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6화 (56/200)

“뭐야? 왜 그래?”

염장호 이등항해사가 김영 일등항해사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냥 닥치라고! 간담회가 장난이냐! 조용히 좀 하라고!”

염장호 이등항해사는 김영 일등항해사의 반응을 도저히 못하겠다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

“김영, 뭐 잘못 먹었냐?”

“몰라 이 새끼야. 그냥 좀 닥쳐! 쓸데없이 시비 걸지 말고! 쟤는 건드리면 안 된다고 뒤지기 싫으면.”

강연장이 워낙 조용한 탓인지 김영 항해사의 말이 나에게도 잘 들렸다.

‘왜 저래?’

나는 김영 일등항해사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는 나에게 잔뜩 겁을 먹은 표정이 분명했다.

‘MI6 사람들이 협박이라도 했나?’

김영 항해사는 내가 MI6에 납치(?) 당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무사히 내가 돌아온 것을 보고 놀랐을지도 몰랐다.

아니면 내가 납치되어 떠난 후 MI6로부터 교육(?)을 단단히 받았을 수도 있고.

아니면 압둘 무바라크 때문에?

아직도 김영 일등항해사가 비너스호에서 실족한 원인은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

뭐, 이유야 어찌되었든 간에 김영 일등항해사는 나와 대적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 보였다.

주변 사람들도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음! 저, 그쪽에 계신 분들 뭐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도형준 상무가 한쪽 구석에서 소란을 떨고 있는 염장호 이등항해사를 바라보며 물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염장호 이등항해사를 향하자 그가 건들거리며 삐딱한 자세로 자리에 일어섰다.

“아 예, 상무님 제가 한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염장호 이등항해사가 얼굴에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도형준 상무에게 말했다.

“예, 염장호 이등항해사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하시죠.”

도형준 상무도 그를 알아보았다.

염장호 이등항해사 그는 회사에서 제법 유명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전생에 그는 해신해운 항해사들 사이에서도 문제를 많이 일으킨 인물이었다. 사고뭉치.

그리고 나도 전생에 이 사람이 싫었다.

‘이번 생에도 달라지지는 않을 것 같은 예감이네.’

하지만 아직은 염장호 이등항해사가 본격적으로 본색을 드러내지는 않는 시기였다.

본사에 근무하는 도형준 상무가 그를 알아 본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그의 배경 때문.

염장호 이등항해사는 김영 일등항해사의 대학 동기였지만 몇 년 전에 아버지 가업을 이어야 한다며 잠시 배를 내렸다.

그리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다시 회사로 돌아왔다. 그가 다시 회사로 돌아왔을 때 다들 의외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염장호 이등항해사는 승선생활이 어울리지 않는 배경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금수저 출신의 항해사.

그의 별명도 도련님이었다.

지방에서 제법 규모 있는 조선소를 운영하는 부잣집의 도련님이라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

염장호 이등항해사의 아버지가 기관장 출신이라 회사를 물려받으려면 승선경험이 있어야 한다며 다시 강제로 배를 태웠다는 소문.

그리고 염장호 이등항해사는 평소 입방정으로도 유명했다.

배는 취미로 타는 거다. 조선소를 운영하는 아버지가 해양대 출신이라 나도 어쩔 수 없이 배를 타긴 타는데 곧 때려치울 예정이다.

뭐 이런 헛소리를 즐겨하는 인간.

문제는 이런 말들이 동료 선원들의 사기를 많이 꺾어놓는 다는 것이다. 물론 전생의 나도 그를 대할 때면 평소 배알이 꼴렸던 것도 사실이다.

염장호 이등항해사가 좌중을 슬쩍 둘러보더니 비릿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말을 이어갔다.

“장보고 삼등항해사가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잘 모르고 하는 소리 같아서요.”

“…….”

“뭐, 삼항사니까 아직 몰라서 그럴 수도 있죠. 하하하.”

갑자기?

이렇게 갑자기 공개적으로 나를 저격한다고?

+ 스킬 [마도로스의 심장 Lv.1]을 사용합니다. +

하지만 그 정도로 나의 평정심을 깨뜨릴 순 없지.

그런데 나보다 더 표정이 급변하는 사람들이 있네?

도형준 상무는 염장호 이등항해사의 말에 노골적으로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얼굴색이 변한 사내.

김영 일등항해사의 얼굴은 그야 말로 곧 화산처럼 폭발할 기세였다.

도형준 상무가 염장호 이등항해사에게 물었다.

“음,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도 말씀해 주시죠.”

“네, 최근 들어 소말리아 해적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지만 사실 해적 문제라면 소말리아가 아니라 다른 곳이 더 큰 문제죠.”

염장호 이등항해사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물론 경험이 많은 항해사들이라면 다 알고 있는 사실이죠. 장보고 삼항사 그렇죠?”

‘뭐? 경험이 많은 항해사?’

나의 미간이 살짝 꿈틀거렸다. 하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다.

“네, 당연하죠.”

“음?”

“말라카 해협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저도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설마 경험이 많은 항해사인 이항사님이 겨우 말라카해협에 있는 해적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일어나신 건 아니죠?”

내 말에 염장호 이등항해사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몇몇 사람을 킥킥 웃어댔다.

염장호 이등항해사가 말했다.

“그렇게 잘 알고 있으면 왜 지금 이 시점에 말라카해협의 해적들이 아닌 소말리아 해적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겁니까?”

“음, 염장호 이항사님은 항해 경험은 많으실지 몰라도 해운업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세상 물정은 잘 모르시나 봅니다.”

내가 시니컬한 말투에 놀란 사람들이 헛바람을 들이켰다.

주변의 삼항사들 중에는 깜짝 놀라 동공이 흔들리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이들도 많았다.

염장호 항해사도 얼굴이 살짝 붉어지며 소리쳤다.

“뭐? 무슨 소리야!”

“염장호 이항사님은 말라카해협의 해적들 때문에 말레이시아와 대한민국 해양경찰이 공동으로 작전을 준비 중인 사실을 모르십니까? 3천톤급 경비함을 보내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는 소문이 업계에 이미 파다한데 말입니다.”

“……!”

“그리고 미국과 일본에서도 현재 해적 소탕을 위한 지원을 인근 국가들에 아끼지 않겠다고 발표하지 않았습니까?”

“…….”

“보험료 때문에 항로를 우회하던 해운회사들도 최근 항로수정을 고려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설마 모르십니까?

“……!”

새끼. 역시 모르는 눈치가 역력했다.

하긴 얼마 전에 배로 복귀했으니 모를 수도 있지.

하지만 보통은 모르면 이럴 때 잘 안 나서지 않나?

평소 허세가 심하고 잘난척하는 것을 좋아하는 놈이다,

지금 이 자리에 해신해운의 실세 임원들이 있으니 이곳에서 최근 주가를 올리고 있는 나를 눌러줄 생각으로 나섰던 것이 분명했다.

얼굴이 달아오른 염장호 항해사는 발악하듯 소리쳤다.

“장보고 삼항사, 그럼 소말리아 해적들 문제를 어떻게 대비할 생각인가? 그 똑똑한 머리에서 나오는 의견을 한번 들어봅시다!”

그의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모아졌다

머릿속으로 전생에 만난 해적들의 위협이 떠올랐다.

“띠링”

그 순간 눈앞에 새로운 퀘스트 창이 떠올랐다.

+

<메인 퀘스트(#06)를 시작합니다.>

시나리오 진행에 따른 메인 퀘스트를 진행합니다.

“선박을 위협하는 해적들의 세력들이 크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해적을 대비할 방법을 미리 마련하세요!”

세부 퀘스트 : 해적

클리어 조건 : 해적의 위협에 대비

제한시간 : 다음 항차 승선 전까지

보상 : 명성 + 50, 글로벌 인맥, 사내 평가 상승, 글로벌 명성 상승

실패시 : ???

+

선원들의 생명을 지킬 수 있는 방법

현재 해신해운은 해적들이 나타날 경우를 대비하여 선박에 방호장비 등을 갖추게 하고 있으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상황.

현대 해적들의 목적은 선박이나 선박안의 물건을 탈취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목적은 바로 선박과 선원을 인질삼아 몸값(ransom)을 받으려는 것이다.

그런까닭에 해적들은 선박에 올라오더라도 선원들을 해치기보다는 생포하려고 한다.

그 말은 해적들이 배에 올라오더라도 선원들이 도주할 공간이 있으면 살 수 있다는 말이다.

도주 공간으로 도망친 후 비상구출신호를 받고 출동하는 해군이나 해경이 올 때까지 버틸 수 있다면 피랍을 피할 수 있다.

선박 내에서 선원들이 숨을 수 있는 곳.

그게 바로 시타델(Citadel)이다.

씨타델은 해적들이 공격하거나 승선했을 경우 대피할 수 있는 곳을 말한다.

두꺼운 철판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비상식량과 함께 통신시설이 갖춰져 있다.

현생에서는 아직 해신해운의 선박에는 시타델(Citadel)이 설치되어 있지 않은 시점이다.

물론 시타델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안전한 것은 아니다.

외부에서 부수고 들어올 수 없도록 견고하게 제작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배의 상황에 맞춰서 제작하다 보니 씨타델을 부수고 들어오는 경우도 많기 때문.

해신해운도 몇 년 안에 선박들에 시타델을 설치하게 된다.

문제는 전생에 이러한 작업들이 몇 가지 사고가 발생한 이후에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조치라는 것이다.

* * *

- 해신해운 본사 소강연장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며 천천히 좌중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컨테이너선을 포함해서 현재 운항 중인 모든 선박에 시타델(Citadel)을 하루 빨리 설치해야 합니다.”

내 말에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실제로 불과 몇 년 후가 되면 해운회사들은 수에즈운하를 지나는 선박들에 부랴부랴 시타델을 설치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직은 선박에 시타델을 설치하는 것이 보편적이진 않은 상황.

몇몇 항해사들은 시타델이 뭔지도 모르는 눈치.

“하하하!”

그때 또다시 어색하지만 큰 웃음소리가 들렸다.

“모든 선박에 시타델이라고? 하하하!”

누가봐도 염장호 이등항해사가 나를 보며 크게 웃어대고 있었다. 누가 봐도 억지로 웃는 기색이 역력한 표정.

그는 제법 자신감을 얻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어디서 들은 건 있나 보네. 그래도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게 분명하군. 장보고 삼항사 이번에 초임으로 승선한 선박이 비너스호라고 하지 않았나?”

“네 맞습니다.”

“그런데도 모른단 말이야? 해적들이 주로 노리는 선종이 뭔지도 몰라?”

그의 말도 일리가 있다.

실제로 해적들이 주로 노리는 선박은 유조선이나 벌크선이다.

이런 선박들은 컨테이너선에 비해 속력자체도 느리고 높이가 낮기 때문에 해적들이 선박 위로 올라오기 쉬운 선종(선박종류)였다.

해적들이 쫓아와서 선상으로 침입하기 좋은 선박이라는 뜻.

해적 입장에서도 당연한 이야기.

같은 시간과 노력을 소요할 것 같으면 피랍하기 어려운 컨테이너선을 목표로 하기 보다는 벌크선을 납치하는 것이 훨씬 쉽고 간편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적들에게 피랍되는 선박의 종류도 대부분은 벌크선이다.

물론 이때까지는 말이다.

문제는 대해적 시대의 해적들은 다르다.

소말리아의 미친놈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놈들이 아니라고!

대해적의 시대라는 말처럼 제대로 미친놈들이 나타난다. 곧 바다에는 아주 위험한 놈들 투성이가 된다는 뜻이다.

소말리아의 해적들도 처음에는 소박한(?)놈들이었다.

어선으로 위장해서 선박 근처에 접근한 후 소총 같은 귀여운(?) 무기들을 보여주며 위협하던 놈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돈 맛을 본 이놈들은 무기도 살벌하게 업그레이드하기 시작한다.

속도가 빠른 고속 보트를 타고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무기도 소총뿐만 아니라 RPG(휴대용 로켓 무기) 같은 무서운 무기를 들고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이놈들은 배를 쫓아와서 배가 멈추지 않으면 컨테이너선박에 쌓여있는 컨터이너를 향해 RPG 유탄을 쏴버리는 아주 무식한 놈들이었다.

‘곧 나타날 놈들은 말 그대로 최악의 세대라고!’

실제로 전생에 해신해운의 선박도 RPG를 두들겨 맞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해적들이 공격을 감행한 선박도 벌크선이 아닌 컨테이너선이었다.

나는 비릿한 웃음을 지어보이는 염장호 이등항해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뭐?”

“컨테이너선은 속도가 빠르고 높이가 높아서 해적들이 주로 타깃으로 정하는 선종(선박의 종류)가 아닙니다.”

“음......”

“아직까지는 말이죠.”

“......”

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그래도 여전히 컨테이너선에도 시타텔을 설치할 필요가 있습니다.”

“장보고 삼항사,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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