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4화 (64/200)

큰 움직임이 없어 보이는 선박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우리의 항로계획을 미리 알고 있는 것처럼 대기하고 있는 모양새.

‘마치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네.’

그리고 수에즈운하청장의 말이 떠올랐다.

여러 정황들을 종합하면 지금 이 시간 이곳에 어선이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수상한 일이다.

나는 쌍안경을 들고 수평선을 부분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바다는 제법 파도가 높았다.

“음?”

어선이 위치한 방향. 높은 파고 위로 이질적인 검은 물체가 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눈을 잔뜩 찌푸리며 전방을 주시했다.

“뭐가 보이는데.”

내가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란 곽호진 삼등항해사가 근처로 다가왔다.

그도 쌍안경을 들어 살피더니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이, 이항사님! 저, 저기!”

곽호진 삼등항해사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의 손도 내가 발견한 검은 물체를 가리키고 있었다.

“보트다!”

검은 물체의 정체는 보트였다. 검은 물체 위로 금속성 물질이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조, 조셉! 좌현으로 최대한 꺾어! 변침!”

곽진호 삼등항해사가 조타수 조셉을 바라보며 다급하게 외쳤다.

조셉이 삼등항해사의 지시에 따로 키를 좌현으로 변침하려는 순간.

“조셉 스탑!”

나는 큰 소리로 외쳤다.

항로에 선박, 그리고 다가오는 보트?

전생에 해적들에게 추격당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 띠링! >

+

<메인 퀘스트(#07)를 시작합니다.>

시나리오 진행에 따른 메인 퀘스트를 진행합니다.

“선박을 위협하는 해적들이 있습니다. 해적들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세요!”

세부 퀘스트 : 해적

클리어 조건 : 피랍당하지 않기 (0/3)

제한시간 : 해적 퇴각 전까지

보상 : 명성 + 50, 사내 평가 상승, 글로벌 명성 상승

실패시 : 회사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 명성 - 200 등

+

눈앞에 궤스트 창이 떠올랐다.

‘이번에는 클리어 조건이 좀 다른데?’

+ 클리어 조건 : 피랍당하지 않기 (0/3) +

‘0/3은 횟수인가?’

횟수가 아니라면.

‘혹시 해적들이 타고 있는 선박의 수?’

양동작전이구나!

나는 전생에서 경험한 해적들의 추격전이 떠올랐다.

해적들이 고속보트를 나눠 타고 오랜 시간 쫓아 왔다. 우리는 해적들을 떨치기 위해서 하루가 넘게 최고 속도로 선박을 운항했다.

당시에는 그나마 멀리서 발견했기에 접근을 허락하지 않고 도망칠 수 있었다.

나는 쌍안경을 들고 줄리엣호의 좌현을 부지런히 살피기 시작했다.

“음!”

그리고 처음 발견한 고속보트보다 훨씬 더 가까운 거리까지 접근한 고속보트가 눈에 들어왔다.

이들은 어선으로 위장한 모선으로 우리의 시선을 유도하면서 검은 보트를 이용해 돌아서 접근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 분명했다.

줄리엣호의 양쪽으로 해적들이 타고 있는 고속보트가 우리를 추격하고 있는 상황.

삼등항해사의 말대로 좌현으로 항로를 변경하면 더 빨리 보트에 추격당할 위험이 있었다.

나는 조셉을 바라보며 외쳤다.

“조셉 우현 5도! 선박 속도는 최고속력으로!”

“예 써!”

조셉이 크게 외치며 키를 돌렸다.

“실항사!”

“네, 이항사님!”

“당장 선장실로 달려가서 선장님을 모셔오도록!”

“네”

이대성 실항사가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달리기 시작했다.

곽호진 삼등항해사는 얼이 빠진 표정이었다.

“삼항사 뭐해! 정신 차려!”

“네? 아, 네! 이항사님.”

“비상 신호를 울리고 전 선원을 선교로 집결시켜!”

“네? 네! 알겠습니다.”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는 삼등항해사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조타키를 잡고 있는 조셉에게 다가섰다. 나와 여러 사건을 겪은 조셉도 긴장한 표정. 미소를 찾아 볼 수 없었다.

“조셉, 양쪽 배들 사이의 가운데로 빠르게 지나갈 거야. 집중해야 된다. 내가 말하는 대로 정확하게 키를 잡아야 돼.”

“예, 써(Sir)"

조셉도 해적들의 출현에 긴장한 듯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나는 손을 들어 조셉의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조셉, 너무 걱정하지 마. 이번에도 다 잘 될 거야.”

그제야 조셉도 긴장이 풀린 듯 씩 웃어보였다.

조셉은 그 동안 내가 해결한 말도 안 되는 일을 옆에서 직접 목격한 상황이니 나에 대한 신뢰가 매우 높았던 것이다.

“예, 써(Sir)!"

나는 양쪽으로 우리를 추격해 오는 보트를 바라보며 앞으로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위급 상황이니 적절한 스킬을 사용해야 되는데.’

나는 상태창을 소환했다. 그리고 유용한 스킬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 띠링! >

+

<상태창>

이름 : 장보고

나이 : 25세

클래스 : 항해사

세부클래스 : 이등항해사

직업레벨 : Lv.13

명성 : + 1225

스킬 : [항해술 Lv.10], [기관술 Lv.3], [태권도 Lv.4], [고무고무킥 Lv.5], [인명구조 Lv.7], [고소고발 Lv.5], [협상 Lv.6], [잠입 Lv.2]. [마도로스의 심장 Lv.5]

칭호 : [수성의 달인], [인도네시아를 구한 영웅], [인도네시아의 국민 사위], [구조의 달인], [부산사나이], [용감한 시민], [최연소 이등항해사], [항로계획의 달인], [응급처치의 달인]

Remark: 일등항해사로 승진하기 위해서는 경험치가 필요합니다.

+

‘이게 좋겠다.’

< 띠링! >

+ 스킬 [항해술 Lv.10]을 사용합니다. +

- 해류를 읽는 능력이 상승합니다.

- 선박의 속도가 향상합니다.

+ 스킬 [기관술 Lv.2]을 사용합니다. +

- 선박의 효율이 상승합니다.

- 선박의 기관의 내구성이 상승합니다.

+ 스킬 [마도로스의 심장 Lv.5]을 사용합니다. +

- 평정심을 유지합니다.

- 다급한 상황에서도 이성과 의지를 잃지 않습니다.

+ 칭호 [용감한 시민], [항로계획의 달인], [수성의 달인]의 효과가 발동합니다. +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호랑이 굴에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했다.’

나는 머릿속으로 시나리오를 여러 번 복기하기 시작했다.

* * *

- 선박 “M.V. 줄리엣”호의 선교

선원들이 전부 모이는 데는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이, 이항사 무슨 소리야 해적이라니!?”

김호태 선장의 다급한 목소리. 약간 흥분한 듯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본선 양쪽으로 보트들이 있습니다. 본선을 향해 접근하는 보트에는 해적들이 타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헉! 진짜야?”

웅성웅성.

해적이라는 말을 들은 선원들의 얼굴이 급격하게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김호태 선장이 물었다.

“이렇게 먼 바다까지 보트를 타고 온다는 게 말이 되나? 그게 가능한 일이야? 이런 저런 소형 보트를 타고 온다고?”

김호태 선장은 다급하게 질문을 쏟아냈다. 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대답했다.

“항로 오른쪽으로 어선으로 모이는 선박이 관찰됩니다. 아마도 어선을 위장한 해적선들의 모선(Mothership)인 것 같습니다.”

“으으음!”

김호태 선장이 신음성을 흘렸다.

곽호진 삼등항해사가 나를 보며 물었다.

“이항사님, 그래도 컨테이너선이니까 속도가 빠르잖아 추격이 쉽진 않겠죠?”

“발견이 너무 늦었어. 컨테이너선은 건현(높이)이 높으니까 쉽게 올라오진 못하겠지만 추격을 뿌리치진 못할 가능성이 높아.”

내 말에 곽호진 삼등항해사가 고개를 살짝 숙였다. 견시를 소홀히 한 것은 당직 사관의 책임이었기 때문.

항로에 수상한 선박이 있다는 것을 안 순간 본선의 항로를 크게 변경해 우회하거나 선장에게 즉시 알렸어야 했다.

‘이미 지난 일이다.’

하지만 벌써 과거의 일. 이제 와서 후회해봐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삼항사, 다 지난일이야. 지금이라도 대처를 잘해야지.”

내말에 삼등항해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선장님, 지금부터 비상계획을 잘 세워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이항사 무슨 좋은 생각이 있는가?”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모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그 동안 내가 각종 사건 사고에서 활약해온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다들 기대하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어갔다. 긴장한 얼굴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우선, 저도 요술방망이 같은 건 없습니다.”

“요술 방망이?”

내가 실없는 소리를 하자 사람들이 억지로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들도 내가 사람들을 긴장을 풀게 하려고 쓸데없는 소리를 한 것이라는 것을 눈치 챈 것이다.

“지금까지의 사례들을 보면 해적들이 선속(선박의 항해속도) 18노트 이상의 선박을 추격해서 피랍 하는데 성공한 예는 없습니다.”

“으음! 역시!”

“후.”

“다행이야!”

내 말에 다들 안도하는 표정.

하지만 나는 분명히 말했다. ‘지금까지의 사례’라고.

“문제는 우리 줄리엣호가 그 첫 사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

“으으음!”

“큰일이야.”

잠시나마 안심했던 사람들의 표정이 내말에 다시 급격히 어두워졌다.

피랍을 피하는 방법

나는 선교에 모인 이들을 바라보며 말을 계속 이어갔다.

“보통 해적들은 컨테이너선과 같이 건현(수면에서 상갑판 위까지 이르는 뱃전의 높이)이 8m 이상인 선박을 공격 대상으로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배에 올라타기가 힘들기 때문 아닙니까?”

곽호진 삼등항해사가 말했다.

“삼항사 말이 맞습니다. 특히 본선과 같은 대형 컨테이너선은 최대속력이 24노트 이상도 가능하고 건현이 10m를 넘습니다. 해적들이 공격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와아!”

“다행이다!”

내말에 다시 선원들이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이제 그만해 제발!’

내가 말을 다시 시작하려고 하니 사람들은 이제 내 입을 막아버리고 싶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해적들은 아마도 선원 거주구역 외부비상계단을 이용해서 승선을 시도하려고 할 것입니다. 이곳을 이용해서 승선하려는 해적들은 물대포를 이용하면 저지하는 것도 가능할 것입니다.”

“······.”

사람들은 나의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리며 바라보았다.

“하지만 해적들에게는 무기가 있습니다.”

“······.”

“이들은 선원들이나 선교를 향해 위협사격을 할 것입니다. 소총을 들고 위협하는 경우에는 그래도 괜찮습니다. 문제는 RPG 같은 무기를 들고 온 경우입니다. 이들을 자극하면 화가나서 RPG를 선박을 향해 쏘는 경우가 최악의 경우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선박이나 선원들에게 큰 피해를 있을 수 있습니다.”

이제 내 제법 긴 설명도 결론에 다다르고 있었다.

“따라서, 우리 계획은 선원들의 안전을 확보되는 순간까지 최대한 회피조선(지그재그로 선박을 운항하여 해적들의 승선을 막는 조선 방법을 말함)을 하며 육지 근처로 이동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해적들의 승선을 최대한 막으면서 항해를 하다가 해적들이 RPG 등을 휴대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면 최후 수단으로 시타델로 피난할 것입니다. 그리고 구조대가 올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계획입니다.”

내 말에 몇 명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항사님, 본선이 컨테이너선이라 건현이 높아 해적들이 파도 치는 바다위에서 승선하는 게 쉽지 않을 텐데 마지막까지 승선을 막는게 더 좋은 방법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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