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5화 (75/200)

나민 아세르가 더 골치 아파하는 이유.

AP사의 기름을 운송하던 유조선도 최근 한 차례 소말리아 해적들에 의해 피랍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조선을 운항하는 해운회사에서 막대한 인질금(몸값)을 지불하고 선박을 돌려받았지만 정유회사 입장에서도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었다.

소말리아 해적들 때문에 용선료(선박을 빌리는 대가로 지불하는 사용료의 일종)와 보험료도 크게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말리아 해적들은 첨단 무기와 장비로 무장을 갖추어 나가고 있다.

장거리 원정에 필요한 위성통신·위성항법장치를 갖춘 모선과 작은 배 여러 척으로 구성된 해적단을 구성하고 있다.

작은 보트에 갈고리와 사다리를 갖추고 목표를 추격한다. 자동소총과 RPG 등으로 무장한 이들은 유조선같이 건현이 낮은 배들을 나포하는 데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문제는 선박과 인질들을 석방하기 위한 이른바 몸값이다.

해적들이 배를 나포하는 이유는 선박과 선원들을 인질로 삼아 몸값을 받기 위해서다.

선박이 피랍되면 그동안 각국의 정부와 기업들은 보통 소말리아 해적들과 협상을 통해 몸값을 지급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왔다.

문제는 곧 소말리아 해적들이 활발히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몸값을 지불해도 인질들과 선박을 제대로 석방하지 않는 악질들도 나타난다.

전생의 경험을 떠올려 보면 미화 100만 달러 정도의 몸값을 요구했던 소말리아 해적들이 첨단 장비를 갖춘 이후 가장 활발히 활동하던 시기에는 미화 700만 달러가 넘는 몸값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렇게 인질 몸값이 오르는 것은 악순환을 낳게 된다. 해적 비즈니스가 더욱 활성화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세계 각국과 해운기업들은 막대한 경제적 손실과 선원들의 생명과 신체에 큰 피해를 입게 된다.

나는 근심이 가득한 나민 아세르를 보며 말을 이어갔다.

“사장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소말리아 해적들이라고 무적이 아닙니다.”

“네 무슨 소립니까?”

“소말리아 해적들을 해결할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으음? 미스터 장, 무슨 좋은 방법이 있습니까?”

나민 아세르는 눈을 크게 뜨고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는 나민 아세르를 바라보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전생에서도 소말리아 해적들의 문제는 결국 해결이 됐으니까.

물론 전생에서는 소말리아 해적문제를 퇴치하기 위해 몇 년을 고생한 후에야 심각성을 인식하고 대책을 뒤늦게 세웠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시기를 조금 앞당기는 것이다.

VIP?

- AP사 사장실

사실 시간이 지나면 소말리아 해적 문제는 결국 해결될 것이다.

전생에서도 그랬으니까.

‘시기의 문제다.’

오랜 시간 피해를 보고 시달리다가 해결할 것인가 아니면 미리 문제를 예방할 것인가.

물론 나는 후자를 선택할 생각이다.

나는 전생의 기억을 떠올렸다. 소말리아 해적들을 해결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 해결책은 사실 한 가지밖에 없다.

바로 국제 공조.

전생에서는 미국을 주도로 20여 개가 넘는 국가가 해군을 소말리아 인근 해역으로 함정들을 파견하게 된다.

미국 해군은 아덴만, 인도양 등에서 연합 해군 작전을 전개하며, 아덴만과 소말리아 해상에서 해적 퇴치를 위한 연합 해군 함대를 조직해 활동하게 된다.

소말리아 해적 퇴치를 위한 국제 공조 활동에는 진영의 대립도 없었다. 실제로 러시아와 중국도 소말리아 해적들에 의해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국제기구들의 활동도 활발해진다. 이른바 '소말리아 해적 퇴치 연락 그룹(CGPCS)'을 만들어 운영하게 되는데, 미국의 주도로 소말리아, 케냐 등 주변국, 우리나라, 영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요 이해국 등이 참여하게 된다.

현생에서는 이 시기를 앞당겨야 한다. 그러면 소말리아 해적 문제도 미리 예방할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나는 이미 정답지를 알고 문제를 푸는 것이나 마찬가지.

‘이놈들을 이대로 놔두면 얼마 지나지 않아 빠르게 커져 갈 것이 분명해.’

전생의 기억대로라면 곧 해적들의 전성기가 도래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소말리아 해적들의 활동이 정점을 찍게 되는 대해적의 시대가 도래한다는 뜻.

그때가 되면 연간 50여 척이 넘는 선박들이 피랍되고, 1척당 평균 500만 달러가 넘는 몸값들이 지급되게 되는 시대가 열린다. 이는 국가와 기업들에게 막대한 경제적 사회적 손실을 안기게 된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보험료, 보안장비 설치와 보안요원 고용 등 해적으로 인해 해마다 발생하는 비용이 120억 달러가 넘게 발생해 결국 사회에 부담을 준다는 연구결과도 있었다.

물론 이번 생애에서는 그런 일이 발생하게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나는 눈빛을 반짝였다.

나민 아세르가 궁금하다는 표정을 짓고 물었다.

“그래, 미스터 장 좋은 해결 방법이라는 게 뭡니까?”

“하하하 뭐, 사실 저라고 해서 소말리아 해적들을 퇴치할 요술 방망이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한 번에 해적들을 사라지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지요.”

“그럼? 무슨 방법이?”

“사장님도 답을 아실 겁니다. 답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까? 국제 공조를 이끌어 내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으음. 정부를 움직여야 한다는 뜻이오?”

“네, 정부 그리고 국제기구까지 움직여야 합니다. 타이밍이 생명입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나는 전생에 있었던 국제 공조 방안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국제 공조 방안에 대한 설명을 듣자 나민 아세르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미간을 살짝 찌푸려져 있었다.

국제 공조.

어쩌면 간단하지만 또 쉽지 않은 문제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민 아세르가 아무리 정유업계와 두바이 정계의 큰손이라고 하더라도 이 문제는 훨씬 더 복잡한 국제 정치의 영역이었다.

나민 아세르도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는 뜻.

한참을 고민하던 나민 아세르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일단 좋습니다.”

그리고 나민 아세르가 살짝 웃어 보이며 말을 이어갔다.

“그나저나 미스터 장 오늘 저녁 시간은 당연히 비워두었지요?”

“네, 다음에 다시 만나면 크게 대접하겠다고 하신 말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하하. 제가 그랬던가요? 안 그래도 오늘 제 별장으로 초대할 생각이었습니다.”

“별장이요?”

“네. 미스터 장이 오늘 온다고 해서 특별히 연회를 준비했습니다.”

뭐? 연회? 그 정도까지 기대한 건 아닌데.

말을 마친 나민 아세르가 비서를 호출했다. 비서가 방 안으로 들어서자 나민 아세르가 비서에게 말했다.

“미스터 장을 모시고 내가 말한 대로 다녀오게. 저녁 연회시간에 늦지 않게.”

“네 알겠습니다.”

비서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바로 출발하셔야 됩니다. 시간이 촉박합니다.”

“네? 어디를?”

“따라와 보시면 압니다.”

비서는 웃으며 대답했다. 나민 아세르가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미스터 장, 그럼 저녁식사 시간에 보시죠. 비서를 따라가면 안내해드릴 겁니다.”

“네?”

비서가 나에게 빨리 서두르라며 채근하기 시작했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비서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 * *

- 두바이 최대 쇼핑몰

내가 비서를 따라 도착한 곳은 두바이 최대 쇼핑몰이라고 알려진 큰 쇼핑몰이었다.

‘뭐야? 어디로 들어가는 거야?’

나는 쇼핑몰의 정문이 아닌 VIP 전용 출입구를 통해 쇼핑몰 안으로 들어섰다.

쇼핑몰 1층에는 각종 명품관들이 있었는데 나는 비서를 따라 각종 명품관을 방문했다.

비서 말에 따르면 오늘 저녁에 있을 연회 때 입을 옷을 사기 위해 온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내 눈에는 다 똑같아 보인다는 것.

미리 연락을 받은 것인지 명품관에서는 나를 위해 중동 남성들이 입는 전통 복장인 흰색 의상을 준비해놓고 있었는데 외관으로 보기에는 브랜드마다 차이가 전혀 없었다.

여러 곳을 방문해도 다른 점이라고는 옷의 안감에 각종 명품 로고가 치렁치렁 장식되어 있다는 것뿐이었다.

나는 비서의 추천을 받아 가장 비싼 옷을 선택하기로 했다. 어차피 나민 아세르에게는 푼돈에 불과하지 않은가?

내가 옷을 입어보고 있는 사이 나민 아세르의 비서는 이곳저곳을 바쁘게 오가더니 최고급 손목시계, 선글라스 등 각종 패션 아이템들을 들고 와서 나에게 걸치기 시작했다. 내 의견은 묻지도 않고.

이런 것들은 어차피 전통의상을 입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인데 이런 걸 굳이 사야 될까?

하지만 계속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호의를 막무가내로 거절하는 것도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다.

명색이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사람이 아닌가. 나는 어쩔 수 없이 예의를 지키기로 결정했다.

* * *

- 두바이 해변가 근처 나민 아세르의 별장

쇼핑을 마치고 도착한 곳은 고급 리조트처럼 보이는 대형 호화 주택이었다.

“헉! 이곳이 맞나요?”

“네. 미스터 장. 약속장소는 이곳이 맞습니다.”

“별장이라고 들었는데...... 별장이 참 크네요.”

나는 별장 규모에 깜짝 놀라 할 말을 잃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중동 부자의 클래스?’

별장의 정문 앞에는 각종 슈퍼카들 수십 대가 나란히 주차되어 있었다.

별장 안으로 들어서자 또다시 신세계가 펼쳐졌다.

“뭐야 이거!”

누가 두바이를 사막이라고 했어?

가운데는 대형 분수가 설치되어 있고, 정원은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여기가 사막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그런 곳이었다.

석유보다도 물이 비싼 동네라고 하지 않았나? 이렇게 물을 낭비해도 되는 건가?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한쪽 구석에는 반려동물들이 있었다.

개나 고양이가 아니었다.

“······.”

도대체 뭐냐? 동물원도 아닌데 호랑이, 치타 뭐 이딴 것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딱 봐도 아랍 사람이 아닌 내가 전통 의상인 칸도라를 입고 나타나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모였다.

그중에서 나를 알아본 사내가 있었다.

“하하하. 미스터 장.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음? 이곳에 나를 아는 사람이 있다고?

나는 고개를 돌려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이 사람이 여기 왜 있어?

그는 잘생긴 거구의 사내. MI6의 이안 요원이었다.

“이안 요원! 여기는 또 무슨 일입니까?”

“아직 두바이에서 할 일이 남아서 머물고 있습니다. 오늘 연회에 참석해달라는 연락을 받아서 왔습니다.”

그는 과거 밀항자 압둘 무바라크를 탈출시키기 위해 나민 아세르와 협조했던 사이다.

나와도 친분이 있으니 나를 배려하기 위해 나민 아세르가 이안을 초대한 것이 분명했다.

이안이 나를 보며 말했다.

“오늘 복장이 참 멋지군요. 이럴 줄 알았으면 저도 복장을 그렇게 드레스 코드를 맞춰서 왔을 텐데. 아쉽군요.”

뭐가 아쉽다는 건지? 나랑 굳이 커플 룩을 입을 필요가 있을까?

이안은 예전 런던에서 봤을 때처럼 멋진 정장 차림이었다.

이안은 내가 착용한 두바이 전통 의상이 마음에 드는지 내가 입은 옷을 한참 동안 샅샅이 살펴보는 눈치.

“미스터 장, 오늘 날이 좋으니 마음껏 술도 마셔 봅시다. 발차기 실력만큼 주량도 좋은지 한번 확인해 봐야겠습니다.”

“음, 한국인들이 술을 얼마나 잘 먹는지 아직 모르시나 보군요.”

“그래요?”

“자신만만해 하다가는 아마 큰코다칠 겁니다.”

나와 이안은 웃으며 각종 술이 준비되어 있는 바로 다가갔다. 위스키부터, 와인, 브랜디 등 전 세계의 술이 다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이안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중동에서 술을 마셔도 됩니까?”

“외국인들은 괜찮습니다. 중동이라도 허가받은 호텔 라운지나 바 같은 곳에서도 외국인들에게는 술을 판매하니까요.”

“그런데 여기는 호텔이 아니지 않습니까?”

“하하하. 이곳의 주인이 누구인지 잊었습니까?”

나는 두바이 경제계와 정계의 큰손인 나민 아세르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안이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자자, 그런 걱정은 하지 마시고, 미스터 장 그럼 시작은 뭐로 할까요?”

나는 그 말 웃으며 바텐더를 바라보았다.

“무엇을 준비해 드릴까요?”

바텐더의 물음에 나는 한껏 폼을 잡으며 목소리를 깔고 말했다.

“Vodka martini, shaken, not stirred.(보드카 마티니, 젓지 말고 흔들어서.)”

내 말을 들은 이안이 흠칫 놀라는 표정. 그리고는 그도 같은 취향인 듯 나와 같은 칵테일을 주문했다.

나와 이안이 보드카 마티니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나민 아세르가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의 뒤에는 짧은 머리에 검은 정장을 입은 다부진 사내가 있었다. 예리한 칼같이 날이 서 있는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마치 잘 훈련된 군인 같은 인상.

내가 살짝 고개를 돌려 이안을 바라보니 그는 새로 등장한 사내를 알아본 듯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민 아세르가 말했다.

“미스터 장, 여기 계셨군요. 오신 줄도 몰랐습니다.”

“아! 저도 방금 도착했습니다. 어디 계신 줄 몰라 이안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네, 술은 드셔도 되지만 과음은 하지 마십시오. 술에 취하면 늘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지 않습니까? 이곳 안에서는 괜찮지만 밖에서 술 취한 상태로 돌아다니면 큰 곤경을 겪을지도 모릅니다.”

“네,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허허허.”

주량 하나는 자신 있었지만 이런 곳에서 만취할 생각은 없었다.

나민 아세르는 자신의 뒤에 있는 사내를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다.

“이안 요원과는 이미 서로 잘 아시는 사이시고.”

이안이 나민 아세르의 뒤에 있는 사내를 바라보며 떨떠름한 표정으로 손을 들어 올려 아는 체를 했다. 나민 아세르가 나에게 뒤에 있는 사내를 소개했다.

“미스터 장, 인사 나누시죠. 이분은 미스터 제임스입니다.”

미스터 제임스가 나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반갑습니다. 미스터 장, 제임스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반갑습니다. 장보고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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