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형준 상무가 물었다. 그는 왠지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해적들이 선박이 침입하더라도 시타델이 제대로 갖춰져 있으면 선박이 피랍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염장호 이등항해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컨테이너선에 반드시 설치해야 되는 이유가 또 있습니다. 염장호 이등항해사님은 혹시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
모를 줄 알았다 이놈!
나는 살짝 고개를 좌우로 저은 후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벌크나 유조선은 시타델을 만들어도 선박 구조가 단순해 해적들에게 위치를 발견당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시타델이 있어서 해군함정이 도착하기 전까지 버티지 못하면 효과가 없을 수 있습니다.”
“......!”
“하지만 컨테이너선은 다릅니다. 컨테이너 모양으로 위장된 시타델을 만들면 해적들이 시타델을 찾을 수 없습니다.”
“......!”
“시타델은 컨테이너선에서 더 유용합니다.”
염장호 이등항해사는 별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저 조용히 자리로 앉더니 의자 뒤로 몸을 파묻었다.
그의 얼굴을 창백한 지경. 아마 공개적인 망신을 당한 터라 자존심 강한 그가 치욕을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 분명했다.
도형준 상무가 다시 물었다.
“최근에 일부 해운회사들은 무장요원을 배에 승선시키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더군요. 그 방법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내가 이어서 말했다.
“그 방법도 좋은 대안입니다. 하지만 해적들의 위협이 커져가도 상선에는 무장요원을 탑승시키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무장요원이 있으면 입항할 수 없는 항구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가 따로 있습니다.”
“그게 뭔가요?”
“상선의 배들이 무장을 하기 시작하면 해적들이 더 화력이 강한 무기를 준비하고 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우리가 선박에서 쓸 수 있는 것들은 방호장비나 물대포 같은 것들뿐입니다.”
“......”
“하지만 이런 장비는 총기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죠. 시타델은 해적의 위협으로부터 유일하게 선원들의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수단입니다.”
“......”
사람들은 내 열변에 감동한 듯 아무도 말을 잇지 않았다.
‘너무 오바 했나?’
주변의 침묵이 살짝 어색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 기세를 몰아갈 필요가 있었다.
+ 스킬 [협상 Lv.2]를 사용합니다. +
내 목소리에 좀 더 힘이 들어가면서 호소력 있는 어조로 변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시타델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개조 비용이 발생합니다. 지금 같은 해운 호황기가 아니면 대규모 자금을 투자할 기회를 찾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선원들의 생명을 지키는 일입니다. 돈이 많이 든다고 해서 미룰 일이 아닙니다!”
도형준 상무가 나를 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짝짝짝짝!
감명을 받은 사람도 있나 보군?
“장보고 삼항사 말이 맞습니다!”
흡족한 마음에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김영 일등항해사가 빨간 얼굴로 손뼉을 터져라 쳐대고 있었다.
“......”
음? 뭐, 어쨌든 내 말이 작은 불씨를 일으킨 것일까?
사람들의 표정은 좀 전과는 살짝 다르게 변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됐다.’
나는 강연장에 있는 임원들이 살짝 상기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 * *
- 부산 영도
며칠 후 부산.
서울 일정을 마치고 빨리 부산으로 복귀했다. 하선 휴가기간이 2달 정도이니 그 사이에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일단 다단계 사기 문제부터 해결해야지.’
아직 다단계 사업의 초기 단계이니 내 투자금을 회수하는 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다단계 사기꾼으로 사업 초기의 평판을 중시하기 때문에 초기에는 환불도 잘해주고 수익금도 잘 돌려주는 경향이 있기 때문.
문제는 이 역대급 사기로 인해 전국적인 피해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내 투자 문제가 해결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뜻.
하지만 이 거대한 사기꾼을 나 혼자 막는다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라는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
조의칠 사건은 워낙 전국적으로 진행된 역대급 사기 사건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전생의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현시점에서 이 문제를 혼자서 해결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
‘조력자가 필요한데.’
권력을 가진 조력자의 도움이 없으면 이일을 해결할 수 없을지도 몰랐다.
나중에 밝혀지는 일이지만 조의칠은 다단계 사기 사업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경찰, 검찰을 비롯한 공무원들과 정치계 인사들에게 많은 돈을 건네고 이들을 관리해왔다.
이십대 초반에 불과한 상등항해사가 이 일을 공론화 한다고 해서 조의칠 일당을 뿌리뽑는 것은 무리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런 현실적인 이유 말고도 더 큰 문제가 있다.
그건 바로 사기 피해자들의 특성.
사기를 당한 사람들은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는 사기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아니 어쩌면 이들은 이미 의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기가 아니라고 계속 믿고 싶을지도 모른다.
아직 조의칠 일당은 신규 투자자의 투자금으로 기존 투자자들에게 약속한 수익금을 돌려주는 이른바 돌려막기 방법으로 규모를 확장하고 있는 상황.
이러 시기에 내가 나서 문제제기를 한다고 하여 나의 의견에 동조할 피해자들은 없다.
‘오히려 사업을 방해한다고 나를 탓할지도 몰라.’
곰곰이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띠링”
+ 스킬 [고소고발 Lv.2]를 사용합니다. +
* * *
- 영도 대표무당 영도 박수의 점집
나는 바닷가 근처의 허름한 점집 앞에 섰다.
이곳은 자칭 영도 대표 무당이라는 영도 박수의 점집.
‘삼촌을 찾아가는 것도 오랜만이네.’
영도 박수는 내 친척은 아니다.
하지만 신내림을 받기 전까지는 영도 박수는 우리집 바로 건너편에 살던 이웃. 나와 동생은 어린 시절부터 그를 삼촌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평범하게 회사를 다니던 영도 박수는 30대가 넘어 갑자기 신내림을 받게 된다. 몇 달을 열병으로 앓아 눕더니 신병이 났던 것이다.
이후 그는 아예 무당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제법 용한지 영도 박수라고 불리던 그는 스스로를 영도 대표 무당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끼이익!
나는 허름한 점집의 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용하다는 소문이 사실인지 오늘도 마당 안에는 점을 보러온 사람들이 대히하고 있었다. 다들 차례를 기다리는 중.
전생에 이곳에 찾아온 기억이 났다.
당시 사업이 하도 안 풀려서 힘들 때였다.
내가 재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자갈치 쩐주’를 소개해준 사람도 바로 영도박수였다.
‘손님이 많네. 좀 기다려야겠어.’
나는 영업을 마칠 때까지 기다릴 생각으로 마당 한쪽 구석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그순간.
드르륵 쾅!
방문이 세차게 열리더니 한복을 입은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누구야! 어떤 놈이야!”
고성과 함께 영도 박수가 방문을 열고 마당으로 튀어나왔다.
그는 주변의 사람들을 둘러보며 소리를 크게 질렀다. 그의 얼굴을 노기로 가득했다.
“어떤 놈이 감히 허락도 없이 이곳에 왔어! 여기가 어디라고!”
영도 박수가 성난 얼굴로 마당에 있는 사람들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영도 박수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는 나와 시선을 교환한 후로 갑자기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으으으!”
그리고 알 수 없는 신음성을 뱉어내더니 방안으로 다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방안에서 우당탕 소리가 한바탕 들려왔다.
잠시 뒤 방에서 한복을 입은 한 여자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마당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을 둘러보며 고개를 살짝 숙이더니 말했다.
“오늘 영도 박수가 모시는 신이 노하셨다고 합니다. 오늘은 더 이상 점을 볼 수 없다고 합니다. 죄송하지만 다른 날 다시 찾아오십시오.”
“네?”
“오늘 오신 분들은 다음에 오시면 복채는 따로 받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마당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그 말에 어리둥절해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신이 노해서 점을 볼 수 없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이 밖으로 나섰다.
드르륵!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자 방문이 반쯤 열렸다.
영도 박수는 고개를 반쯤 내밀더니 나를 바라보았다.
“너 장보고 맞냐?”
“네 삼촌.”
“너 어디서 그렇게 흉악한 것들을 데리고 왔어?”
흉악한 것들 or 바다의 신?
- 부산 대표 무당 영도 박수의 점집
뭐? 흉악한 것들?
‘도대체 무슨 소리야?’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대답을 하지 않자 영도 박수가 문 밖으로 손을 내밀어 흔들었다.
까닥까닥!
안으로 들어오라는 신호.
드르륵!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뭐, 뭐야?’
영도 박수는 큰 방의 한 쪽 구석에 불이 붙은 초를 잔뜩 깔아 놓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그 가운데에 앉아 있다. 무슨 의식을 치르는 것 마냥 음산한 분위기가 넘쳐 흘렀다.
그는 이마에 부적을 붙이고 있었는데 급하게 만든 티가 역력했다.
부적 안에 그려진 문양이 내가 봐도 허접해 보였기 때문.
그의 반응은 내가 전생에 이곳을 찾아왔을 때와는 사뭇 다른 반응이었다.
영도 박수의 표정은 상당히 경직되어 있었다. 표정도 딱딱하게 굳어진 상태.
영도 박수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보고야, 거기 일단 앉아봐.”
“네.”
그는 말없이 한참 나를 노려보았다.
“도대체 뭐냐?”
“네?”
“신 내림이라도 받았냐?”
“무슨 소리에요.”
“그럼 도대체 뭐냐고! 주변에 그 일렁이는 것들이 도대체 뭐야?”
“삼촌,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요.”
“신 내림도 아니면 뭐지. 저런 것들은 이때까지 본적이 없는데! 뭐야 도대체!”
그의 표정은 진지하다 못해 절망에 가까웠다.
‘무슨 소리야?’
영도박수가 진지한 표정으로 이어서 원망하듯 말했다.
“네가 나타난 이후로 내가 모시는 신도 지금 당장 도망간다고 난리야! 겨우 말렸다니까!”
“저 때문이라고요?”
“그래! 너 때문이라고! 나도 지금 아무런 신통이 안 일어난단 말이야. 아무것도 안보이고 그저 깜깜해. 점이 안쳐져.”
뭐?
영도 박수가 나를 이러 저리 둘러보더니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 낙담한 기색.
“안보여. 아무 것도 안보여.”
방금 전에 마당으로 뛰쳐나온 이유가 이건가?
점이 안쳐져서?
내가 지금 추측할 수 있는 가능성은 한가지 밖에 없다.
영도 박수는 나에게서 어떤 기운을 감지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영도 박수는 나한테 일어나고 있는 이 신비로운 일들을 어떤 기운의 형태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일어난 신비한 기운은 영도 박수가 모시는 신 따위와는 범접할 수 없는 강력한 것이 분명했다.
‘흉악한 것들이 아니고 축복이지.’
하지만 아무리 영도 박수라도 회귀한 사실을 알려줄 순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저도 몰라요. 삼촌이 무당이면서 왜 저한테 물어봐요.”
“무당이라고 다 아냐!”
“무당도 모르는데 제가 어떻게 알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