라도 있어서 물에 뜨면 찾을 수 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물에 가라앉기라도 하면 다시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증거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결심한 나는 빠르게 가방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에라이! 어쩔 수 없다!”

나는 달려가는 속도 그대로 갑판의 난간을 훌쩍 뛰어넘었다.

< 띠링! >

+ 스킬[인명구조 Lv.7]을 사용합니다. +

- 잠수 능력이 상승합니다.

- 수영 실력이 상승합니다.

풍덩!

나는 공중에서 가방을 낚아챈 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장보고 이항사!”

달려온 차진혁 경위가 난간 위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푸!”

내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괜찮아요?”

차진혁 경위가 배 위에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나는 차진혁 경위를 바라보며 외쳤다.

“네! 괜찮습니다. 가방도 찾았습니다!”

나는 손을 들어 가방을 높이 들었다.

“하하하. 이거 대단한 사람이네 진짜!”

차진혁 경위가 나를 보며 크게 웃었다. 그리고 그가 나를 바라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내가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한 차진혁 경위가 고개를 돌렸다. 그의 지시에 따라 갑판 위에서는 해경들이 선장을 포함한 나머지 러시아 선원들을 체포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얼추 잘 마무리된 모양이네.’

부우웅!

옆쪽에서 씨랜드호보다는 다소 작은 선박 엔진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해경의 선박이 나를 구조하기 위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 띠링 ! >

+

돌발 퀘스트 달성을 축하합니다.

“당신의 활약으로 대한민국의 법을 위반한 범죄자를 검거할 수 있었습니다!”

보상 :

- 명성 + 100

- 당신의 명성이 올라갑니다.

- 당신의 글로벌 명성이 상승합니다.

- 인맥 [대한민국 해양경찰의 핵심인재]가 형성되었습니다.

+

‘해양경찰의 핵심인재?’

나는 떠오른 메시지창을 바라보았다. 사람 같지 않은 괴력을 뿜어낸 차진혁 경위의 모습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 부산 영도 장보고의 집

며칠 뒤.

나는 흡족한 표정으로 신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난날의 활약상을 언론으로 보는 일은 제법 즐거운 일이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진짜 관종이 되어버린 걸까?’

+

신라일보, 유혜영 기자.

“남해지방해양경찰청 러시아 선박의 선원들 마약법 위반 혐의로 구속 수사 중.”

남해지방해양경찰청이 지난 XX일 마약법 위반 혐의로 체포한 러시아 선적 화물선 씨랜드호의 러시아선원들이 사실상 마약 밀수 조직원으로 활동한 사실을 수사 결과 밝혀냈다.

이들은 러시아 히로뽕 밀수조직으로 중국 →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항 부산항으로 히로뽕을 밀수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이 부산항으로 마약 밀수를 하는 새로운 루트가 수사에서 확인된 것이다.

남해지방해양경찰청에 따르면 러시아 히로뽕 밀수조직은 싱가포르의 유명 대규모 범죄조직 흑룡회로부터 히로뽕을 유통을 의뢰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싱가포르 범죄조직 흑룡회 출신의 간부 A씨가 중국 훈춘에서 공급받은 마약을 러시아 선박을 이용해 부산으로 밀수했으며 대게 등 러시아에서 수입되는 수산물에 마약을 감춰서 대규모로 반입하는 방법을 취한 것으로 수사 결과 밝혀졌다.

이들은 밀수 과정에서 종래의 중국 연길에서 항공기 편으로 인천공항으로 들어오거나 중국 위해, 청도에서 여객선을 이용해 인천항으로 들여오는 기존 루트를 피해 러시아를 경유해 속초항으로 들어오는 루트를 이용했다.

중국의 공급책으로부터 히로뽕을 건네받은 러시아 선장 B씨는 운반조로 활동할 선원들을 물색한 뒤 운반비 조로 추가 수당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선원들을 고용했다고 알려졌다.

이들은 부산항이 아닌 부산의 다른 항구에서는 검색이 비교적 철저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러시아를 통한 마약 밀수 사례가 없어 러시아발 화물선에 대한 검색이 상대적으로 허술했고 인천공항이나 인천항보다 검색을 피하기가 수월했던 점은 이들 조직이 부산항을 밀수 루트로 이용한 주요 원인이 됐다.

특히 이번 수사에서는 이번 수사에서는 한국으로 마약을 대규모로 반입하려는 외국의 범죄조직의 실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힌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해양경찰의 조사에서 러시아 선원들은 앞서 말한 싱가포르 범죄조직 흑룡회로부터 히로뽕을 공급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해양경찰은 이들 공급책의 신원을 인터폴에 통보해 히로뽕 유통조직 수사에 참고토록 했다.

특히 수사과정에서 남해지방해양경찰청의 담당 수사관 차진혁 경위는 “밀수조직 러시아 선원들의 검거는 한 시민의 제보와 적극적인 협조로 이루어질 수 있었다.”라며, “입수한 정보를 바탕으로 추가 수사를 통해 한국 내 마약 밀수조직에 대한 수사를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

< 띠링! >

+ 당신의 명성이 크게 상승합니다. +

+ 해양경찰이 당신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

‘크흡!’

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한번 신문의 내용을 음미했다.

전반적으로 마음에 드는 내용이었지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바로 이 보도를 한 기자의 정체!

신라일보의 유혜영이었다.

그녀는 최근 내가 관련된 일들을 귀신같이 취재해서 중점적으로 보도하는 기자였다. 스토커냐?

‘그나저나 신라일보라.’

전생의 기억에 따르면, 지금쯤 전생의 배우자도 일을 시작했을 무렵이다. 그녀는 유혜영 기자와 아는 사이일지도 몰랐다.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아직은 용기가 나진 않았다.

전생의 인연을 다시 만나는 일은 때로는 제법 각오가 필요한 순간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직은 아니야.’

나는 마음의 정리가 덜 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생의 기억에 따르더라도 그녀를 만나는 것은 내가 육상직원으로 본사에 근무한 이후의 일이었다. 아직 몇 년의 시간이 남았다는 뜻이다.

‘굳이 시간을 앞당길 필요도 없겠지.’

전생에 나를 만나 힘들게 고생하고 마음고생을 많이 한 그녀의 예쁜 얼굴이 떠오르자 잠시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드르륵!

그때 휴대폰 진동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음? 누구지?”

나는 발신번호가 저장되어 있지 않다는 표시를 보자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여보세요.”

“미스터 장! 접니다. 이안.”

“이안 요원?”

“네. 하하하.”

“무슨 일이에요? 한국에 온 건가요?”

“네, 해적 관련 자료를 해양경찰에 전달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지금 인천 공항이니 서울에서 일을 마치고 부산으로 내려갈 계획입니다.”

“오! 부산에 오시면 꼭 연락 주세요.”

“알겠습니다. 전해드릴 말도 있습니다.”

“네.”

이안 요원이 부산에 온다고?

반가운 친구를 만나는 기분이 들었다. 좋은 소식에 잠시 울적했던 기분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 * *

- 부산 남해지방해양경찰청 인근

며칠 뒤.

나는 김해공항에서 이안 요원을 만나 함께 남해지방해양경찰청으로 이동했다.

나는 이안 요원에게 물었다.

“이안, 그런데 미스터 L의 정체는 밝혀졌나요?”

이안 요원은 내 말에 살짝 긴장한 표정을 짓더니 대답했다.

“미스터 장, 제가 전에 미스터 L을 소말리아 해적들 본거지에서 검거했다는 말을 했지요?”

“네, 그때 CIA 제임스 요원이 해적단 두목 샤크하고 함께 생포했다고 했습니다.”

이안 요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CIA에서 검거한 직후 현지에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심문을 진행했습니다.”

“잘됐군요. 뭔가 확인된 정보가 좀 있었습니까?”

“문제는, 현지에서 미스터 L을 후송하던 컨보이가 현지 무장단체의 대대적인 습격을 받았습니다.”

“네? 그런 소식은 언론에서 보도가 없던데요?”

이안 요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공개되지 않은 정보입니다. 아마도 내부에서 정보가 새어 나갔던 것이 분명합니다.”

“미스터 L이 도망친 건가요?”

이안 요원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아닙니다. 대규모 폭격 때문에 미스터 L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습니다. 입막음?”

“······! 입막음?”

“네, 아마도 미스터 L로부터 정보가 새어나갈 것을 두려워한 세력이 손을 쓴 것으로 보입니다.”

“음······.”

만약 이안의 말이 사실이라면 미스터 L의 배후에 있는 세력은 생각보다 강력한 적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알아낸 정보는 없는 겁니까?”

이안이 살짝 미소를 짓더니 대답했다.

“많은 정보를 얻진 못했지만 얻은 정보도 제법 있었습니다. 특히 그가 중국계 영국인이라는 사실은 확인이 되었습니다.”

중국계 영국인이라?

내가 고민하는 표정을 짓자 이안 요원이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저는 이곳에서의 일을 마치며 싱가포르로 넘어갈 예정입니다. 그곳에서 중국계 자본과 연관이 있는 해상업계의 보험사들에 대한 배후 정보를 수집할 예정입니다.”

“음!”

해운의 중심은 아직 영국 런던이다.

하지만 런던 못지않게 떠오르는 신흥 시장이 바로 싱가포르였다. 특히 화교가 경제권을 장악하고 있는 곳이니 중국계 자본의 동향을 파악하기에 좋은 곳이었다.

내가 이안에게 물었다.

“싱가포르에는 인맥이 좀 있습니까?”

“MI6 지부가 있어 도움은 받을 수 있을 텐데 자세한 내용은 가봐야 알 것 같습니다.”

“음, 제가 좀 도와 드릴까요?”

“음?”

나는 선박유 밀매 사건 당시 만났던 글로벌 인맥 삼합회의 싱가포르 지부장 얼굴이 떠올랐던 것이다.

구린 정보는 구린 곳에서 얻어야 하는 법. 아무래도 뒷골목에 있는 자이고 싱가포르 범죄조직을 거의 장악했다고 하니 이안 요원에게 큰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내 등 뒤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장보고 이항사!”

그는 오늘 만나기로 한 남해지방해양경찰청 소속 차진혁 경위였다.

“차 경위님!”

나는 다가온 차진혁 경위를 보며 반갑게 인사했다.

“그래 일찍 왔네.”

“네.”

“그런데 같이 오신 분은?”

차진혁 경위가 내 옆에 있는 이안을 바라보았다. 큰 체구의 이안이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다.

“차 경위님 이분은 이안 요원입니다. 영국 MI6 소속의 요원입니다. 해신해운 선박 줄리엣호가 소말리아 해적들에 피랍될 뻔했을 때 저희를 구해주신 분입니다.”

“아! 오늘 소말리아 해적들 자료 전달해주기로 하신 분이 바로?”

“네?”

“하하하. 정말 반갑습니다.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차진혁 경위가 내 말에 눈을 똥그랗게 뜨고 이안을 바라보며 손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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