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8화 (38/200)

그의 마음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나는 별다른 위로의 말을 찾지 못했다. 그저 그의 표정을 살피며 화제를 돌리기 위해 말을 이어갈 뿐.

“참! 이번에 알헤시라스 항구에 들어가면 우리배의 일등항해사가 교체될 예정입니다.”

“그렇습니까?”

“네, 아무래도 일등항해사가 교체되면 조심하셔야 합니다.”

“다른 이유가 있습니까?”

“제법 깐깐하기로 소문난 사람입니다. 밀항자가 이 배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떤 트집을 잡으려고 할 지 모릅니다.

“음……. 그렇군요.”

나는 그의 표정을 살피며 말을 이어갔다.

* * *

나는 일등항해사 양화종의 방으로 찾아갔다.

승선기간을 마친 일등항해사 양화종은 곧 도착할 알헤시라스항에서 교대가 예정되어 있었다.

똑똑똑!

“일항사님, 삼항사입니다.”

“오 삼항사, 들어와.”

“네.”

나는 방문을 열고 그의 방으로 들어섰다.

그의 성격답게 아주 깔끔하게 정리된 방이었다.

“뭐하고 계셨습니까?”

“뭐, 짐정리도 좀 하고 이제 내려야 되니까.”

“부럽네요."

"삼항사도 이제 곧 내리잖아. 펠릭스토우였지? 삼항사가 하선하는 곳이?“

“네, 맞습니다.”

일등항해사 양화종이 정리하던 짐을 마치고 고개를 들었다.

“그나저나 삼항사.”

“네.”

“알헤시라스에서 새로 올라오는 교대로 올라오는 일항사가 누군지 들었나?”

“네.”

“음…….”

일등항해사 양화종이 의자에 앉더니 말을 이어갔다.

“나도 처음에 삼항사를 그렇게 좋게 보지 않았지.”

“그렇죠. 허허허.”

“뭐, 사실은 내 오해였지.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자격지심 같은 게 있었는지도 모르겠어.”

“자격지심이라니요? 그냥 제가 사고치고 다니니 잔소리를 좀 하셨던 거죠. 허허허.”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그래도 새로 오는 일항사 눈 밖에 나지 않도록 조심하게.”

인생을 어떻게 될지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일등항해사 양화종은 전생에서 나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지금은 나를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번 생의 인연이 새삼 고맙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알헤시라스(Algeciras)

- 선박 “M.V. 비너스”호의 선교

선박 "M.V. 비너스호"는 지중해의 끝에 다다르고 있었다.

우리는 이제 곧 알헤시라스 항구를 목전에 둔 상황이었다.

나는 당직 근무 중.

선교에서 당직을 하면서 바다를 견시하고 있었다.

지중해를 빠져나가면 우리는 유럽의 서부 해안을 따라 올라갈 예정이었다.

그리고 로테르담을 거쳐 나의 이번 항차는 영국 펠릭스토우에 마치게 된다.

지난 몇 주간의 일들을 떠올려 보았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들의 연속.

퀘스트? 상태창?

하지만 이런 일들이 현실이 되었다.

퀘스트의 수행 결과로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퀘스트 달성에 따른 보상도 누리게 되었으니 말이다.

나는 이때까지 이룬 업적을 확인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선교에서는 조타수 조셉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상태창”

조용히 중얼거리자 상태창이 눈앞에 떠올랐다.

< 띠링! >

+

<상태창>

이름 : 장보고

나이 : 23세

클래스 : 항해사

세부 클래스 : 삼등항해사

레벨 : Lv.1

명성 : + 220

스킬 : [항해술 Lv.1], [기관술 Lv.1], [태권도 Lv.3], [고무고무킥 Lv.4], [인명구조 Lv.2], [고소고발 Lv.1], [협상 Lv.2]

명성 : + 25

칭호 : [수성의 달인], [인도네시아를 구한 영웅], [인도네시아의 국민 사위]

Remark: 레벨업을 앞두고 있습니다. 경험치를 쌓기 위해 노력하세요!

+

‘음? 레벨업을 앞두고 있다고?’

레벨업을 하게 되면 능력치가 더 올라가고 그런 건가?

그런 경험을 한적이 있었다.

수에즈운하청장을 상대할 때 협상 스킬이 도움이 됐지.

레벨업을 하게 되면 앞으로의 일에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해 보였다.

상태창을 살펴보던 나는 늘어난 스킬들과 명성수치에 관심이 갔다.

명성수치가 눈에 띠게 많이 올라갔기 때문.

‘퀘스트를 달성할 때 마다 받은 보상보다 많이 증가한 것 같은데?’

명성수치는 퀘스트와 무관하게도 상승하는 건가?

나랑 무관하게 나를 칭찬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명성이 올라가는 것일지도 몰랐다.

어쨌든 그동안 고생을 한 보람이 있었다.

상태창으로 확인되는 전수치가 전체적으로 상승하고 여러 가지 스킬들이 익혔으니 말이다.

한번 테스트 해볼까?

나는 조셉을 바라보았다.

“조셉!”

“써(Sir)!"

“우리 숨 참기 대결 좀 해볼까?"

"숨 참기요?“

“그래, 누가 잘하는지.”

“그런 걸 왜 해요.”

“최근에 호흡법을 좀 연습하고 있거든.”

“전 안할래요.”

“이긴 사람한테 100달러 주기 어때?”

“콜!”

조셉은 바로 결의를 다지는 표정을 지었다.

진지하게 결의를 다지는 모습을 보내 괜히 미안하네.

나도 집중하자 눈앞에 작은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 띠링! >

+ 스킬 [인명구조 Lv.2]을 사용합니다. +

121초, 122초, 123초.

2분이 넘어가자 조셉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2분 30초를 넘게 참는다고? 제법이네.’

프리다이버 신기록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10분 가까이도 숨을 참을 수 있다는 말을 들어 보긴 했지만 그건 매우 특수한 경우다.

따로 연습을 하지도 않고 2분 이상을 참는 것은 대단한 의지가 필요한 일이었다.

스킬 덕분인가.

나는 아직도 충동호흡이 느껴지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여유가 넘치는 상태.

‘그래도 여기까지 해야겠네.’

스킬을 써서 조셉을 이기는 건 비겁하니까.

스킬의 효력을 확인하려고 했던 것이니까 목적은 달성한 셈이었다.

“푸핫!”

나는 가쁜 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조셉은 매우 기쁜 표정을 지어보였다.

애써 숨을 참아낸 연기를 펼치며 나는 조셉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 * *

- 알헤시라스 항구

알헤시라스호에 도착하자 비너스호의 선원들을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늘은 매우 바쁜 일정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

지중해로 환적될 많은 화물들을 하역해야 했고 선적할 화물도 많았다.

그리고 양화종 일등항해사와 교대하기로 되어 있는 새로운 일등항해사가 승선할 예정이었다.

해신해운에서는 비용 문제 때문에 아시아에서 항해사들을 교대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

비너스호 승무원들의 이번에 여러 공로를 세운 것이 인정되어 유럽에서 교대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그 첫 번째가 일등항해사였던 것이다.

갑판장이 항해사들이 모여있는 선교로 들어섰다.

“선장님, 새로운 일항사님 오셨습니다.”

“오! 그래?”

사람들의 시선이 새로 등장하는 사람을 향해 모여졌다.

새로운 일등항해사 김영이 선교로 들어섰다.

“안녕하십니까?”

일등항해사 김영이 인사를 하며 선교를 둘러보더니 이희영 선장을 향해 다가섰다.

“선장님, 일항사입니다. 이름은 김영이라고 합니다.”

“반갑네. 나는 이희영 선장이네.”

“네, 명성을 많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같이 승선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명성?”

“네, 쓰나미에서 선박을 구하고, 선원들도 많이 구조하셨다는 이야기가 해기사들 사이에 벌써 퍼졌습니다.”

“하하하.”

이희영 선장이 김영의 말에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거, 어떡하지?”

“네?”

“소문이 잘못 퍼졌군. 내가 아니라네.”

이희영 선장이손을 들어 올려 옆에 서있던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이희영 선장은 어울리지 않게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그건 내가 아니라 이 삼항사가 한 것이라네. 여기 있는 우리 비너스호의 자랑 장보고 삼항사!”

일등항해사 김영이 선장의 말에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풉!”

“……?”

김영 일등항해사는 선장의 말에 콧웃음을 심하게 치더니 나를 바라보며 큰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

“선장님, 농담이 과하십니다. 그런 소문도 있긴 하더군요.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닙니까?”

“…….”

“무슨 이유에서 삼항사를 그렇게 배려해주신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죠. 하하하.”

“…….”

“…….”

김영 일등항해사의 웃음 소리가 선교 내에 크게 울려 퍼졌지만 따라 웃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대신 굉장히 화가 난 사람은 있었다.

바로 나다.

‘이 새끼가 돌았나?’

나는 이놈이 등장할 때부터 사실 화가 난 상태였다.

면상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젊은 모습을 보면 다르게 느껴질까 궁금했다.

하지만 여전하네. 비열한 느낌을 주는 얌생이 같은 생김새.

그리고 그보다 더 큰 문제.

이놈은 전생에서도 아주 재수 없는 놈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갑자기 헛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으흐흠! 제가 실례를 했군요. 초면인 사람들 앞에서.”

선교의 분위기는 싸늘하기 식어있었다.

비너스호의 사람들은 나의 업적을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등항해사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아무도 웃지 않는 것을 알아차린 그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선교의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기관장, 일등항해사, 일등기관사, 이등항해사, 이등기관사를 거쳐 그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김영 일등항해사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살짝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그도 내가 심기가 불펴하다는 것을 알아차린 듯 했지만 신경도 쓰지 않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김영 일등항해사가 말했다.

“삼항사, 나는 일등항해사 김영이라고 한다.”

“네, 삼등항해사 장보고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나도 잘 부탁한다. 내가 이 배에서는 후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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