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3화 (73/200)

‘찰리가 없었으면 큰일 날 뻔 했어.’

싱가포르에서 흑룡회 놈들까지 찾아가서 구해낸 보람이 있었다.

삼항사 시절을 떠올리며 상념에 빠져 있는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김호태 선장이었다.

“장보고 이항사!”

“네. 선장님!”

“이리 좀 와보게.”

“네.”

나는 김호태 선장의 부름을 받고 그에게로 다가섰다.

“본사에서 온 이메일이야. 이것 좀 보게.”

그는 본사로부터 수신된 이메일을 나에게 건넸다.

“오호!”

나는 탄성을 질렀다.

이메일의 내용은 해적들의 피랍을 피해낸 특별포상으로 줄리엣 호의 선원들에게 두 달간 특별휴가와 특별 상여금이 주어질 계획이라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선장님, 그럼 두바이에서 교대하는 건가요?”

“그래. 교대해서 줄리엣 호를 수리 조선소로 운항할 선원들이 두바이 항으로 올 예정이라는군.”

하선 휴가는 언제나 기분 좋은 일.

그리고 마침 하선하는 곳이 두바이라니. 좋은 기억이 있는 곳이었다.

< 띠링! >

+

<상태창>

이름 : 장보고

나이 : 25세

클래스 : 항해사

세부클래스 : 이등항해사

직업레벨 : Lv.14

명성 : + 1555

스킬 : [항해술 Lv.11], [기관술 Lv.3], [태권도 Lv.5], [고무고무킥 Lv.6], [인명구조 Lv.7], [고소고발 Lv.5], [협상 Lv.7], [잠입 Lv.2]. [마도로스의 심장 Lv.6], [명사수 Lv.1]

칭호 : [수성의 달인], [인도네시아를 구한 영웅], [인도네시아의 국민 사위], [구조의 달인], [부산사나이], [용감한 시민], [최연소 이등항해사], [항로계획의 달인], [응급처치의 달인]

Remark: 당신의 명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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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 압둘 아라이

- 선박 “M.V 줄리엣”호의 선교

나는 방금 전에 떠오른 퀘스트 창을 살펴보고 있었다.

< 띠링 ! >

+

<메인 퀘스트(#08)를 시작합니다.>

시나리오 진행에 따른 메인 퀘스트를 진행합니다.

“해운업계를 위협하는 소말리아 해적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이용하는 암중의 세력이 커져가고 있습니다. 이들의 성장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세요!”

세부 퀘스트 : 해적

클리어 조건 : 해적세력의 성장을 저지

제한시간 : 제한 시간 없음

보상 : 명성 + 100, 사내 평가 상승, 글로벌 명성 상승

실패시 : ???

+

음? 클리어 조건이 특이한데?

해적세력의 성장을 저지할 수 있는 방법이라?

나라고 해서 해적들은 혼자 소탕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내가 아니라 MI6의 이안 요원이라도 그것을 불가능한 일.

하지만 꼭 내가 이 일을 직접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소말리아 해적들의 성장을 저지 계획을 세우고 방법을 마련하는 것은 어쩌면 나도 가능할지도 몰랐다.

물론 나 혼자서 하는 것은 아니다.

‘친구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다행히 그 부분은 큰 걱정은 없다.

이번 생애는 나도 꽤나 빵빵한 인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 * *

- 선박 “M.V 줄리엣”호의 격실

뚜벅 뚜벅.

이안 요원과 나는 압둘 아라이가 갇혀 있는 격실로 걸어가고 있었다.

“미스터 장, 직접 한다고요?”

“네, 제가 한번 해봐도 되겠습니까?”

“음, 뭐 크게 걱정되는 건 없긴 한데 굳이 심문까지 직접 할 필요가 있을까요?”

“저도 장래에 MI6 요원이 될지도 모르는 일 아닙니까?”

“······.”

이안 요원과 나는 어느새 압둘 아라이가 갇혀 있는 격실에 도착했다.

생포된 해적들은 현재 줄리엣호에 구금된 상태. 하지만 해적들은 두바이 항에 입항하는 대로 곧 윈스턴 처칠 함으로 인계될 예정.

영국 해군은 해적들을 구금하고 이후 우리나라 해군에 해적들의 신병을 인도할 예정이라고 밝혀왔다.

대한민국 영토로 취급되는 대한민국의 선박에서 검거된 범죄자들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형사재판을 받게 될 예정이었다.

따라서 압둘 아라이를 심문할 수 있는 기회는 지금밖에 없었다.

‘압둘 아라이가 뭔가 알고 있는 게 분명해.’

소말리아 해적 비즈니스의 배후와 관련된 실마리일지도 몰랐다.

그나마 다행인 점도 있었다. 그건 바로 심문의 상대가 압둘 아라이라는 것이다.

압둘 아라이는 나를 몰랐지만 나는 그에 대해 제법 아는 정보가 있었다.

나는 전생에 읽은 그의 회고록을 떠올렸다.

압둘 아라이는 전생에 대한민국 선적의 화물선인 “삼해 루비”호를 피랍했다가 청해부대에 붙잡힌 해적들 중 하나.

그는 다른 해적 4명과 함께 국내로 소환되어 부산에서 재판을 받았다. 당시 부산지방법원에서 열린 해적 재판은 전 국가적 관심을 받았다. 아니 다른 나라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재판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재판 과정에서는 압둘 아라이는 삼해 루비호 선장에게 총격을 가한 인물로 지목되었다.

그는 삼해 루비호의 선원들뿐만 아니라 동료 해적들에 의해서도 삼해 루비호의 선장에게 총격을 가한 범인으로 지목되었다.

그를 지목한 것은 당시 재판을 받는 해적 중에서 가장 어린 해적이었다.

당시 재판을 받는 해적들 중에는 우리나라로 귀화하고 싶다는 의향을 밝힌 미성년의 어린 해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 어린 해적이 법정에서 동료인 해적 압둘 아라이가 선장을 향해 총을 쐈다는 정황을 증언을 한 것.

압둘 아라이는 법정에서 “당시 선장이 총에 맞은 조타실에서는 총을 든 적도 없다”는 주장을 펼쳤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되었던 사건으로 소말리아 해적들에 대한 해적 사건이 국내에서 처음 진행되었기 때문에 해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화젯거리였다.

그리고 재판의 결과서가 선고되는 날.

당당하던 압둘 아라이는 고개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재판부는 압둘 아라이는 선장에게 총격을 가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하면서 중형인 무기징역형을 선고하였다.

선고 직전까지만 해도 재판장을 당당하게 응시하던 압둘 아라이는 재판장이 무기징역형을 선고하자 하늘이 무너지는 듯 한 표정을 지었다. 압둘 아라이가 전혀 예상치 못한 중형 판결이었다.

압둘 아라이는 재판 결과가 선고되자 이마에 손을 댔다가 내려놓은 뒤 고개를 크게 떨어뜨렸다. 그리고 그의 큰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압둘 아라이는 교도관의 팔에 의지한 채 겨우 법정을 빠져나갔다.

전생에 소말리아 해적 압둘 아라이는 무기징역형이 선고되어 우리나라 교도소에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신세였던 것이다.

재밌는 일은 그가 이후에 회고록을 집필했다는 것이다.

많은 시간이 흐른 후 압둘 아라이가 교도소에서 당시의 피랍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한 회고록을 출판했다.

압둘 아라이의 회고록 속에는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배우자와 쌍둥이 자녀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하는 내용이 있었던 것이다.

해적질을 하며 아이들뿐만 아니라 부모를 부양했던 압둘 아라이.

그는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한 내용을 담담하게 적어놓고 있었다. 잔혹한 해적이라 하여도 가족들에 대한 애틋한 감정은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이 사건은 항해사들 사이에서도 이슈가 되었던 사건이었다.

나는 해적 피랍 사건이 발생한 지 시간이 제법 흘렀지만 이 소말리아 해적이 교도소에서 책을 출판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의 회고록을 찾아보았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아마 쌍둥이 자녀가 있다고 했지?’

어쩌면 파고들 틈이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철문을 밀었다. 방 안으로 들어서는 내 눈에서는 냉정한 빛이 감돌고 있었다.

끼이익!

격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나를 뒤 따라오던 이안 요원이 격실 안쪽에서 문을 지키고 섰다.

압둘 아라이의 두 팔에는 수갑이 채워진 상황이었지만 혹시라도 도주를 시도할 수 있기 때문에 이안 요원이 출입구를 지키고 선 것.

이 격실에는 압둘 아라이만 있었다.

압둘 아라이는 다른 해적들과 달리 심문을 위해 따로 독방에 격리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나는 화가 잔뜩 난 표정을 짓고 있는 압둘 아라이에게 다가서며 말을 건넸다.

“압둘 아라이?”

“······.”

“대답을 하지 않을 셈이야?”

“······.”

“내가 원하는 대답은 별거 아니야. 자네 두목 샤크에 대한 정보.”

“······!”

“그리고 그에게 일거리를 주는 사람의 정체. 그것만 알려줘.”

내 말에 압둘 아라이는 화가 머리끝까지 난 듯 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대답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고개를 들어 올려 나를 노려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불과 몇 시간 전에 압둘 아라이는 나에게 무자비한 폭행을 당했다.

그는 아마도 나의 폭풍 발차기에 당한 기억을 떠올리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나는 그의 입을 열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 띠링! >

+ 스킬 [협상 Lv.7]을 사용합니다. +

- 설득력이 올라갑니다.

- 상대방이 당신의 말에 동요하기 시작합니다.

“이름 압둘 아라이. 나이 24세, 고향은 푼틀랜드 맞나?”

내가 그의 인적사항을 줄줄 읽어나가자 압둘 아라이의 동공이 세차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내가 그의 인적사항을 알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기 때문.

그건 그의 동료들이 이미 투항했다는 뜻과도 다르지 않았다.

물론 내가 정보를 입수한 방법은 다른 경로. 전생에 그의 회고록에서 봤던 정보를 떠올린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압둘 아라이는 몹시 화가 난 듯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랐다.

‘이 배신자들!’

압둘 아라이는 수갑이 찬 손이 발발 떨리도록 성을 내고 있었다. 아마도 자신을 배신한 동료들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는 한참을 나를 노려보더니 입을 열기 시작했다.

“Who the hell are you?(너는 도대체 누구냐?)”

압둘 아라이는 화가 나 노기를 드러낸 얼굴.

나는 대답했다.

“압둘 아라이. 너도 제임스 본드가 나오는 영화는 봤겠지?”

“무슨 헛소리냐?”

“제임스 본드가 소속된 기관이 어딘지 아나?”

“······?”

“그래, 나는 MI6 요원이다.”

음.

원래 내가 말하려고 했던 정확한 말은 “나는 (장래에) MI6 요원(이 될 수도 있는 사람)이다”라는 것이었지만 나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몇몇 단어를 생략하는 융통성을 발휘했다.

“큽!”

내 등 뒤에서 눈치 없는 사내가 웃음을 찾는 소리가 들려왔다.

공무원을 사칭하는 것은 큰 범죄였지만 MI6와 나의 유대감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그냥 넘어가줄 것이 분명했다.

나는 손을 들어 올려 내 뒤에 서있는 이안요원을 가리켰다.

내 손가락질에 이안도 당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저기 뒷문을 지키고 있는 사람 보이지?”

압둘 아라이가 고개를 들어 이안 요원을 바라보았다.

“그래, 저 덩치 말이야. 살인 면허를 받은 사내지 009(더블오나인)이라고 불리는 사람이야.”

내 말을 듣고 압둘 아라이가 눈을 크게 부릅떴다.

그는 이 방에서 자신이 목숨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런 사내가 내 뒤에서 문을 지키고 있지. 그럼 내가 어떤 사람이겠나?”

압둘 아라이는 동공이 세차게 흔들리더니 고개를 떨어뜨렸다.

‘거의 다 됐구나.’

그의 표정은 불안해 보였다. 나는 그의 불안한 심정에 쐐기를 박기로 결심했다. 조금 잔인한 방법이지만 말이다.

“음.”

나는 손목을 들어 올려 시계를 바라보았다. 진지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을 이어갔다.

“압둘 아라이. 이제 지금쯤이면 다른 방에서는 내 부하들이 너의 동료들을 심문을 시작할 계획이야.”

“······!”

“자네에게 주어진 시간은 5분도 채 남지 않았지.”

“······?”

“만약, 오 분 안에 말하지 않으면 기회가 다른 해적들에게 넘어갈지도 몰라.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자네는 두 번 다시 아이들을 만나지 못하게 될 거야.”

“무, 무슨 소리냐?”

“쌍둥이 자녀가 있잖아.”

“······!”

“이대로 끌려가서 재판을 받게 된다면 말이야. 무기징역 이상의 형을 받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란 말이지.”

압둘 아라이의 동공이 세차게 흔들렸다.

“수사에 협조하게. 그게 유일하게 살길이야.”

힘들 버텨오던 압둘 아라이의 멘탈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굳게 닫혀있던 압둘 아라이의 입이 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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