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3화 (63/200)

수에즈운하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했다.

“동아시아 국가 선적의 선박을 목표로 피랍 시도가 있을 것이라는 첩보가 있었습니다.”

나는 그 말에 깜짝 놀라 물었다.

“네? 그건 어디서 얻은 정보입니까?”

수에즈운하청장은 대답 대신 살짝 웃어보였다.

‘아차! 바보 같은 질문이었네.’

정보원에 대해서 물어보다니.

정보원의 신분을 누설할 리가 없질 않은가.

나는 수에즈운하청장에게 물었다.

“동아시아 국가 선적의 선박이라면......?”

“아무래도 선원들이나 선박들에 대한 인질금을 충분히 지급할 수 있는 여력이 되는 국가의 선박들이겠죠.”

“그렇다면 아무래도 한국이나 일본?”

“네, 저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됩니다.”

“…….”

수에즈운하청장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미스터장, 이 줄리엣호의 보험사는 어디입니까?”

나는 곰곰이 선박에 비치된 보험증서를 떠올렸다.

줄리엣호는 한국 국적의 대형 손해보험사에 선체보험과 해적위험을 대비한 보험을 들고 있었다.

내가 똥그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자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미스터 장, 수에즈운하를 빠져나갈 때 각별히 조심하십시오."

“…….”

나는 수에즈운하청장을 향해 고개를 꾸뻑 숙였다.

“청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가 힘들게 얻은 정보를 전해 준 것이 고마웠기 때문이다.

밀항자 압둘 무바라크 일을 무사히 마친 것에 대한 보답일까?

‘아니다.’

이미 그 대가는 받았다. 그 보답으로 해신해운 선박은 수에즈운하를 지나갈 때 최저 요율을 적용받고 있었다.

어쩌면 나에 대한 순수한 호의일지도 몰랐다.

현생에서 쌓은 인연들의 무게가 가볍지 않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 * *

- 선박 “M.V. 줄리엣”호의 선교

이제 곧 줄리엣호는 수에즈운하를 빠져 나갈 예정이다.

이 배의 항해사들이 모두 선교에 모여있었다.

나는 선교에 모인 선장과 항해사들을 바라보며 제법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장보고 이항사, 무슨 의견이 있다고?”

김호태 선장이 나를 보며 물었다.

김호태 선장은 매너가 좋고, 유머감각을 갖춘 젊은 선장. 하지만 조심성이 많은 탓인지 우유부단한 면이 없지 않았다.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항차에서는 누구보다 좋은 선장님이지만 돌발 상황이 발생하는 사고에 빠르게 대처하는 유형의 사람은 아니었다.

다행인 점은 나에 대한 신뢰가 매우 높다는 점.

보통 승선경험이 풍부한 선장들은 자신들의 승선경험을 근거로 항해사들의 의견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김호태 선장은 우유부단한 성격 탓인지 항해사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성격.

그의 단점이자 장점이었다.

나는 김호태 선장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주변의 항해사들을 바라보았다.

“네, 선장님. 이번에 수에즈운하를 벗어나서 운항할 때 조심해야 할것 같습니다.”

“아데만 옆을 지날 때 말인가?”

“네, 그런데 아덴만(아바리아반도의 예멘과 동아프리카의 소말리아 사이에 위치한 만)을 통과할 때 뿐만 아니라 충분히 벗어나기 전까지는 긴장을 놓으면 안될 것 같습니다.”

“음, 그 이유는? 소말리아 해적 때문인가?”

“네.”

김호태 선장은 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삼등항해사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데 장보고 이항사님, 제가 듣기로는 최근 소말리아 해적들 활동이 잠잠하다고 하던데요?”

“삼항사 말도 맞다. 한동안 잠잠하더니 최근에 다시 활발히 활동을 재개한 모양이야.”

내 말에 삼등항해사가 신기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물었다.

“장보고 이항사님은 그런 정보를 도대체 어디서 듣는 겁니까?”

“음? 뭐 이곳저곳 듣는 곳이 있지. 그건 왜?”

“그냥, 신기해서요. 하하하.”

삼항사 곽호진이 싱거운 표정으로 웃었다.

그는 나와는 기수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삼항사로 내 학교 후배였다.

대화를 듣던 김호태 선장이 말했다.

“그래 다들 조심하는 게 좋겠네. 우선 당직사관들은 통항로는 반드시 준수하게 IRTC(internationally Recommended transit Corridor, 아데만 소말리아 북쪽으로 100 마일 정도 떨어진 곳으로 해적위험을 피하기 위해 권고되는 통항로를 말함)를 벗어나는 일이 없도록.”

“네!”

선장의 말에 항해사들이 크게 대답했다.

나는 선교를 벗어나려는 삼항사를 조용히 불렀다.

“삼항사!”

“네, 이항사님.”

곽호진 삼등항해사가 나에게 다가오자 그 뒤로 이대성 실항사가 웃으며 졸졸 따라왔다.

실항사는 하나라도 더 배울 생각으로 귀를 쫑긋 세우고 우리 대화를 듣고 있었다.

“삼항사, 아덴만 지날 때 IRTC 벗어나지 않도록 하라는 선장님 말 잘 들었지?”

“네, 이항사님.”

“그래, 500마일(930킬로미터 정도)되니까 2일 이상 항해해야 되니 당직할 때는 항상 긴장을 놓지 말고.”

“알겠습니다.”

“그리고, 아덴만을 벗어나더라도 배의 속력을 떨어뜨리면 안 돼. 기관실과 이야기해 해서 최대한 빠른 속력으로 항상 유지하고.”

“아, 이항사님 알았다고요.”

“뭐?”

“진짜 걱정이 많으시네. 내가 무슨 초임 삼항사도 아니고. 하하하.”

삼등항해사가 웃으며 시원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내 불안감은 가시지 않고 있었다.

자기도 다 아는데 왜 귀찮게 여러 번 이야기 하냐는 뜻이겠지.

새끼야! 니가 모르는게 있다고.

‘그나저나 벌써 꼰대가 되어버린 기분이네.’

아니 원래 전생에서는 이미 꼰대였지.

이상하게도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뭐지, 이 기분은?’

수에즈운하청장으로부터 들은 경고가 있었기 때문인가?

나는 좀처럼 가시지 않은 불안감을 뒤로 한 채 찝찝한 기분으로 선교를 떠났다.

* * *

- 선박 “M.V. 줄리엣”호 장보고 선실

며칠 뒤.

나는 당직근무를 마치고 선실 침대에 누워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중이었다.

누웠으나 잠은 오지 않아 책을 보며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상황.

‘뭐, 그래도 별일이 없어서 다행이네.’

줄리엣호는 아덴만을 빠른 속도로 통과했다.

지난 며칠 동안 전속력을 운항한 결과 빠르게 위험지역을 벗어나고 있었다.

빠른 속도로 배를 운항하고 있었기 때문에 선박의 승무원들도 다들 긴장한 상태로 근무를 계속 하고 있는 상황.

말은 안해도 모두 피곤한 상태.

그래도 이제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소말리아 해적들의 위험 구역은 벗어나고 있는 상황이니 한시름 덜 수 있었다.

‘사실 이런 순간이 제일 위험한데.’

문제는 항상 이런 순간에 발생한다.

전생에 해적들에게 쫓겨본 경험이 떠올랐다. 해적들이 주로 노리는 시간은 일출이나 일몰.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다.

해적들의 공격 패턴이 알려지자 이들은 역으로 다른 시간을 노려서 공격하기도 했다.

그때였다. 복도에서 사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똑똑똑!

선실 방문 밖으로 노크소리가 돌렸다.

“장보고 이항사님! 이대성 실항사입니다.”

“음? 그래 무슨일이야. 문 열려있으니 들어와.”

나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방으로 들어오는 이대성 실항사를 바라보며 물었다.

“무슨 일이야?"

“저, 이항사님! 선교로 한번 올라가보시게 좋을 것 같습니다.”

“왜 갑자기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

“음, 일이 생긴건 아닌데요. 그게…….”

“뭔데 무슨일인데 그래?”

“레이다에 선박이 하나 보이는데요.”

“음?”

“항로에서 살짝 떨어져 있긴 한데요.”

“그런데?”

“움직임이 크지 않은 선박이 보입니다.”

“뭐?”

나는 그 소리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움직이지 않는 선박이라는 말이 거슬렸다.

“삼항사는 뭐라고 해?”

“삼항사님은 그냥 어선으로 보인다고 하시네요.”

그런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많다.

“삼항사님은 소말리아 해역에서 이미 충분히 떨어졌으니 크게 걱정하지 말라고 합니다. 장보고 이항사님 따라다니더니 걱정이 많아졌냐며…….”

“무슨 그딴 소릴 해! 그나저나 이상한데?”

“그렇죠?”

이대성 실항사는 내가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자 기쁜 표정을 지어보였다.

“띠링!”

+ 스킬 [고속도발 Lv.5]를 사용합니다. +

- 논리력이 상승합니다.

- 추리력이 상승합니다.

- 범인을 추적합니다.

‘이 곳이라고 원양어선이 없을 이유는 없지만 그래도 어선이 있는 것은 매우 수상하다.’

현재 줄리엣호는 소말리아 해적들이 자주 출몰하는 곳은 벗어난 상태이긴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곳이 해적들로부터 백프로 안전한 곳이라고 자신할 수는 없는 곳.

이런 곳에서 어선이 한가하게 배를 세워놓고 어획활동을 한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었다.

갑자기 닭살이 돋더니 머리가 쭈뼛 솟아올랐다.

불안감이 증폭되기 시작한 것이다.

‘선교로 가서 확인을 해봐야겠다.’

“실항사, 알았어 빨리 올라갈게.”

“네.”

나는 옷을 챙겨 입고 급하게 선교로 달리기 시작했다.

여기 어선이 있다고?

- 선박 “M.V. 줄리엣”호의 선교

나는 작업복을 대충 걸치고 선교로 빠르게 달렸다.

선교에 들어서자 곽호진 삼등항해사의 태평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곽호진 삼등항해사가 선교로 들어서는 나를 보며 물었다.

“어? 이항사님 갑자기 선교까지 무슨 일이십니까?”

“항사! 항로 근처에 어선이 있다고?”

내 말에 곽호진 삼등항해사는 나를 따라 들어오던 이대성 실항사를 살짝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그는 말을 이어갔다.

“쯧쯧쯧. 우리 겁 많은 실항사가 또 쪼르르 뛰어가서 존경하는 이항사님에게 일러바쳤나 보네요.”

곽호진 삼등항해사가 노려보자 이대성 실항사는 움찔하더니 내 등 뒤로 몸을 살짝 숨겼다.

“뭐, 그건 됐고. 무슨 일이야?”

“뭐가요?”

“어선 말이야.”

“네, 어선 맞아요. 항로 근처긴 한데 살짝 오른쪽으로 떨어져 있어요.”

“저기에 어선이 왜 있어?”

“네?”

“아직 소말리아 해적들이 나타날 수도 있는 곳인데 여기에 어선이 있겠냐고.”

“어선이 아니면 뭐겠어요. 해적이요? 이렇게 먼 바다까지 나올 리가 없잖아요? 보도 자료에서 소말리아 해적들이 타고 다니는 배 못 보셨어요?”

곽진호 삼등항해사가 어이없다는 듯이 실소를 흘려보였다. 그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

어쩌면 현생에서 지금까지 나타난 정보들을 기준으로 판단하면 곽진호 삼등항해사의 판단이 더 합리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말리아 해적들은 나날이 규모를 확장하고 있다.

이들이 활발히 활동을 시작하면서 자금력을 확보한 이후에는 물적 장비도 충분히 갖추게 된다.

해적 비즈니스. 아니 기업형 해적 비즈니스. 이게 바로 소말리아 해적들의 실체를 정확히 표현하는 말이다.

자금력을 갖춘 소말리아 해적들의 공격패턴이 다양화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소형어선을 이용해 어선인척 위장한 상태로 다가가 위협사격을 하는 방법이었다면 지금은 속력이 빠른 소형 고속보트를 이용해서 빠르게 선박을 추적 한다.

물론 이렇게 먼 바다에까지 소형 고속보트를 이용해 나온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래서 이들이 이용하는 방법이 바로 모선(Mothership)을 이용하는 것이다.

어선으로 위장한 중 대형 어선을 모선으로 이용해 먼 바다를 나온다. 그리고 목표물이 나타나면 빠르게 고속보트를 하강시킨 후 빠른 속력으로 배를 쫓아오는 방법이다.

‘그래 아직 삼항사는 소말리아 해적들이 모선을 이용해서 공격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을지도 모르지.’

나는 삼등항해사를 무시하고 빠르게 걸어가 레이더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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