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4화 (34/200)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방금 선교 밖에서 내가 찍은 것 같은 사진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이, 이럴 리가 없는데.”

사진 속에는 수에즈 운하의 사진은 없었다.

그가 카메라 속에서 발견한 사진은 내가 예전에 작업 중에 찍어 놓은 작업 사진이 전부.

“분명히 제 두 눈으로 목격했습니다!”

미스터 퐁퐁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나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고 그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음, 도선사님. 어쨌든 군사시설을 촬영하지 않았다면 다행 아닙니까.”

뒤에서 지켜보던 이희영 선장이 웃으며 미스터 퐁퐁에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선장은 지금 발생한 상황이 어떻게 벌어진 일인지 이미 눈치 챈 듯 보였다.

수에즈 운하의 도선사들에게 당하기만 했던 이희영 선장과 양화종 일항사도 이 상황이 재밌는지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미스터 퐁퐁이 나를 상대로 하려던 것은 그가 늘 초임 삼항사들을 만나면 써먹는 편한 방법이었다.

창의력 없는 새끼. 어디서 고리타분한 수법을!

이번에는 상대를 잘못 골랐다.

나는 미스터 퐁퐁이 나를 향해 파 놓은 함정을 진작 간파한 상태.

사진을 계속 찍는 척하며 미스터 퐁퐁보다 뒤늦게 선교로 들어왔다. 물론 촬영한 사진은 모두 삭제한 후.

이를 알 리 없는 미스터 퐁퐁은 고개를 돌려 벌게진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뭐야 저 어이없는 새끼.’

왜 자기가 분한 표정을 짓는 거야?

함정을 파더라도 제대로 파야지.

어디서 이런 얕은 수작을!

미스터 퐁퐁의 뒤로 양화종 일등항해사와 이희영 선장이 활짝 웃고 있었다.

얼씨구. 이희영 선장은 웃으며 나에게 한쪽 눈으로 윙크까지 해보였다.

‘저 아저씨 왜 저러지......’

나는 살짝 부담스러운 이희영 선장의 눈빛을 고개를 돌려 피해냈다.

나는 미스터 퐁퐁을 바라보며 양손을 들어올렸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 최대한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미스터 퐁퐁은 내 제스처에 더 화가 난 듯 보였다. 그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미스터 퐁퐁은 사진을 빌미로 가당찮은 협박을 하며 잔뜩 뜯어낼 계획이었는데 실패한 것이다.

아직 미스터 퐁퐁이 제대로 흑화(?)되기 전이라서 그런가? 너무 얕은 수작이었다.

왕년에 미스터 퐁퐁으로 불렸던 그의 명성이 무색해지는 순간.

하지만 미스터 퐁퐁도 이렇게 된 이상 빈손으로 내려갈 순 없었다. 그도 체면이라는 게 있다.

같이 함께 올라온 짐꾼들에게도 면이 상하는 일.

미스터 퐁퐁은 오른손을 들어 올려 엄지와 검지를 비비며 말하기 시작했다.

"퐁퐁.“

하. 이 새끼. 변함이 없네.

‘이렇게 노골적으로?’

그는 이희영 선장을 바라보며 노골적으로 뇌물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희영 선장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사고를 친 사람이 수습하라는 표정.

나는 미스터 퐁퐁 앞으로 다가섰다.

“퐁퐁? 도선사님, 무슨 뜻입니까?”

나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허! 잘 아시는 분들이 왜 이러십니까?”

“제가 초임 항해사라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 사람이!”

“퐁퐁이 무슨 뜻입니까?”

“으으음!”

내 말에 미스터 퐁퐁의 얼굴이 폭발할 듯이 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외쳤다.

“정말 이런 식으로 하실 겁니까?”

“네?”

“그깟 퐁퐁 좀 아끼려다가 이러시면 정말 후회하실 텐데요.”

도선사가 불같은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며 협박을 이어갔다.

내가 여전히 의뭉스러운 표정을 짓자 그는 조타수를 바라보며 외쳤다.

“선박을 정선하세요! 스탑 엔진(Stop engine)!"

선교에 있는 모두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선교안의 사람들을 쳐다보며 윽박지르기 시작했다.

“도선사의 지시를 따르지 않으니 도저히 도선이 불가능하군요.”

“네?”

“알아서 하십시오.”

“무슨 소립니까?”

“저는 여기서 하선하겠습니다.”

일항사 양화종이 깜짝 놀라 다가와 그를 말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화가 꼭지까지 난 미스터 퐁퐁을 말릴 순 없었다.

그는 무전기를 들어 올려 도선선을 호출하더니 비너스호를 떠나갔다.

* * *

- 선박 “M.V. 비너스”호의 선교

이항사 김호영이 황당한 표정으로 떠나는 도선선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저 미친 새끼! 설마 도선을 중단하고 배를 내려버릴 줄은 몰랐네!”

양화종 일항사도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가 돌아보며 이희영 선장에게 말했다.

“선장님, 이제 어떻게 하죠? 그냥 좀 챙겨줄걸 그랬나요? 저놈들이 뭐 달라고 하는 게 어제 오늘 일도 아닌데.”

“음.”

이희영 선장이 말을 아꼈다.

예전 같으면 그랬겠지만 최근 삼등항해사인 내가 이런 행동을 할 때면 나름 타당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일등항해사에게 말했다.

“언제까지 저놈들한테 당할 순 없잖습니까.”

“삼항사 말이 맞긴 한데, 뭐 다들 그렇게 하니까.”

“저놈들이 유럽선사들한테는 이렇게 노골적으로 요구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계속 들어주다가는 우리만 호구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긴 하지. 그런데 배를 세우고 내려버리면 방법이 없잖아.”

양화종 일항사가 고개를 살짝 숙이더니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이놈의 배는 무슨 사고가 끊이질 않냐!”

그리고 살짝 고개를 돌려 나를 향해 눈을 흘겼다.

운하 중간에 배를 세워버리는 일도 여간 큰일이 아니었기 때문.

배를 세운 건 저놈인데 왜 나를 보냐!

‘그리고 내가 매번 원해서 이런 짓을 하는 게 아니라고!’

억울하다 억울해!

싸늘한 분위기가 이어지자 이등항해사 김호영이 의견을 제시했다.

“음! 선장님 그래도 우선 배를 옮겨야 되지 않겠습니까?”

“배를?”

“저 미친놈이 배를 운하 한가운데 세우고 갔지 않습니까? 뒤 따라 오는 배가 곧 도착할 것 같습니다.”

“벌써 그렇게 접근했나?”

“아직은 거리가 있지만 곧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

“으음!”

이희영 선장이 한숨을 쉬었다.

“이항사님, 안됩니다.”

내가 이등항해사의 의견에 반대하자 사람들이 나를 주시했다.

“강제도선구역인데 배를 옮기면 그걸 꼬투리 잡을 겁니다.”

“뭐?”

“저놈들이 이대로 돌아갈 놈이 아닙니다. 분명히 사람을 시켜서 우리가 배를 움직이는지 지켜보고 있을 겁니다.”

“설마 그렇게 까지?”

“그렇고도 남을 놈들입니다.”

“그럼 여기에 이렇게 배를 세워두자는 말이야?”

“그리고 공간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 배를 가장자리로 옮겨도 문젭니다. 강풍이 불기라도 하면 더 큰일입니다. 뱃머리가 돌아가 가장 자리에 수심이 낮은 곳에 걸리기라도 하면 수에즈 운하 전부를 막을 수도 있습니다.”“그건 삼항사 말이 맞다.”

이희영 선장도 내 의견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등항해사 양화종이 나를 바라보았다.

“삼항사, 그럼 어찌할 생각인가?”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모아졌다.

‘지금 쯤 나타날 때가 됐는데.’

< 띠링! >

신호음과 함께 퀘스트 창이 떠올랐다.

+

<메인 퀘스트(#05)를 시작합니다.>

시나리오 진행에 따른 메인 퀘스트를 진행합니다.

“해신해운 선박을 호구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을 혼내주세요!”

세부 퀘스트 : 도선사 갑질

클리어 조건 : 해신해운 선박의 호구 탈출

제한시간 : 수에즈 운하 통과 전까지

보상 : 명성 + 20, 글로벌 인맥, 사내 평가 상승, 글로벌 명성 상승

실패시 : ???

+

‘그래 이럴 줄 알았다!’

나는 선교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사실 제가 이럴줄 알고 준비한 일이 있습니다.”

“뭐?”

나의 말에 선교에 모인 사람들이 기대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살짝 부담스럽네?’

나는 생긋 웃어보였다.

* * *

- 선박 “M.V. 비너스”호의 선교

사실 나는 퀘스트 때문이 아니라도 이번 기회에 미스터 퐁퐁을 제대로 교육시켜줄 계획이었다.

그런데 때마침 퀘스트까지 부여되니 보상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일석이조의 기회.

이번 기회에 버릇을 고쳐놓지 않으면 이 자식은 도저히 손을 쓸 수 없는 상태로 흑화(?) 될지도 모르기 상황.

그 이유는 미래에 발생하는 대형사건 때문이다.

전생에서 20XX년 수에즈 운하에 대형 사고가 발생한다.

전 세계의 물류이동에 지장을 초래했던 대형 사고.

컨테이너선에 의해 수에즈운하가 가로 막히는 초유의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당시 사고의 원인에 대한 여러 의견이 있었지만 일부 항해사들은 수에즈운하의 도선사들이 도선을 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었다.

당시 사건을 보도한 언론에서는 수에즈운하의 도선사들의 실력을 문제 삼는 기사도 있었다.

수에즈 운하 도선사들의 경력이 짧다는 지적이 있었다.

국내 도선사들은 5년 이상의 선장 경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최소 15년 이상의 승선 경험이 요구되지만, 수에즈는 이런 경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수에즈 도선사들은 최소한의 교육만 받은 채 도선사 업무에 투입되기 때문에 도선사들의 실력에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나라마다 차이가 나기 때문에 꼭 승선경력이 없다고 하여 도선 실력이 부족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사실 수에즈 운하에는 거센 조류나 복잡한 지형이 없고, 잔잔한 수면에서 선박을 운항하기 때문에 큰 어려움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큰 문제가 발생하는 일이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점차 컨테이너 선박이 대형화하면서 수에즈 운하의 상황도 달라지고 있다.

전생에 사고가 난 선박의 길이는 400m에 달하는 대형선박으로 운전이 쉽지 않아졌고, 선박이 대형화 되면서 바람의 영향을 크게 받게 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실제로 사건 초기에 갑작스러운 돌풍에 따른 영향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실제 대형화물선은 바람의 영향을 크게 받는데,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뱃머리가 움직이는 성질을 때문에 운항에 방해가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수에즈 운하는 사막 한가운데 있어, 사막에 부는 돌풍을 막아줄 장애물이 없다.

그리고 대형 컨테이너선박은 갑판 위로 컨테이너를 10층까지 쌓는 경우도 있어 바람에 취약한 선박 중 하나이다.

그리고 당시 이 선박을 도선했던 이도 다름아니 미스터 퐁퐁이었다.

강제 도선 구역

-선박 “M.V. 비너스”호의 선교

미스터 퐁퐁이 하선한 지 제법 시간이 흘렀지만 비너스호는 여전히 정선한 상태.

아직 비너스호의 항해사들은 결정을 하지 못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레이다로 주변을 확인하던 이등 항해사가 선교 뒷부분을 확인하더니 말했다.

“선장님, 선미 쪽으로 배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등 항해사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말에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선미(배의 꼬리) 쪽 방향을 살피기 시작했다.

다행인 점은 그래도 바로 근처까지 다가온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운하 내에서 저속으로 운항하다 보니 아직은 시간적 여유가 있어 보였다.

‘음, 빨리 와야 할 텐데.’

나도 시간이 좀 더 필요했다. 아직 중요한 인물이 도착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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