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전 영상이 끝나자 사람들의 시선은 나에게로 모아졌다.
“…….”
축전 영상 속 외빈이라는 사람들이 하나 같이 말미에 내 이름을 거론하는 것 까먹지 않았던 것이다.
이 사람들은 도대체 센스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앞으로 해신해운과 장보고 삼항사가 크게 발전하기를 기원한다는 말이 도대체 뭔 소리냐고!’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얼굴은 어느새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본사직원 수백 명이 모인 자리에서 내 이름이 거론되자 살짝 부끄러운 감정이 들었던 것이다.
한바탕 소란스러운 일이 벌어지고 창사기념일 행사는 어느새 우수 직원 표창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올해의 우수선원 표창이 있겠습니다. 올해는 이례적으로 선박에 승선한 선원 전체에게 표창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우수선원 비너스호 선원 일동! 표창과 부상으로 금일봉이 수여되겠습니다.”
사회자가 좌중을 둘러 본 후 이어 말했다.
“현재 승선 중인 관계로 양화종 일등항해사가 비너스호 선원들을 대표해서 표창을 수여받겠습니다.”
사회자의 말에 양화종 일등항해사가 빠르게 연단으로 올라섰다. 연단에는 해신해운의 전문경영인 박원용 사장이 서있었다. 그는 활짝 웃으며 양화종 일항사에게 표창을 수여했다.
‘음? 양화종 일항사만?’
뭐야?
일항사가 혼자 대표로 받는 거면 나는 왜 부른 거야?
그때 사회자가 이어 말했다.
“마지막으로 해신해운 전사의 직원들 중에서 최우수 성과를 낸 직원에게 표창하는 최우수직원표창이 있겠습니다. 올해는 이례적으로 선원 중에서 선발되었습니다. 표창과 부상으로 금일봉이 수여되겠습니다.”
“……!”
“삼등항해사 장보고! 앞으로!”
‘헙!’
내 이름이 호명되자 나는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용수철처럼 튕겨져 올랐다.
그리고 연단으로 빠르게 뛰어 올랐다.
연단에는 시상자로 해신해운의 회장이자 대주주인 권영호 회장이 서있었다.
권영호 회장은 70세가 넘은 나이였지만 아직도 기력이 정정했다. 전문 경영 CEO 가 있지만 본인도 회사의 실무를 꼼꼼하게 챙기고 있었다.
나는 전생에 권영호 회장을 대면할 기회는 없었다.
이 건강한 사람이 몇 년 안에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이후로 시작된 경영권 분쟁도 해신해운이 망하게 되는 원인 중 하나였다.
권영호 회장이 나를 바라보며 표창을 수여했다.
그가 손을 내밀자 나는 공손한 자세로 숙이며 손을 내밀었다.
“그 소문의 삼등항해사가 자네인가?”
“네?”
“회사 경영진 사이에서도 자네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가 많더군.”
“하하하.”
나는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장보고 삼항사, 그럼 앞으로도 계속 회사를 위해 힘써주시게.”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나를 바라보는 권영호 회장이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 * *
- 해신해운 본사 소강연장.
창사기념일 행사를 마치고 며칠 뒤.
나와 양화종 일등항해사를 비롯한 선원들이 본사 강연장에 모여 있었다.
오늘은 휴가 중인 선원들과 회사 경영진 사이에 간담회가 예정되어 있었다.
강연장 한쪽 구석으로 김영 일등항해사의 얼굴도 보였다.
‘뭐야? 왜 저렇게 구석에 있어?’
그는 상당히 긴장한 표정. 강연장 한쪽 구석에서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마치 누군가를 찾고 있는 것 같았다.
“김영 일항사님!”
“어, 어 장보고 삼항사 왔어? 별일 없이 잘 돌아왔나 보네.”
그는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나, 나는 좀 일이 있어서 나중에 보자.”
'뭐야?'
그는 내가 다가가서 인사를 하자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슬슬 자리를 피했다.
어느새 강연장은 사람들도 가득차기 시작했다.
선원들의 목소리가 회사에 잘 반영한다는 취지에서 만든 특별 간담회인 만큼 참석자들의 대부분은 젊은 항해사들이었다.
비너스호가 이번 항차에서 보여준 성과를 계기로 마련된 행사.
해신해운의 최고 경영진이 직접 선원들의 목소리를 듣고 회사 경영에 이들의 의견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는 도영준 상무의 의견이 반영된 것이다.
내가 생각했던 계획보다 살짝 이르긴 하지만 본사에 온 김에 해결해야 될 문제가 있었다.
타이밍도 좋게 느껴졌다.
얼마 전에 최우수직원 표창까지 받은 상황이니 말이다.
삼등항해사가 회사에 이런 저런 요구를 한다고 해서 건방지게 보는 사람은 없겠지?
‘그냥 삼항사가 아니니까.’
나는 올해의 최우수직원이니까. 으헤헤헤.
전생에도 이런 상을 받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제법 기분 좋은 일이었다.
기획실 도형준 상무의 진행 하에 선원들과 회사 경영진들 사이에 간담회가 시작되고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오고가고 있었다.
오늘 이 자리는 현장의 선원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자리였다.
따라서 선장들은 제외되었고, 삼등항해사부터 일등항해사까지의 선원들이 참석한 상태.
보통 본선에서 건의사항이 선장이나 부산지사의 해사본부를 거쳐 본사로 전달되기 때문에 젊은 항해사들의 목소리를 직접 청취한다는 것이 이번 행사의 취지였다.
문제는 일등항해사라고 해봐야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가 대부분이라는 것.
아무리 경영진이 편하게 이야기를 하라고 해도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항해사들은 없어 보인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
어느새 간담회는 일방적인 경영진의 자리가 되어 가고 있었다.
기회를 엿보고 있던 나는 한마디 나설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아무리 최우수직원으로 뽑힌 나라도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너무 나댈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란 인간. 이런 겸손함이라니.
간담회의 내용은 자연스럽게 젋은 선원들이 최근에 가장 걱정하는 내용은 무엇인지에 대해 의논하는 시간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기다리고 있던 주제였다.
아직 본격적인 위협이 시작된 것은 아니지만 해운업계를 곤란하게 하는 큰 사건들이 곧 발생하기 때문이다.
바로 소말리아 해적들이 기승을 부리는 시기가 곧 도래할 예정.
그야 말로 대해적의 시대가 재림한 것이다.
각종 무기들로 무장한 해적들이 수에즈운하를 지나기 위해 다가오는 상선들을 노리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선박들도 실제 많은 피해를 입게 된다.
그리고 해신해운도 이 해적들의 위협을 피해갈 순 없었다.
대해적의 시대
- 해신해운 본사 소강연장
요즘 같은 시대에 해적이라니?
하지만 해적은 소설이나 만화속에서만 등장하는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실제로 해적들은 오랜 기간 해운업 종사자들의 머리를 아프게 한 골칫거리.
그리고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야말로 대해적의 시대가 다시 시작된다.
2000년대 초중반에는 전통적인 해적 출몰지역인 말라카해협의 해적들이 활개를 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2000년대 중후반이 넘어가면서 그야말로 대해적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게 되는데 그 주인공이 소말리아의 해적들이다.
소말리아에서는 내전이 몇십 년째 지속되면서 소말리아 국내 경제는 완전히 붕괴해버린 상황. 그야말로 무정부상태.
소말리아 사람들은 생계가 곤란해지자 목숨이 달린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해적질에 가담하게 된다.
일설에 따르면 소말리아의 해적들은 사실 어민들이었다는 말도 있다.
무정부상태가 된 소말리아의 바다에 다른 나라 선적의 어선들이 나타나 물고기를 싹쓸이 해버렸기 때문이 화가 난 소말리아 어민들이 해적으로 돌변해 버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해적질이 돈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일 년은 열심히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을 해적질 한 번에 벌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소말리아 어민들이 너도 나도 해적으로 돌변하기 시작했다.
소말리아 해적들은 점차 규모가 커지면서 기업화되었다.
소문에는 해적들의 브로커가 영국 해운 시장에서 선박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는 다는 소문도 돌았다.
해적들은 무기들도 현대식으로 갖추기 시작했고, 모선을 이용한 원양까지 진출했다. 해적들의 활동 반경이 한없이 넓어지기 시작했다.
유조선이나 벌크선 같은 대형 선박들도 소말리아 해적들에 의해 피랍되는 사건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수에즈운하를 통과하기 위한 선박들이 이들의 주된 타깃이었다.
* * *
- 해신해운 본사 소강연장
간담회를 진행하던 도형준 상무가 물었다.
젊은 항해사들의 걱정거리가 무엇이냐고.
나는 도형준 상무의 말에 나는 손을 번쩍 들었다.
간담회라는 말이 무색하게 항해사들이 별다른 의견을 내놓지 않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내가 손을 들자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쏟아졌다.
‘유명세 때문인가?’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긴 그렇지만 최근 해신해운에서 가장 주목받는 항해사가 바로 나다.
몇몇은 나를 보며 조용히 장보고 어쩌고저쩌고 쑥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나의 활약상을 듣고 놀라워하거나 시기하는 말들을 하는 것이 분명했다.
도형준 상무가 말했다. 나를 발견한 그의 눈은 이채를 발했다.
“네, 장보고 삼항사?”
“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네, 제가 요새 걱정거리가 많습니다. 그래서 회사에 몇 가지 건의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허허허. 그래요? 이 기회에 편하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그래 걱정거리가 뭔가요?”
“제가 걱정하는 것은 바로 소말리아 해적들입니다.”
“네?”
생뚱맞은 내 대답해 다들 황당해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젊은 선원들의 고민거리를 이야기 하는 시간이 다들 내가 선원생활의 고달픔이나 선원들에 대한 복지 문제 등을 이야기할 것으로 예상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사실 소말리아 해적들이 본격적으로 기승을 부리기 전.
소말리아 해적이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것은 2000년대 중 후반 이후의 일이다.
아직 해신해운이 느낄 정도로 본격적인 위협이 시작된 시기는 아니었다. 지금 여기에 모인 이들도 소말리아의 해적들의 위험을 체감할 시기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때였다.
“풉! 크크크. 소말리아라니.”
강연장 한쪽 구석에서 내 대답을 비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시기상조라는 건 나도 인정.
그래도 이렇게 대 놓고 비웃는 놈이 있네?
‘어디서 본 장면 같은데?’
어디선가 이런 상황을 어디서 한번 겪어본 기분이 들었다.
느닷없는 비웃음 소리에 강연장은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강연장 오른쪽 구석에 앉아 있던 김영 항해사의 얼굴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를 바라보자 그는 내 시선을 알아차리고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아, 아니야! 나 아니야!”
김영 일등항해사는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깜짝 놀라며 손을 들어오려 황급히 가로저었다.
“왜 저래?”
김영 일등항해사를 바라보며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특히 그와 승선을 같이 해본 후배 항해사들은 그의 반응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평소 후배 항해사들 군기를 잘 잡기로 유명한 김영 항해사가 귀신이라도 본 표정으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기 때문.
내가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고 그를 계속 바라보자 김영 일등항해사는 다시 한 번 크게 소리쳤다.
“내가 한 말 아니야! 이 놈이야 이놈!”
김영 일등항해사는 손을 들어 올려 자기 앞에 앉아 있는 사내의 뒤통수를 한 대 후려갈겼다.
딱!
“야! 간담회 중에 뭐하는 짓이야!”
김영 일등항해사 앞에 앉아 있다가 머리를 한 대 쳐 맞은 사내.
낯익은 얼굴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나도 익히 잘 알고 있는 사내였다.
그는 염장호 이등항해사.
염장호 이등항해사는 손을 들어 올려 뒤통수를 부여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