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1화 (51/200)

이 찰진 반응. 여전하시네.

“런던입니다.”

“뭐 런던?”

“네.”

“그런데 왜 비행기를 안탔어?”

“아! 일이 좀 있었습니다.”

“무슨 일?”

‘김영 일항사가 아무런 말을 안했나 보네?’

김영 일등항해사가 목격을 했으니 회사에 보고를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모르는척 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자기가 해경에 신고했는데 우리가 MI6에 납치된 상황이 아닌가. 김영 일항사의 입장에서도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가는 게 좋은 방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 혹시 김영 일항사가 별말 안하던가요?”

“무슨 말? 그냥 따로 이동하기로 했다던데?”

“아, 그렇군요. 저는 개인적인 일이 좀 있어서요. 런던에 며칠 머물러야 할 것 같습니다. 일 좀 보고 제가 알아서 귀국하겠습니다.”

“인마! 그런 일이 있으면 회사에 미리 연락을 해야지! 걱정했잖아.”

“네, 죄송합니다. 갑자기 일이 생겨서요.”

“비행기는 어쩌려고? 돌아오는 비행기는 어떻게 할 생각이야?”

“그것도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사비로 한다고?”

“네. 제가 알아서 할게요. 제가 여기서 휴가 쓰는 거니까요. 런던에서 구경 좀 하다가 가려고요.”

“음, 그래? 뭐, 알았어. 혹시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

“네, 팀장님.”

“그래, 잘 놀다가 와라. 조심하고. 부산에 오면 회사에 와서 보고하고.”

“네, 알겠습니다.”

해신해운의 부산지사에 있는 해사인사팀장은 해양대학교 출신의 선배.

후배들 사이에 나름 인망도 두터운 사내였다.

갑자기 귀국해야 하는 선원이 비행기를 타지 않고 연락도 두절되었으니 어디서 실종되거나 사고가 난 것은 아닌지 걱정을 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해 보였다.

‘미리 연락을 줬어야 했는데 깜빡했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따르릉!

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또 다시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음?”

나는 다시 객실에 비치된 전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장보고 삼항사님?”

“네, 장보고입니다.”

“저 현재형입니다.”

“현재형? 법무팀 현재형 차장님?”

“네, 맞습니다.”

이 사람이 무슨 일이지? 그리고 내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고?

“네 차장님! 어쩐 일로 연락하셨어요? 제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아시고.”

“해사인사팀장님한테 연락을 받았습니다. 제가 장보고 삼항사랑 연락이 되면 꼭 알려달라고 부탁해 놨거든요.”

“네? 저를 무슨 일로?”

“저도 마침 런던에 있어서요. 출장 때문에 며칠 전에 왔습니다.”

“아 그렇군요!”

“그런데 무슨 일입니까?”

“네? 뭐가요?”

“뉴스를 보다 보니 장보고 삼항사 얼굴이 나오더군요. 잠깐 스쳐지나갔지만 말입니다.”

나도 방송에 탔구나. 현재형 차장은 압둘 무바라크 기자회견을 보고 연락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저도 방송에도 나왔습니까? 허허허.”

“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음, 이야기하려면 너무 긴데요.”

“그럼, 이럴게 아니고 만나서 이야기 하시죠. 오랜만에 얼굴도 보고.”

“네, 그럼 여기로 오실래요? 제가 있는 곳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네, 제가 오늘 일을 마치면 저녁에 바로 갈게요. 식사라도 같이 하시죠. 주소가 어딥니까?”

“사보이 호텔입니다.”

“사, 사보이 호텔이요?”

내가 숙박하고 있는 곳을 알게 된 그의 목소리.

제법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 * *

- 사보이 호텔의 라운지

몇 시간이 흐른 후 저녁 식사 시간.

“하하하. 장보고 삼항사 덕분에 이런 최고급 호텔도 다 와보고 호강하네요.”

현재형 차장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어떻게 된 일이에요?”

“음, 이거 뭐 어디서부터 설명을 드려야 될지 모르겠네요.”

“네?”

“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발생한 일이었습니다. 허허허.”

나는 두바이에서 현재형 차장과 헤어진 이후 선박에 밀항자가 발생한 이야기와 그 이후의 일들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현재형 차장은 내 이야기의 진행 경과에 따라 시시각각 얼굴색이 변해갔다.

그는 밀항자가 발생했다는 이야기에는 인상을 쓰다가 그의 정체를 알려주자 놀라워했고 그의 도움으로 수에즈운하의 도선사를 골탕 먹인 이야기를 해줄 때는 손뼉을 치며 웃어댔다.

그리고 김영 일항사가 실족한 이야기와 구출한 이야기를 할 때는 나에게 대단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김영 일항사가 압둘 무바라크를 해경에 신고했다는 이야기를 듣자 ‘이런 썩을 놈이!’라며 크게 소리쳐 라운지에 이는 주변의 사람들이 우리를 다 바라보게 만들었다.

그리고 해경이 나타난 순간 꼼짝없이 잡혀가게 생겼는데 MI6에 의해 구출되었다는 말에 그는 입을 턱을 크게 벌리고 놀라 말을 잇지 못했다.

“……. MI6요?”

한참동안 나를 바라보던 현재형 차장이 말을 이어갔다.

“참, 다이나믹하네요. 장보고 삼항사 옆에 있으면 심심할 날이 없겠습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참 별일이네요. 이런 일들이 이렇게 연이어 발생하다니,”

어떤 일들은 알아서 나를 찾아왔고, 어떤 일들은 전생을 경험한 내가 피하지 않아서 발생한 일이었다.

과거처럼 지나가기도 하고 새로운 일들이 발생하기도 했다. 같게 보이면서 다른 인생.

지금 내가 살아가는 현생이 그런 모습이었다.

현재형 차장이 물었다.

“그럼 런던에서 남은 기간 동안 뭐 하실 겁니까?”

“글쎄요.”

“저랑 같이 P&I 클럽(선주상호보험사)들 인사가는데 같이 가시지 않겠습니까? 최근에 발생한 일들 때문에 P&I 클럽에서도 미스터 장이 도대체 누구냐고 궁금해 하더군요.”

“저를요?”

“네, 물론이죠. 이 사람들을 알아놓으면 앞으로 경력에도 분명히 도움이 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저도 좋습니다.”

물론이다. 이런 좋은 인맥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나는 현재형 차장의 얼굴빛을 살펴본 후 물었다. 그의 건강상태가 갑자기 염려되었기 때문.

“그건 그렇고 차장님 건강검진은 받아 보셨습니까? 저랑 약속하셨잖아요.”

“아! 그래요. 그때 돌아가서 검진을 쫙 받았습니다. 용종 같은 것들이 많아가지고 이곳저곳 떼어내고 뭐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삼항사님 덕분이죠. 병원에서 더 늦지 않게 찾아오길 잘했다고 하더군요.”

“다행이네요!”

나는 활짝 웃어 보인 후 나는 그에게 귓속말로 조용히 말했다.

“차장님, 사실 이 호텔도 MI6에서 잡아준 것입니다.”

“……! 진짭니까?”

“제가 무슨 돈이 있어서 여기에 묵겠습니까?”

“그, 그건 그러네요.”

“참고로 모든 비용은 자기들이 지불한다고 걱정하지 말고 쓰라고 하더군요.”

“……!”

“오늘 먹고 싶은 거 다 드시죠. 건강검진도 잘 마친 기념으로 오늘 비싼 술도 맘껏 드시는 게 어떻습니까?”

“……!”

“영국이니까 위스키가 좋겠죠? MI6 요원들을 만난 기념으로 위스키로 시작할까요?”

현재형 차장의 얼굴이 한 없이 밝아졌다. 그는 말없이 그저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 * *

- GB P&I 클럽의 본사 위치한 거리

다음 날.

어제 너무 과음했나?

쫌 피곤하네?

“하암!”

영국 번화가 거리에 서서 크게 하품을 하자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힐끔 거렸다.

어제 너무 과음한 탓인지 아직도 숙취가 제대로 해소되지 않은 상태.

‘이렇게 많이 마신 건 진짜 오랜만이네.’

승선기간에도 술은 마실 수 있지만 아무래도 마음껏 마실 수는 없다.

어제는 정말 오랜만에 당직근무 걱정 없이 술을 마실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평소보다는 과음을 하게 되었다.

‘어제처럼 마음 편하게 술을 마셔본 것도 참 오랜만이지.’

어제 현재형 차장과 비워낸 술병들이 떠올랐다.

당직근무 걱정뿐만 아니라 돈 걱정도 없었다.

현재형 차장과 둘이서 부어라 마셔라 들이켰으니 아침까지 숙취가 남아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사실 오늘 일정을 생각해서 좀 참았어야 했다.

나는 두통을 느끼며 손으로 이마를 톡톡 두들겼다.

오늘 현재형 차장의 일정을 쫓아다니기로 했기 때문이다.

나는 런던에 본사를 둔 GB(Great Britain) P&I(Protection & Indemnity) Club(보험사)의 본사 건물 인근에서 현재형 차장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GB P&I Club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P&I 보험사이고, 현재도 가장 규모가 큰 P&I Club들의 모임인 International Group P&I Club의 시장 리더 역할을 하는 보험사이다.

해신해운은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 몇 개의 대형 P&I Club들에 선박들은 분산하여 가입시키고 있다.

해운회사들은 P&I 보험사에게는 일종의 갑의 지위에 있는 고객.

특히 해신해운과 같이 규모가 큰 글로벌 대형 선사들은 P&I Club의 VIP 고객과 같은 대접을 받는다.

P&I 보험사들은 해운회사들이 휘말리는 소송이나 분쟁에 대해서도 법률비용과 책임을 담보한다.

현재형 차장도 영국 출장을 겸하여 방문한 런던에 소재한 P&I Club 들과 현재 진행 중인 국내외 법률 분쟁 등에 대한 전반적인 업무 협의를 가질 예정이었던 것이다.

“장보고 삼항사님!”

택시에서 내린 현재형 차장이 인사를 했다.

그의 눈은 아직도 살짝 빨갛게 충혈 되어 있었다. 그는 오른손으로 눈을 비비며 나타났다.

어제 인생 위스키를 만났다며 연거푸 술을 마셔댄 결과.

“차장님, 속은 괜찮으신가요?”

“물론 끄떡없습니다. 대한민국 샐러리맨 아닙니까? 이정도로는 간에 기별도 안가지요.”

“하하하. 대단하시네요.”

“삼항사님은 괜찮으십니까?”

“저도, 뱃사람 아닙니까? 그리고 저는 아직 20대잖아요.”

“아! 맞네요. 이상하게 삼항사님과 같이 있으면 나이 어린 친구들하고 같이 있는 그런 느낌이 안 들어서 자꾸 나이를 깜빡하네요.”

“제 얼굴이 나이 들어 보인다는 뜻인가요?”

“설마요. 이렇게 미남이신데. 하하하. 노안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현재형 차장이 나를 GB P&I 본사의 정문이 있는 쪽으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자, 삼항사님 저쪽으로 조금만 걸으시죠.”

“네.”

"삼항사님, P&I 보험에 대해서 잘 아십니까?“

“선주상호보험 아닙니까? 학교에서 배운 기본적인 내용만 알고 있습니다.”

나는 삼항사 수준에 맞게 그의 질문에 대답했다.

“아마도 승선 전에도 간단한 교육을 받으셨겠죠. 쉽게 생각해서 손해보험? 배상책임 보험? 이런 보험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네.”

“선박이 부두에 충돌했는데 보험이 없으면 선박이 출항을 하지 못하게 하는 조치를 취하겠죠. 그러면 선박을 운항하지 못해 해운회사들에 막대한 손해가 발생합니다. 이때 P&I Club들이 법적 책임을 부담하겠다는 일종의 담보를 제공하는 것이죠. 국제 항행을 하는 선박들은 P&I 보험 가입이 필수랍니다.”

현재형 차장이 친절하게 P&I 보험에 대한 지식을 전달해주었다.

나는 그로부터 전생에서도 몰랐던 전문적인 지식을 배울 수 있었다.

우리는 어느덧 GB P&I Club 본사 정문에 다다랐다.

“음? 뭐지?”

한 젊은 동양인 남성의 모습이 눈에 들었다.

정문 앞에는 그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주며 인사를 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인가?’

고개를 90도 가까이 숙이는 걸로 보아서는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면 일본 사람이 분명해 보였다.

우리가 다가서자 그가 우리에게도 유인물을 건네주었다. 그는 우리를 힐끔 보더니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우리나라 말로 우리에게 말을 건넸다.

“혹시 한국분이신가요?”

말을 건넨 사내는 한국 사람으로 보였다.

“네, 어떻게 아셨습니까?”

“GB P&I Club이 한국 해운회사들에게 인기가 좋은 곳이라고 들었습니다. 일본이나 중국 해운회사들은 자국 선주상호보험을 선호한다고 하더군요.”

“아 네, 그렇군요.”

“P&I Club에도 인사하고 운이 좋으면 한국 해운회사 분들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다행이네요.”

현재형 차장이 그의 말에 활짝 웃어보였다.

아마 젊은 사람의 패기 넘치는 모습에 호감을 느낀 것처럼 보였다.

나와 현재형 차장은 그가 한국 사람이라는 말에 그가 나눠준 유인물을 유심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의 유인물에는 명함도 같이 편철되어 있었다.

나는 그의 명함을 꺼내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킴 앤 브라운(Kim & Brown)?’

어? 이 사무실은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데?

나는 전생의 기억이 떠올리기 시작했다.

‘아!’

킴 앤 브라운이라면 혹시 그 김태형 영국변호사가 있던 로펌인가?

나는 전생에 알고 지내던 영국변호사의 얼굴을 떠올렸다.

< 띠링! >

+

<보너스 퀘스트를 시작합니다.>

시나리오 진행에 따른 메인(육성) 퀘스트를 진행합니다.

“해상법 전문 변호사를 육성하세요. 그 사람은 장래에 당신의 든든한 방패가 되어줄 것입니다.”

세부 퀘스트 : 해상법 변호사 육성

클리어 조건 : 해상분야 글로벌 탑 변호사

제한시간 : 제한 시간 없음

보상 : 명성 + 200, 글로벌 인맥

실패시 : ???

+

육성 퀘스트?

퀘스트 진짜 선 넘네?

집으로 가는 길

- 런던 GB P&I 클럽 본사 앞

나는 눈앞에 떠오른 퀘스트 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