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2화 (82/200)

“선원법상 재해보상금 외에 후유장해에 따른 위자료 등 청구할 계획입니다.”

- ......

“그리고 형사 합의금은 별도인 거 아시죠?”

- ......

“형사 판결이 나면 결과를 보고 행정관청에 진정서도 제출할 계획이니 미리 참고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 어? 저, 배, 백 변!

뚜뚜뚜!

“후우!”

전화기를 끊은 백경운 변호사는 손을 들어 올려 가슴 부위를 쓸어내렸다. 후련한 표정.

“흐흐흐.”

백경운 변호사는 사악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에게 말했다.

“대기업 법무팀에서 저 같은 개인 변호사나 작은 로펌 상대로 사건 준다는 핑계로 은근히 갑질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래서 대기업 상대로 이렇게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할 말을 다 하고 나니까 가슴이 후련하네요.”

‘사, 사이다!’

갈증을 느낀 나도 김 주임이 놓고 간 음료수를 시원하게 들이켰다. 그리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캬! 사이다! 시원하네요!”

기자회견

- 국회의사당 오재민 의원 의원실

며칠 뒤.

나는 국회의사당 의원실로 오재민 의원을 만나기 위해 찾아가는 중이었다.

일단 산업재해 사건 소송은 백경운 변호사 덕분에 전망이 밝았다.

장래의 해상 변호사계의 미친개가 될 사나이. 아니 이미 미친개로 소문난 사나이.

아수라백작 혹은 투페이스(Two face)로 불릴 백경운 변호사의 미친 활약(?) 덕분이다.

‘이 문제는 일단 잘 해결될 것 같으니 오재민 의원님의 발의안이 문젠데.’

얼마 전 오재민 의원과의 통화 내용이 떠올랐다. 정유사들의 반발이 생각보다 거센 모양.

거센 저항이 예상되는 바였다.

똑똑똑.

나는 의원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오재민 의원실로 들어섰다.

“의원님!”

“어, 장보고 왔군! 안으로 들어오게.”

나를 반기는 오재민 의원은 웃고 있었지만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얼굴이 많이 상하셨네요.”

“그래? 요즘 일이 많네. 자네가 내준 숙제도 있고.”

“숙제라니요. 저는 의원님께 정책 아이디어를 드린 건데요.”

“그래? 허허허.”

오재민 의원이 소탈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나저나 쉽지 않지요?”

내 말에 오재민 의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정유사들의 반발이 생각보다 너무 거세군. 아무리 좋은 취지라도 비용 부담이 크다고 하면서 최소 2010년까지는 단일선체 유조선이 우리나라 항구에 입항할 수 있도록 유예해줘야 한다는 반발이 심해.”

“국내 정유사들의 로비가 심하겠군요.”

“그래 지금 공동 발의 하기로 약속했던 의원들도 여러 명이 주저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고 있거든. 아마 정유사들이나 관련 기업들의 후원을 받는 사람들이 아닌가 싶어.”

“아니면 최근 후원을 받기 시작했을 수도 있겠죠?”

“음, 글쎄......”

오재민 의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우리 당 중진의원들도 여러 명 전화를 하는 통에 머리가 아주 아프다네.”

나는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유사 말고 법안을 지지하는 세력은 없나요?”

“물론 환경단체에서는 적극 지지성명을 발표했지.”

“다른 업계는요?”

“일단 해운회사들의 단체인 선주협회에서는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네. 나는 솔직히 선주협회나 해운업계에서도 반대할 줄 알았는데 그건 다행이라네.”

나는 그 말에 빙긋 웃어 보였다.

“의원님 저랑 내기하실래요? 선주협회에서 찬성할지 반대할지?”

“으음?”

“저는 찬성할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무슨 이유가 있나?”

“촉이 그렇거든요.”

그때였다.

똑똑똑!

“의원님, 국회의사당에서 선주협회가 기자회견을 한다고 합니다.”

“뭐? 그런데?”

“그게, 의원님도 꼭 참석을 해달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사전에 연락도 없이?”

“네, 자기들도 갑자기 진행하게 되었다며 양해 좀 해달라고 간곡히 부탁이 왔습니다.”

오재민 의원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한번 가보시죠?”

* * *

- 국회 기자회견장

웅성웅성.

기자회견장에는 선주협회에서 나온 직원들과 국회 직원들 그리고 경제부 기자들이 모여있었다.

나는 기자들 뒤에 서서 기자회견을 지켜보고 있었다.

선주협회는 해운회사들의 단체. 협회장은 대형 해운회사의 오너나 CEO들이 돌아가면서 맡는 것이 관례였다.

이번 선주협회의 회장은 다름 아닌 해신해운의 사장 박원용 사장이었다.

“음? 보고야 해신해운 사장님 아니냐?”

“맞습니다.”

오재민 의원의 말에 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해신해운의 사장이 직접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말은 오늘 발표가 제법 중요한 일이 될 것이라는 뜻이었다.

박원용 사장은 기자들 앞에서 준비한 원고를 읽기 시작했다.

“선주협회는 선주협회의 회원들은 ‘해양환경보호를 위해 유조선 이중선체 도입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하였습니다."

박원용 사장의 말에 당차 보이는 한 젊은 여기자가 손을 들고 질문을 시작했다.

“업무협약(MOU)의 상대방이 누구입니까?”

박원용 사장이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서 한 사내가 등장했다.

흰옷을 걸친 사내. 그는 중동 남자들의 전통 복장을 입고 있었다.

“AP사의 한국 지사장이십니다.”

AP사의 한국 지사장으로 소개받은 사내가 사람들을 향해 목례를 하자 박원용 사장이 말을 이어갔다.

“AP사는 앞으로 자사 물량을 우리나라로 운송하는 운송계약에 반드시 이중선체 유조선만을 투입할 것을 요구하기로 결의하였습니다.”

그때 또다시 여기자가 손을 들고 질문했다.

“그럼, 단일선체를 이중선체로 교체하는 비용이 해운회사들에게 발생하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결국 운송료가 증가하면 기름을 소비하는 소비자들에게 최종적으로 비용이 전가되는 문제가 있지 않나요?”

그 질문에 AP사의 지사장이 대신 앞으로 나섰다. 통역을 거쳐 그가 답변했다.

“이미 정유사들은 기름 유출 사고를 대비해 막대한 기금을 부담하고 있습니다. 이중선체 선박을 도입하는 해운회사들에게 앞으로 장기 용선계약을 체결해서 해운회사들의 이익을 보장할 계획입니다. 최대한 비용 증가가 없도록 협조할 생각입니다.”

기자가 다시 질문했다.

“AP사에서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가 무엇인가요?”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AP사는 환경보호에 누구보다 앞장서 온 기업입니다. 이중선체 도입은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추진 중인 정책입니다. 대한민국에 기항하는 선박이라고 해서 예외를 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전격적인 결정을 하게 된 이유가 있을 거 아닙니까?”

“네, 맞습니다. 한국의 오재민 의원실로부터 협조 요청을 받았습니다. 본사로 전달하자 본사 경영진에서 즉시 결정을 내렸습니다.”

“......!”

“오오오.”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탄성을 내지르며 전부 고개를 돌렸다.

그들의 시선은 내 옆에 서 있는 오재민 의원에게 향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모이자 오재민 의원은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보좌관을 바라보았다.

보좌관은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눈만 껌뻑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런 짓을 할 사람은 한 명밖에 없는데······?’

오재민 의원이 눈을 크게 뜨더니 고개를 반대 방향으로 돌려 나를 노려보았다.

‘너 이 자식!’

오재민 의원이 입 모양으로 나에게 말했다.

나는 그를 향해 방긋 웃어보였다.

“흐흐흐. 의원님 사람들이 기다려요. 나가 보세요.”

나는 조용히 다른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주춤하는 그의 등을 떠밀었다.

오재민 의원이 마지못해 단상으로 올라섰다.

짝짝짝!

오재민 의원이 올라서자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음, 안녕하세요. 국회의원 오재민입니다.”

살짝 얼굴이 붉어진 오재민 의원이 말을 이어갔다.

“제가 최근 단일선체 유조선의 입항을 금지하자는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힌 이야기는 모두 잘 아실 것입니다. 저는 고향인 영도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영도의 바다는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하지만 바다가 주는 혜택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다의 환경이 얼마나 황폐해졌는지 그동안 너무 무관심했습니다. 그리다 어느 날 바다를 사랑하는 한 청년의 외침을 들었습니다. 바다를 지키지 않고서는 우리의 삶도! 경제활동도 지속될 수 없다는 외침이었습니다.”

짝짝짝짝!

오재민 의원이 잠시 호흡을 조절하자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이중선체 도입을 통해 대형 해난사고를 예방하고 해양사고 발생 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국내 인프라를 구축해야 합니다. 한국선주협회와 AP사에서 적극 나서주신다고 하니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입니다. 외국 정유사에서도 우리나라 바다를 위해 힘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국내 정유사들도 다시 재고해주리라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와아아!”

짝짝짝짝!

회견 장소에 모인 사람들이 오재민 의원의 진정성 어린 말에 뜨거운 박수로 화답했다.

오재민 의원의 대답을 열심히 받아쓰던 젊은 여기자가 눈을 가늘게 뜨며 손으로 안경테를 살짝 밀어 올렸다.

‘바다를 사랑하는 한 청년?’

예리한 여기자의 눈빛이 보석처럼 반짝였다.

* * *

- 국회의사당 오재민 의원실

오재민 의원은 기자회견을 마치고 선주협회 회장인 해신해운의 박원용 사장과 AP사의 한국 지사장 무하메드 알리를 자신의 의원실로 초대했다.

“장소가 변변찮아 대접할 것들이 없습니다.”

오재민 의원이 말했다.

“아닙니다. 저희가 갑작스럽게 일을 진행하게 된 터라 미리 의원님께 연락을 못 드렸습니다.”

“하하하. 아닙니다. 저야말로 선주협회가 도와주신다고 하니 한시름 놨습니다. 저는 선주협회에서도 반대를 하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오재민 의원의 말에 박원용 사장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장보고 이항사는 왜 여기 있는 겁니까?”

박원용 사장이 물었다.

“아 사장님도 장보고 이항사를 아시는군요?”

“우리 회사에서 제일 유명한 사람이 장보고 이등 항해사입니다. 제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장보고 이항사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요.”

“하하하.”

오재민 의원이 박원용 사장의 재미없는 농담에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말을 이어갔다.

“아, 제가 좀 전에 말씀드린 바다를 사랑하는 청년이 바로 장보고 이항사입니다.”

“그럼?”

“네, 이 법안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한 사람이 바로 장보고 이항사입니다.”

“으음!”

박원용 사장이 눈을 크게 뜨더니 놀란 표정으로 나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유명인사였지만 어린 나이의 이항사에 불과한 내가 국회의원과도 친분이 있을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오! 그 유명한 장보고 이등항해사가 바로 당신이군요!”

AP사의 지사장 무하메드 알리가 큰 소리로 말했다. 그 말에 더 놀란 사람은 박원용 사장.

“지사장님도 장보고 이항사를 아십니까?”

“그럼요. 미스터 장은 우리 AP사의 사장님의 친구입니다.”

“친구요?”

“네, 나민 아세르 사장님이 미스터 장을 각별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우리 회사 사람들 중에 모르는 사람이 없답니다. 저도 꼭 만나 뵙고 싶었는데 그동안 기회가 없었습니다.”

“······!”

박원용 사장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AP사의 사장 나민 아세르.

그는 전 세계 해운회사의 사장들도 만나기 힘든 사람이었다. 아니 전 세계 해운회사에서 VIP 고객으로 생각하는 대상이었다.

‘그런 사람의 친구라고? 장보고 이항사가?’

나를 바라보는 박원용 사장의 눈빛이 오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 띠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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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퀘스트(#09) 달성을 축하합니다.>

메인 퀘스트 달성을 축하합니다.

“당신의 활약으로 해양오염이 발생할 가능성이 상당히 낮아졌습니다. 아직 방심하지는 마세요!”

보상 :

- 명성 + 100

- 당신의 글로벌 명성이 상승합니다.

- 당신의 사내 명성이 크게 상승합니다.

- 해신해운의 박원용 사장이 당신에게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습니다.

- 칭호 [해신해운의 핵심인재]를 획득했습니다.

- 칭호 [바다를 사랑하는 젊은 청년]를 획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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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국회의사당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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