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7화 (87/200)

배가 가까워지자 선수 갑판 근처에 러시아 선원들이 몇 명 나와 있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놈들이 내가 여기 있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런 위험한 짓을 하는구나!

‘이렇게 된 이상 나도 이판사판이다!’

나도 방향을 피하지 않고 제트스키 위로 벌떡 일어섰다.

‘3, 2, 1.’

우와앙!

배가 부딪치려고 하는 순간. 나는 급하게 제트스키의 속력을 올려 씨랜드호의 측면을 향했다.

내가 노리는 곳은 바로 선원들 공간으로 통하는 외부비상계단!

소말리아 해적들도 배에 승선할 때 주로 이용하는 그곳이었다.

‘지금이다!’

< 띠링! >

+ 스킬 [잠입 Lv.2]을 사용합니다. +

나는 제트스키를 박차고 날아올라 외부 비상계단에 매달렸다.

탁! 다다닥!

그리고 마치 체조선수와 같은 동작으로 몸을 빙글 돌려 계단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빠르게 달려 갑판 위로 뛰어 들어갔다.

* * *

- 러시아 선적 화물선 씨랜드호 갑판

다다닥!

갑판 위로 올라서자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선수 쪽에서 뭐라고 소리치며 달려오는 러시아 선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강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곳에서 온 사나이들이 아닌가! 과연 러시아 선원들의 체격이 건장했다.

‘음, 그나저나 좀 많네?’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는 러시아 선원들이 최소 10명 이상은 되어 보였다.

러시아 선원들이 나를 마주 보며 섰다. 그들은 나를 바라보며 히죽거리는 것이 지금의 상황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하긴 그들의 입장에서는 내가 배에 침입한 사람일 테니까. 저런 반응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러시아 선원들 중 제일 험상궂어 보이는 사내 한 명이 앞으로 나섰다.

“Who the hell are you(뭐 하는 놈이냐)?”

“그냥 지나가는 사람입니다.”

“뭐? 그런데 왜 이 배에 올라온 거야?”

“당신들이 내 제트스키를 치고 도망가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따지러 올라왔습니다.”

“뭐? 이런 미친놈이 다 있어!”

그때!

< 띠링! >

+경고 : 뒤에서 위험한 물건이 날아옵니다. +

‘뭐?’

철퍼덕!

나는 다급한 경고 메시지를 확인한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몸을 바닥에 엎드렸다. 그리고 옆으로 몇 바퀴 구른 후 일어섰다.

휙! 쨍그랑!

나를 노리고 날아왔던 술병이 목표를 맞추지 못하고 갑판 바닥에 떨어져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천천히 일어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술병을 나에게 집어 던진 것으로 추정되는 사내가 있었다.

보드카를 시원하게 한 병 통째로 들이켠 것만 같은 표정.

거구의 사내는 얼굴이 불게 물들어 있었다.

“음? 어떻게 피했지? 감이 제법 좋은 놈이구나.”

얼굴이 붉은 거구의 사내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캡틴!”

그가 나타나자 러시아 선원들이 그를 반겼다.

‘이 덩치가 이 선박의 선장이구나.’

어쩐지 벌써 술에 절어 있더라니.

나는 전생에 음주운항으로 구속되었던 사나이를 바라보았다. 신문기사로만 봤을 때는 몰랐는데 제법 카리스마가 있는 느낌.

이 선박의 선장으로 보이는 그는 키가 최소 2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구의 사내였다.

꿀꺽.

‘덩치가 크네. 싸, 싸움은 좀 하겠네?’

선원이 아니라 무슨 러시아 마피아 그런 놈들 아닌가? 선원들의 인상이 하나같이 보통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 선장이란 놈은 사람 뒤에서 술병을 집어 던지다니? 제대로 미친놈이 아닌가.

나도 제대로 긴장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선장이 앞에 있는 러시아 선원들을 향해 고개를 까딱거렸다. 신호를 주는 듯했다.

어디선가 러시아 선원 한 명이 큰 가방을 들고 나타났다.

촥촥촥.

절도 있게 무엇인가를 전달하는 선원들.

‘뭐, 뭐야?’

선원들에게 나눠준 것은 야구 방망이였다.

러시아에서는 야구는 인기도 없을 텐데 왜 저런 위험한 물건을 배에서까지 들고 다녀?

야구 방망이를 손에 쥔 선원들이 만족한 표정으로 살벌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로 다가서기 시작했다.

내 앞으로는 러시아 선원들 10여 명이, 그리고 내 뒤로 거구의 선장이 나의 뒤를 지키고 있었다.

이 상태대로라면 자칫 이 사람들에 의해 둘러싸일 위험이 있는 상태.

그 순간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으아악!”

맨 앞에 선 젊은 선원 한 명이 호기롭게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흥!”

나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그의 방망이를 피해내면서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퍽!

그리고 사커킥으로 넘어진 선원의 머리를 한 대 후려갈겼다.

“XXXX!!!”

“XXXXX!!!!”

내가 펼친 한 수를 보자 선원들의 분위기가 더욱 험악해졌다.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떠드는 것을 보니 러시아 말로 욕을 하는 것이 분명했다.

“으아아아!”

선원들이 함성을 지르며 나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아무리 나라도 이 사람들을 상대로 10 대 1은 무리일 것 같은데?’

그리고 아무리 봐도 이놈들은 평범한 선원들이라기에는 너무 험상궂은 비주얼이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선박의 구조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제일 방어하기 좋은 곳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 띠링 ! >

+스킬 [마도로스의 심장 Lv. 6]을 사용합니다. +

+칭호 [수성의 달인], [부산사나이], [용감한 시민]의 효과가 발동됩니다. +

마음이 한결 차분해지면서 선박 구조가 눈에 빠르게 들어왔다. 나는 시간을 벌기 좋은 곳을 빠르게 스캔했다.

‘저기가 좋겠다.’

데크 하우스로 올라가는 계단. 나는 그곳을 선점하기로 결심했다.

그 순간,

붕!

어느새 앞으로 달려든 선원 한 명이 내 머리를 향해 방망이를 휘둘렀다.

나는 몸을 뒤로 돌려 숙이면서 돌려차기로 그의 옆머리를 그대로 후려 찼다.

퍽!

달려드는 선원들이 나의 실력을 보고 주춤하는 사이.

나는 빠르게 달려 데크 하우스로 올라가는 계단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 띠링! >

+ 수성전을 시작합니다. +

씨랜드호 광안대교 추돌 사건 (2)

- 부산 용호부두 러시아 선박 ‘씨랜드’호의 갑판

다다닥!

내가 자리를 지키기 편한 장소를 향해 빠르게 달리기 시작하자 러시아 선원들도 나를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도망친다!”

“막아!”

“도망 못 치게 잡아야 돼!”

그들은 달리는 내 등 뒤에서 뭐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배 위에서는 우사인 볼트만큼 빠른 사나이.

나는 빛처럼 빠른 속도로 달려 목표로 한 계단 위에 올라섰다.

계단 위에서 서서 러시아 선원들을 내려다보니 한결 마음이 편안했다.

다행인 것은 계단이 좁아 러시아 선원들 여러 명이 한 번에 올라올 수 없다는 점이다.

‘내가 소말리아 해적들도 막아낸 몸이다.’

이곳이라면 경찰들이 도착할 때까지 이들을 막아낼 자신이 있었다.

나는 주머니를 뒤져 동전을 꺼내 들었다.

‘새로운 스킬 좀 시험해 볼까?’

휙!

나는 맨 앞에 달려오는 놈의 이마를 향해 동전을 냅다 집어 던졌다. 마치 무협지에 나오는 고수가 엽전을 날리는 동작처럼 간결했다.

< 띠링! >

+ 스킬 [명사수 Lv. 1.]을 사용합니다. +

+ 칭호 [수성의 달인] 효과가 발동됩니다. +

퍽!

내가 던진 동전이 맨 앞에 있는 러시아 선원 이마에 정확히 적중했다.

“으악!”

선원이 이마를 부여잡으며 쓰러졌다.

“오! 이거 생각보다 효과가 좋은데?”

나는 손 위에 있는 동전을 짤랑거리며 살벌한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딱! 딱! 딱!

“으악!”

내가 날리는 동전마다 정확히 러시아 선원들의 이마에 적중했다.

러시아 선원들은 내가 던지는 물건이 뭔지도 모르는 채로 이마를 부여잡고 쓰러져 내렸다.

퍽퍽!

그사이 앞으로 튀어나와 내 앞까지 도착한 선원은 복부에 강력한 발차기를 얻어맞고 계단 밑으로 다시 굴러떨어졌다.

앞장서던 몇몇 선원들이 내가 지키고 있는 계단으로 올라서지 못하고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이 멍청한 놈들!”

이를 지켜보다 참지 못한 선장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그는 나를 바라보며 영어로 물었다.

“네놈은 아무래도 보통 사람이 아니구나? 뭐 하는 놈이냐?”

“······.”

“도대체 왜 이 배 위에 올라와서 난리를 치는 거냐?”

“······.”

선장의 말에 나는 잠시 대답이 궁색해졌다.

‘당신들이 곧 요트와 추돌하고 인명피해를 낸 후에도 도주하다가 광안대교를 파손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내가 잠시 침묵하자 선장이 말을 이어갔다.

“네놈은 혹시 경찰이냐?”

“······.”

경찰? 무슨 헛소리야? 그래도 공무원을 사칭할 순 없지.

나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가로저었다.

“경찰이 아니라면 도대체 뭐 하는 놈이냐!”

“······.”

선장은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말을 이어갔다.

“역시 그것 때문인가?”

‘음?’

이 선장 놈은 꽤나 수다스러운 놈이었다.

“하긴 이 배에 올라와서 이 난리를 칠 이유는 그것뿐이겠지. 역시 물건 때문에 온 것이냐?”

‘술에 취해서 그런가?’

내가 묻지도 않은 말을 술술 내뱉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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