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7화 (67/200)

“이항사님? 뭡니까 방금 그 발차기는 태권도?”

“이건, 헥토파스칼킥이다.”

“네? 뭐, 무슨 킥?”

“우리나라 전통 발차기로 90 km로 달리는 자동차에 박힐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는 킥이지.”

“…….”

나를 바라보는 찰리의 표정이 심상치 않게 느껴졌다. 나의 정신 상태를 의심하는 그런 표정.

탕탕탕!

“엎드려!”

드르륵! 드르륵!

해적들은 화가 잔뜩 난 모양. 우리가 서있는 곳을 향해 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탕탕탕!

난간에 맞은 총알이 튀어 올랐다.

우리는 젖은 낙엽처럼 빠르게 갑판 위로 엎드렸다. 바짝 엎드려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화가 많이난 것인지 총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찰리가 말했다.

“이항사님, 뭔가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그래서 준비한 물건이 있지. 흐흐흐.”

“네?”

“찰리, 이거!”

“······! 이건?”

“그래, 원거리 공격! 뭐든 투척을 해봐야지! 크크크.”

찰리도 내가 건네준 물건을 받아들고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에게도 익숙한 물건이었다.

삼등항해사 시절 싱가폴 겔랑 창고에 쳐들어가 찰리를 구해올 때 사용한 흉악한 무기. 천하의 흑룡회 놈들도 겁을 먹은 그 무기가 내 백팩 안에 가득했기 때문.

작은 페트병에 기름을 가득 채웠다. 원거리 투척 무기로 사용할 계획.

찰리와 나는 좌우 두 방향으로 나눠서 슬금슬금 기어갔다. 우리는 해적들이 총질이 멈추는 시기를 기다리는 중.

투척할 타이밍을 보고 있던 나는 소리쳤다.

“찰리 던져!”

찰리는 연달아 몇 개의 통을 던졌지만 하나도 맞추지 못했다.

찰리는 의외로 겁이 많은지 고개를 밖으로 빼들지 못했다. 하긴 예전의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해적들이 총을 갈기는 와중에 이런 빈약한(?) 무기로 상대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미친 짓이었다. 하지만 이런 짓이라도 하지 않으면 해적들을 상대할 방법도 없었다.

‘그나저나 방망이만 들고 다니더니 타자 체질인가? 투수에는 영 재능이 없는 모양이군?’

이번에 내 차례다.

내가 부산 출신이다! 고향팀은 우승은 못해도 야구에는 진심인 사람들이 모습이 떠올랐다.

< 띠링! >

+ 칭호 [부산사나이] 효과가 발동합니다. +

+ 스킬 [마도로스의 신방 Lv.5]을 사용합니다. +

- 마음이 차분해지는 효과가 발생합니다.

- 긴장하지 않습니다.

+ 명사수 경험치가 상승합니다. +

나는 마치 9회말 투아웃 상황에 나서는 투수처럼 3개의 기름통을 신중하게 투척했다.

“크하하하! 쌤통이다. 이놈들!”

나는 총 3개의 기름통 중 두 개를 보트에 명중 시켰다.

기름을 뒤집어 쓴 해적들이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뭐라 뭐라 떠들어대고 있었다.

알아듣진 못했지만 심한 욕을 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영어로도 대충 죽여 버리겠다(I kill you!) 뭐 이런 험한 말들이 들려왔다.

기름을 뒤집어 쓴 해적들은 보트를 살짝 떨어뜨렸다.

아마도 바다에 빠진 해적들을 구출하기 위해 배를 돌리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나는 보트가 뒤로 크게 도는 것을 확인하고 고개를 돌려 물었다.

“찰리 잘했다! 언제부터 여기 있었던 거야?”

“CCTV로 보다가 선미 쪽으로 붙는 보트를 보고 넘어오는 놈들이 있을 것 같아서 달려왔습니다.”

나는 별다른 말없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듬직한 찰리의 어깨를 살짝 두들겼다.

찰리는 예나 지금이나 믿음직한 바다 사나이였다.

고개를 살짝 내밀어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해적들은 바다로 떨어진 동료들을 찾기 위해 보트를 돌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잠시 한숨 돌릴 수 있는 타이밍.

나는 무전기를 꺼내 들어 조셉을 호출하기 시작했다.

“조셉!”

나는 무전기를 들고 조셉을 불렀다.

지지직.

무전기 소리가 울리더니 조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이항사님!”

“선교에는 별다른 일 없지?”

“네!”

“그래, 다행이다.”

“이항사님은 괜찮으세요?”

“나랑 찰리는 둘 다 무사하다.”

“선교에서 주위에 해적 보트들이 보여?”

“네, 좌현, 우현 그리고 선미 쪽에서 크게 한 바퀴 돌고 있어요! 돌아서 쫓아올 거 같아요.”

‘끙. 포기를 모르는 놈들이네.’

이쯤 되면 포기할 법도 한데. 제법 끈기가 있는 놈들이 분명했다.

지독한 놈들.

아니 어쩌면 우리한테 한바탕 골탕을 먹은 터라 단단히 화가 났을지도 모른다.

“조셉! 본선 위치는? 아직도 더 가야 되나?”

“목표로 잡았던 곳 까지는 거의 온 것 같습니다.”

“주위에 보트들은 얼마나 떨어져 있어?”

“이항사님! 해적들이 다시 추격을 시작했습니다!”

나는 쌍안경을 꺼내 들어 선미 쪽으로 붙고 있는 보트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헉!

“이 미친놈들이!”

나는 쌍안경으로 해적들을 살피다가 버럭 소리를 크게 질렀다.

“이항사님 무슨 일입니까?”

나를 바라보며 찰리가 물었다. 좀처럼 당황하지 않는 내가 소리를 버럭 지르자 그도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RPG!”

“네?”

“완전 미친놈들이야. 저 미친놈들이 RPG를 꺼내들었다.”

쌍안경을 건네주자 찰리도 해적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어휴, 진짜네. 이항사님, 이제 어떡하죠?”

찰리도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해적들의 얼굴 표정은 멀어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해적들은 단단히 화가 났다는 것은 여기서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제법 잘 버텨왔다.

추격당하면서도 꽤나 먼 거리를 이동했고 애초에 목표로 생각한 곳 근처까지 다다랐다.

‘그래도 조금만 더 비티면 저놈들도 포기하지 않을까?’

하지만 더 이상 해적의 심기를 거스르면 이 미친놈들이 우리 선박을 향해 RPG를 쏴버릴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그래, 위험하다. 혹시라도 선박의 기관이 파괴되거나 선체에 구멍이라도 생기는 날에는 무슨 상황이 생길지 몰라.’

애초에 목표로 한 지점 근처 까지 다 왔다니까 여기까지만 하는 게 좋겠다.

더 이상 해적의 심기를 거스르면 선박을 향해 RPG를 쏴버릴지도 모르는 상황.

해적들이 RPG를 꺼내든 이상 시타델로 피날할 타이밍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박이 파손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선원들이 피랍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

나는 다시 무전기를 꺼내 들어 조셉을 호출했다.

“조셉!”

“써!”

“이제 플랜B를 시작한다.”

“지금요?”

“그래, 기관정지하고 시동키 뽑아서 들고 와. 키도 잘 잠가놓고!”

“네! 알겠습니다.”

“시타델 앞에서 만나자. 마무리 하고 빨리 달려와.”

“네! 바로 갈게요.”

무전을 마친 나는 고개를 돌려 찰리를 바라보았다.

“찰리도 들었지? 빨리 시타델로 대피하자.”

“네, 이항사님 그런데 아직 좀 더 버틸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찰리는 손에 들고 있는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며 말했다.

“생각보다 할 만한데요?”

“음, 승선을 저지하는 것만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저놈들이 화가 나면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선교로 RPG를 쏴버리거나 배 엔진 쪽을 쏴버리면 선박의 안전에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지.”

“그렇군요. 이 미친놈들이 선체를 향해 안쏜다는 보장이 없으니.”

“그래, 그리고 해적들이 배에 올라 탄 다음에 대피하면 시타델 위치가 간파될 위험도 있으니까. 그러면 진짜 끝장이야. 지금 먼저 움직여야 해.”

“네, 알겠습니다.”

찰리는 고개를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말없이 빠르게 시타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소말리아 해적들 중에는 선박에 설치된 시타델에 침입하기 위한 금속절단기까지 휴대하고 다니는 놈들도 있다.

지금 줄리엣 호를 공격하고 있는 놈들이 그런 장비까지 휴대하고 이곳에 온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배에 실려 있는 컨테이너의 개수는 현재 6,000개가 넘는 상황.

외부에서 보면 일반 컨테이너와 똑같이 생긴 시타델의 위치를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은 이 배에 승선한 경력이 있는 선원들 밖에 없다.

처음 올라온 이 대형 선박에서 컨테이너 모양의 시타델 위치를 해적들이 찾아낼 가능성은 매우 희박할 것이 분명했다.

‘운에 맡겨야지.’

아니 운이 아니라 확률에 맡기는 건가?

해적들이 시타델을 찾을 확률보다 찾지 못할 확률이 훨씬 높았다. 6천분의 1의 확률인데 이걸 찾아낼 가능성은 없을 것이 분명했다.

해적들이 시타델을 찾지 못하는 경우에도 한 가지 문제가 있다.

해적들이 선박에 분풀이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선박의 피랍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항해장비나 선내계기 등을 고의로 파괴하거나 선체에 불을 지른 사례도 종종 보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놈들이 그런 미친놈들은 아니길 바라는 수밖에. 아니 그 전에 구조대가 도착하길 빌어야지.’

나는 지금 이 순간 바다의 신이 있다면 빌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영도 박수의 점집이 생각났다.

바다의 신이 있다면.

‘신이시여! 하느님 아니 포세이돈, 용왕님! 아니면 해신이고 뭐고 간에 바다를 수호하는 신이 진짜로 있다면 저 썩을 놈들을 꼭 벌해 주십시오.’

나는 달려가며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귀신들은 뭐하냐! 저 놈들 안 잡아 가고!

* * *

- 선박 “M.V. 줄리엣”호의 시타델 입구 앞

나는 찰리와 함께 시타델 입구에서 조셉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셉이 빠르게 달려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저렇게 빠르게 잘 달리는 걸 보면 누가 천식환자라고 생각할까?’

조셉은 정말 빠른 속도로 달려왔다. 숨도 별로 차지 않는 눈치.

“조셉, 키는?”

“여기 있습니다.”

조셉이 고개를 끄덕이며 줄리엣호의 시동키를 내게 건넸다.

“그래, 기관도 잘 정지시켜 놨지?”

“네, 말씀하신대로 했습니다.”

“그래, 빨리 들어가자.”

나는 입구에 문을 두들겼다.

시타델에 현재 사람들이 먼저 들어가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안에서 열어주지 않으면 진입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탕탕탕!

“선장님, 문 좀 열어주세요.”

“······.”

시타델 안쪽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피랍? or 소문?

- 선박 “M.V. 줄리엣”호의 시타델 앞

뭐야?

‘안 열어주면 완전 코미디 찍은 건데.’

급한 마음에 땀이 삐질 흘렀다.

“써, 패스워드 패스워드!”

조셉이 말을 건넸다.

‘아! 암구호가 있었지.’

내가 문을 두들겨도 시타델 안에 있는 사람들이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은 이유는 미리 짜놓은 암구호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약속대로 다시 강하게 문을 두들겼다.

탕탕탕 탕탕!

우리가 약속한 신호음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바로 그 리듬.

문을 두들긴 후 나는 외쳤다.

“대한민국!”

탕탕탕 탕탕!

탈칵!

약속된 신호음이 울려 퍼지자. 안에서 잠금 장치를 해제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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