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자, 배고플 텐데 다들 식사도 하고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시죠.”
나민 아세르가 웃으며 말을 건넸다.
“미스터 장.”
“네.”
그는 나에게 물담배를 권했다.
“이건 시샤라고 하는 물담배입니다. 우리는 술을 안 마시니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즐긴답니다. 한번 해보시죠.”
“그럴까요?”
나는 그의 권유에 물담배를 한 모금 빨았다.
“켁!”
담배도 피우지 않는 폐에 칼칼한 연기가 들어오자 기침을 해댔다.
“하하하. 미스터 장이 못 하는 것도 있었군요.”
아사드 빈 바크툼의 말에 사람들이 크게 웃어댔다.
아사드 빈 바크툼은 느끼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지 저 부담스러운 눈빛은?
< 띠링! >
+ 축하합니다. 세계적인 거부가 당신을 투자처로 눈독 들이고 있습니다. +
뭐? 진짜?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사드 빈 바크툼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스포츠에는 관심이 없으십니까?”
“음? 어떻게 아셨습니까? 사실 투자할 곳을 찾고 있긴 한데.”
“역시!”
“음?”
“제가 좋은 투자처를 하나 알려드릴까요?”
“그런 곳이 있습니까?”
나는 활짝 웃으며 흑심을 드러냈다.
“혹시 야구에는 관심이 없으십니까?”
집으로 가는 길 (2)
- 나민 아세르의 별장
이 사람은 대규모 투자를 감행해 운영하는 구단을 영국 프리미어리그 최상위 팀으로 만들어 낸 인물이 아닌가!
이 사람의 투자만 이끌어내면 내 살아생전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볼 수 있을지도 몰라!
“혹시 야구에는 관심이 없으십니까?”
“야구요?”
“네, 사실 투자할 만한 좋은 구단이 있는데요,”
“하하하. 미스터 장, 저는 야구는 관심이 없습니다.”
“음, 역시 그렇겠죠? 하하하.”
살짝 얼굴이 붉어진 나도 크게 한바탕 웃었다. 어색한 내 웃음소리만 울려 퍼졌다.
야구라는 말에 미국인인 CIA 요원 제임스만 살짝 관심을 보였을 뿐.
아쉽네. 뭐, 그나저나 한시름 놨네.
이제 이 해적 문제는 내 손을 벗어났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 한구석이 후련해지는 기분.
‘이제 마음 편히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겠다.’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진 기분이랄까. 이제 한국에 가서 좀 쉬어야겠어.
흐흐흐. 물론 가기 전에 두바이에서 제대로 쉴 계획이었다.
나민 아세르로부터 원하는 만큼 별장에서 쉬다가 돌아가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
“음?”
나는 귀국 날짜를 계산하다가 머리가 쫑긋 서 있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아주 중요한 일을 깜박하고 있었던 것이 떠올랐다.
해신해운의 일이 아니다 보니 나도 그동안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대형 재난 사고.
머지않은 미래에 한국에서 벌어질 대형 재난 사고가 내 머릿속에 불현듯 떠올랐다.
그 사건은 바로 대한민국 최악의 기름 유출 사고.
‘H 스피드’호 기름 유출 사고였다.
* * *
- 아랍항공 퍼스트 클래스
“H 스피드”호 기름 유출 사고.
20XX년 XX월 X일 오전 7시경. 충청남도 태안군 소원면 만리포해수욕장 북서방 8km 해상에서 예인 중이던 크레인선이 지나가던 유조선 “H 스피드”호와 충돌한다.
이 사고로 유조선 “H 스피드”호에 선적되어 있던 원유 12,547㎘가 우리나라 바다로 유출되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악의 유출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유출된 원유의 양은 지난 십 년간 발생한 기름 유출사고의 총 유출량을 더한 것보다도 많았다고 하니 얼마나 큰 피해였는지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
문제는 그 사고의 원인,
역대급 기름 유출 사고였지만 사후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 사고는 원인은 바로 ‘인재’라는 것.
인재. 자연재해가 아닌 사람의 잘못으로 발생한 사고였다는 뜻이다.
그 말은 반대로 자연재해가 아니기 때문에 사고를 막을 수 있다는 말과도 다르지 않았다.
두바이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곰곰이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 띠링 ! >
+ 스킬[고소고발 Lv.5]를 사용합니다. +
- 논리력이 상승합니다.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이 분명했다.
‘돌아가면 빨리 오재민 의원을 만나봐야겠어. 간만에 최부자 어르신도 뵙고. 정산할 것도 있고 하니. 흐흐흐.’
나는 전생의 은인 최부자를 떠올렸다. 전생의 은인은 요즘 나에게 단단히 화가 나 있는 눈치였다.
두바이에서 전화했을 당시 최부자는 자신의 인생에서 이렇게 손해 보는 계약은 없었다면 한국에 돌아오면 단단히 각오하라는 말을 한참을 늘어놓았다.
최부자가 후원회장으로 있는 오재민 의원은 처음 도전한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난히 당선되어 국회로 입성했다.
그의 도움이 있으면 문제가 잘 해결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있는 나의 상념을 깨는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필요한 게 있으신가요?”
승무원이 내 좌석으로 다가와 물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오.”
퍼스트 클래스라 그런지 역시 서비스가 좋네.
친구를 잘 둔 덕인가?
나민 아세르가 예약해준 아랍항공의 일등석.
침대에 있는 것처럼 편안하게 느껴졌다.
* * *
- 한국 부산 영도
두바이에서 인천을 거쳐 부산 김해 공항에 내려섰다.
‘왜 집에 올 때마다 이런 기분이 드는 거지?’
이상하게 긴장되는 기분이랄까?
현생에 와서 수차례 집으로 돌아왔지만 집 근처에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미 오래전에 이별했던 가족들을 찾아가는 길이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집에 도착했을 때 가족들이 나만 빼고 해외여행이라도 가버렸을 것 같다는 불안감일까?
아무래도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인정하기는 싫은 기분이랄까?
머리는 알고 있지만 가슴이 인정하지 않는 그런 감정?
나는 고향 부산 영도의 골목으로 들어섰다.
골목의 끝에 위치한 초록색 대문 집.
끼이익!
나는 대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었다.
“엄마!”
“…….”
“엄마!”
“…….”
“아버지?”
“…….”
여러 번 소리쳤지만 이번에도 대답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설마?’
나는 현관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안 돼! 열쇠!’
나는 현관 옆 장독대 밑을 뒤져서 키를 집어 들었다.
키를 찾아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섰다.
집안에는 아무런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제발!’
나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신발을 벗고 빠르게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집 안은 불이 다 꺼져있고 인기척도 없다.
“설마?”
그때였다.
“써프라이즈!”
“…….”
방문을 열며 내 남동생 장해진이 나타났다.
그의 손에는 케익이 들려있었다. 그 뒤로 어머니와 아버지가 손에 풍선과 폭죽을 들고 나타났다.
어머니는 폭죽을 당기려고 시도했지만 잘 터지지 않는 모양.
"어머, 이거 잘 안되네.“
펑!
“꺅!”
“…….”
나는 고개를 돌려 유일하게 만만한 대상을 물색했다. 남동생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야, 뭐 하냐?”
“크크크. 형 놀랬지?”
“뭐가?”
“집에 아무도 없을까봐 또 놀랬지?”
“그럴 리가 있냐.”
“그래? 에이 재미없네.”
남동생은 실망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나는 표정 관리를 하며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인사를 올렸다. 그리고 준비해선 선물들도 좀 풀어놓고.
어머니가 선물은 뒤로한 채로 나에게 다가와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래 보고야, 해적선 이야기 좀 해봐 기사에서는 봤는데 나는 잘 못 알아듣겠더라. 어떻게 된 거야?”
아버지와 남동생도 그 말에 귀를 쫑긋 세웠다.
뭐지 괜히 말해주기 싫은 이 기분은?
“음, 어머니 그 이야기는 좀 비싼데요.”
“호호호. 그럴 줄 알고 엄마가 솜씨 발휘 좀 했지.”
어머니는 내 팔을 끌고 주방으로 향했다.
식탁에는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다. 메뉴들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나는 식탁에 앉아 허겁지겁 젓가락을 놀리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어떻게 된 거냐면요.”
나는 음식들을 입안에 가득 채운 채로 무용담을 시작하려는 순간.
“보고야.”
아버지가 말을 끊었다.
“네. 아버지.”
“이번엔 양념은 빼고 팩트만 그대로 전달해라. 알지? 아버지도 갑판장까지 했다. 아버지한테는 안 통한다.”
“……. 아버지, 해적한테 잡혀보셨어요?”
“으으음! 끙.”
아버지는 그동안 사람들에게 속고만 사셨던 걸까?
전생에는 분명 사람 좋은 호인이셨는데 언제 저렇게 의심이 많아지신 건지.
하지만 아버지도 어느새 식탁 앞에 앉아 내 이야기를 경청할 모드를 취하고 계신 지 오래였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크게 어리기 시작했다.
* * *
- 부산 영도의 어느 허름한 식당가
아는 사람은 아는 부산 최고의 알부자라는 최부자와 국회의원 초선인 오재민 의원이 허름한 식당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이고, 우리 바쁘신 의원님이 용케도 시간을 뺐네?”
“허허허. 그래, 꼭 할 말이 있다고 사정하니 어쩔 수 있나.”
“이거, 바쁘신 우리 의원님이 여기까지 오다니. 아무래도 고놈을 후원회장보다도 더 잘 대우해주시는 것 같군!”
“에이 이 사람이! 내가 그럴 리가 있나! 그냥 간만에 자네도 보고 할 겸 해서 겸사겸사 온 거지.”
오재민 의원은 최부자의 날카로운 눈초리를 마주하자 난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최부자는 오재민 의원이 난처한 기색을 보이자 흡족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오재민 의원이 주변을 한 번 두리번거리더니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그나저나 자네 영도 박수 소문 들었나?”
“영도 대표 무당? 영도 박수?”
“그래! 그 영도 박수!”
“영도 박수가 왜?”
“영도 박수가 아주 신이 제대로 내렸다는 소문이 전국에 퍼졌다네! 서울 재벌가에서도 찾아오고 정치계에서도 찾아온다고 하던데?”
“그래? 왜 갑자기?”
오재민 의원이 주변을 한 번 더 두리번거리더니 귓속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