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6화 (76/200)

뭔가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던 이안이 갑자기 나와 제임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하하하. 미스터 장, 제임스는 미국 CIA 소속입니다. 꿍꿍이가 있을 수도 있으니 대화를 조심하십시오.”

“음? 이안 그게 무슨 섭섭한 소린가? 나는 현장 요원도 아니고 데스크에서 일하는 사람인데 위험하다니? 위험한 사람은 자네가 아닌가? 하하하.”

뭐, CIA?

아주 난리네? MI6 요원도 부족해서 이제는 CIA 요원까지 나타났네?

두 사람은 눈싸움이라도 하려는 것일까? 두 사람의 입술은 웃고 있었다. 하지만 눈빛은 서로를 바라보며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나민 아세르는 자주 본 장면인 듯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자, 이제 올 사람은 모두 온 것 같군요. 우리도 안으로 들어가시죠.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요?”

“네, 오늘 소개해 줄 사람이 많습니다. 빨리 들어가시죠. 아주 귀한 손님들을 모셔왔습니다.”

‘귀한 손님?’

나민 아세르가 앞장섰다.

나는 과연 누가 있는 것일까 궁금해하며 나민 아세르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우리가 향한 곳은 한쪽에 마련된 독채였다.

사방에 경호원들이 배치되어 있는 것으로 봐서 중요한 인물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CIA?

- 두바이 모처 나민 아세르의 별장

이안 요원은 나민 아세르의 뒤를 따라가며 나에게 귓속말을 하기 시작했다.

“미스터 장, 제임스를 만만하게 생각하진 마십시오.”

“네?”

“실력은 하나는 두말할 필요 없이 아주 뛰어난데 욕심이 많은 친구입니다.”

“욕심이라면?”

“실적 말입니다. 공명심 때문에 무리하게 작전을 입안한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음, 제법 고급 정보였다. 그를 상대하려면 이런 정보가 필요했다. 그나저나 이안은 제임스가 상당히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네?

나는 이안에게 물었다.

“잘 아시는 분입니까?”

“저야 뭐, 자주 마주칠 수밖에 없지요. CIA에서 중동 정책을 담당하는 친구입니다. CIA에서도 제법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래? 하긴 그 정도 되는 인물이니 나민 아세르의 초청을 받았을 것이다.

독채에 있는 사람은 도대체 누굴까.

이런 인물들이 모여서 찾아가는 사람의 정체가 새삼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독채 앞에 도착하자 문을 지키고 있던 경호원이 간단하게 몸수색을 시작했다.

중요한 인물이 있다더니 별장 안에서도 다시 몸수색이 철저했다.

우리는 수색을 마치고 독채 안으로 들어섰다.

“와!”

나민 아세르를 따라 들어간 별장의 독채.

그 내부는 7성급 호텔 못지않은 화려함을 자랑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촌스러운 탄성을 터트리고 말았다.

‘집 안이 온통 금이구나.’

독채 내부는 금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여기저기 방 안의 화려한 장식들이 내 시선을 끌었다.

그리고 독채 안에는 몇 명의 사내가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들은 대화를 나누다가 나민 아세르가 들어서는 것을 보자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헉!”

나도 모르게 헛바람을 들이켰다.

‘저 사람이 왜 이곳에?’

독채 안에 있는 사람의 정체는 상상 이상이었다. 그는 나도 알고 있는 유명인이 이곳에 있었다.

아직은 본격적으로 유명세를 타기 전이지만 곧 몇 년 이내에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치는 인물이 된다.

매우 잘생기고 부티 나게 생긴 중동 신사가 웃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아사드 빈 바크툼.”

아사드 빈 바크툼은 두바이 왕가의 일원으로 세계의 거부로 알려진 인물.

두바이의 국부를 투자한 사모펀드를 운영하는 인물. 우리나라에서는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축구구단에도 막대한 투자를 하는 것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그는 상상할 수 없는 대규모 투자를 감행해서 인수한 구단을 단시간 내에 세계적인 축구클럽으로 성장시켰다.

두바이는 아랍에미리트의 토후국이다.

아랍에미리트 연방의 국가원수는 대통령이지만, 연방을 구성하는 각 토후국은 세습 왕정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 중 영토와 경제 규모에서 아부다비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큰 이 두바이를 통치하는 가문이 바로 바크툼 왕가.

그리고 바로 아사드 빈 바크툼은 두바이 왕의 아들로 향후 두바이 개발의 총책을 맡게 되는 인물이다.

그는 두바이의 인공섬 건설, 세계 최고층 빌딩인 건설 등의 사업을 성공적으로 유치해 두바이를 중동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들어내는 사람.

나민 아세르가 나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제가 말씀드린 친구입니다.”

“하하하. 여러 번 이야기한 그 미스터 장입니까?”

“네. 맞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그 미스터 장입니다.”

나민 아세르의 말에 아사드 빈 바크툼도 웃어 보였다.

나민 아세르가 나를 보며 말했다.

“미스터 장, 제 오랜 친구입니다. 아사드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하.하.하. 반갑습니다. 장보고라고 합니다.”

나는 차마 그를 아사드라고 편하게 부를 자신은 없었다. 그저 어색하게 인사를 건넸다.

나민 아세르도 경제계의 거물이었지만 아사드 빈 바크툼과는 비교할 수는 없었다.

일단 아사드 빈 바크툼은 두바이 왕가의 실세가 아닌가?

왕족이라고!

나는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MI6 요원 이안과 CIA 요원 제임스를 바라보았다. 그들도 나처럼 살짝 긴장한 기색이 보였다.

‘정보기관의 요원들도 사람이구나!’

그들의 긴장한 모습을 보니 나는 오히려 마음이 여유로워지기 시작했다.

< 띠링! >

+ 스킬 [마도로스의 심장 Lv.6]을 사용합니다. +

- 평정심을 되찾습니다.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는 기분.

그런데, 그나저나 이 사람이 왜 여기에 온 거지?

나민 아세르가 내 표정을 보더니 내 궁금증을 눈치챈 듯 말을 이어갔다.

“AP의 대주주가 바로 두바이 사모펀드입니다. 그리고 두바이 사모펀드를 운용하는 책임자가 바로 이분입니다. 내 오랜 친구이기도 합니다.”

“아! 그렇군요.”

아사드 빈 바크툼이 웃으며 나에게 말을 건넸다.

“미스터 장의 최근 활약상을 전해 들었습니다. 꽤나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더군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해적들 관련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요?”

“네, 최근에 해적들의 성장세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미리 대처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대응책을 마련하자는 의견을 드렸습니다.”

“음......”

아사드 빈 바크툼이 고민하는 표정으로 짓더니 말을 이어갔다.

“일단, AP의 화물을 운송하던 선박도 납치된 적이 있고 해서 우리도 일단 상황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소말리아 해적들의 성장세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늦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대답하자 아사드 빈 바크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

“아랍 국가들의 도움을 이끌어 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돈이라면 기꺼이 내놓을 생각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넓은 바다를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맞는 말이다.

아무리 아랍에미리트를 비롯한 아랍 국가들이 오일머니를 앞세워 성장해 나가고 있다 해도 군사력에서는 아직 많이 부족한 실정.

특히 이런 일은 미국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CIA의 요원 제임스를 향했다.

제임스도 사람들의 시선을 느낀 듯 살짝 경직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음, 사실 우리도 소말리아 해적들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은 지는 오래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국가 차원의 개입이 필요한지는 의문이 있습니다. 피랍된 선박을 구출하는 것이면 몰라도 예방하기 위해 함부로 군대를 동원할 수는 없으니까요.”

CIA 요원인 제임스가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자 이안 요원은 그에게 불만이 많은 듯 입을 씰룩거렸다.

뭐, 제임스의 대답은 나도 예상한 그대로였다.

전생의 기억에 따르더라도 미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시기까지는 아직 몇 년 남았기 때문.

그리고 세계경찰을 자처하는 미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않고 끌려가는 모양새도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 분명했다.

실제로 전생에도 미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 것은 미국인들에게도 피해가 발생하고 도저히 세계 경찰을 자처하는 미국이 묵과할 수 없는 지경에 된 이후였다.

하지만 현생에서는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일은 사양할 생각.

미국을 움직이려면 이 사내에게 줄 당근이 필요하다. 그는 정보기관인 CIA의 요원.

이 사람도 제법 흥미가 있을 이야기가 될 것이다. 나는 압둘 아라이로부터 획득한 정보를 이 사람에게 비싸게 팔 계획이었다.

나는 제임스를 바라보며 물었다.

“미스터 제임스, CIA에서는 소말리아 해적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그게 무슨 뜻입니까?”

“CIA에서 소말리아 해적들의 위험성을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물어보는 것입니다.”

제임스는 내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이럴 줄 알았다.’

아직 이들은 소말리아 해적들의 위험에 대해 우리만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단계일 것이 분명했다.

실제로 나 같은 해운업계 종사자들이 느끼는 체감과는 상당히 다를 테니까.

특히 CIA는 미국의 정보기관.

이들은 소말리아 해적들보다 관심을 두는 사안이 있었다. 바로 현재 무정부 국가에 가까운 소말리아의 정치 상황이다.

문제는 현재 소말리아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슬람연대(ICU)가 곧 미국에 의해서 무너지게 된다는 점이다.

이슬람연대가 소말리아에서 집권하는 시기에는 그나마 해적들이 통제를 받아 비교적 잠잠한 시기였다.

그런데 미국은 이슬람연대가 알카에다 등 테러 단체와 관련이 있다는 이유로 이슬람연대와 대적하는 과도 정부를 지원한다.

그리고 소말리아의 과도 정부가 들어서면 소말리아 해적들은 통제를 잃고 다시 활개를 치게 되는데, 그때가 바로 소말리아 해적들의 진정한 전성기다.

나는 말을 이어갔다.

< 띠링! >

+ 스킬[협상 Lv.7]을 사용합니다. +

- 설득력이 상승합니다.

- 논리력이 상승합니다.

“CIA는 곧 이슬람연대를 정리할 계획이 아닙니까?”

“음......!”

내 말에 제임스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내가 이런 고급 정보까지 알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을 테니까.

“제임스, 그 전에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해적들을 먼저 정리해야 합니다.”

“음, 그건 무슨 뜻입니까?”

“만약 해적들 문제를 정리하지 않고 이슬람연대를 전복시키면 소말리아는 그야말로 무정부 국가가 되어버릴 것입니다.”

“음······.”

“그러면 해적들은 인질 몸값으로 첨단 무기를 구입하고 국제사회의 개입에 대비해 자신들의 근거지를 요새화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는 정말 큰 대가를 치러야 할 것입니다.”

제임스는 내 말에 살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반문했다.

“소말리아 해적들이요? 그들이 그 정도 세력까지야 되겠습니까?”

“네, 물론입니다. 돈이 되는 일이니까요. 문제는 외국에 거주하는 소말리아인들을 중심으로 해적 비즈니스를 위한 국제 네트워크가 구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런던에서 선박 이동정보나 자금세탁에 대한 지원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벌써 그 정도까지?”

제임스는 고민에 빠진 얼굴. 반신반의하는 표정이었다.

“이미 소말리아 해적들은 어느 배가 어디로 지나가는지 선박에 대한 정보를 런던으로부터 제공받고 있다고 합니다. 업계에서는 런던이 소말리아 해적들을 움직이는 실질적 본부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미스터 장, 도대체 그 정보를 어디서 들은 겁니까?”

나는 고개를 돌려 이안을 바라보았다. 이안이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나는 이안과 함께 습득한 정보를 풀기 시작했다.

“이번에 생포한 해적단의 부두목 압둘 아라이에게서 들은 정보가 있습니다.”

“무슨 정보입니까?”

“일명 '미스터 L'이라고 불리는 해적 브로커에 대한 것입니다.”

“미스터 L?"

"네, 런던에서 활동하는 해적 브로커라고 합니다. 그가 한 달에 한 번 해적들의 본거지 푼틀랜드를 방문해서 해적 비즈니스를 조율한다고 합니다.“

“음!”

“그리고 다음 주 토요일이 해적단의 두목 샤크를 방문하는 시기라고 하더군요. 그때를 노리면 해적 비즈니스를 일거에 무너뜨릴 수 있는 정보원을 확보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하는 말이 정확한 정보입니까?”

제임스의 말에 이안이 정색하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어이 제임스, 뭐, 못 믿겠으면 안 해도 돼. CIA가 안 하겠다면 우리가 할 테니까.”

이안이 팔짱을 낀 채로 제임스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말에 제임스가 얼른 대답을 이어갔다.

“하하하. 안 하겠다는 건 아니고. 크로스 체크를 좀 해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뭐 좋을 대로.”

이안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내가 제임스를 보며 말을 이어갔다.

“지금 생각하기에는 인명과 화물의 가치를 고려할 때 몸값을 지급하는 게 낫다고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CIA나 미국정부의 입장에서도 혹시나 인질 구출 작전 과정에서 인명 사상이 있을까 우려해 차라리 돈을 주고 해결하는 것이 손쉬울 수 있겠죠. 하지만 이렇게 방조하다보면 소말리아 해적 산업이 불황을 모르고 번창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는 미국도 자국민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게 됩니다.”

“음······, 제법 흥미는 생기는군요.”

제임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그는 실적이 될 만한 사건이라고 판단한 듯했다.

제임스가 일어나 이안에게 다가갔다.

“이안, 잠깐 이야기 좀 하세.”

“음?”

제임스는 이안 요원을 끌고 가더니 구석에서 한참을 소곤거렸다. 두 사람은 귓속말을 나누며 티격태격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참을 다투던 두 사람은 합의점을 찾은 듯 만족한 얼굴로 돌아왔다.

이안이 돌아오며 나에게 눈을 찡끗하며 신호를 보냈다.

‘이야기가 잘된 모양이네.’

두 사람의 표정을 보니 알 수 있었다.

“하하하. 이야기가 잘된 모양이군요.”

나민 아세르가 웃으며 말했다. 그도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결론을 짐작한 듯 보였다.

나민 아세르가 손뼉을 치자 방 안으로 웨이터들이 우르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양손에는 산해진미가 가득 올려져 있는 그릇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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