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불청객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실항사님, 제가 알려드릴까요?”
나의 활약을 전부 목격한 사내.
그는 조타수 조셉이었다. 조셉이 이대성 실항사를 바라보며 씨익 웃어보였다.
조셉은 약간의 과장을 보탰다. 내가 듣고 있어도 약간 민망할 정도의 활약상을 풀어놓기 시작한 것이다.
“제가 요트에 갇힌 사람을 구출하러 바다로 뛰어 들려고 했거든요.”
“그런데요?”
“그때 장보고 이항사님이 말씀하셨죠.”
“뭐라고요?”
“그건 항해사가 할 일이다. 다시 돌아오겠다. 그러고는 달려가 곧장 바다로 뛰어들었죠.”
“…….”
음, 뭐 약간 구체적인 장면에서는 기억이 다르지만 큰 틀에서는 크게 잘못된 건 없었다.
물론 그런 사실을 알리 업는 이대성 실항사의 입은 크게 벌어졌고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도무지 다물어질 줄을 몰랐다.
뭐, 그 저 정도 반응은 이제 당연한 일이지.
* * *
- 선박 “M.V. 줄리엣”호의 선교
며칠 뒤.
줄리엣 호는 지중해에서 중동으로 넘어가기 위해 수에즈운하에 들어서고 있었다.
줄리엣호도 수에즈운하를 건너기 위해 수에즈운하의 도선사가 올라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기다리던 도선선이 모습을 드러내고, 얼마 지나니 않아 선교로 사람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먼저 안으로 들어온 줄리엣호의 갑판장이 선교에 들어서며 말했다.
“선장님, 도선사님 들어오십니다.”
갑판장 뒤로 사람들이 우르르 선교로 들어왔다.
‘왜 이렇게 많이 왔어?’
미스터 퐁퐁이 짐꾼들을 대동하고 배에 올라왔던 모습이 떠올랐다.
요즘도 짐꾼을 데리고 다니나?
나는 눈을 흘겨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들 중 한 사람의 얼굴이 낯익었다.
“어!”
내가 갑자기 소리치자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리고 미소를 머금은 한 사내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미스터 장, 오랜만입니다.”
환한 미소와 함께 인사를 건네는 사내.
그는 수에즈운하청장 오사마 라덴이었다.
“청장님! 잘 지내셨습니까?”
나는 반가운 얼굴이 등장하자 앞으로 달려가 그를 맞이했다.
“이번에 지나간다는 말을 듣고 인사도 나눌 겸 도선사와 함께 승선했습니다.”
“네, 정말 반갑습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김호태 선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선장님, 이 분은 수에즈운하청장님이십니다.”
“뭐? 수에즈운하청장?”
김호태 선장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다가가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
“줄리엣호의 선장 김호태입니다.”
갑자기 나타난 거물급 인사에 선장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당연히 놀랬겠지.’
나의 글로벌 인맥이 대단하다는 소문은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눈으로 체감한 것은 처음이니 저렇게 놀라는 것은 당연지사.
다른 사람들과도 인사를 나누고, 수에즈운하청장과 함께 선박에 올라온 도선사는 선박을 도선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사이 커피를 한잔 타서 선교에서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수에즈운하청장에게 다가섰다.
“청장님, 커피 한잔 드시죠?”
“미스터 장, 고맙습니다.”
나는 커피를 마시는 그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가 그저 인사만 나누기 위해 이곳에 올라왔을 가능성은 없었기 때문이다.
“청장님, 그나저나 무슨 일이십니까? 이렇게 배위에까지 올라오시다니요?”
“음, 오랜만에 인사도 하고 또 다른 이야기도 좀 해줄까 해서 겸사겸사 왔습니다.”
“네? 어떤 이야기를?”
“최근에 걱정되는 일들이 있어서요.”
“무슨 일이 있습니까?”
“최근 소말리아의 정세가 다시 심상치 않습니다.”
“음, 해적들입니까?”
“네, 인근의 어선들을 주로 공격하던 해적들이 최근에는 수에즈운하를 지나가는 큰 상선들을 목표로 변경했다는 이야기가 들리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전생에서도 익히 알고 있던 이야기.
소말리아 해적들은 인근 국가의 어선들이 소말리아 인근 해역에서 어획을 하면 어선으로 위장해서 접근하는 방법으로 주로 활동했다.
어느 순간 이들이 돌변에 멀리 원해(먼 바다)까지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세계 해운 교통의 요지인 수에즈운하를 지나가는 선박들을 노리기 시작했다.
수에즈운하청에서도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소말리아 해적들이 벌써 활동 반경이 넓어졌구나!’
전생의 기억과 비교하면 살짝 시기가 앞당겨 진 것처럼 느껴졌다.
아니면, 내가 전생과 달리 인맥이 넓어져 정보를 빨리 얻게 된 것일지도 몰랐다.
소말리아 해적들은 전생에도 지금쯤이면 이미 활발히 활동을 시작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소말리아 해적들의 위험을 직접적으로 체감한 시기는 우리나라 선박 삼호주얼리호가 납치된 시기 이후의 일이다.
하지만 소말리아 해적들은 우리가 위험을 심각하게 인식하기 전인 2000년대 초반부터 이미 활동을 시작한 상태였다.
물론 이들의 활동이 소강상태에 빠진 시기도 있었다. 그건 소말리아의 정세에 따라 이들이 활동을 자제했던 시기도 있었기 때문.
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수에즈운하청이 굳이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직접 배에 올라왔을까?
‘아니면 혹시 다른 정보가 있는 건가?’
+ 스킬 [협상 Lv.6]을 사용합니다. +
“청장님, 혹시 다른 중요한 정보가 있습니까?”
“음.”
수에즈운하청장은 살짝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미스터 장, 해운업계의 이너서클에 들어있는 지인으로부터 들은 정보가 있긴 합니다. 제가 지급부터 들려주는 이야기의 출처에 대해서는 절대 비밀로 하셔야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는 제법 심각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소말리아의 해적들이 왜 생겨난 것인지 이유를 아십니까?”
“제가 듣기로는 원래 어민들이었는데 다른 나라 어선들의 불법어획 때문에 이들이 해적질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말도 맞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최근 세력을 크게 확장할 수 있었던 이유가 따로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다른 이유?”
“네, 배후에 다른 조력자들이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나는 처음 듣는 이야기에 호기심이 커졌다.
전생에서도 듣지 못한 이야기였다. 전생에는 이런 사람들과 인맥을 쌓을 일이 없으니 이런 정보를 들을 방법도 없긴 했다.
“우선은 소말리아의 군부가 이들을 뒤에서 후원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그건 그렇겠지.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과 결탁한 세력이 해운업의 중심부에 있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해운업의 중심부라면?”
“네, 런던입니다.”
런던?
나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그럴 바라보았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을 이어갔다.
“해적들의 배후와 관련이 있는 보험사가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꿀꺽.
나도 모르게 긴장할 수 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침을 꼴깍 삼켰다.
+ 스킬 [고소고발 Lv.5]를 사용합니다. +
+ 스킬 [마도로스의 심장 Lv. 5]를 사용합니다. +
머리가 맑아지면서 생각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보험사?
하지만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보험사라면 해적피랍 사건이 발생하면 선박회사와 함께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곳이다.
해적에 피랍되는 것을 대비해 보험에 들어놓은 경우 보험사에서 막대한 보험금을 지출하기 때문이다.
나는 수에즈운하청장 오사마 라덴을 바라보며 물었다.
“청장님, 한 가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네. 뭔가요?”
“보험사는 선박이 피랍되면 막대한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지 않습니까? 보험사가 이런 일을 벌일 이유가 있습니까?”
“그 말도 맞습니다. 하지만 보험사들은 사고 위험을 정밀하게 계산해서 이미 막대한 보험료를 벌어들이고 있지요.”
나도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보험사들도 재보험을 들어 위험을 분산시키고 있습니다.”
재보험도 당연한 이야기. 보험사들은 보험사고가 발생한 경우를 대비해 재보험으로 위험을 다시 분산시킨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아직 부족해 보였다.
내 표정을 살핀 수에즈운하청장이 이어서 말했다.
“미스터 장, 보험사고는 원래 우연하게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까?”
“네.”
“그런데 만약 해적 사건을 피해나갈 수 있는 보험사가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
나는 그의 말에 망치로 머리를 두들겨 맞은 기분이 들었다.
해적들의 배후?
- 선박 “M.V 줄리엣”호의 선교
나는 눈을 부릅뜬 채로 수에즈운하청장을 바라보았다.
해적 사건을 피해갈 수 있는 보험사가 있다고?
‘설마 그럴 리가?’
믿기 힘든 소리였다.
그만큼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놀랍고 충격적이었다.
“띠링!”
+ 스킬 [고소고발 Lv.5]를 사용합니다. +
- 범인을 추적합니다.
- 논리력이 상승합니다.
- 추리력이 상승합니다.
보험은 우연한 사고를 대비하기 위한 것이 본질이다.
기본적으로 미래의 예측할 수 없는 재난이나 사고를 대비하고 위해 사람들이 미리 금전을 각출해서 모은 돈.
그 준비 재산으로 사고를 당한 사람에게 보험금을 지급하는 것.
이것이 보험제도의 핵심이다.
그리고 보험사는 이런 사고를 담보하는 것을 통해 영리활동을 한다. 그 대가가 보험료.
그런데 만약 보험사가 보험사고를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말 그대로 우연성이라는 보험사고의 본질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건 해적보험도 마찬가지다.’
해적보험이 유지되기 위한 전제는 해적들이 어떤 선박을 공격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해적의 위험을 통제할 수 있는 보험사가 있다면?’
보험사가 해적의 위험을 이용해 상승한 보험료로 막대한 이익을 누리면서도 해당 보험사에 가입된 선박은 해적들의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없다는 뜻.
보험금을 지급할 가능성 즉 보험사고의 리스크를 전혀 부담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해운회사들이 소말리아해적들을 대비해서 해적보험에 가입하는 이유.
그것은 무정부국가와 다름없는 소말리아의 해적들이 수에즈운하 인근을 지나는 선박들을 무차별 적으로 공격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해적들의 배후와 연관된 보험사가 있다면 그들은 공격을 받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아니, 반대로 말하면 그건 소말리아 해적들이 특정 보험사에 가입하지 않은 선박들을 공격대상을 삼고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말이었다.
‘음모론이다.’
좀처럼 믿기 힘든 음모론이다.
하지만 이 음모론을 나에게 들려주는 이 사람.
수에즈운하청장에 대한 신뢰감.
그저 음모론이라고 헛소리라고 치부하게는 너무 성급한 결론일지 모른다.
나는 수에즈운하청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해적들의 배후에 보험사가 어딘지 알고 계십니까?”
내 물음에 수에즈운하청장이 절래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아직 확인된바가 없습니다. 아직 추측에 불과합니다.”
“음, 그럼 갑자기 이런 말을 제게 하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사실은 방금전 첩보로 취득한 정보가 있습니다.”
꿀꺽.
그가 바로 말하지 않고 잠시 뜸을 들이자 나도 긴장감이 몰려왔다.
“소말리아해적들 중 최대 조직으로 꼽히는 자들이 이번에 활동을 재개하면서 최우선 목표로 하는 타깃이 있다고 합니다.”
“배후에 있는 보험사들과 이해관계가 가장 적은 곳이겠군요.”
“그렇습니다.
“그럼 아무래도 영미계의 보험사는 아니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