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8화 (58/200)

영도 박수도 내 말에 할 말이 없어 진 듯 입을 다물었다.

그는 한참 씩씩 거리더니 말을 이어갔다.

“그건 그렇고 왜 왔어?”

이제 본론으로 들어갈 시간이었다.

“손님 중에 오재민 구청장 있잖아요.”

“응? 영도구청장?”

“네, 그 사람이요. 곧 찾아오기로 하지 않았어요?”

내 말에 영도 박수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물었다.

“신 내림 받은 것도 아니라며 그걸 어떻게 알았어?”

“꼭 신 내림 받아야만 알 수 있나요? 그 사람이 다음 국회의원 선거에 나간다는 소문이 있으니까 삼촌을 한번 찾아올 거라고 생각한 거죠.”

“으음!”

영도 박수는 내 말을 곧이 곧 대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딱히 반박할 말도 없었다.

이 이야기는 사실 내가 전생에 영도 박수로부터 들은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어느 날 영도 박수가 소주 한잔 마시며 기분에 취해 들려준 이야기였다.

국회의원 오재민이 영도구청장 시절 국회의원 출마를 앞두고 자신을 찾아와 점을 보고 갔다는 이야기를 나에게 자랑스럽게 떠들었던 일이 있었던 것.

“그런데 그건 왜?”

“그 사람 왔을 때 저도 같이 있으면 안 될까요?”

“뭐?”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좀 있어서요.”

“안 돼! 당연히 안 되지. 나 망하게 할 생각이냐? 같이 있으면 점이 안쳐진다니까.”

뭐, 이렇게 쉽게 수락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나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에게는 아마 저승사자보다 무서운 미소로 보였을 것이다.

“그럼 어떡하면 좋죠?”

“뭐, 뭐가?”

“된다고 할 때까지 저도 이곳을 떠나면 안 되거든요.”

“무슨 소리야! 점집 망하게 하려고 그래? 네가 이곳에 온 이후로 아무것도 안 보인다니까!”

“어쩌겠어요. 삼촌이 된다고 할 때까지 이곳을 떠나지 말라고 하는데.”

“뭐? 누가?”

“누구긴 누구겠어요? 내 뒤에서 있는 분이겠죠. 삼촌이 보고 있는 그분.”

“뭐? 혹시 신이라도 들어온 거냐?”

“잘 모르겠어요. 한번 보세요.”

영도 박수는 고개를 들어 내 뒤를 멍하니 응시하는 듯 했다.

그의 말대로 괜히 내 몸 주위에서 뭔가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당신에 대한 상대방의 이해도가 증가합니다. [이해도: 1%] +

음? 제법 용한 점쟁이라고 했던 거 같은데.

그런데 겨우 1%를 이해했다고?

하지만 영도 박수는 내 배후를 알아 본 것일까?

그는 어떤 심각한 것을 목격한 사람처럼 충격에 빠진 얼굴. 그의 안색은 점차 창백하게 질려갔다.

* * *

-부산 영도 박수의 점집

며칠 뒤.

평소 손님이 바글바글하던 영도 박수의 점집이 오늘은 한가했다.

오늘 오전에 예약된 손님은 1명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바로 영도구청장이 오늘 방문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손님을 받지 않은 것이다.

영도구청장은 사람들의 이목 때문에 점집을 드나드는 것이 불편할 수도 있었다. 오전에 다른 예약을 비워뒀다고 하니 다행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실 영도박수는 내가 집안에 있으면 신통을 펼칠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나는 영도박수의 방안에 펼쳐놓은 큰 병풍 뒤에 몰래 숨어있었다.

끼이익!

대문 밖에 자동차가 도착한 소리가 들렸다.

드르륵!

대문 안으로 들어선 남자가 한복을 입은 여자의 안내를 받아 영도 박수의 방안으로 들어섰다.

들어선 사람은 영도구청장 오재민.

그는 방안으로 들어서며 영도 박수에게 인사를 건넸다.

“영도 박수! 오랜만에 찾아왔습니다. 오재민입니다.”

영도구청장이라는 제법 높은 신분의 공무원이 찾아왔음에도 영도박수는 뒤로 돌아보지 않았다. 그는 등을 돌린채로 말했다.

“네, 오랜만입니다. 구청장님.”

평소와 다른 분위기. 오재민 구청장이 영도 박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음? 뭐, 오랜만에 왔더니 분위기가 좀 변한 것 같습니다?”

영도 박수는 부채를 펼친 채로 뒤로 돌아 앉아있었는데, 그의 앞으로는 큰 병풍이 세워져 있었다.

영도 박수가 등을 돌린 채로 부채에 입을 대고 말을 이어갔다.

“흠흠, 최근에 새로운 신이 내 몸에 들어와서 어쩔 수 없이 병풍을 쳐놨습니다. 원래 모시는 신과 구분을 좀 해야 되거든요…….”

“그렇군요. 그나저나 새로운 신을 또 받으셨다니 대단하십니다. 어떤 신이 오셨습니까?”“…….”

영도 박수가 오재민 구청장의 질문에 말문이 막힌 듯 대답을 하지 못했다.

‘으이구! 애드립이 약하네. 모시는 신이 겁을 먹었다더니 그것 때문인가?’

내가 대신 나서야 했다.

병풍 뒤에 숨어있던 내가 대신 대답했다.

“해신이다. 바다의 신.”

“네?”

오재민은 생뚱맞은 소리에 놀라 반문했다. 그는 영도 박수의 목소리가 다르다고 느끼는 듯 했다.

영도 박수가 다급하게 말을 이어갔다.

“지금 제 몸에 여러 신이 들어와 있습니다. 목소리가 다르게 들리면 접신한 신이 달라서 그 영향을 받은 것이니 이해하십시오.”

“그, 그렇군요.”

“지금부터 해신에 접신을 하겠습니다.”

“네? 네.”

“말투가 좀 거슬려도 이해해 주십시오. 접신한 것이다 보니 존댓말은 좀 어렵습니다.”

오재민 구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해신이라니? 바다의 신? 잘은 몰라도 큰 신이 들어왔겠구나!’

오재민 구청장이 긴장한 듯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했다.

나는 오재민 구청장의 표정을 살폈다. 그가 큰 의심을 하지는 않는것 같았다.

애초에 이런 곳에 찾아 올 정도면 신들이 접신할때마다 목소리가 바뀐다는 것쯤은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나는 영도 박수의 신호에 맞춰 말하기 시작했다.

“시간 없으니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빨리 자리에 앉아! 그렇게 서있으면 복 달아나. 바닥에 엉덩이 빨리 안 붙이면 오던 복도 다 떨어진다!”

그 말에 오재민 구청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는 것을 고민하는 중이니 복달아날 짓을 할 수는 없는 노릇.

오재민 구청장은 평소와 다른 영도 박수의 모습에 살짝 긴장한 듯 보였다.

그는 영도박수의 뒷모습을 힐끔 거렸다.

“재수 없으니까 그렇게 쳐다보지 마. 복 달아나!”

내 말에 오재민 구청장이 또 다시 어깨를 움찔 거렸다. 복달아 난다는 말에 또 겁을 먹은 것이다.

그는 전생에도 청렴하고 능력도 좋다는 평을 들었으나 정치인 치고는 유독 유순한 성향의 사람이었다.

그래서 결국 해양수산부장관 임명을 앞두고 인사청문회에서 몰매를 맞아 낙마하고 말았다.

구청장에게 이렇게 함부로 해도 별말 안하는 것을 보니 점쟁이들의 파워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내가 말을 이어갔다.

“나가려고 그러지?”

“네?”

“여기가 어디라고 모르는 척을 해! 국회의원 선거 나가도 되는지 물어보려고 왔잖아!”

“아! 네. 맞습니다.”

그는 손수건을 꺼내들어 연신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그래 뭐 물어볼게 있어서 왔어?”

“나가도 되겠습니까?”

“흥! 내가 어떻게 알아!”

알고 있다. 이 사람은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 꽤나 고전하지만 결국 당선된다.

그리고 그 이후로 좋은 평가를 얻어 3선 국회의원이 되고 해양수산부장관 하마평에도 오르게 되는 인물.

내 말에 그가 주머니를 뒤지더니 봉투를 꺼내 내 앞으로 쓱 밀었다.

“복채입니다.”

“흥! 어디 이런 물건을 앞에 들이밀어!”

영도 박수는 내 대답에 맞춰 얼른 봉투를 잡아들었다.

그리고 그는 봉투를 병풍 뒤로 휙 집어던졌다.

병풍 뒤로 넘어온 봉투를 보니 제법 묵직해 보였다. 봉투에는 현금이 제법 들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음! 되겠네.”

“네?”

“될 거라고! 어디서 두 번 말하게 만들어!”

“아, 네 죄송합니다.”

그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헌데 문제가 있어.”

“네?”

“집안에 사고치는 사람이 있네.”

“네?”

“돈이 줄줄 새는 일이 생길 수도 있어. 이번에 매듭을 지어놓지 않으면 나중에는 큰 화를 입겠어.”

“그렇게 심각한 일입니까?”

“이번 일만 제대로 처리하면 3선이상은 따 놓은 당상이야. 잘하면 판서도 될 수 있지.”

“판서요?”

“요즘 말로 하면 장관인가?”

내말에 오재민 구청장의 입이 쩍 벌어졌다.

3선이상의 중진의원이 될 거라고 그리고 장관이 될거라는 말에 기뻐하지 않을 정치인은 없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오재민 구청장이 미간을 잔뜩 찌푸리더니 생각에 골몰하기 시작했다.

“아들놈입니까?”

그의 아들은 꽤 꼴통이지만 다행스럽게도 전생에는 아버지의 경력에 누가될 정도의 사고를 치지는 않았다.

영도 박수는 고개를 절래 흔들었다.

“음?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럼 딸입니까?”

영도 박수는 이번에도 고개를 절래 흔들었다.

그의 딸은 나중에 제법 유명세를 타는 인물이다. 국회의원 선거 유세장에서 예쁜 여대생으로 이슈가 되어 젊은 남자들의 표를 제법 흡수했다는 말이 있었다.

“그럼, 사고 칠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나는 그 말에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없긴 왜 없어! 집에 아무도 없어?”

“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제 배우자는 평생 못난 저의 뒷바라지만 한 사람입니다.”

“흥! 누가 아니래?”

“네?”

“남편이 국회의원 선거 나간다니까 도움 좀 주려고 그러겠지!”

“…….”

“열심히 돌아다니는 것 같은데 조심하라고 해!”

“네? 무슨 뜻입니까?”

“아주 독한 놈한테 지금 물려있어. 지금 보이기로는 사기꾼 아니면 도둑인데.”

“네?”

“크게 물리기 전에 당장 돈 빼라고 해. 아주 지독한 놈이야. 이번이 아니면 기회는 없어. 돈이 문제가 아니야. 있던 관운도 날아가게 생겼어!”

오재민이 고개를 숙인채로 절래 흔들었다.

그는 나의 말을 전부 믿는 눈치는 아닌 듯 보였다. 자신의 배우자에 대한 신뢰가 그만큼 컸던 것이다.

나는 다시 한 번 힘주어 말했다.

“아주 독한 놈이야! 작은 손해를 보더라도 이번에 쳐내지 않으면 화가 크게 돌아올 거야.”

내 말은 사실이었다.

실제로 전생에 오재민 구청장은 해수부장관으로 임명될 예정이었지만 청문회에서 가족 문제가 구설수에 올라 결국 자진 사퇴를 하게 된다.

그의 배우자가 조의칠 사건의 다단계 사건에서 가담한 전력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던 것이다.

다단계 사기 특성상 초기에 가입한 사람은 초창기에는 어느 정도 수익을 볼 수도 있다.

그의 배우자가 그런 경우였다. 조의칠이 세운 법인에 돈을 초창기에 투자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일이 예기치 못하게 화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인사청문회에 이일이 불거진 것이다. 장관후보자의 아내가 다단계 사기에 연루되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결국 오재민은 자진 사퇴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딴 생각하지 말고 집안 단속부터 잘해! 다 봤으면 얼른 돌아가!”

내 말에 오재민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방문을 열고 나가려는 순간.

나는 갑자기 소리쳤다.

“불을 조심해! 중요한 일 앞두고 있으니 술도 조심하고!”

오재민이 내말에 천천히 고개를 돌려 영도 박수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가 문 밖을 나서려고 하자 나는 한마디를 추가했다.

“그리고 그 곳에서 귀인을 만날 수도 있으니 명심하고!”

오재민은 귀인이라는 말에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후 집을 떠나갔다.

* * *

- 영도구청 구청장 집무실

며칠 후.

오재민 구청장은 늦은 시간에도 집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그는 집무실 책상 밑에 숨겨둔 위스키 한 병을 꺼내 들었다.

종종 야근을 하거나 스트레스 심한 날에 한잔씩 사무실에서 즐기던 위스키였다.

뽕!

코르크 마개를 빼서 마시려고 하는 순간 얼마 전에 만난 박수무당의 말이 떠올랐다.

“술자리를 조심하라는 게 아니라 술을 조심하라고 했었던가?”

따르려던 위스키 병을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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