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K해운입니다.”
“아, 그랬지. BK 해운에 계시다고 했지.”
BK해운이라면 케미컬선이나 유조선같은 탱크선 영업에 강세를 보이는 회사였다.
해신해운은 대표적인 정기선사다.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항구를 기항하는 컨테이너선 영업이 회의 주된 사업.
이에 반해 BK해운은 벌크선단을 주로 운영하는 곳. 그중에서도 유조선과 케미컬선을 주로 운항하는 회사였다.
이런 선박들은 화물의 특성상 컨테이너선박보다 상대적으로 근무의 위험도가 높은 것은 당연한 사실.
나는 이어서 물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생겼어?”
“음, 아버지가 승선 중에 사고를 당하셔서요.”
“뭐라고? 무슨 사고?”
“탱크 청소 작업 중에 탱크 사다리에서 떨어지셨나봐요.”
“뭐? 많이 다치시진 않으시고?”
“화상을 좀 입으신 것 같아요.. 탱크선이라서 그런지 화학 물질 때문인 것 같아요. 현지 병원에서 치료를 마치고 얼마 전에 한국으로 돌아오셨어요. 입원 중이신데 자세한 치료가 끝나봐야 알 것 같아요.”
“음, 큰일이네. 케미컬선이면 위험할 텐데.”
“네. 그래서 걱정입니다.”
“그래, 그런데 상의하고 싶은 내용은 뭐야?”
“산재처리도 그렇고 회사에서는 빨리 합의를 하자고 연락이 와서요. 빨리 합의를 해야 치료비도 받을 수 있고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어머니도 그렇게 제가 경험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음!”
“회사에 왔다가 장보고 이항사님이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잘했다.”
“네?”
“잘 찾아왔다고! 합의는 개뿔! 이 개자식들이 어디서 약을 팔아?”
“네?”
“나만 믿어.”
“······!”
“형이 해결한다.”
< 띠링! >
+
<돌발 퀘스트를 시작합니다.>
시나리오 진행에 따른 보너스 퀘스트를 진행합니다.
“선원들의 안전 보건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선원들의 복지를 위해 힘써주세요!”
세부 퀘스트 : 산업재해
클리어 조건 : 정당한 피해 보상
제한시간 : 피해 보상 전까지
보상 : 명성 + 50
실패시 : ???
+
선원법 재해보상 (1)
- 부산 거제동 부산지방법원 앞 법조타운
며칠 뒤 부산 거제동. 부산 지역의 변호사 사무실들이 위치한 곳.
부산지방법원과 검찰청을 마주 보고 있는 부산 거제동 법조타운빌딩 앞에 섰다.
나는 빌딩 앞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가만 보자. 이 빌딩이라고 했던 거 같은데.”
나는 해신해운 법무팀 현재형 차장을 통해서 받은 주소를 확인하고 있었다.
“여기 맞네. 13층! 1301호 백경운 변호사 사무실.”
내가 이대성 실항사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이대성 실항사가 나를 바라보며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항사님, 그런데 저 변호사님은 혹시 잘 아시는 분인가요?”
음, 뭐라고 해야 할지.
전생에 안면이 있으니 아는 사람이긴 한데. 하지만 현생에서는 초면이니 모른다고 해야 하나?
“음? 그건 왜?”
“변호사 사무실 찾아간다고 하니 비용도 걱정이 되고......”
“아, 비용은 걱정 안 해도 되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래도......”
“나한테 다 방법이 있으니까. 돈 걱정 안 해도 돼.”
나는 이대성 실항사의 어깨를 두드리며 고개를 들어 올려 건물을 바라보았다.
백경운 변호사.
그는 이제 갓 변호사로 커리어를 시작한 젊은 변호사다.
전생에서 그는 해상법 분야에서 제법 명성을 떨치는 변호사로 성장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직 초짜 변호사에 불과할 시기였다. 개업 초기라 힘들어하고 있을 시기가 분명했다.
나는 현재형 차장을 통해 그에게 미리 연락을 부탁해 둔 상태.
현재형 차장도 백경운 변호사와는 아직 개인적인 인연은 없었다.
하지만 한 다리만 건너면 아는 사람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대기업인 해신해운의 법무팀에서 자신을 찾아 연락해왔으니 처음 일을 시작하는 젊은 변호사인 백경운 변호사 입장에서는 제법 기대되는 순간일지도 몰랐다.
* * *
- 부산 법조타운 빌딩 13층 백경운 변호사의 사무실
빌딩은 컸지만 내부에는 작은 규모의 변호사 사무실들이 모여 있는 층이었다.
‘음, 처음에는 이렇게 작은 사무실에서 시작했구나.’
나는 법조타운 빌딩 13층 복도 맨 끝에 위치한 작은 사무실 문 앞에 섰다.
전생에 내가 그를 알게 되었을 때는 제법 큰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
전생에 그가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사건이 있었다.
소말리아 해적들을 변호한 사건.
백경운 변호사는 다름 아닌 전생에 소말리아 해적들에 피랍된 ‘사해 루비’호 사건에서 무기징역을 받은 ‘압둘 아라이’의 국선변호인이었다.
현생과 달리 압둘 아라이는 당시 ‘사해 루비’호의 선장을 살해하려고 총격을 가했다는 혐의를 받는 인물.
전 국민의 질타를 받고 있는 해적이었기 때문에 이런 사람을 변호하는 것은 변호사라고 하여도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당시 총격을 당한 선장의 생명이 위태로워 치료비 등 이슈가 있어 해적들이 한국에 압송되었을 당시 이들에 대한 여론 재판은 이미 끝이 난 상황.
국민들은 해적 인권이 중요하냐! 당장 중형을 선고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 그의 사무실에도 하루가 멀다 하고 항의 전화가 밀려왔다.
하지만 아무리 흉악한 범죄자라도 법이 정하는 형사재판상 권리는 인정되어야 하는 것이 형사소송법의 대원칙.
백경운 변호사는 스스로 국선변호인을 자청하며 ‘비록 해적이지만 피의자 권리가 인정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성명을 발표하고 일에 착수했다.
젊지만 제법 강단이 있다는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전생에서 압둘 아라이는 일관되게 무죄를 주장했는데, 압둘 아라이가 주장했던 핵심적인 항변들은 선장 살해 미수 혐의, 해군 작전 때 한국 선원들을 인간 방패로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선장을 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국 재판 결과 압둘 아라이의 살인미수 혐의가 인정되어 그에게는 무기징역이라는 중형이 선고되었다.
* * *
- 백경운 변호사의 사무실 내부
백경운 변호사는 오늘도 파리가 날리는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이제 갓 서른 살 즈음 되었을까?
무표정한 표정을 짓고 있으며 냉철해 보인다는 말을 듣는 백경운 변호사.
신문기사를 살펴보던 그가 안경을 들어 올리며 고개를 살짝 돌렸다.
그는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유일한 직원인 김 주임의 눈빛이 살짝 부담스럽게 느껴졌던 것.
“저 변호사님 오늘은 상담 손님 오시는 맞죠?”
백경운 변호사 사무실의 유일한 직원인 김 주임이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
아직 약속 시간이 5분 남았건만 김 주임은 상담예약을 한 손님이 오지 않을까봐 걱정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
김 주임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녀는 악의는 없었지만 김 주임의 말은 백경운 변호사의 마음 한구석을 답답하게 했다.
억지로 웃어 보이며 백경운 변호사가 말을 이어갔다.
“하하하. 일이 없으면 좋은 거 아닌가요?”
“호호호. 저는 일이 없으니 편하긴 한데요. 그래도 걱정이······.”
“으으음!”
백경운 변호사가 혼자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오늘은 아마 좋은 소식이 있을 겁니다.”
‘영일(01)만 변호사!’
거의 같은 시기에 개업한 동기 변호사들이 백경운 변호사를 놀리는 말이었다. 개업을 한 이후 백경운 변호사의 평균 수임 건수.
동기들은 한 달에 1건 아니면 0건을 수임하는 자신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었다.
소송의 결과들은 좋았지만 아직 마땅한 영업 방법이 없었다.
법조시장에 만연해 있는 영업용 사무장이나 브로커들의 힘을 빌리지 않고 호기롭게 시작했던 것이 오히려 백경운 변호사의 실수였을까?
‘아직 포기할 순 없지.’
그리고 오늘은 기대되는 건수가 있었다.
서울에 본사를 둔 대기업 해운회사인 해신해운 법무팀에서 직접 연락이 왔다.
물론 해신해운의 회사 사건은 아니라고 했지만 이런 글로벌 기업의 소개로 부산 한구석에 있는 자신을 찾아서 온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백경운 변호사는 눈을 번쩍이며 신문을 펼쳐 들었다. 오늘 방문하기로 한 손님에 대한 기사가 실려 있는 신문이었다.
+
< 쉬핑 뉴스 >
영국 해군이 인도양 인근에서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피랍될 위기에 처한 우리나라 해신해운의 화물선 줄리엣호에서 선원들을 구출해내고 있다.
화물선 선체에는 구출 당시와 해적 피랍 당시 발생한 총격으로 인한 총탄 자국이 선명했다.
영국해군은 이번 작전을 '모닝캄 오퍼레이션(아침이 조용한 나라의 작전)이라고 명명하고 고속단정을 이용해 특수부대원(SBS)들을 줄리엣호에 투입시켜 총격전 끝에 해적을 제압하고 선박을 장악했다.
영국해군이 언론들에 제공한 보도 자료에 따르면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줄리엣호 구출 작전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기까지 선박의 이등 항해사 장보고(25) 씨의 공이 적지 않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영국해군과 해신해운 관계자 등에 따르면 피랍 위기에 처하자 이등 항해사 장 씨는 해적들의 승선을 최대한 저지하며 육지 근처로 선박을 지그재그로 기동하는 기지를 발휘했다.
해적들은 최대한 빨리 피랍을 시도하려 했지만 줄리엣호는 장 씨의 기지로 최대한 오랫동안 운항을 계속해 영국 해군이 작전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단축시켰던 것이다.
특히, 해신해운 관계자에 따르면 장 씨는 삼등 항해사로 재직하던 시절 인도네시아 인근 공해상에서 발생한 해저지진으로 인한 쓰나미 사건 당시 수많은 선박과 선원들을 구해내기도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 중략 )
+
‘대단한 사람이네.’
백경운 변호사는 신문기사를 살펴보며 눈을 반짝였다.
똑똑똑!
덜컥.
노크 소리가 들리고 사무실 문이 열렸다.
“어머!”
문을 바라보고 있던 김 주임은 훤칠한 키에 잘생긴 외모의 미청년 장보고가 나타나자 자기도 모르게 감탄을 내질렀다.
* * *
- 백경운 변호사 사무실 상담실
‘뭐지?’
나를 힐끔 바라보는 여직원의 얼굴이 살짝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여직원의 안내를 받아 사무실 한쪽 구석에 마련된 아담한 사이즈의 상담실로 들어섰다.
그리고 잠시 뒤 상담실로 젊은 모습의 백경운 변호사가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백경운 변호사입니다.”
백경운 변호사는 고개를 살짝 숙이더니 명함을 내밀었다.
나는 명함을 받으며 백경운 변호사의 얼굴을 힐끔 쳐다보았다.
‘젊었을 때는 더 잘생겼었구나.’
전생에 그를 만났을 당시에는 중후한 미중년의 모습. 하지만 지금은 이십 대 후반에서 서른 초반 정도로 보였다.
젊은 시절의 백경운 변호사는 지적으로 보이면서도 살짝 날카로워 보이는 미청년의 모습.
“안녕하세요. 해신해운의 이등 항해사 장보고입니다. 여기는 사건 당사자의 아들입니다. 이대성 실항사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안 그래도 어제 법무팀 현재형 차장님이 연락 주셨습니다. 장보고 이항사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네? 저에 대한 이야기요? 무슨 이야기를?”
백경운 변호사는 내 말에 살짝 미소를 지으며 스크랩해 둔 신문 기사를 슬쩍 탁자 위로 내밀었다.
“정말 대단하시던데요.”
탁자 앞에 놓인 신문. 지난 해적 피랍 당시 나의 활약상이 기재된 신문 기사였다. 살짝 얼굴이 붉어졌다.
똑똑!
그때 상담실 문이 열리고 변호사 사무실 여직원이 커피를 들고 안으로 들어섰다.
“음? 김 주임?”
“네, 커피 가지고 왔어요. 변호사님.”
“음? 커피 달라는 말을 했었나?”
“네, 호호호. 손님이 오면 당연히 드려야죠.”
김 주임이라고 불린 어려 보이는 여직원은 힐끔힐끔 나를 바라보더니 후다닥 뛰어서 상담실 밖으로 달려갔다.
‘뭐야?’
백경운 변호사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김 주임의 모습에 살짝 당황한 모습.
“흠흠!”
백경운 변호사가 헛기침을 하더니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아 네, 선원 재해 사건입니다.”
“선원 재해 사건이요? 누가?”
“이대성 실항사의 아버지가 갑판장이신데 작업 중에 사고를 당하셨다고 하네요.”
“으음, 선원이라.”
잠시 고민하던 백경운 변호사가 말을 이어갔다.
“육지에서 근무하는 근로자들은 산업재해를 당하면 우리 흔히 말하는 산재처리를 하지만 선원들은 좀 다릅니다. 선원법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육상 근로자들은 산업재해 사건이 발생하면 이른바 산재처리를 하게 된다. 회사가 아니 아닌 산재보험으로 처리가 되는 것인데 선원법의 적용을 받는 선원들과는 차이가 있다.
선원들은 공해상이나 해외의 항구에서도 사고를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선원법은 선박 소유자들에게 별도의 보험을 가입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선박 소유자들은 이런 산업재해를 대비해서 선주상호보험(P&I보험)에 가입하게 되는데 회사에서 먼저 선원들에 대한 재해보상을 실시하고 이후 P&I Club과 같은 보험사에게 보험금을 청구하게 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백경운 변호사가 말을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