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0화 (50/200)

우리나라의 가스공사와 체결된 운송계약이지만 어떤 정치적 변수가 영향을 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P&I 클럽 사람들을 만나면 중동정세에 대한 런던 보험사들의 의견도 좀 물어봐야겠군.’

현재형 차장은 수첩을 꺼내 빠르게 적어 내려갔다.

뉴스화면을 보면서 중동에서 온 정치적 망명가의 이름을 따라 적기 시작했다.

“풉!”

뉴스를 보던 현재형 차장은 마시던 커피를 입 밖으로 뿜어냈다.

“켁! 뭐야? 저 사람 저기서 뭐하는 거야?”

현재형 차장이 소리를 지르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놀란 그의 입은 살짝 벌어져 있었다.

주변의 사람들이 갑자기 소리를 지른 현재형 차장을 바라보았지만 그는 주변의 상황을 살필 겨를이 없었다.

뉴스 속 화면이 빠르게 전환되고 있었지만 그는 분명히 화면 속의 나타난 사람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자신도 익히 알고 있는 사람의 얼굴이었기 때문.

‘저 사람이 왜 저기에?’

뉴스 속 화면은 중동에서 망명한 사람이 영국 외교부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는 장면.

그 뒤로 여러 명의 사람들이 서있었는데 한쪽 끝에 자신도 잘 아는 사람이 서 있는 모습이 현재형 차장의 눈에 들어온 것이다.

해신해운의 삼등항해사 장보고의 얼굴이 뉴스 화면 속에서 빠르게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 * *

- 영국 외교부 청사 앞에 마련된 기자회견장

‘도대체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나도 지금의 상황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최근 일어나는 일들이 내가 예상할 수 있는 스케일의 범주를 진작 넘어선 상태였기 때문이다.

왜 이런 일들에 계속 발생하는 거지?

퀘스트 때문인가?

실제로 퀘스트 달성할 때 이루어지는 보상은 너무 짜릿했다.

스킬의 효과도 톡톡히 보고 있고.

‘어쩌면 가능할지도 몰라.’

퀘스트를 잘 달성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진짜 선박왕이 되어 있을 것만 같은 상상을 하게 된다.

지금만 해도 그렇다.

내가 이런 곳에 있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내가 있는 곳은 영국의 외교부 청사 앞.

나는 지금 영국 외교부 청사 앞에 마련된 기자 회견장에 있었다.

내 옆으로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쭉 서있었다.

정치인도 포함되어 있고 면면을 보아하니 나름 한자리 하는 사람들이 분명했다.

마치 세계 정상들이 사진촬영을 위해 서서 대기하는 모양새.

그리고 그 앞에는 오늘의 주인공 압둘 무바라크가 단성에 서서 마이크에 대고 뭐라고 떠들어 대고 있었다.

열변을 토하는 압둘 무바라크를 바라보았다.

‘저 아저씨 출세했네.’

아! 출세는 원래 했었지.

중동 왕자 친군데 내가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잠시지만 해신해운의 배에서 밀항자 신분이었던 터라 그가 부자라는 사실을 자꾸 깜빡하게 된다.

지금은 비너스호의 밀항자로 지낼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

MI6의 후원 덕분인지 때 빼고 광낸 그의 모습은 전형적인 중동의 부자 느낌이 물씬 풍겼다.

이곳에서 내가 아는 압둘 무바라크 말고는 MI6의 이안 요원이 전부였다.

물론 그는 이곳저곳을 바쁘게 돌아다니며 이곳에 혹시 모를 위험요소가 없는지 확인하느라 아주 바쁜 모습이었다.

‘그나저나 많이도 왔네.’

BBA, FAX, BNN 등 유명 방송국 스티커를 붙인 카메라를 든 취재진들이 내 눈앞에 포진하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기자들을 보는 건 인도네시아 쓰나미 사건 이후로는 처음이다.

‘뭐 구석에 있으니까 내가 방송에 나올 일은 없겠지?’

여기에 온 사람들은 압둘 무바라크의 정치적 망명을 지지하는 사람들로 보였다.

‘압둘 무바라크가 하도 간곡하게 부탁하니까 오긴 왔는데.’

과연 내가 낄 만한 곳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이제 다 끝나가는 구나.’

압둘 무바라크가 기자들과의 질의응답 시간을 가지더니 마무리 된 듯 모여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압둘 무바라크가 내게로 다가왔다.

“삼항사님, 덕분에 이렇게 무사히 기자회견까지 마쳤습니다.”

“다행입니다. MI6가 출동 할 것 같으면 미리 저한테도 좀 알려주시지 그러셨어요. 저는 그것도 모르고 항구에서 어떻게 탈출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답니다.”

“하하하. 죄송합니다. 사실 저도 몰랐습니다.”

그때 이안 요원이 내게로 다가왔다. 그의 옆에는 잘생긴 미중년 남성이 있었다.

이안이 내게 말했다.

“미스터 장, MI6의 국장님입니다. 코드네임은 ‘C’입니다. 그냥 편하게 C라고 부르면 됩니다.”

“C, 말씀드린 미스터 장입니다. 이번에 압둘 무바라크를 무사히 구출해낸 장본인입니다.”

‘MI6 국장이라고?’

허! 별일이네. 국장이라면 007 같은 영화에서 제임스본드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그런 사람이잖아?

‘C'라고 소개 받은 중년의 남성이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는 영화 킹스맨에 나오는 중년 주연배우를 꼭 닮은 잘생긴 남자였다. 전형적인 영국신사 느낌이랄까?

“미스터장, 반갑습니다. C라고 부르면 됩니다.”

“네, 반갑습니다. 제 이름은 장보고라고 합니다. 해신해운의 삼등항해사입니다.”

“더블오나인(009, 이안)에게 미스터 장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전해 들었습니다. 실력이 굉장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실력이요? 저는 그저 항해사입니다.”

“하하하. 위험지역에서 사람을 안전하게 탈출 시키는 것은 저희 같은 정보기관의 요원들에게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는 그저 선박에 몰래 들어온 밀항자를 좀 도와줬을 뿐인데요. 허허허.”

내말에 C도 미소를 흘렸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

이 사람은 내가 뭘 숨긴다고 생각하는 걸까?

C가 말했다.

“저도 흥미가 생겨 실례지만 미스터 장에 대한 정보를 좀 챙겨 봤습니다.”

“제 정보요?”

“네, 최근에 활약이 대단하시더군요.”

내 뒷조사를? MI6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벌인 최근의 행적을 조사하면 아무리 MI6의 요원이라도 깜짝 놀랄 만한 일들이긴 했다.

C가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아무쪼록 앞으로 MI6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 좋겠군요.”

“네, 감사합니다.”

“하하하. 아니면 이 기회에 MI6에 지원을 해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네?”

“저희도 아시아 요원들이 필요하니까요?”

C가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뭐야? 진짜야 농담이야?’

웃고 있는 C의 표정은 사람의 속내를 알 수 없게 만들었다.

MI6 요원이라고 하니 살짝 흥미가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영화 속 요원들 같은 삶도 남자라면 꿈꿔볼만 하지 않은가?

하지만 내 꿈은 어디까지나 전생에도 못 이른 나의 꿈 선박왕이 되는 것이다. 한눈을 팔 생각은 없었다.

“제안은 감사하지만 저는 항해사가 체질에 맞습니다. 실력도 안 되고 저는 겁이 많습니다.”

“하하하. 그거 아쉽네요. 언제든 생각이 바뀌면 연락 주세요. 앞으로 또 인연이 되면 좋겠습니다.”

C는 크게 웃더니 나와 작별인사를 나눈 후 사라졌다.

이안 요원은 나에게 여러 사람을 소개시켜 주기 시작했다.

+ 글로벌인맥(영국)이 형성되었습니다. +

이안 요원이 나에게 이런 호의를 베푸는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나와의 관계를 제법 중요하게 여긴다는 느낌이 물씬 풍겼다.

이안과 내가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이안 요원의 곁으로 아름 다른 여성 한명이 다가왔다.

금발의 미녀가 갑자기 등장하자 나도 모르게 시선이 돌아갔다.

“오! 레이첼.”

이안 요원이 내 반응을 보며 살짝 웃더니 그녀를 나에게 소개했다.

“미스터 장, 곧 한국으로 파견 근무를 가는 레이첼 요원입니다. 주한 영국대사관에 무관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레이첼이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런 미인이 요원이라고?’

그녀와 인사를 나누는 동안 아마도 나는 상당히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었을 것이다. 안봐도 그건 분명했다. 그만큼 레이첼은 눈부신 미녀였다.

'상태창에 [영국의 국민사위]라고 뜨면 좋겠네.'

나는 그녀가 건네준 명함을 지갑 한쪽 구석에 잘 꽂아 두었다.

‘혹시 또 모르잖아. 한국에서 볼일이 있을지도.’

이안 덕분에 나는 여러 사람들과 인맥을 넓힐 수 있었다. 사람들과 인사를 마친 후 나는 다시 압둘 무바라크에게 돌아왔다.

이제 그와도 작별의 인사를 나눌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나는 압둘 무바라크에게 다가가 물었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지낼 계획입니까?”

“저는 옥스퍼드대학에서 지낼 생각입니다. 연구교수로 지원해주겠다고 합니다.”

“오! 정말 잘됐네요.”

“네, 삼항사님도 영국에 올 일이 있으면 꼭 연락 주십시오.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당연하죠! 곧 좋은 날이 올 겁니다.”

“네, 그동안 정말 고마웠습니다.”

그는 나를 바라보더니 아무 말 없이 나를 꽉 껴안기 시작했다.

나도 손을 들어 올려 그의 등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 * *

- 사보이 호텔

나는 압둘 무바라크의 정치적 망명을 위한 기자회견장을 들린 이후 호텔로 복귀했다.

‘도대체 나를 왜 그런 중요한 곳에 부른 거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뭐 그래도 성과는 제법 있었다.

압둘 무바라크와도 작별인사를 하고, 나에게 관심을 갖는 여러 사람들과 인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이번 기회가 아니면 도저히 내가 만나지 못할 그런 사람들이었다.

나는 평범한 회사원이니까 말이다.

회사원?

‘아! 회사에도 보고를 해야 되는데.’

계획대로라면 나는 이미 귀국하는 비행기에 탑승했어야 한다.

아마 회사에서는 내가 사라져서 난리가 났을지도 모르는 상황.

다들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네.

나는 빠르게 전화기를 들었다.

뚜뚜뚜.

신호음이 들리고.

“해신해운 해사인사팀 조민호 대리입니다.”

“대리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삼등항해사 장보고입니다.”

“장보고 삼항사?”

“네.”

수화기 너머로 조민호 대리가 크게 소리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팀장님! 장보고 삼항사가 나타났어요!”

“어? 뭐라고?”

“연락두절 됐던 장보고 삼항사가 연락했습니다!”

“그 장보고?”

“네, 펠릭스토우에서 하선한 장보고 삼항사요! 귀국하는 비행기에 탑승 안 해서 난리 났잖아요. 실종신고 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 지금 연락이 왔습니다.”

“장보고 이 새끼! 오냐오냐 했더니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야! 조대리 빨리 나한테 전화 돌려!”

“네. 팀장님.”

전화기 너머로도 쌍욕을 하는 팀장의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사인사팀장님이라고?

‘음, 전화 끊을까?’

해상전문변호사(Maritime Lawyer)

전화기를 끊을까 말까 고민하는 사이.

나에게 전화기 너머로 조민호 대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보고 삼항사님, 해사인사팀장님 바꿔 드릴게요. 하실 이야기가 있답니다.”

“팀장님이요? 안받으면 안될까요?”

“네?”

“굳이 팀장님 안 바꿔 주셔도 되는데.”

“하하하. 농담도 참.”

조민호 대리는 어색하게 웃으며 얼른 전화기를 돌렸다.

해사인사팀장님은 살짝 부담스러운데.

“여보세요. 해사인사팀장입니다. 장보고 삼항사?”

“네. 팀장님, 장보고 삼항사입니다.”

“야 이 새끼야! 너 어디야 도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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