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도 박수 말로는 장보고를 만난 이후에 아주 신통이 제대로 터졌다고 하더라고!”
“뭐? 장보고?”
“장보고 덕분에 큰 신이 내려왔다나 뭐라나!”
“허허허. 그런데 그렇게 잘나가면 서울로 가야 되는 거 아닌가? 허허허.”
“바다 근처에 있어야 된다고 하니 부산에 계속 있을 모양이던데.”
“신기한 일이네. 참 별일이야.”
“아무튼 장보고 그놈이 보통 인물이 아니라니까.”
최부자가 짤막한 숨을 내쉬더니 말을 이어갔다.
“그나저나 난 그놈 때문에 망했어.”
“음? 무슨 소린가? 투자하는 족족 크게 성공했다고 하질 않았나?”
“그러니까 하는 말 아닌가! 완전히 그놈한테 당한 거라니까! 눈 뜨고 코 베어 가는 세상이라더니!”
“허허허. 천하의 최봉팔이가 당했다니!”
“그놈이 투자 자문 계약서인지 뭔지를 쓰자고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되는데!”
“계약서에 무슨 이상한 내용이라도 있나?”
“계약서는 아무 문제도 없지. 수익이 나면 5%로만 자기에게 달라더군. 손해를 보게 되면 손해를 보전할 때까지 수익을 정산해줄 필요도 없다고 하니 나는 손해 볼 일이 없는 줄 알았지.”
“그런데 뭐가 문젠가?”
“이렇게 크게 수익이 날 줄 알았나! 무려 5퍼센트라니? 이런 날강도 같은 놈일 줄이야!”
“허허허! 뭐 그 덕에 돈 크게 벌었으면 된 거 아닌가.”
“뭐, 그건 그렇지. 그래도 이놈이 나를 무슨 하수인 부리듯 부려먹고 있다고! 시도 때도 없이 연락해서 자기한테 정산해줄 돈도 돌려주지 말고 시키는 대로 투자하라고 하질 않나 아주 귀찮은 놈이야! 어디서 이런 놈이 들러붙었는지!”
최부자가 장보고에게 그동안 쌓인 불만이 많은지 친구에게 계속 불만을 털어놓았다. 오재민 의원이 오묘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불만이면 투자 계약 해지하자고 하면 되지 않나?”
“으으흠!”
“모른 긴 몰라도 이때까지 실적 알려주면 계약하겠다고 할 부자들이 줄을 설 것 같은데......”
“…….뭐 말이 그렇다는 거지! 내가 언제 뭐 안 한다고 했나?”
“허허허. 그나저나 참 신기한 놈이 아닌가. 이번에도 신문에서도 난리가 났던데.”
“나도 신문 기사들을 좀 살펴봤네. 배가 해적들에게 피랍될 뻔했는데 구해냈다고 하던데 도통 믿을 수가 있어야지!”
“무슨 소린가?”
“너무 허황된 소리여서 말이야! 아무리 그놈이라도 그게 말이 되는가?”
뚜벅뚜벅.
방 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봉팔이! 조용히 좀 하게 왔나 보네!”
“…….”
오재민 의원은 밖에서 발소리가 들리자 최부자의 불만 소리를 장보고가 듣기라도 할까봐 황급히 제지했다.
“이거 아주 상전이군 상전이야! 어디 무서워서…….”
최부자가 투덜거렸지만 오 의원은 최부자의 입을 황급히 틀어막았다.
똑똑똑.
“손님 오셨습니다.”
방문 밖에서 소리가 들리고 잘생긴 청년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의원님, 어르신! 장보고입니다!”
“오! 그래 왔는가!”
“어서 들어오게!”
최부자와 오재민 의원은 너 나 할 것 없이 환하게 웃으며 장보고를 반겼다.
“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장보고가 활짝 웃으며 방 안으로 들어섰다.
법안 발의
- 영도의 허름한 식당
나는 종업원의 안내를 받아 오재민 의원과 최부자 어르신이 있는 방으로 다가섰다.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잔뜩 화가 난 목소리.
목소리의 주인공은 최부자 어르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귀가 많이 가렵네? 내 욕을 하고 있나?
귀찮은 놈이 어쩌고저쩌하는 소리가 방문 밖으로도 살짝 들려왔다. 내 욕을 하는 것이 분명했다.
화가 난 최부자의 얼굴을 떠올리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졌다.
드르륵.
문이 열리고 나는 방 안으로 들어섰다.
“의원님, 어르신! 장보고입니다!”
“오! 그래 왔는가!”
“어서 들어오게!”
최부자와 오재민 의원은 너 나 할 것 없이 환하게 웃으며 나를 격하게 반겼다.
“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나는 활짝 웃으며 방안으로 들어섰다.
우리는 음식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해적들을 막아낸 이야기를 해줄 때는 부모님들의 반응과 똑같았다.
눈을 크게 뜨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허허허. 정말 대단했군!”
오재민 의원이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오재민 의원을 바라보았다. 그는 웃고 있지만 피곤에 찌든 표정이었다.
많이 바쁘신가 보네.
“의원님은 요새 의정 활동 때문에 바쁘시죠?”
오재민 의원이 짧게 한숨을 내쉬더니 말을 이어갔다.
“그렇지. 불려 다니는 곳이 많아서 사실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지경이네. 명색이 국회의원이니 법안 발의도 해야 되는데 좀처럼 연구할 시간도 없으니······.”
나는 그의 말에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의원님, 제가 좋은 아이디어가 하나 있는데······.”
“음? 그래 무슨 좋은 의견이라도 있나?”
“네, 해운산업 관련된 내용이니까 의원님 경력에도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오재민 의원의 얼굴에 궁금증이 가득했다.
< 띠링! >
+
<메인 퀘스트(#09)를 시작합니다.>
시나리오 진행에 따른 메인 퀘스트를 진행합니다.
“해양 오염을 위협하는 기름유출 사고의 위험이 커져가고 있습니다. 사고를 예방하세요!”
세부 퀘스트 : 환경보호
클리어 조건 : 기름유출에 따른 해양 오염 방지 법안
제한시간 : 기름 유출 사고 전까지
보상 : 명성 + 100, 글로벌 명성 상승
실패 시 : ???
+
* * *
아직 시기적으로는 몇 년 후의 일이지만 우리나라에 발생하는 역대급 대형 재난사고.
“H 스피드”호 기름 유출 사건.
전생에서는 당시 인천 대교 공사를 맡은 건설회사는 사용한 해상기중기를 철수하기 위해 예인선 2척을 동원한다.
문제는 예인선이 출항할 당시의 기상상황이 좋지 않았다는 것.
무리하게 출항한 예인선단은 항해 중에 균형을 잃게 된다. 예인선단이 크게 휘청거리며 비정상적인 운항을 시작한다.
이때 항만 당국도 예인 선단의 운항이 의심스럽다고 판단.
당국도 비상 호출 채널로 예인선단을 두 차례 이상 호출을 시도.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예인선에서는 응답이 없었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예인선단이 운항 중이던 항로 근처 멀지 않은 곳에 대형 선박이 정박 중에 있었던 것.
그 선박이 바로 유조선이라는 것 그리고 그 선박의 이름은 “H 스피드”호.
“H 스피드”호의 선교에서는 예인선의 움직임을 발견하고 긴급하게 호출을 시도했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예인선단은 악천후 속에 복원력을 상실하게 된다. 그리고 부선에 연결된 와이어가 끊어지는 대형 사고가 발생!
태안 앞바다에 정박하고 있던 유조선 “H 스피드”호(14만 6868t)와 충돌하였다. 화물탱크 3개에 구멍이 뚫리는 대형 사고가 발생하게 된다.
문제는 이 사건의 원인.
사후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인재 때문에 발생한 사고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였다.
기상상황을 고려해서 예인선단의 운항일정을 조정하지 않았던 것이 첫 번째 실수.
그리고 이렇게 피해가 커진 이유는 사고가 발생한 “H 스피도”호의 선체 구조에서 기인하는 문제도 있었다.
1992년에 IMO(국제해사기구)에서 개정된 MARPOL 92(해상오염방지규칙)은 1993년 7월 이후로 계약되는 모든 유조선들은 이중선체가 강제 의무화되고 1984년 이전에 계약된 선박의 경우 2005년에서 2009년 사이에 모두 퇴출시키며 1984년 이후로 인도된 단일선체 유조선의 경우 2010년까지 퇴출되게끔 의무화시켰다.
“H 스피드”호의 경우 건조 시기가 1993년이지만 당시 MARPOL이 개정되기 전에 인도된 단일선체 선박이라 2005년에서 2010년 사이에 퇴출되게끔 되어있었다.
당시 “H 스피드”호는 단일선체이지만 새로 개정된 법률이 적용되는 유예시기에 있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이 사건은 그 유예시기에 발생하게 된 것.
결국 이 사건은 관련 업계 종사자들의 안전불감증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하고 정책 미비로 피해가 커진 전형적인 인재(人災)사건이라고 할 수 있었다.
* * *
내 설명을 들은 오재민 의원이 대답했다.
“음, 그러니까 단일선체인 유조선이 한국에 입항을 하지 못하게 하는 법안을 입안하라는 뜻인가?”
“네, 맞습니다. ‘단일선체 입국금지법’입니다. 국제 협약에 따라 어차피 우리나라에서도 곧 수용할 수밖에 없는 내용입니다.”
“음, 업계의 반발이 있지 않겠나?”
“이미 선진국들은 이중선체 유조선들이 아니면 입국을 막는 추세에 들어갔습니다. 우리나라가 선제적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선진국들에게 입항하지 못하는 단일선체 유조선들이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항로에 배선될 것입니다. 그만큼 사고가 발생하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뜻입니다.”
오재민 의원이 손을 들어 올려 이마를 쓸어 넘겼다. 고심하는 표정.
국회의원의 신분이다 보니 기업들의 입장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 이 법안이 발의되면 정유사들의 반발과 로비가 심해질 것은 당연한 일.
이중선체 유조선이 턱없이 부족하다거나 용선하기 힘들다, 선박 공급이 부족한 반면 수요는 많아 용선료가 오를 수밖에 없다, 용선료 인상은 결국 소비자 가격 인상으로 이어져 물가를 압박할 것이라는 주장을 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어차피 선진국들이 이미 이런 추세를 취하고 있는 이상 우리나라만 유예한다고 이런 현상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리고 한 번의 대형 사고가 발생하면 이를 수습하는데 드는 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미룰 수 없는 일.
“의원님 이 신문 기사를 한번 보시죠.”
나는 준비해온 신문 기사 스크랩을 오재민 의원에게 전달했다.
< 띠링! >
+ 스킬[협상 Lv.7]을 사용합니다. +
- 설득력이 증가합니다.
내가 준비해온 것은 1989년 발생한 역사적인 대형 재난 사고에 관한 것이었다.
1989년 3월, 유조선 “엑스 하데스”호가 좌초되면서 4,200만ℓ나 되는 원유가 프린스 윌리엄 해협의 청정 바다에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한 것.
유조선은 암초에 부딪혔다.
그리고 유조선에서 엄청난 양의 기름이 바다로 흘러나왔다.
바다가 너무 잔잔해서 기름띠를 분산시키려던 초기 방제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약 50만 마리의 바다새와 수백 마리의 바다표범이 몰살됐으며, 수많은 연어 산란지가 파괴되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조개, 청어, 바다표범들이 사라지면서 이 지역 어업은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사고 이후 기름띠는 대부분 자취를 감추었지만, 십수 년이 지난 시점 까지도 토양 깊은 곳에서는 기름이 배어나오고 있는 실정.
이 사고의 원인도 인재였다.
당시 항해는 삼등 항해사가 맡고 있었는데, 선장은 만취 상태였으며 선박의 레이다는 비용문제로 1년 넘게 고장 난 채로 방치되어 있었다고 밝혀졌다.
이 사건으로 인해 유조선에 이중선체가 강제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높아지게 된다.
내가 전달한 기사들에는 기름에 뒤덮인 해양생물들과 절규하는 어민들의 표정이 실려 있었다.
“으으음!”
오재민 의원이 신음성을 흘렸다.
그의 눈빛이 달라지고 있었다. 뭔가 중요한 결심을 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 * *
- 해신해운 부산 지사 빌딩
나는 부산 중앙동에 있는 해신해운 부산 지사 건물 옥상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휴가 기간이지만 교육에 참여하기 위해 부산 지사를 방문했다.
부산 중앙동은 해운회사들과 물류회사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 국내 해운회사들의 부산지사와 선박 대리점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중앙동에서 가장 높은 빌딩은 해신해운 부산 지사 빌딩으로 이 빌딩 옥상에서 바라보는 부산 바다의 풍경이 제법 멋진 곳이었다.
“장보고 이항사님!”
나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줄리엣호에 같이 승선했던 이대성 실항사가 옥상에 나타났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손을 흔들었다.
“오! 이대성 실항사!”
이대성 실항사가 웃는 얼굴로 다가와 고개를 꾸뻑 숙이더니 손에 쥐고 있던 캔커피를 내밀었다.
“오 땡큐!”
나는 웃으며 그의 어깨를 살짝 두들겼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무슨 일이야?”
“서류 처리할 게 있다고 해서 해사인력팀에 방문했습니다.”
“아 그래? 일은 다 처리했고?”
“네, 여기 장보고 이등 항해사님이 계시다고 해서 인사도 드릴 겸 왔습니다.”
“그래 얼굴 보니 좋네.”
이대성 실항사는 줄리엣호에서 실습을 마치고 대학교로 돌아갔다. 좋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에 해신해운에서 삼등 항해사로 근무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음? 고민이 있는 표정이네?’
이대성 실항사의 얼굴 표정이 어딘지 모르게 어두워 보였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나?”
내 말에 이대성 실항사가 우물쭈물하더니 말을 이어갔다.
“집에 일이 있어서 그런데 상담 좀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음? 그래 무슨 일이야?”
“제가 승선했을 때 아버지 이야기를 드렸지요?”
“그래, 갑판장으로 근무하신다고 했잖아.”
“네.”
나는 이대성 실항사가 승선 중에 해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대성 실항사의 아버지도 선원이고 갑판장으로 근무하는 중이라고 했다. 해양대학교를 오는 학생들 중에는 이렇게 가족들이 선원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특별한 경우는 아니었다.
당장 나만 해도 아버지가 갑판장으로 근무하셨던 선원이지 않은가.
내가 말을 이어갔다.
“회사가 어디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