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4화 (54/200)

나는 깜짝 놀라 말문을 잃었다.

그 회사의 이름은 너무 유명해 나도 익히 알고 있는 곳이었다.

주식회사 싸이엔.

2000년 중후반 우리나라를 뒤흔든 역대급 다단계 피라미드 사기 사건이 있다.

일명 ‘조의칠 사건’으로 불리는 희대의 사기 사건이다.

희대의 사기꾼으로 불리는 조의칠이 2000년대 중후반 전국에 10여개 다단계 판매 회사를 차리고 의료기기 대여업으로 30% 이상의 고수익을 보장한다고 속여 전국적으로 약 5조 원 이상을 편취한 것으로 알려진 사건.

당시 규모로 국내 최대 규모의 유사수신 사기 사건으로 기록된다.

그때 조의칠 일당이 부산 지역 사기 사건에 이용하기 위해 세운 회사가 있었다.

그 회사의 이름이 바로 주식회사 싸이엔.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엄마, 얼마나 투자했어요?”

“많이 투자하고 싶었는데 돈이 없잖니. 내가 용돈 비자금 모아둔거랑 네가 보낸 준 돈 밖에 못했지. 더하려고 했는데 너희 아버지가 못하게 해서!”

엄마는 아버지를 노려보며 말했다.

“당신! 내가 적금 든 거도 전부 다 집어넣자고 했잖아요.”

“흠! 내가 뭐 이렇게 잘 될지 알았나? 그래 뭐 지금 투자하면 안 되나? 허허허.”

“지금 들어가면 수익률이 줄어든다니까요. 그때가 좋은 기회라고 말했잖아요.”

나는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내가 주식사라고 한 돈은 전부 다 거기 투자했어요?”

“응 그렇다니까.”

“다른 돈은 안 넣고?”

“내 비자금이라고 해봐야 생활비 조금씩 모은 거니까. 해봤자 얼마 안 되지. 주식보다 수익률이 훨씬 좋다니까. 걱정 안 해도 돼.”

“…….”

대부분이 내 돈이라니 한편으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번 기회가 아니라도 돈을 벌 기회가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가족들의 돈을 날리면 그건 그야말로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다행이 부모님 돈을 많이 투자한 것으 아닌 모양.

“엄마, 이번 달 초에 투자 했다고요?”

“응.”

그나마 다행이다.

이 사건은 전형적인 다단계 피라미드 사기 사건이다.

이른바 폰지사기(Ponzi Scheme).

폰지사기란 이른바 신규 투자자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이자나 배당금을 지급하는 방식의 다단계 금융 사기 사건을 말하는 사기 수법.

신종 사기 수법은 매년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도 사실 고수익을 보장하다는 거짓말로 투자를 유치하는 사기는 이 폰지사기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 방법을 바꾸는 것일 뿐 수법은 동일하다.

사건 초기라면 돈을 찾을 수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폰지사기 사건의 특징 때문이다.

폰지사기는 투자자를 유치해 정점에 이르렀을 때 사건을 터트린다. 그래야 가장 많은 돈을 챙길 수 있기 때문.

이들 사기꾼도 초창기에는 사업 관리를 위해 수익금을 잘 지급하고, 해지도 비교적 쉽게 해주는 경향이 있었던 것이다.

‘초창기라면 가능하다!’

일단 돈을 찾아올 방법을 찾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몇 개월간 배를 타며 벌어들인 피 같은 돈이 아닌가.

생각을 집중하자 이번에도 작은 상태창이 떠올랐다.

“띠링!”

+ 스킬 [고소고발 Lv.2]를 사용합니다. +

다행인 점은 이 사건이 발생 초기라는 점이다.

이점을 이용하면 아직 큰 피해를 입지 않고 돈을 회수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 사람을 찾아봐야겠다.’

자갈치 쩐주 최부자.

나는 전생에 망한 인생을 살며 나락으로 떨어질 뻔 했던 나를 구제해준 인물을 떠올렸다.

부산의 최고 알부자라고 불리는 사람.

사람들은 그를 ‘자갈치 쩐주’라고 불렀다.

그는 전생에 나를 구제해 준 인물이다. 그 덕분에 나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고 부동산을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전생에 그가 나에게 들려준 과거가 생각났다.

내가 재기에 성공하고 그를 다시 만났을 때 그가 소주한잔을 따라주며 들려준 그의 이야기.

알부자인 그가 굳이 망한 사람들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는 이유.

그건 사기꾼한테 제대로 당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갈치 쩐주’의 명성을 하루아침에 곤두박질치게 만든 사건.

그는 ‘조의칠’ 사건의 최대 피해자였다.

창사기념일

- 해신해운 본사 건물 앞

나는 여의도에 있는 해신해운 본사 건물 앞에 서서 건물을 바라보았다.

급하게 본사로 올라오라는 연락이 있었다. 창사기념일에 참석하라는 연락이었다.

그나저나 오랜만이네.

건물 꼭대기 외벽에 크게 달려있는 회사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해신해운 Heasin Shipping.”

해신해운이라는 적힌 큰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본사 건물의 모습이 오히려 생소하게 느껴졌다.

전생에 마지막으로 이곳에 왔을 때는 이미 해신해운이 경영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본사 건물을 매각한지 한참 오래된 상태였다.

‘그때는 저 간판도 벌써 떼버리고 없었지.’

건물에 적힌 해신해운이라는 글자가 새삼 어색해보였다.

나는 본사 건물 정문으로 들어섰다.

1층 로비에는 밝은 표정의 해신해운 직원들이 보였다. 잠시 담배를 피우러 나가는 직원들, 커피를 들고 사무실로 올라가는 직원들 그리고 거래처 직원들인지 서류와 가방을 바리바리 챙겨 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모습.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다들 자신감 있고 당당한 표정.

지금 이 시기는 해신해운 역사상 가장 크게 성장하는 시기.

지금부터 앞으로 몇 년간은 해운호황기가 지속되기 때문이다.

해신해운의 규모도 나날이 커져가고 해신해운 직원들의 애사심도 남달랐다.

‘이렇게 잘나가던 회사가 십 몇 년 뒤에 그 지경이 되다니.’

해신해운의 직원들을 다시보자 전생의 기억이 떠올랐다.

회사가 파산하고 짐을 싸서 떠나던 동료들의 모습이 뇌리를 스쳐간 것이다.

이미 경험해본 일이지만 도무지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당시에도 그렇게 빨리 사세가 기운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눈앞에 보이는 밝은 표정의 직원들.

이들에게 다가가 미래에 그런 일이 발생할 것이니 준비해야 된다고 한들 믿을 사람이 있을까?

당시에는 지금 해신해운 직원들이 보여주는 에너지와 자신감은 도저히 찾아볼 수 없었다.

지금은 해운업 호황기에 힘입어 해신해운이 운영하는 선박수가 150척이 넘어서면서 성장세에 올라서는 시점이다.

부채를 월등히 넘어서는 자산을 보유한 회사로 재무건전성에서 탄탄하다는 평가를 받는 시기.

하지만 몇 년 안에 해신해운이 운영하는 200척에 달하게 되고 그 사이에 무리하게 선박을 도입한 것이 회사의 재무상태를 악화 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전생의 기억이 떠오르자 가슴 한 구석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

오랜만에 결의를 다지는 순간이었다.

“장보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목소리를 주인공을 확인했다.

비너스호에서 함께 승선했던 곰치 일항사!

양화종 일항사가 활짝 웃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양화종 일항사님!”

“배에서 내렸는데 연락도 안하네?”

“죄송합니다. 하선해서 여러 일들이 좀 있었습니다. 부산에서 오늘 올라왔습니다.”

“하하하. 농담이야. 오늘 저녁에는 한잔해야지?”

“네 당연하죠!”

양화종 일항사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삼항사 덕분이네. 본사에 와서 표창도 다 받아보고?”

“제가 잘 해서 받는 건가요? 비너스호 선원들이 다 같이 받는 상 아닙니까?”

“오! 못 보던 사이에 언제 이렇게 어른스러워졌지?”

우리는 웃으며 해신해운 창사기념일 행사가 진행될 본사의 맨 꼭대기 층 대형 강당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다름 아닌 해신해운의 창사기념일 행사가 진행되는 날이다.

비너스호의 선원들은 올해의 우수 선원 표창을 받을 예정.

현재 승선 중인 비너스호의 선원들을 대신해서 양화종 일등항해사와 내가 이 자리에 참석하게 되었다.

양화종 일등항해사의 표정은 밝았다. 그동안 좀처럼 찾아 볼 수 없는 밝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전생에 양화종 일등항해사는 비너스호 승선을 마치고 고과를 낮게 받아 선장 진급에 누락한다.

하지만 이번 생은 아마도 다르겠지.

일단 지난 항차에 비너스호가 이룬 성과가 너무 크다.

그리고 이번에 우수선원 표창까지 받고 나면 전생과 달리 양화종 일등항해사는 선장으로 진급할 것은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었다.

지난 항차 때 그 난리를 친 보람이 있네?

회의실로 들어서는 내 발걸음도 무척 가볍게 느껴졌다.

* * *

- 해신해운 본사 대형 강당

해신해운 창사기념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최근 영업실적인 좋은 회사 분위기 때문이지 참석한 사람들의 얼굴이 모두 밝았다.

오늘 표창을 받게 되는 우리는 맨 앞줄에 자리가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내 옆으로는 본사 임원들이 앉을 예정인지 자리가 비워져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임원들이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회장님께서 입장하십니다.”

사회자의 멘트에 강단을 가득채운 수백명의 직원들이 모두 기립했다.

연단위에 마련된 자리에 회장과 사장단들이 들어와 착석했다.

행사가 진행되고.

“장보고 삼항사님.”

나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 사람은 인도네시아에서 만난 도형준 상무였다.

“도형준 상무님! 본사로 오셨군요?”

“네, 쓰나미 사건이 있고 난 후에 곧바로 기획실로 발령이 있었습니다.”

동남아지역본부장이었던 도형준 상무가 주재원 근무를 마치고 본사로 다시 복귀한 모양.

“삼항사님, 그나저나 축하드립니다.”

“제가 받는 것도 아닌데요. 비너스호를 대신해서 온 거 아닙니까?”

도형준 상무가 내 말에 웃음을 지어보였다.

내빈들 인사를 마치고 이번에 해신해운에서 제작한 텔레비전 광고영상을 새롭게 선보이는 순서였다.

“음?”

갑자기 연단 왼쪽 편에서 사회를 보고 있는 총무팀 직원 근처로 급하게 한 사람이 달려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두 사람은 급하게 의논을 시작하더니 사회자가 좌중을 향해 말했다.

“진행이 매끄럽지 못해 죄송합니다. 해신해운 창사기념일 행사 소식을 듣고 참석하지 못한 외빈들께서 직접 축전을 회사로 보내주셨습니다. 축전 영상을 먼저 보시겠습니다.”

사회자는 영상에 맞춰 외빈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먼저, 아랍에이미르트 AP(Arab petroleum)사의 CEO 나민 아세르 사장님의 축전 영상입니다.”

“…….”

+ 당신의 명성이 상승합니다! +

+ 당신에 대한 본사의 사내 평가가 급격하게 상승합니다. +

축전 영상이 상영되자 눈앞으로 작은 메시지창들이 울려댔다.

뭐야? 저 사람들이 여기서 왜 나와?

나는 차례로 축전 영상에 등장하는 외빈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나민 아세르의 영상이 끝나자, 이집트 수에즈운하청장이 나타났다.

“…….”

그리고 주한영국대사의 축전 영상이 이어졌다. 이 사람은 잘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누가 힘을 썼는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인도네시아의 장관과 딸이었다.

“와아아아!”

해신해운의 남자 직원들의 큰 함성이 터져나왔다.

아름다운 미녀가 화면에 등장하자 박수를 치며 크게 환호한 것이다.

나는 조용히 혼자 중얼거렸다.

“이거 다 아는 사람들이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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