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를 찾아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섰다.
집안에는 아무런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제발!’
나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신발을 벗고 빠르게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
거실 탁자위에는 메모 한 장과 흰 봉투가 놓여 있었다.
+
큰 아들 장보고,
배 탄다고 고생했지?
무사히 첫 승선을 마치고 돌아와서 너무 장하다.
그런데 이거 어떡하지?
미안한데 봉투에 용돈 넣어 놨다. 좋아하는 짜장면이랑 먹고 싶은 거 시켜 먹고 있어.
아빠랑 엄마는 좋은 기회가 있어 1주일 동안 태국으로 여행 간다.
차마 통화할 때는 말 못하겠더라. 1주일 뒤에 보자.
- 사랑하는 엄마가
+
“…….”
그래 그랬었지.
이번 항차 쯤 해서 부모님이 해외여행을 다녀온 일이 있었던 것 같은 기억이 떠올랐다.
그나저나 잊고 있었다.
세상 쿨한 성격의 어머니 모습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졌다.
부모님이 돌아오면 꼭 하고 싶은 말이 떠올랐다.
전생에도 차마 못했던 말.
‘어머니!’
저 짜장면 안 좋아합니다. 간짜장만 먹는다고 몇 번을 말씀 드려야 됩니까!
그만해라
- 부산 영도
일주일 후.
오늘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다.
지난 일주일동안 오랜만에 집에서 푹 쉬면서 빈둥거렸지만 결코 의미 없었던 시간은 아니었다.
그 이유는 바로 주식이 미친듯이 오르고 있기 때문이지.
상한가로 연이어 치솟고 있는 주식을 바라보니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배가 불러왔다.
연일 빨갛게 솟아 있는 이 종목은 인도네시아에서 어머니에게 전화해 미리 사놓으라고 신신당부했던 바로 그 주식.
전생에 기억을 활용하니 앞으로 투자는 걱정 없었다. 연일 상한가를 치고 있다. 본격적으로 오를 일만 남은 듯 보였다.
‘으흐흐흐.’
외항선을 타는 항해사 생활은 고달프고 외로운 시간이지만 한 가지 장점이라면 돈 쓸 일이 없다는 점이다.
월급을 고스란히 모을 수 있으니 알뜰한 사람들은 비교적 어린 나이에 독립할 초기 자금을 모으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전생에는 나도 종자돈을 모으기 위해 저축을 했지만 이번에 다르다. 투자의 신으로 거듭날 자신이 있었다.
‘선박왕이 아니라 주식왕이 되야 되는거 아닌가?’
인도네시아에서 산 날짜를 떠올려 보니 이번 주식으로 벌어들인 수익률이 매우 높아 보였다.
저녁시간이 다 되어갈 무렵.
끼이익!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오셨구나!’
나는 맨발로 마당으로 뛰어나갔다.
“엄마!”
“어 우리 아들!”
빠르게 달려 나가 어머니를 끌어안았다. 좀처럼 애정표현을 하지 않는 내가 살가운 행동을 하자 어머니는 좀 놀라듯 보였다.
“어머1 몇 달 안 봤다고 엄마가 이렇게 반가워?”
“그럼요. 꼭 몇 십년 만에 본거 같아요.”
“호호호. 애교가 많이 늘었네? 배 타는 게 힘들어서 그런가?”
배를 타서 그런 건 아니고요.
‘실제로 몇 십 년 만에 본 거니까요.’
헙! 눈에 먼지가 있네.
어머니를 바라보는 낸 눈에 습기가 살짝 차올랐다.
그 뒤로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에 집에 왔는데 아빠한테는 아는 척도 안하냐?”
“헤헤헤. 아버지, 여행 잘 다녀오셨어요?”
“그래 이놈아! 배 탄다고 고생했지?”
“고생은 뭘요.”
“음? 이놈 봐라? 탈만 하더냐?”
“네.”
“첫배를 탄 놈이 이럴 리가 없는데?”
“저는 적성에 잘 맞던데요?
“그래?”
“네,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죠?”
“그래, 안에 들어가서 얼른 밥 먹자.”
두 사람은 두 손 가득 짐이 많았다. 태국여행에서 산 기념품을 들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선원 생활이 적성에 맞는다고 하자 오히려 아버지는 살짝 놀란 반응.
오랜 시간을 한정된 공간인 선박에 갇혀 살아야 하는 승선생활을 과연 내가 잘 버틸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하던 분이셨다.
사실 전생에서는 첫배를 타고 돌아와 때려 치고 싶다는 생각을 수십 번도 더 했었다.
물론 지금은 다르지만.
얼마 후 거실에 온 가족이 모여들었다.
‘이렇게 한자리에 모인게 몇 십년 만이지.’
기억도 가물가물할 지경.
부모님이 귀국하는 날을 맞춰서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남동생도 오랜만에 집으로 내려왔다.
저녁 식사 시간은 내가 그동안 겪은 무용담을 가족들에게 들려줄 시간이었다.
식탁에서 밥을 먹는 것도 잊은 채로 나는 무용담을 풀기 시작했다.
시작은 인도네시아에서 쓰나미를 피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그리고 싱가폴에서 선박유 밀수 사건을 막은 이야기, 삼합회와 담판을 짓고 AP사를 찾아가 협상을 한 이야기, 밀항자를 탈출시키고 일항사를 구조해낸 사건까지 쉬지 않고 내 무용담을 이어갔다.
그런데 이게 무슨 반응이지?
“…….”
“…….”
“…….”
도대체 뭐지 이 시큰둥한 반응은?
가족들의 반응은 내가 기대했던 반응이 아니었다. 가족들의 떨떠름한 표정을 바라보며 나는 이야기를 급하게 마무리 지었다.
“그래 가지고요. MI6가 나타났다니까요. 헬기를 타고 날아와서…….”
“…….”
“…….”
“…….”
아버지가 나를 한심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니는 이해한다는 표정.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동생의 눈빛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괜히 짠해 보였다.
아버지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말했다.
“됐다. 고마해라.”
“네?”
“이제 그만하라고.”
“네? 뭘 그만하라는 건지.”
“아빠도 갑판장까지 한 뱃사람이다. 그래도 더 이상은 못 들어주겠다.”
“……?”
“하여간 뱃놈들이란. 과장안하면 말을 못하나?”
“네?”
“어쨌든 너도 뱃사람이 다됐구나. 뻥이 아주 많이 늘었네. 이제 중앙동 나가서 뱃놈이라고 해도 되겠다. 허허허.”
“……?”
이게 무슨 소리야.
아버지의 말에 어머니가 아버지를 타박하기 시작했다.
“왜 그래요, 당신 젊을 때랑 똑 같은데 왜 보고한테 그래요!”
“뭐? 무슨 소리야? 뭐가 똑같아?”
“당신도 배 타고 오면 그때마다 무슨 상어만한 참치를 낚싯대로 잡았다는 둥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많이 했잖아요. 젊을 때.”
“무슨 소리야? 나는 진짜라니까!”
“둘이 똑같은데 뭘! 어디 그 아빠 그 아들 아니랄까봐.”
“어허! 이 사람이!”
“상어만한 참치가 어디 있어요? 그걸 또 어떻게 낚싯대로 잡아요 그런걸.”
“없긴 왜 없어!”
“사진이라도 보여줘 봐요 그럼!”
“…….”
아버지는 억울하다는 듯이 가슴팍을 세차게 두들겼다.
나는 어릴때 아버지가 들려준 말이 다 사실이라고 믿었는데 어머니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버지! 저는 믿습니다!’
진심으로 억울해 하는 이집을 가장을 보며 나도 같은 마음으로 안타까워했다.
같은 뱃사람이라서 그런가?
그나저나 진짜로 억울한 건 난데 가족들은 아무도 내 말을 믿는 사람이 없어보였다.
억울한 마음에 속으로 울분을 삼켰다.
“띠링”
+ 스킬 [마도로스의 심장 Lv.1]을 사용합니다. +
스킬이 자동으로 발동 되었다.
‘마도로스의 심장?’
선장의 심장이라니 어떤 효과가 있나?
스킬이 발동되자 마음이 금세 평온해지는 것을 느꼈다.
폭풍우가 치는 거친 바다를 묵묵히 해쳐나가는 강심장을 가진 마도로스가 된 기분.
이런 순간에 사용하라고 퀘스트를 달성한 보상으로 스킬을 준게 아닐텐데.
의구심이 들었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나는 평정심을 유지한 채로 고개를 돌렸다.
내 하나뿐인 내 동생.
이름은 장해진.
동네에서 싸움 잘하는 형을 둔 내 동생은 어린 시절부터 나를 우상처럼 생각하는 아이였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동생은 나를 믿을 것이 분명했다.
“해진아, 너는 형 말 믿지?”
“형, 나도 이제 대학생이야.”
“…….”
“아버지가 한국대 못 들어가면 해양대 가야된다고 해서 내가 고등학교 때 얼마나 열심히 공부한지 알지?”
“뭐?”
“형 말이라면 다 믿던 그런 꼬마가 아니라고 이제.”
“…….”
아버지는 옛날 사람이다 보니 직업에 대한 자부심도 있으신 분. 본인이 갑판장 출신이니 아들이 해양대를 졸업해 항해사가 되길 바라셨다.
우리 형제에게 어린 시절부터 우리나라 최고 명문대인 한국대가 아니면 서울로 대학교를 보낼 줄 생각이 없으니 한국대 아니면 무조건 해양대를 가야 한다고 누누이 말해 오신 분이다.
고등학교 때 사고를 제법 친 나는 턱걸이로 해양대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자랑스러운 내 동생은 배를 타지 않겠다는 일념하나 만으로 죽기 살기로 공부했다. 그리고 우리나라 최고 명문대 한국대에 당당하게 합격했다.
그런데 이 새끼가 대학 좀 잘 갔다고 건방져졌네?
동생은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너 마저도?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더니.
끙! 이렇게 된 이상 나는 내 입지를 위해 대화 주제를 전환하기 시작했다.
주식의 투자에 성공한 사실을 알게 되면 내 하나뿐인 동생도 옛날과 같이 나를 존경어린 눈빛으로 바라볼 것이 분명했다.
“엄마.”
“응?”
“그때 내가 내 월급으로 매달 이체 걸어놓은 돈으로 사놓으라고 한 주식 있잖아요.”
“음? 무슨 주식?”
“…….”
싸늘하다. 싸늘한 비수가 날아와 내 가슴에 꽂힌다.
나는 입술이 바짝 말라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 인도네시아에서 전화했잖아요. 월급 들어오는 통장 엄마가 관리해주기로 해서 내가 전화로 알려주는 주식 사라고 내가 신신당부 했잖아요.”
“아 그랬지!”
“그래 그 주식 어떻게 됐어요?”
“안 그래도 내가 말하려고 했는데 잘됐네.”
“네?”
“네가 말한 대로 주식을 샀지.”
“휴! 다행이네요.:
내 말에 엄마가 크게 방긋 웃었다.
“그런데, 이번 달 초에 좋은 투자처를 소개 받았거든. 그래서 돈을 빼서 옮겨놨지.”
“네? 주식에서 돈을 뺐다고요?”
“그래 최근에 수익률이 좋은 사업이 새로 생겨서 이동네 사람들이 전부 다 투자했거든.”
이게 무슨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리지?
사기꾼의 냄새가 스멀스멀 방안 구석구석까지 올라오는 느낌.
“엄마, 그게 무슨 사업인데요?”
“응 의료기기 대여업을 하는 곳인데.”
“네?”
“의료기기를 사서 의료기기 대여업을 하는 회사에 빌려주면 그 기계를 대여해서 벌어들인 수익을 나눠주는 신종 사업이거든.”
“그거 다단계 피라미드 아니에요? 사기?”
“무슨 소리야 이번 달에 벌써 40%로 수익금을 받았는데!”
맞네. 딱 봐도 사기가 맞다.
나는 떨리는 손을 부여잡으며 물었다.
“그 회사 이름이 뭔데요?”
“주식회사 싸이엔이라고 큰 회사야. 네가 걱정 안 해도 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