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0화 (60/200)

안내원이 땀을 삐질 흘리더니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수화기 너머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재민 구청장입니다.”

안내원이 나를 바라보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바로 위에 보고하고 환불 처리하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휴대폰을 들어 대답했다.

“구청장님, 죄송해요 바로 다시 전화 드리겠습니다.”

“뭐?”

탁!

나는 핸드폰을 소리 나게 접었다.

안내원은 다급하게 전화를 몇 군데 돌리더니 나에게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환불이 완료되었다는 송금확인증이었다.

* * *

며칠 뒤.

나는 집에서 지역 일간지를 펼쳐서 바라보았다.

부산지방검찰청에서 주식회사 싸이엔에 대한 대규모 압수수색이 실시했다는 소식이 지역 신문 일면을 도배하고 있었다.

“그래도 아쉽네.”

이 사건에서 사기꾼들은 주식회사 싸이엔말고도 여러 회사를 사용해서 사기행각을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 전부가 수사대상에 오른 것은 아니었다.

이번 검찰 수사는 주식회사 싸이엔만을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는 듯 보였다.

다른 지역에서는 여전히 사기 행각이 이어진다는 뜻이었다.

오재민 구청장은 나와 통화하면서 이일에 대해 분통을 터트렸지만 아무리 구청장이라도 수사기관이 아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사실 나는 이런 결과를 예상하고 있었다.

아무리 영도구청장의 힘을 빌렸다고 해도 전국적으로 벌어지는 사기행각을 모두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회귀했다고 해서 모든 일을 바꿀 수는 없겠지.’

전생에서도 이들에 대한 수사가 미진했다.

사고가 터진 이후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사기꾼들이 수사기관 뿐만 아니라 정치인들에게도 무차별적으로 뇌물 등을 갖다 바친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던가.

그래도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번 일로 최소한 부산 지역의 피해를 막은 것은 분명히 대단한 성과였다.

첫술에 배가 부를 순 없겠지.

좀 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수밖에 없었다.

각오를 다지자 작은 창이 눈앞에 떠올랐다.

“띠링!”

+ 스킬[협상 Lv.3]를 획득했습니다. +

+ 스킬[고소고발 Lv.3]를 획득했습니다. +

+ 칭호 [부산사나이] 획득 +

용감한 시민

- 영도구청 앞

며칠 후.

영도구청 청사 앞에서 혼자 중얼거리고 있는 잘생긴 사내.

화재로부터 부산을 구한 영웅. 장보고였다.

“이런 상을 바라고 한 건 아니었는데.”

용감한 시민.

영도구청의 담당자로부터 용감한 시민으로 뽑혔다는 연락을 받고 이 자리에 온 것이다.

‘내가 용감한 시민상이라니.’

살짝 민망한 기분.

사람들을 구하겠다는 목적도 없진 않았지.

하지만 시작은 내 개인적인 목적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뭐 좋은 일을 한 건 사실이니까.’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청사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안내 표지를 따라 행사장으로 이동했다.

행사장으로 들어서자 구청의 직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내게 다가왔다.

“장보고씨?”

“네, 맞습니다.”

“일찍 오셨네요.”

자신을 담당자라고 소개한 그는 행사 진행 절차에 대해서 간단하게 알려준 후 나를 지정된 자리로 안내했다.

그는 잠시 기다리면 곧 행사가 시작될 것이라고 말한 후 자리를 비웠다.

나는 행사장에 앉아 눈앞에 앉아 앞에 걸린 현수막을 바라보고 있었다.

“영도구 용감한 시민상 수여식”

‘용감한 시민이라니 참 적응 안 되네.’

현수막을 보자 얼굴이 다시 살짝 벌게지는 기분.

전생과는 판이하게 다른 인생이 흘러가고 있었다.

많은 사건 사고에 휘말리고 있었지만 전생과 달리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구한 다는 것이 새삼 신기하게 느껴졌다.

이런 저런 상념에 빠져 있는 사이 시간이 흘러 행사 준비를 마친 듯 보였다.

오재민 영도구청장이 구청의 직원들과 함께 들어섰다.

오늘의 행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영도구청의 분위기는 매우 밝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발생한 수산물 냉동 창고 화재 사건에 대한 영도구청의 대처가 훌륭했다는 평가가 있었고, 관련 보도가 많았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영도구청의 직원들도 모두 얼굴이 매우 밝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는 행사장 맨 앞줄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행사장으로 들어서는 오재민 구청장과 나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들어 나에게 인사를 했다.

행사는 공공기관 답게 딱딱한 식순에 맞춰 진행되고 있었다.

사회자가 좌중을 둘러보며 말을 이어갔다.

“그럼, 영도구 용감한 시민상 표창이 있겠습니다.”

사회자의 말에 나도 걸어 나가 연단 앞에 섰다.

“영도구 용감한 시민상 장보고! 귀하께서는 평소 영도구청을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협조하여 오셨으며 특히 최근 발생한 냉동 창고 화재 사건에서 인명 구조에 기여하고 피해를 막은 공이 크므로 이에 이 상을 수여함.”

사회자가 멘트를 마치자 오재민 구청장이 나에게 상장을 건넸다.

짝짝짝!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울려퍼졌다.

오재민 구청장이 환하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찰칵! 찰칵!

영도구청에 미리 섭외한 기사들이 카메라 플래쉬를 터트리기 시작했다.

카메라를 바라보는 오재민 구청장은 정치인답게 미소가 아주 자연스럽고 멋있었다.

‘나도 좀 배워야겠어. 앞으로 미디어 앞에 설 일이 많아질 것 같으니.’

하지만 아직은 연습이 좀 필요했다.

최대한 밝게 웃어보려 노력했지만 나의 미소는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기만 했다.

“띠링!”

여지없이 작은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 당신의 명성이 증가합니다. +

+ 칭호 [용감한 시민]을 획득했습니다. +

- 용기 백배. 두려움이 감소합니다.

* * *

- 영도구청 인근 한정식 식당

나는 행사를 마치고 오재민 구청장과 점심을 함께 하기로 해 식당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드르륵.

방문이 열리고 오재민 구청장과 또 다른 중년의 남성 한명이 방안으로 들어섰다.

‘왔구나.’

나는 오늘 이 자리에 그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오재민 구청장이 나에게 소개해줄 사람이 있다고 미리 언질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생의 기억을 통해 나는 오재민 구청장이 ‘자갈치 쩐주’ 최부자와 어린 시절부터 둘도 없는 친구 사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갈치 쩐주. 최부자.

나는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오랜만이네요. 어르신.’

전생의 기억보다 훨씬 젊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꼬장꼬장한 그의 성격이 드러나는 얼굴은 그대로였다.

최부자. 그는 전생에 내 은인이었다.

전생에 그를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사업에 재기하지 못하였을 것은 당연하다. 아니 오히려 비참한 말로를 맞이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의 도움으로 사업에 재기한 후 둘이서 진탕 소주를 마셔댔던 기억이 떠올랐다.

좋은 대접을 하겠다고 해도 그는 사양했다. 빌려준 돈에 이자까지 충분하다며.

그날 우리는 시장에서 사온 모듬회 한 접시와 함께 소주를 여러 병 비워냈다.

술에 취한 우리는 과거의 이야기를 서로 나누었는데, 그 이후로 그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스승이자, 사업 파트너였다.

나도 모르게 그를 바라보는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다.

전생을 넘어 현생에 이르러서 까지 그에 대한 고마움이 사무치게 느껴졌다.

나는 두 사람이 들어서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두 사람을 향해 90도로 고개를 숙였다.

전생의 은인에 대한 예의랄까?

“음?”

최부자는 나를 바라보며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오가야, 이렇게 예의바른 놈이라고는 안했던 거 같은데?”

“허허허. 내가 그랬나?”

“귀신들린 놈이라며?”

“어허! 내가 언제!”

오재민 구청장이 그의 말에 웃어 보이며 손을 저었다.

그리고 나에게 최부자를 소개했다.

“내 가장 친한 친구일세. 자네를 오늘 만난다고 하니 자기도 보고 싶다며 따라왔다네.”

나는 최부자에게 인사를 올렸다.

“장보고라고 합니다.”

“나는 최봉팔일세.”

‘허허허.’

나도 모르게 속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봉팔.

전생에 그가 자기의 이름이 마음에 안 든다며 이름을 부르지 못하게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사람들은 보통 그를 ‘자갈치 쩐주’, ‘최부자’라고 불렀다. 그가 이름을 부르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

최부자가 나를 보며 말했다.

“그래 자네가 다단계 사기 사건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다지? 자네 덕분에 큰 피해를 막았다는 말이 있던데?”

“그냥 아는 내용을 정리해서 전달했을 뿐입니다.”

“그래? 나도 그 회사에 제법 많은 돈을 투자 했었다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제법 많은 돈이 아니라 전생에 그는 가장 큰 피해자중 한명이었다.

내가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자 최부자가 말을 이어갔다.

“나도 원금에는 못 미치지만 그래도 큰 손실을 보지 않고 회수했다네. 이놈들이 다른 지역에서 계속 그 짓을 할 생각이니 잡음을 없애려고 반환을 많이 해주더군.”

“그렇습니까? 참 다행입니다.”

“그런가? 그런데 아직도 사실 배가 아프긴 해. 다른 지역의 투자자들에게는 아직 약속한 수익금을 그대로 잘 배당하고 있다고 해서 말이야. 어쩌면 나도 자네 때문에 돈 벌 기회를 놓친 건 아닌가 싶기도 해서 말이지.”

최부자가 나를 원망한다는 표정으로 흘겨보았다.

물론 나는 그의 말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쯤은 이미 알아차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장단에 그에게 맞춰주기로 했다.

“그렇습니까? 이거 참 큰일이군요.”

“그렇지? 그럼 자네 때문에 본 손해를 어떻게 할 생각인가?”

“손해라고요?”

“자네 때문에 돈 벌 기회를 놓쳤으니 손해 본 것이 아닌가.”

“허허허. 그게 그렇게 되는 겁니까?”

내 웃음소리에 최부자가 오재민 구청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거 20대 맞나? 어째 순 늙은이 같은데? 하는 짓도 능글맞고?”

“글쎄, 나도 잘 모르겠네. 하하하.”

오재민 구청장이 그의 말에 크게 웃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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