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박 “M.V. 줄리엣”호의 선교
줄리엣 호는 두바이 항구에 정박한 상태.
두바이 항구까지 우리를 호위했던 윈스턴 처칠 함은 떠난 후였다. 선박에 구금되어 있던 해적들은 윈스턴 처칠 함으로 인계된 상태.
줄리엣 호의 선원들은 편안한 마음으로 인수인계를 준비하고 있었다.
“선장님!”
선교로 갑판장이 들어서며 말했다.
“갑판장, 그래 무슨 일인가?”
“사람들이 도착했습니다. 교대할 인원입니다.”
“오, 그래? 빨리 왔군.”
일련의 사람들이 우르르 줄리엣 호의 선교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선장님, 안녕하십니까!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들은 우리와 교대해서 줄리엣 호를 긴급 수리한 후 중국의 수리조선소를 향해 선박을 운항해서 입거시킬 선원들이었다.
앞장서서 들어오는 사내. 제법 젊어 보이는 선장이었다.
나도 익히 잘 아는 사람들이었다.
선장으로 승진한 양화종 선장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 일등항해사로 승진한 김호영 일등항해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초임 삼등항해사 시절 함께 승선했던 항해사들을 보자 옛날 추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들은 김호태 선장과 기관장을 향해 인사를 건넨 후 나에게 다가왔다.
곰치 일항사로 소싯적 악명을 떨치던 사내가 웃으며 말했다.
“장보고 이항사 또 그새 버릇을 못 참고 일을 저질렀다면서?”
양화종 선장은 잘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선장으로 진급을 해서 그런지 얼굴에 여유가 넘쳐흘렀다. 전생에서 본 그의 얼굴과는 인상 자체가 달라져 있었다.
“양화종 선장님, 사고라니 그게 무슨 섭섭한 소린가요? 누가 들으면 제가 사고치고 다니는 줄 알겠네요. 전 사고를 수습하는 쪽입니다.”
“그래? 하하하. 뭐, 각자의 해석하는 관점이 다를 수도 있으니까.”
뭐? 해석의 관점?
양화종 선장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옆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김호영 일등항해사가 큰 팔을 내 목에 휘감았다.
“이 새끼! 이거 아직도 입은 살아 있네? 해적들 만나서 잔뜩 겁먹었을 줄 알았더니.”
나는 김호영 일등항해사의 말에 정색하며 대답했다.
“형, 잊었어요? 제가 누군지? 해신해운의 천재 항해사......”
“아, 예. 장보고 이등항해사님! 그건 잘 알고 있으니 그만하시고 이거나 보시죠. 자, 선물.”
내 말에 김호영 일등항해사가 대답하며 신문을 건넸다.
“신문?”
“그래, 인도네시아를 구한 영웅. 네가 좋아하는 언론에 다시 기사가 실렸던데 한번 봐.”
김호영 일등항해사가 웃음을 지어 보였다.
“뭔데 그래요?”
신문을 받아들고 읽어 내려가는 나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크게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해적들을 해결할 방법은?
- 선박 “M.V 줄리엣”호의 선교
“음, 뭐야.”
나는 김호영 이등항해사가 건네준 신문을 펼쳐 보았다.
이번 줄리엣호의 납치 사건에 대한 기사가 실린 한국 언론사들의 신문이었다.
[해신해운의 뛰어난 위기 관리능력 빛났다.]
[피랍 위기! 해신해운 피랍을 모면할 수 있었던 이유? ]
[국내 일등 선사 해신해운 세계에 저력을 선보이다.]
해신해운이 그동안 해적들의 위협에 대비한 내용들과 이번 피랍 사건에 보여준 해신해운의 대응을 칭찬하는 기사들이었다.
“음......”
만족스러운 내용이었지만 살짝 2프로 부족한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나는 마지막 기사를 펄쳐 보았다.
+
- 쉬핑뉴스 -
해신해운의 줄리엣호는 지난 XX일 XX시 XX분(한국시간) 수에즈운하를 벗어나 인도양을 이동하던 중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피랍됐다.
해적들이 막대한 몸값을 받아내기 용이한 한국 선박을 또다시 노렸다는 관측도 나왔다.
피랍 직후 해신해운은 정부의 도움을 얻어 소말리아 해역에서 해적퇴치 임무를 수행 중인 영국 해군의 도움을 요청했다. 마침내 XX일 오전 5시경 영국 해군은 전격적으로 구출 작전을 시작했다. 고속단정으로 줄리엣호에 승선한 특수전 요원들은 총격전 끝에 해적들을 제압하고 시타델에 피난해 있던 선원들을 모두 구출하는 데 성공했다.
구출과정에서 장병과 선원 중 사상자는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줄리엣호의 선원들은 신속한 대피로 단 한 명의 피해도 없이 무사히 구조됐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선원들이 해적 공격에 대비해 설치된 '시타델(Citadelㆍ긴급 피난처)'로 피신했던 것이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해신해운 관계자에 따르면 해신해운이 자사 선박들에 빠르게 시타델을 도입하게 된 것은 줄리엣호에 승선한 이등 항해사의 아이디어 때문이었다고 한다.
정부와 해신해운은 줄리엣호의 피랍 가능성이 제기돼 이날 내내 극도의 긴장감 속에 상황 판단에 총력을 기울였다.
해신해운 홍보팀 관계자는 그동안 해적들의 위험에 대비해 시타델과 각종 장비를 충원했다. 그리고 피랍 상황에 대비해 충분한 훈련을 실시해왔다고 밝혔다.
여기에 더해 해신해운이 자사 선박에 설치한 시타델은 일반 화물선과 달리 내부 구조가 복잡한 컨테이너선에 설치한 것이기 때문에 해적들이 시타델을 구분해낼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전했다.
실제로 소말리아 해적들이 선박의 선교(선장이 지휘하는 장소)까지 들어온 것으로 보여 선원들의 초기 대처가 결정적으로 유효한 사유였다고 평가된다.
이와 관련해 익명의 영국 해군 관계자는 외국 언론들을 상대로 한 브리핑에서 “줄리엣호의 선원들이 해적들이 승선을 저지하면서 시타델로 미리 피난한 것이 주요했던 것으로 판단된다.”며 “특히 해신해운의 이등항해사와 갑판 부원들이 대단한 활약을 했으며 이들은 동료 선원들이 인질로 잡히는 것을 막고 직접 해적 두목을 생포하기까지 하는 등 해적 제압에 실로 대단한 공헌을 했다.”고 밝혔다. (중략)
+
< 띠링! >
+ 당신의 명성이 크게 상승합니다. +
크! 기사가 좋네. 디테일이 살아있어!
‘그래 이거지. 진정한 언론은 이래야지.’
역시 해운물류 전문 언론이라고 하더니 기사의 내용이 달라! 기사 내용이 전문적이고 밀도가 있어!
이제야 답답한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신문을 읽고 있는 내 표정을 살피던 김호영 일등항해사가 말했다.
“좋아 죽네. 좋아 죽어. 관종이냐? 뭔 언론에 실리는 걸 이렇게 좋아해?”
“형! 언론에 실리는 것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이번에도 누구 하나 다치는 사람 없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서 기뻐하는 겁니다.”
“그러냐? 네가 그렇다면 뭐 그런 걸로 해야지 뭐.”
내가 정색하며 말하자 김호영 일등항해사는 웃어 보였다.
“그나저나 보고야, 다친 곳은 없어도 바로 한국으로 들어가야지? 응? 이번에는 사고 치지 말고 바로 가야지?”
“가야죠. 그런데 잠깐 일 좀 보고 바로 돌아가려고요.”
“뭐 일? 여기서?”
“네, 오랜만에 보고 싶은 친구가 있어서요.”
“두바이에?
“네, 오래전에 다시 방문하기로 약속했거든요.”
나는 오랜 친구의 얼굴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중동에서는 손님 대접을 크게 한다는데 기대해도 되겠지?’
오랜만에 친구를 만날 생각을 하니 옛날 생각이 나서 살짝 들뜨는 기분이었다.
* * *
- 두바이 시내 모처
두바이 항을 벗어나자마자 나는 택시를 잡아타고 시내에 위치한 AP(Arab Petroleum)사의 본사로 향했다.
‘그새 또 많이 변했구나.’
두바이는 오일과 천연가스 같은 자원으로 축적한 부를 통해 중동에서도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 나가고 있었다.
택시 안에서 창밖에서 두바이의 풍광을 바라보며 나는 지난번 방문을 잠시 떠올렸다.
AP사와 체결한 양해각서는 해신해운에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앞으로 3년 정도는 더 고유가 시대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양해각서 기간이 3년이 채 안 남았으니 그때는 유가 하락을 대비해야 했다.
그사이 택시는 AP사의 본사에 다다랐다. 택시가 AP사의 본사에 건물 앞에 도착했다.
“음? 뭐지?”
택시 안에서 나는 로비 앞에 여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사람들의 분위기가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양새였다.
‘오늘 AP사에 중요한 사람이라도 방문하는 건가?’
로비 앞의 사람들은 초조한 모습을 서 있다가 택시를 발견하자 우리 쪽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택시가 로비 앞에 정차하자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달려와 내가 타고 있는 뒷문을 열었다.
“해신해운에서 오신 미스터 장이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제가 장보고입니다.”
“반갑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네?”
“저는 나민 아세르 사장님 비서실에서 나왔습니다. 사장님과 약속을 하셨다고 도착하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를 기다리고 계셨다고요?”
“네, VIP 방문으로 극진하게 대접하라고 하셨습니다.”
뭐야? 이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나민 아세르의 비서라고 자신을 소개한 사내는 내가 택시에서 내리자 택시 문을 닫아 주었다.
“가방도 제게 주십시오.”
“아 괜찮습니다. 제가 들겠습니다.”
나는 과한 친절에 부끄러워하며 들고 있던 백팩을 어깨에 둘러멨다.
“네, 그럼 안내하겠습니다.”
나는 나민 아세르의 비서를 따라 AP사 본사 로비에 설치된 회전문을 통과했다.
그리고 로비로 들어서자.
“컥!”
나는 부끄러움에 몸서리를 치고 말았다.
로비에 설치된 대형 패널에는 [장보고 이등항해사님의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라는 글자가 떠올라 있었다.
나민 아세르의 비서는 내 반응을 보고 무척 흡족한 듯 미소를 크게 지었다.
‘좋아서 웃는 게 아니라고!’
부끄러워서 그런 건데 아무래도 이 사람은 단단히 착각한 모양이다.
얼굴이 살짝 붉어진 나는 나민 아세르의 비서를 따라 회의실을 향해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 * *
- AP 나민 아세르의 사장실
나는 나민 아세르를 비서를 따라가며 물었다. 지난번에 방문한 회의실이 아닌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것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음? 회의실로 가는 게 아니군요?”
“네, 사장님이 집무를 보시는 사장실에 마련된 응접실에서 편하게 보자고 하셨습니다.”
“아 그렇군요.”
“사장실에 마련된 응접실에 외부 손님을 모시는 것은 정말 이례적인 일입니다.”
비서의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걸은 우리는 사장실에 마련된 응접실에 도착했다.
똑똑똑
“사장님, 손님이 도착하셨습니다.”
“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나민 아세르가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내가 있는 쪽을 향해 걸어왔다.
부리부리한 인상의 전형적인 중동 미남인 나민 아세르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활짝 웃으며 다가섰다.
“미스터 장! 오랜만입니다.”
“네,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나민 아세르가 손을 들어 올리자 나도 악수를 위해 손을 내밀었다.
“켁!”
큰 체격의 나민 아세르가 악수 대신 나를 덥석 끌어안았다.
“하하하. 정말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대단한 활약을 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그렇습니까?”
“네, 밀항자 건도 그렇고 영국에서도 대단한 인맥을 또 형성하셨다지요. 그리고 이번에는 해적들까지 잡아냈다는 소식을 벌써 들었습니다.”
“하하하. 역시 대단하시네요. 벌써 그런 정보까지 입수하셨다니.”
나민 아세르는 내 말에 크게 웃어 보였다.
이쯤 되면 그는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
‘뭐? 스토커 그런 건 아니겠지?’
“그나저나 사장님, 축하드립니다. 싱가포르 유류 중계 터미널 사업이 성공적으로 추진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하하. 안 그래도 그 일 때문에 제가 칭찬을 많이 들었습니다. 미스터 장 말대로 세간의 예상을 깨고 우리가 낙찰되었습니다. 업계에서도 다들 의외라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네, 정말 축하드립니다.”
나는 전생을 통해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현생에서도 AP사가 입찰을 따내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나민 아세르가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사실 그 일도 미스터 장의 도움이 컸습니다.”
“네? 제가 무슨?”
“싱가포르에 현지 업체의 비리를 밝혀내고 전사의 윤리경영을 강화한 것이 입찰 과정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합니다. 싱가포르에서도 윤리 경영 이슈가 최근 부각되고 있다고 하더군요.”
“아 그렇습니까? 도움이 되었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나는 진심으로 기뻤다. 나를 친구로 대하는 나민 아세르에게 어찌되었든 크게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이 나를 즐겁게 했다. 그 일이 아니었어도 낙찰되었을 것이지만 말이다.
“여러 가지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제 친구 일도 그렇고......”
나민 아세르가 말을 흐렸다.
압둘 무바라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분명했다. 아직 조심스러운 상황. 우리는 이심전심으로 마음이 통했지만 굳이 그의 이름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나민 아세르가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이번에 해적 피랍 사건은 어떻게 된 겁니까?”
나는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쭉 설명하기 시작했다.
“정말 잘했군요. 일류선사인 해신해운은 미리 준비가 철저히 되어 있었군요. 이럴 줄 알았으면 우리도 해신해운과 거래를 늘려놓을 것을 그랬습니다.”
말하는 나민 아세르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 보였다.
나는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가 근심하는 이유.
최근 발생하는 소말리아 해적들의 위협으로 인해 가장 피해를 많이 보는 산업 중 하나가 정유 업계였다.
유조선은 선속이 상대적으로 느리고 건현(배의 높이)가 낮아 소말리아 해적들이 선호하는 선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