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이야! 이 미친놈아 갑자기 왜 소리를 지르기 지랄이야!”
“허허허. 어이가 없어서 그렇죠. 선원이 수영을 못한다니까.”
“그건 그렇긴 한데, 아무튼 뭐 그런 이유라고 하더라고.”
“그나저나 맥주를 무제한으로 마신다니 웃기네요.”
“뭐가?”
“씨맨스 클럽에서 만난 게르만 족의 후예들 생각이 나서요. 구조된 날도 맥주 마시러 온 제대로 맥주에 미친 사람들 아니었습니까?”
“흐흐흐. 그래 그런 맥주에 미친놈이 여기 또 있었네.”
“우리 배에 올라와서는 어떻게 하고 있데요?”
“그건 모르겠네. 조리장한테 한번 물어보면 알겠지 뭐.”
“네, 그럼 전 그만 쉬러 갈게요.”
“그래!”
나는 인사를 하고 선교를 떠났다.
‘김영 일등항해사 별명이 맥주병이라고?’
선교를 나서며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아, 그래!”
잊고 있었던 김영 일항사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 순간.
< 띠링! >
퀘스트 창이 떠올랐다.
+
<보너스 퀘스트를 시작합니다.>
시나리오 진행에 따른 메인 퀘스트를 진행합니다.
“비너스호가 위험에 처했습니다. 비너스 호를 위험에서 구하세요!”
세부 퀘스트 : 음주운항
클리어 조건 : 해신해운 선박의 위험 탈출
제한시간 : 사고 발생 이전(로테르담 기항 전)
보상 : 명성 + 20, 사내 평가 상승
실패시 : ???
+
떠오른 퀘스트 창을 보니 전생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김영 일등항해사가 육상 직원으로 전직하게 된 바로 그 계기.
그것은 다름 아닌 음주운항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해사안전법에서 음주운항을 정하고 있는데, 자동차운전의 경우보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
해사안전법이 정하고 있는 술에 취한 상태의 기준은 혈중알코올 농도 0.03%.
음주운전 기준과 비교해도 매우 엄격한 기준이 오래전부터 적용되고 있었다.
선원들은 한번 승선하면 최소 6개월 이상 오랜 기간 동안 승선생활을 하게 된다.
그렇다보니 힘든 승선기간 중에 승선기간 중에 술을 전부 금지할 수는 없지만 과음은 절대 금물.
전생에 김영 일등항해사는 당직을 하던 중에 서해에서 조업 중인 어선의 그물을 끊고 지나간 일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가까스로 어선을 피해서 지나갔기 때문에 다행이 인명피해는 없었다고 한다.
나도 전해들은 내용이 전부이긴 하지만 기억에 따르면, 당시 사내 조사 결과 김영 일등항해사가 음주 상태였던 것으로 확인되었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 이후 김영 일등항해사는 육상직으로 보직이 전환되어 육상근무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소문이 해기사들 사이에 파다하게 퍼져있었다.
‘맥주병이라니.’
아무래도 전생에 들은 그 소문이 사실인가 보네.
음주운전도 심각한 범죄이지만 음주운항은 이와 비교할 수도 없는 큰일이었다.
이런 대형 컨테이너선에 사고가 발생한다면 비교할 수도 없는 큰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이거 아무래도 문제가 많은 놈이었네?’
아무튼 이번 기회에 단단히 버릇을 고쳐놓을 필요가 있어보였다.
해신해운 이런 종양이 자라는 것을 두고 그냥 지나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이러니 내가 피곤할 수밖에.
어쌔신(Assassin)
- 선박 “M.V. 비너스”호의 조리실
우리배 선박 "M.V. 비너스"호는 로테르담을 향하고 있었다.
유럽대륙의 서쪽 해안을 따라 북상하는 중.
대양은 아니지만 바다는 언제 어디서든 위험이 도래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이곳도 여전히 험한 파도와 강풍의 위험이 존재하는 곳이라는 뜻.
선원들이 바다 앞에서 항상 겸손해야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게다가 오늘은 날씨도 좋지 않은 상황.
황천 까지는 아니지만 비 바람이 강하고 파도도 제법 높아 보였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
당직 교대를 하러 올라갔더니 험한 날씨에도 조타수가 조타를 하지 않고 브릿지 청소를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선교 안을 살피며 들어섰다.
일등항해사에게 인사를 건넸다.
조타수 조셉은 청소 중에 내가 선교로 올라 온 것을 발견하고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짜식, 그래 니가 고생이 많다.’
당직 업무 인수인계를 위해 레이다를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항로 근처에 다른 움직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음? 뭐가 많네.”
비너스호 전방 6마일 정도 앞에 어선들로 보이는 한 20여척 정도의 선박이 관찰되고 있었다.
우리의 진행 방향인 항로 주변으로 계속 왔다 갔다 하면서 이동하는 모습.
“음? 어선인가?”
어망들의 위치도 정확히 파악이 안 되는 상황.
나는 조셉에게 다가섰다.
“조셉, 항로 주변에 선박들도 많이 보이는데 왜 지금 청소를 하고 있어?”
“일항사님이 청소하라고 시켰어요.”
“지금?”
“네.”
대답 하는 조셉의 표정이 왠지 모르게 어두웠다.
“삼항사!”
내가 조셉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 김영 일등항해사가 소리쳐 불렀다.
“네, 일항사님.”
“그래, 레이다 좀 확인 해봤어?”
“네, 어선들이 좀 많이 보이네요.”
“그래, 멀리 돌아가던지 아니면 잘 피해서 요리 조리 어선 사이로 재주껏 지나가보던지."
"네, 알겠습니다.“
그는 내 간단 명료한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은 듯 보였다.
삼항사라면 어려워해야 하는 상황인데도 자신감에 넘치는 대답이 분명 그의 심기를 건드렸을 것이다.
김영 일등항해사는 콧웃음을 치며 말을 이어갔다.
“흥! 그 유명한 삼등항해사시니까 잘 알아서 하겠지.”
“…….”
김영 일항사가 또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
‘저 성격 파탄자 새끼!’
나도 매번 내 신경을 긁어 대는 일항사의 말에 순간적으로 부글부글 화가 끌어 올라왔다.
그래도 아직은 때가 아니다. 조금만 더 참자.
참교육 타이밍이 곧 올꺼야.
마음 같아서는 스킬 [고무고무킥 Lv.4]를 사용해서 뒤통수를 확 후려갈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눈치 없는 새끼!’
아무리 내가 삼항사라도 분명히 지금 표정이 굳어있을텐데.
이 눈치 없는 놈은 또다시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이기 시작했다.
“삼항사!”
“네.”
“제한 시계에서 신호를 어떻게 하나?”
“…….”
‘아놔!’
시험 치냐?
어? 내가 실항사(항해사 실습교육을 위해 승선하는 일종의 교육생)도 아니고!
하지만 삼등항해사 신분인 나는 더러워도 까라면 깔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
“국제해상충돌방지규칙(COLREG) 15조에 따르면 항해중인 동력신호로서 대수속력을 가진 경우 2분간을 넘지 않는 간격으로 1회의 장음을 취명해야 합니다. 그리고 블라블라블라……”
“…….”
내가 마치 보고 읽는 것처럼 국제해상충돌방지규칙의 내용과 우리나라 해사안전법의 내용을 비교해가며 영어와 우리나라말로 줄줄 읽기 시작했다.
회귀한 이후로 선명해진 기억력 덕분에 이런 능력이 생긴 것이었다.
트집을 잡아보려 했던 김영 일등항해사는 계획이 실패하자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뭐, 기본은 하네.”
“네, 일항사님 감사합니다.”
“이론하고 실무는 다르니까 잘난척 하지는 말고!‘
“…….”
이 썩을 놈이 말끝마다 그냥 안 넘어가고 열받게 하네!
“아무튼 괜히 선장님 귀찮게 하지 말고 알아서 잘 해!”
이배의 성격파탄자는 대뜸 소리를 버럭 지르더니 선교를 빠져나갔다.
그가 내 옆을 스쳐 지나가는 순간.
“음?”
코끝을 찌르는 이질적인 냄새를 맡았다.
‘뭐야? 혹시 알코올 냄새?’
나는 아직도 열심히 청소를 하고 있는 조셉을 불렀다.
“조셉 청소 그만하고 빨리 키 잡아! 어선이 많다.”
“예, 써”
조셉이 옆으로 달려왔다.
“조셉, 일항사님 올라왔을 때 뭐 특이한 점은 없었나?”
“음…….”
뭔가 있었네.
“뭐야? 무슨 일 있었어?”
“얼굴이 살짝 빨갛기도 했고 살짝 술 냄새가 났거든요.”
“뭐?”
“그래서 농담으로 술 한 잔 하셨냐고 말했는데 대뜸 화를 내며 브릿지나 청소하라고 하면서 자기 근처로 가지 못하게 했어요.”
“그게 진짜야?”
“네. 제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요.”
맥주병이라더니 벌써부터?
문제는 항해사들은 매일 4시간씩 교대근무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상선의 항해사들은 3교대로 근무하지만 4시간 씩 하루에 2번의 교대 근무를 하게 된다.
오전 8시부터 12시까지가 삼등항해사인 나의 당직시간.
뒤를 이어 오후 12시부터 오후 4시까지가 2항사.
그리고 오후 4시부터 8시까지가 1항사의 당직시간이다.
그리고 선장은 별도의 당직시간이 없이 수시로 업무를 수행하고, 협로 등을 지날 때와 같이 특별히 주의가 필요한 구간에서는 직접 선박을 운항을 하기도 한다.
8시간의 여유가 있지만 항해사들은 승선 기간 중에 매일 근무를 해야 한다.
과음은 절대 금기 사항이었다.
‘아무래도 좀 알아봐야겠네.’
해신해운에 암중에 자라날 뻔했던 선박유 밀매 조직도 일망타진한 사람이 바로 나다.
김영 일등항해사를 추적할 생각을 하니 마치 탐정이 된 기분이 들었다.
< 띠링! >
+ 스킬 [고소고발 Lv.1]을 사용합니다. +
뭐?
고소고발 스킬에 추적 효과도 있는 건가?
경찰처럼 수사를 하는 그런 기능인가?
꽤 유용한 스킬이 분명했다.
* * *
- 선박 “M.V. 비너스”호의 갑판
비너스호는 로테르담 항구 정박지에 투묘한 상태.
비너스호가 입항을 대기하는 사이 갑판부원들은 데이워크(Day work, 일상 업무 같은 것들을 칭하는 말)에 열중하고 있었다.
어디선가 고성이 들려오더니 사람들이 원을 그리며 모여들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야?”
나는 나보다 빨리 달려가고 있는 조셉을 향해 물었다.
조셉이 주변을 살피더니 조용히 말했다.
“써, 일항사님이 밀항자가 마음에 안 든다며 이번에 로테르담에서 배 밖으로 쫓아내겠다고 했다던데요.”
“뭐?”
이 미친 새끼가 진짜!
나도 깜짝 놀라 허겁지겁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웅성거리를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