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8화 (88/200)

선장이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젠장! 이럴 줄 알았어!”

“······.”

“급하게 전달하라고 할 때부터 문제가 생길 줄 알았다고! 그리고 중국 놈들 물건은 형편없단 말이야! 누구나 아는 사실인데 이 멍청한 놈들!”

“······.”

“아무래도 우리가 전달한 물건의 품질에 무슨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군. 하지만 우리는 그냥 전달만 했을 뿐이라네. 돈은 돌려줄 수 없어.”

물건? 품질? 돈?

내가 대답을 하지 않다 보니 아무래도 선장의 오해가 깊어지는 모양새.

선장의 심각한 표정을 보니 아무래도 중요한 문제인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혹시 이놈들이 우리나라를 서둘러 떠나려고 하는 이유가 이것 때문일까?’

나는 뭔가 실마리를 찾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좀 더 정보를 캐볼 필요가 있었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끄덕.

“······.”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자 선장은 오히려 더 화가 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젠장! 역시 그렇군!”

선장은 화가 풀리지 않은 듯 연이어 욕설을 뱉어내고 있었다.

선장은 화가 잔뜩 난 얼굴로 뒤를 돌아보며 큰 소리로 외쳤다.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 저었다.

“어쩔 수 없다. 세르게이!”

“네?”

“네가 나서라. 빨리 처리해.”

그 말에 선원들 뒤에 서 있던 다부진 체격의 사내가 선원들을 제치며 앞으로 나서며 대답했다.

“선장님, 제가요?”

“그래. 시간이 없다.”

“흐흐흐. 음, 저는 대충하는 건 없는데? 괜찮을까요? 제대로 해도 되겠죠?”

“그래 죽여 버려! 빨리 처리하고 이곳을 뜬다!”

‘뭐?’

물건이 도대체 뭐길래 이러는 거야?

세르게이라고 불린 사내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해갔다. 그는 앞으로 나서며 주머니 속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나는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지만 되돌리기에는 이미 늦은 듯 보였다.

촥!

세르게이는 화려한 손동작을 선보였다.

그의 손에 들려있는 잭나이프에는 어느새 날카로운 빛을 뿜어내는 칼날이 펼쳐져 있었다.

세르게이가 나를 보며 안됐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제법 잘 싸우던데 아쉽군. 개인적인 원한은 없지만 어쩔 수 없지.”

꿀꺽.

‘뭐야 갑자기?’

칼을 든 자세가 예사롭지 않았다. 이건 쫌 겁나는데?

세르게이는 내 긴장한 표정을 읽은 것일까? 칼을 천천히 좌우로 휘저으며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를 먹잇감으로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건방진 놈이!’

나는 재빠르게 세르게이를 향해 동전을 집어 던졌다.

‘탕!’

세르게이는 뭔가 달랐다. 그는 다른 선원들과 다르게 잭나이프로 휘둘러 가볍게 동전을 쳐냈다. 그리고 살벌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이때까지 만난 상대와는 기세 자체가 달랐다.

‘격투기 선수 출신? 아니면 전문 킬러? 뭐 그런 건가?’

세르게이의 움직임은 어딘지 남달라 보였다. 탄탄한 체격이지만 발놀림은 상당히 가벼웠다.

내가 잠시 상념에 빠져있는 순간.

바로 그때를 놓치지 않고 세르게이가 눈빛을 빛냈다. 그리고 빠르게 달려왔다.

휙휙!

세르게이가 손을 휘두르자 내 눈앞에 칼날이 번쩍거렸다.

‘헉! 피해야 된다!’

나는 가까스로 몸을 돌려 피해냈다. 나는 계단 위로 뛰어 올라가 가지고 있던 동전을 연이어 던졌다.

탕탕탕!

명사수 스킬이 사용되었지만 숙련된 실력자인 세르게이에게는 통하지 않는 레벨인 모양이다.

‘레벨 좀 올려놨으면 좋았을 것을!’

명사수 스킬을 올려놓지 않은 것이 아쉬운 순간이었다.

세르게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빛과 같은 속도로 빠르게 달려들었다. 그의 칼이 내 발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탁!

나는 칼날을 피하며 날아올라 공중에서 그의 머리를 향해 돌려차기를 선보였다.

파팍!

회심의 일격이었지만 세르게이는 차분하게 팔을 들어 올려 막아냈다. 나는 그대로 몸을 반대로 돌려 번개 같은 속도로 그의 손을 걷어찼다.

퍽! 탕!

그의 손에서 잭나이프가 떨어졌다.

“제법이군!”

세르게이가 의외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여유가 사라지진 않았다.

순간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자세를 숙였다. 그리고 내 다리를 향해 번개와 같은 속도로 태클이 들어왔다.

‘헉! 잡히면 죽는다.’

나는 그의 태클 실력을 보고 그가 레슬링과 같은 운동을 전문적으로 한 실력자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퍽퍽!

나는 몇 번의 발차기와 니킥를 통해 가까스로 그의 태클을 방어해 낸 후 급하게 몸을 날려 거리를 벌렸다. 짧은 순간이지만 우리는 몇 수를 겨루었다.

“호오!”

세르게이는 손을 들어 올려 코에서 흐르는 코피를 닦으며 진심으로 감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내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갔다.

그가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실력자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세르게이가 살벌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한 발짝 다가섰다.

그때였다.

다다닥!

군홧발 같은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갑판 위로 한 사내가 나타났다.

“모두 스탑(Everybody stop)!”

정체불명의 사내가 등장했다. 그는 내가 선박으로 올라왔던 외부 비상계단을 통해 올라온 듯 보였다.

신고를 받은 해양경찰이 드디어 도착한 것으로 보였다.

맨 앞에 나타나서 소리를 지른 사람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차진혁 경위였다. 가장 먼저 선박 위로 올라서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쪽을 향해 달려왔다.

“모두 그대로 정지! 해양경찰이다.”

갑자기 해양경찰이 갑판 위로 등장하자 러시아 선원들은 당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선원들은 내가 난리 친 탓인지 해양경찰이 나타나 배에 승선한 것도 제대로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선장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은 술기운 때문인지 아니면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진 탓인지 더 빨갛게 타올라갔다.

차진혁 경위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여유가 넘쳐 흘렀다.

차진혁 경위가 내가 있는 쪽을 향해 다가오며 말했다.

“와! 이거 진짜 난리네. 뭐야 도대체?”

차진혁 경위가 인상을 쓰며 말을 이어갔다.

“왜? 다들 야구 방망이를 들고 있어?”

말을 마친 그는 허리를 숙여 갑판 위에서 뭔가를 집어 들었다.

“뭐야 이건? 칼 아니야?”

그는 내가 발로 쳐낸 세르게이의 잭나이프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음?”

차진혁 경위가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그를 향해 열심히 손을 흔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차진혁 경위님?”

“혹시 해경에 신고하신 분인가요?”

“네! 맞습니다. 제가 신고한 사람입니다.”

“그럼 장보고 이등 항해사?”

“네? 제가 직업도 이야기했던가요?”

“하하하. 그건 아닙니다.

“아무튼 제가 이등 항해사로 일하는 것도 맞습니다.”

“하하하. 그런데 음주운항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네. 그랬죠.”

“그런데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겁니까?”

“저도 잘 모르겠어요. 윗사람들이 방망이를 들고 달려들더니 급기야 칼도 휘두르네요.”

“음?”

차진혁 경위는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선원들을 얼굴을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느낌이 오는데, 심상치 않은 면상이야.”

그사이 선장이 세르게이를 향해 신호를 보냈다.

세르게이가 선장의 신호를 알아차리고 차진혁 경위를 향해 달려들었다.

파파팍!

세르게이가 차진혁과 공방을 벌이기 시작하자 선장이 외쳤다.

“이 새끼들아 뭐 해! 빨리 달려들어! 몇 놈 안 된다!”

“와아아!”

선장의 외침에 러시아 선원들이 방망이를 들고 달려들 기세였다.

하지만 그들은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퍽! 쾅!

차진혁의 주먹을 한 방 얻어맞은 세르게이가 갑판 위로 나가떨어지며 커다란 충격음을 일으켰다.

‘뭐야 저거?’

나는 차진혁 경위를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사람 맞나? 싸움에 제법 자신 있는 나도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던 사내가 바로 저 세르게이다.

하지만 그도 차진혁의 주먹 한 방에 그대로 나가떨어졌다.

나보다 더 놀란 것은 러시아 선원들.

가장 싸움을 잘하는 세르게이가 주먹 한 방에 나가떨어져 정신을 잃은 것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세르게이는 이번 일을 위해 러시아 마피아가 보낸 전문 칼잡이였기 때문에 선원들은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다다닥!

뒤이어 뒤늦게 해양경찰들이 3명이 추가로 선박 갑판으로 허겁지겁 올라섰다.

차진혁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Put your bat down and kneel down right now(지금 당장 방망이 내려놓고 무릎 꿇어)!”

러시아 선원들이 차진혁 경위의 실력을 보고 감히 덤빌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다닥!

그리고 차진혁 경위 뒤로 해양경찰 추가로 합류했다. 선원들은 차진혁의 기세에 눌려 이미 전의를 상실한 상태.

이제 상황이 마무리되어 가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 띠링 ! >

“음?”

+ 경고: 도주하려고 시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

차진혁 경위 몰래 슬그머니 움직이는 검은 그림자가 내 눈에 들어왔다.

씨랜드호 광안대교 추돌 사건 (3)

- 부산 용호만 러시아 선적 화물선 씨랜드호의 갑판

검은 그림자가 움직이는 곳은 차진혁 경위의 시야에서는 잘 보이지 않을 수 있는 사각지대.

그 틈을 이용해 몰래 몸을 숨기는 그림자가 있었다.

‘음! 저자는?’

나는 그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는 다름 아닌 이 배의 선장이었다.

거구의 사내가 들키지 않기 위해 몸을 웅크리고 살그머니 움직이는 것은 제법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다.

나는 차진혁 경위를 바라보며 큰 소리로 외쳤다.

“경위님! 선장이요! 뒤로 도망칩니다!”

차진혁이 내 말에 깜짝 놀라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나는 소리를 치는 동시에 빠르게 갑판으로 뛰어내렸다.

“뭐 해 쫓아!”

차진혁 경위가 다른 해양경찰관들을 보며 소리쳤다. 하지만 그들은 선장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다다닥!

갑판 위로 뛰어내린 나는 해양경찰관들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선장을 쫓아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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