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순간.
‘음?’
나는 압둘 무바라크의 얼굴에 아주 작은 실소가 스쳐지나가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정말 다행입니다. 잘하셨어요.”
“빨리 로테르담 해경에 연락하십시오. 지금 빨리 연락해서 수색을 시작하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겁니다.”
“……! 아, 알겠습니다!”
정신을 차린 내가 빨리 대답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급하게 무전기를 빼들고 소리쳤다.
“브릿지, 삼항사입니다.”
“삼항사, 브릿지다.”
“선장님한테 빨리 보고해서 선교로 올라오시라고 전해주십시오.”
“왜? 일항사님 어디 있는지 찾았어?”
“그건 아닌데, 아마도 일항사님이 실족으로 바다에 떨어진 것 같습니다.”
“뭐? 실족?”
“네 밀항자가 봤답니다.”
“아, 알았어.”
“선장님 오시면 바로 해경에 수색 요청해달라고 하십시오. 떨어진지는 얼마 안됐다고 합니다. 튜브를 던져줬답니다. 떨어진지 얼마 안됐으니 수색하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라고 하네요.”
“어! 아, 알았어!”
무전기 넘어 이항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압둘 무바라크에게 말했다.
“고맙습니다. 일항사가 무사하면 당신 덕분입니다.”
압둘 무바라크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목례를 한 후 빠르게 선교를 향해 달려갔다.
* * *
- 선박 ‘M.V. 비너스’호의 선교
내가 선교에 들어서는 것과 동시에 선장이 선교로 달려왔다.
“이게 무슨 일인가!”
이희영 선장이 다급하게 외쳤다.
“일항사님이 실족했다고 합니다. 밀항자가 봤답니다.”
“뭐? 실족?”
“네, 갑판에서 술에 취한 사람처럼 비틀 거리더니 난간에서 소변을 누다가 중심을 잃고 떨어졌답니다.”
“뭐?”
이희영 선장도 황당한 표정을 지을 뿐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항해사가 술에 취해 난간에서 실족이라니?
사실 선박에서 실족 사건은 종종 발생한다.
실족인지 실종인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가끔씩 들려오는 사건 사고들을 살펴보면 선원들의 실족사고가 많은 것도 사실.
내가 이희영 선장에게 말했다.
“선장님, 빨리 해경에 연락해야죠. 멀리 떠내려가진 않았을 것 같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요.”
“어, 그 그래 빨리 항만에 보고해서 해경 수색을 요청하게!”
“네.”
이등항해사 김호영 재빨리 항만당국과 연결해 해경 수색을 요청하기 시작했다.
“일등항해사가 난간에서 떨어지다니…….”
이희영 선장은 좀처럼 믿기 힘들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뒤에서 누가 밀기라도 하지 않은 이상 일등항해사식이나 되는 사람이 선박 난간에서 떨어진다는 게 말이 되는 일인가?”“헉!”
쿵!
선장의 말에 때마침 선교로 들어오던 조셉이 손에 들고 있던 상자를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창백한 표정의 조셉.
“조셉, 무슨 일인가?”
“선장님! 누가 누굴 밀었다고요?”
“일항사 말이야. 바다에 떨어졌다는 군.”
“헉! 어쌔신!”
저놈이 또 헛소리!
귀가 밝은 이희영 선장이 조셉의 말을 놓치지 않았다.
“어쌔신? 그게 무슨 소린가?”
“그, 그게 밀항자가…….”
“조셉!”
조셉이 쓸데없는 소리를 하기 전에 내가 먼저 나서야 했다.
“선장님한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빨리 들고 있는 상자나 가지고 와!”
조셉은 뭐라 뭐라 중얼거리더니 나에게 다가와 종이상자를 건넸다.
나는 종이상자를 받아 들고 아직도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희영 선장에게 다가섰다.
“선장님, 이 것 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음?”
나는 조셉으로부터 건네받은 종이상자를 이희영 선장에게 건넸다.
그 종이상자 안에는 술병들과 맥주캔으로 가득했다.
“이게 다 뭔가?”
“일항사님이 사라졌다고 해서 방으로 찾아갔습니다. 그 방에서 찾은 것들입니다.”
“…….”
큰 종이박스를 가득 채운 술병들을 보고 이희영 선장은 할 말을 잃은 듯 보였다.
고자질을 하는 것 같아 살짝 마음에 찔렸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건 고자질을 하는 게 아니다.’
음주 상태에서 운항을 하는 건 엄연히 범죄였기 때문.
이런 대형 선박을 음주운항하다가 사고라도 발생하는 날이면 그건 그야말로 대형 재난의 위험이 발생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 띠링! >
+ [고소고발 Lv.1]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
뭐?
고자질을 해도 [고소고발] 스킬의 능력치가 올라간다고?
개꿀인데?
능력치가 올라 좋아하는 나와는 달리 골치 아픈 표정을 짓고 있는 이희영 선장.
그는 두통이라도 생긴 듯 미간을 잔뜩 찌푸리더니 손을 들어 올려 옆머리를 툭툭 쳤다.
“그럼, 일항사가 실족한 이유가 술에 취했기 때문이라는 건가?”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
“밀항자 말에 따르면 갑판위에서 비틀거리며 걷다가 난간에 올라 바다를 향해 소변을 누었다고 합니다.”
“뭐? 이런 미친 인간이 있나!”
“…….”
좀처럼 흥분하는 법이 없는 이희영 선장이 욕설이라니?
“아 내가 좀 흥분했네. 삼항사 계속 말하게.”
“네, 그러더니 갑자기 두 팔을 벌려 이렇게 외쳤다고 합니다.”
나는 두 팔을 벌리고 크게 외쳤다.
“I am King of the world(내가 세상의 왕이다)!”
“…….”
“…….”
“…….”
이희영 선장, 김호영 이등항해사, 조타수 조셉은 나의 열연에 감동한 탓인지 아무런 말도 잇지 못했다.
그들의 반응을 기다릴 여유가 없는 나는 황급히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는 일항사는 술에 취해 중심을 잃고 바다로 그대로 떨어졌다고 합니다.”
“뭐?”
“……!”
김호영 이등항해사가 다급한 표정으로 말했다.
“큰일이네. 일등항하사님은 수영을 못한다고 들었는데.”
“뭐? 수영을 못한다고?”
깜짝 놀란 이희영 선장.
“선원이 수영을 못한다는 게 말이 되나?”
“그런 사람이 간혹 있더라고요.”
내가 대답했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자 슬그머니 내 눈을 피하는 조셉.
“허허허. 참. 별일이네.”
이희영 선장이 실소를 흘렸다. 나 때는 말이야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그런 표정.
“그래도 다행히 밀항자가 재빨리 구명 튜브를 던져줬다고 합니다. 밀항자 말로는 구명 튜브를 잡는 것 까지는 봤다고 하더군요. 그 뒤로는 떠내려가서 확인을 못했다고 합니다.”
“음. 그래도 밀항자라도 목격해서 다행이군.”
“네.”
“그런데 밀항자가 목격했다고?”
“네.”
“밀항자가 영어를 하던가?”
“……!”
선교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
깜빡했네. 실토하는 수밖에 없었다.
“미, 밀항자도 사람 목숨이 걸린 일이니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영어를 생각보다 잘하더군요.”
“그래? 그건 다행이군. 곧 그 사람의 정체를 밝힐 수도 있겠어.”
그때 이등항해사 김호영이 말했다.
“선장님! 해경에서 수색을 시작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예상되는 해류 방향에서부터 선박으로 수색을 시작한다고 합니다.”
“오! 그래 이항사, 수고했네.”
음, 해경 수색도 시작했고.
바다에 떨어진지 얼마 안됐다고 하니 금방 찾을 수 있겠지.
한 시름 놓을 수 있겠군.
‘그런데 이상하네.’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 불안감이 아니라 몹시 찝찝한 그런 기분?
압둘 무바라크가 보여준 사악한 미소가 머리속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아! 혹시?’
< 띠링! >
+
<히든 퀘스트를 시작합니다.>
“지금 비너스호에는 익사 및 저체온증의 위험에 처한 선원이 있습니다. 당장 구출하세요!”
세부 퀘스트 : 구조
클리어 조건 : 위험에 처한 선원의 구조
제한시간 : 저체온증으로 인한 사망 전까지
보상 : 명성 + 25, 호칭 [구조의 달인]
실패시 : ???
+
역시. 내 생각이 맞았다.
“선장님!”
“음?”
“조셉을 데리고 갑판으로 나가서 선체를 한 바퀴 돌아보겠습니다.”
“선체를?”
“네 돌면서 쌍안경도 좀 보면서 찾아보겠습니다.”
“그래 알았네.”
“조셉 따라와!”
나는 빠르게 빠져나왔다. 그리고 압둘 무바라크가 알려준 일등항해사의 추락 지점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십점 만점에 십점
- 선박 “M.V. 비너스”호 갑판 좌현 부분
“이쯤인가?”
나는 압둘 무바라크가 알려준 추락 지점으로 달려왔다.
갑판의 난간으로 올라가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집중해서 바다의 수면을 보기 시작했다.
관심법을 쓰는 궁예처럼.
뚫어져라 바다를 바라보니 작은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항해술 Lv.1] 스킬을 사용합니다. 해류를 읽는 능력이 상승합니다. +
스킬이 사용되자 순간적으로 수면의 파도와 수중 조류의 움직임이 내 눈앞에서 시각적으로 해석되는 느낌이 들었다.
“오! 보인다 보여!”
스킬 덕분인지 조류의 흐름이 머릿속으로 자연스럽게 이해되고 있었다.
“조류는 강하지 않구나.”
고개를 조류가 흐르는 방향 끝부분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해경의 순시선이 원을 그리며 수색을 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음, 역시 해경은 조류 방향에서부터 수색해서 들어오는구나.’
두두두두두!
‘이 소리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해경의 헬기도 수색을 시작한 모양이다
술 취한 놈 때문에 글로벌 민폐가 되어 버렸네.
다시 집중해서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조류의 방향대로라면…….’
음?
“조셉 따라와!”
나는 선수 쪽으로 빠르게 달렸다.
선수 쪽에 도착한 나는 난간 위로 튀어 올라갔다.
머리를 난간 밖으로 뺀 상태로 조셉을 향해 소리쳤다.
“조셉 도와줘!”
“네?”
“내 다리를 좀 잡아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