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0화 (80/200)

“그런데, 어차피 P&I 보험에 가입되어 있을 테니 보상은 문제가 없는 것 아닙니까?”

“네, 맞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이제 한국으로 돌아와서 본격적인 치료를 시작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가족들을 찾아와 조기에 합의를 하는 것이 치료비도 일찍 받고 유리하다는 식으로 말을 했다고 하네요.”

“으음? 그건 확실히 이상하네요. 아무래도 사고가 발생한 경위도 꼼꼼하게 확인을 해봐야겠습니다. 뭔가 감추려고 하는 것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말에 백경운 변호사도 눈빛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런데, 외국을 오가는 외항선 선원들이다 보니 목격자나 증인을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겠습니다. 지금 다른 동료 선원들은 한국에 있습니까?”

“선박이 한국에 기항해서 지금은 있는데 곧 떠날 예정입니다. 다시 출항할 예정이거든요.”

“음? 그럼 시간이 너무 촉박한데요. 큰일이군요.”

이대성 실항사의 말에 백경운 변호사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지이익!

나는 백경운 변호사의 말에 웃으며 들고 온 백팩의 지퍼를 열었다.

쿵!

가방에서 서류 뭉치와 CD 등 자료 한 뭉텅이를 탁자 위로 올렸다.

“변호사님, 무슨 자료가 필요하시다고 했죠?”

< 띠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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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법 재해보상 (2)

- 부산 거제동 백경운 변호사 사무실

백경운 변호사가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탁자 위에 놓인 자료를 바라보며 물었다.

“장보고 이항사님, 이게 다 뭡니까?”

“아무래도 상담을 하려면 필요할 것 같아서 미리 준비했습니다.”

“네?”

“진술서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죠? 여기 부갑판장하고 나머지 작업에 참여한 부원들의 진술서입니다.”

나는 백경운 변호사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진술서 말고도 그리고 진술을 녹음한 파일을 저장한 CD와 공인속기사를 통해 만든 녹취록도 미리 준비해왔습니다.”

“아, 네? 네.”

백경운 변호사가 자료를 뒤적거리더니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잘 준비해오셨네요. 증거로 제출할 현장 선박 사진 같은 것들이 있으면 좋을 텐데.”

툭!

“이건?”

나는 자료 뭉치 속에서 선박의 전체적인 사진과 사고가 발생한 작업공간을 촬영한 사진과 동영상을 저장한 CD를 꺼냈다.

“선박 사진과 동영상 파일입니다. 여기 있습니다. 동료 선원들에게 미리 부탁해서 받아뒀습니다.”

“음!”

백경운 변호사가 멍한 표정을 나를 바라보았다.

“보상금액을 산정하려면 월급을 얼마 받았는지 자료도 필요······.”

툭!

“근로계약서와 급여명세서입니다.”

“······.”

살짝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백경운 변호사를 바라보며 나는 말을 이어갔다.

작업 공간이 표시된 사진을 꺼내 들었다.

“사고가 발생한 작업공간이 탱크 내부입니다. 선박에 있는 밀폐 공간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밀폐공간입니다. 작업할 때 위험도가 높은 곳이라 조심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으음! 그렇군요. 그런 전문적인 지식들은 제가 잘 모르는 것들이니 아무래도 이등 항해사님 도움을 좀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네, 당분간 휴가 기간이니까요. 언제든지 말씀만 하십시오.”

< 띠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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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리력이 상승합니다.

- 추리력이 상승합니다.

- 범인을 추적하기 시작합니다.

나는 떠오른 메시지 창을 살펴보고 있었다. 메시지의 내용 중 하나가 눈길을 끌었기 때문.

‘음? 범인을 추적한다고?’

범인이라.

어쩌면 단순히 산재처리나 민사소송만으로 끝날 문제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 * *

- 부산의 항구 모처

며칠 뒤. 부산항의 선석.

나는 백경운 변호사와 함께 부산항을 방문했다.

이대성 실항사의 아버지가 사고를 당한 선박과 구조가 동일한 시리즈 선박이 마침 부산항에 입항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해신해운의 탱커팀에 부탁해 양해를 구하고 방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장보고 이항사님, 이런 탱크선(유조선이나 케미컬선과 같은 종류의 선박)을 타보는 것은 처음입니다.”

백경운 변호사는 첫 방선(선박을 방문하는 것) 경험인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자 변호사님, 여기 안전모! 선박은 위험하니 위에서는 안전모를 써야 됩니다.”

나는 그에게 안전모를 건넸다. 선박 갑판 등의 장소에는 위험하기 때문에 안전모를 착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에게 길을 안내하며 말을 이어갔다.

백경운 변호사를 사고가 발생한 지점인 슬롭 탱크(Slop Tank: 탱크 클리닝 후에 기름과 해수의 혼합물을 넣어 두는 탱크를 말한다.) 안으로 진입할 수 있는 입구가 위치한 곳으로 안내했다.

입구 근처에는 슬롭 탱크가 위험한 밀폐구역임을 안내하는 경고문이 있었다.

“선박에 위험한 장소가 있으면 이렇게 경고문이 있어야 됩니다.”

“음? 사고가 난 선박에도 경고문이 있었습니까?”

“제가 확보한 사진으로는 잘 못 찾겠더군요.”

“한번 확인해볼 필요가 있겠군요.”

내가 백경운 변호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슬롭 탱크는 갑판에서 해치 커버를 열고 탱크 안으로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는 구조였다.

나는 해치 커버를 안으로 랜턴으로 비추며 말을 이어갔다.

“저기 밑에 불빛 보이시죠? 일등 항해사와 갑판장이 내려가 있습니다.”

탱크 바닥 부분에 사람들이 보였다.

내가 설명을 계속했다.

“사고 당시 선박의 일등 항해사의 지시에 따라 슬롭 탱크 청소 작업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상당히 좁고 위험해 보이는데요?”

“맞습니다. 그래서 이런 밀폐 공간에서 작업할 때는 안전 절차에 따른 사전 절차를 완료한 후, 탱크 내부의 산소 수치와 가스 폭발 하한계 수치인 LEL(Lower explosion limit) 수치를 확인하고 탱크 내부로 내려가야 합니다.”

“그럼 사건 선박에서는?”

“전에 드린 보고서를 살펴보면 이런 사전 점검은 완료했다고 기재가 되어 있더군요.”

“음. 사후에 작성된 것인지 여부는 확인할 수 있나요?”

“그 부분은 확인해 봐야겠지만 그 정도 절차도 취하지 않고 작업을 시작했을 것 같진 않습니다. BK 해운도 제법 큰 해운회사입니다. 그 정도로 허술한 곳은 아닙니다.”

“그렇군요.”

백경운 변호사가 고심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내가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우선 이쪽을 보시죠. 우선 탱크 내부로 진입하기 전에 이렇게 밖에서 가스 프리(Gas free)를 먼저 진행합니다. 탱크 내부의 가스를 외부에서 먼저 배출시킬 수 있습니다.”

“그럼 가스 프리를 진행하면 탱크 내부에는 유독 가스 같은 것들이 없는 게 아닙니까?”

“그런데 사실 백 퍼센트(100%)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가스감지기 (Detector)로 산소 수치를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 진입하게 됩니다. 위치를 다르게 측정하도록 절차서에 정해져 있거든요.”

“가스 감지기?”

“네, 그런데 보통 가스 감지기는 탱크 내부로 진입하는 사람 중에 가장 선임자가 측정하게 됩니다.”

“그럼 이 배에서는 갑판장님이 차고 들어간 것인가요?”

나는 백경운 변호사의 말에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 스킬[고소고발 Lv.5]을 사용합니다. +

- 범인을 추적합니다.

- 논리력이 상승합니다.

- 추리력이 상승합니다.

“저도 그게 궁금합니다. 그런데 관련 자료를 살펴보아도 당시에 누가 가스 감지기를 사용했는지 보고서에 언급이 없습니다.”

“......!”

백경운 변호사가 내 말에 고민을 계속하더니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장보고 이항사님, 이상한 점이 있군요.”

“네? 어떤 점이?”

“부갑판장의 진술서 내용 말인데요. 부갑판장의 진술서에는 분명히 일등 항해사가 사다리를 내려가는 중에 밑에 있는 갑판장이 발견했다고 기재되어 있었단 말이죠.. 일등 항해사가 갑판장을 불러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고 그러다 일등 항해사가 다 내려갈 때쯤 갑판장이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습니다. 저도 사실 그 부분을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추리를 해보자면 갑판장이 가스 감지기 없이 탱크 내부로 진입했고, 가스 감지기를 가지고 있던 일등항해사가 탱크 내부로 뒤늦게 진입했을 가능성이 높겠군요.”

‘역시.’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백경운 변호사를 선택한 보람이 있었다.

백경운 변호사가 말을 이어갔다.

“그래도 회사에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한 가지 해결해야 될 문제가 있겠군요. 가스 프리인 상태에서 탱크 내부로 진입한 갑판장이 왜 가스에 질식했는지 그 이유가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어야 하겠군요.”

“맞습니다.”

나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탱크 내부로 한번 들어가 볼까요?”

우리는 랜턴을 비추며 사다리를 타고 탱크 내부로 진입했다.

“변호사님, 조심하세요.”

“네!”

나는 먼저 바닥에 도착해 위를 보고 소리쳤다. 백경운 변호사가 크게 대답하며 조심스럽게 내려오고 있었다.

탱크 바닥에는 먼저 내부로 진입한 일등 항해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

탱크 바닥에 내려선 백경운 변호사가 외쳤다.

“이항사님, 펌프로 내부의 기름을 전부 배출했다고 하지 않았나요?”

“맞습니다. 탱크 바닥에 깔려 있는 기름을 배출하기 위해 휴대용 펌프도 사용합니다. 하지만 구조상 펌프로 배출할 수 있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바닥 부분에는 이렇게 일정량의 기름이 남아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음?”

내 말에 백경운 변호사가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준 힌트를 알아차린 모양이다.

백경운 변호사가 바닥에 살짝 고여있는 액체 위에서 발장구를 쳤다.

“삐삐삐!”

일등항해사가 차고 있던 감지기에서 가스가 검출되었다는 신호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백경운 변호사가 말을 이어갔다.

“역시! 이렇게 하부의 기름을 다 제거할 수 없다면 탱크를 청소를 하는 과정에서 작업자들이 움직이면 기름이나 유독 액체로부터 유독 물질이나 가스가 올라 올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나는 그의 말에 빙긋 웃어보였다.

“맞습니다. 그래서 가스 감지기를 지참한 선임자가 가장 먼저 내려오고, 또 작업후에는 가장 마지막에 탱크 밖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

내 말에 백경운 변호사가 잠시 고민하더니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승소를 위한 전략을 마친 표정이었다.

* * *

- BK해운 부산 지사 회의실

백경운 변호사, 이대성 실항사와 함께 나는 BK 해운 부산지사 회의실에 들어섰다.

협상을 위해서 이곳을 방문한 상태.

법원을 통해 진행하는 소송은 그 특성상 비용도 많이 발생하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어떤 합의도 판결보다는 낫다는 백경운 변호사의 조언에 따라 우리는 협상을 우선 진행하기로 했다.

백경운 변호사가 나를 보며 물었다.

“장보고 이항사님, 그런데 이 자리에 같이 있어도 되겠습니까?”

“네? 무슨 뜻입니까?”

“이항사님은 해신해운 소속 항해사이시니까요. 한 다리만 건너면 BK 해운 사람들도 거의 대부분 다 아시는 분들 아닙니까?”

“뭐, 그 정돈 아닌데 그래도 선후배가 많으니 아는 분들도 있죠.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허허허. 그쪽 분야도 선후배 군기가 제법 있다고 들었는데 의외네요.”

백경운 변호사가 내 말에 크게 웃었다. 나는 백경운 변호사를 보며 물었다.

“변호사님은 어떠십니까? 뭐 법조계도 전관예우니 뭐니 해서 말이 많잖아요.”

내 말에 백경운 변호사가 쑥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도 그게 걱정입니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지만 제가 평소에도 선배들을 잘 따르고 예의를 지키는 편이라서요.”

‘음?’

내가 알던 기억과는 살짝 달랐지만 아직 청년 시기인 그는 다른 모습일지도 몰랐다.

백경운 변호사가 말을 이어갔다.

“그나저나 BK해운 사람들이 늦네요.”

약속한 미팅 시간이 훌쩍 지났다. 여전히 BK 해운의 담당자들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AP에 협상하러 갔을 때가 생각나네.’

BK해운 담당자들도 우리를 상대로 아주 얕은 수작을 부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협상의 상대방을 기다리게 해서 자극하는 방법.

이런 짓을 하는 것이 오히려 당당하지 못하다는 인식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는 듯했다.

스르륵.

회의실 유리문이 열리고 정장을 입은 남자 3명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회의실로 들어선 남성 중 젊은 남자가 말했다.

“이거 늦어서 죄송합니다. 갑자기 중요한 회의가 잡혀서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그는 말투는 제법 공손했지만 그 표정은 다소 거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 비슷한 얼굴이네.’

그리고 젊은 남자와 같이 들어온 2명의 남자들은 딱딱한 표정으로 우리를 향해 눈길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

아마도 반대편에 앉은 우리의 모습이 너무 젊기 때문이겠지.

BK해운 사람 중 젊은 남자가 우리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저는 BK해운 해사인력팀 과장입니다. 그리고 옆에 계신 분은 본사 법무팀장님이시고, 이분은 저희 회사 고문 변호사이십니다.”

“아 네, 반갑습니다. 저는 백경운 변호사입니다. 상병 중인 갑판장으로부터 사건 처리를 위임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옆에는 당사자의 아들인 이대성 실항사 그리고 그 지인인 장보고 이항사입니다.”

백경운 변호사가 우리를 소개했다.

백경운 변호사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던 BK해운의 법무팀장이 고문 변호사를 바라보며 물었다.

“부장님, 저기 누군지 아십니까?”

법무팀장은 고문 변호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법무팀장은 턱을 옆으로 돌려 백경운 변호사를 향해 턱짓을 했다.

‘뭐야, 저 자식.’

BK해운의 법무팀장의 몸동작은 그야말로 건방진 제스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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