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화 (30/200)

손님을 맞이하는 방법

나와 현재형 변호사는 AP 본사를 빠져나와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현재형 차장의 얼굴도 나만큼이나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잔뜩 흥분한 표정

“그나저나 대박입니다. 삼항사님!”

“그러게요. 허허허.”

“삼항사님 말을 듣길 잘했습니다.”

“네?”

“사실 이 협상을 하러 오자고 했을 때는 좀 회의적이었거든요. 보상금으로 몇 푼 받으면 성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이런 AP에서 이렇게 파격적인 제안을 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본사로 돌아가면 비너스호 선원들에 대한 특별포상이 있을 수 있도록 힘써보겠습니다.”

“정말요?”

“당연하죠. 비너스호가 한 일이 많지 않습니까?”

“하하하.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삼항사님 정말 좋으시겠습니다.”

“네? 뭐가요?”

“그 나민 아세르가 친구로 대하겠다고 하질 않았습니까! 정말 부럽습니다.”

“허허허.”

“나민 아세르는 중동 각국의 정계와 경제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인물입니다. 정말 좋은 인맥이 생긴 겁니다.”

나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어 그저 웃을 뿐이었다.

나에게 이런 호의를 베푸는 이유가 뭘까?

짐작도 되지 않았다.

AP사가 사운을 걸고 있는 유류 중계 터미널 사업을 위한 입단속을 하기 위해서?

아니다.

그건 해신해운과 AP 사이의 비즈니스 문제에 불과했다.

그가 개인적인 호감을 나에게 베풀 이유는 될 수 없다.

‘인도네시아 장관과 옥스퍼드에서 동문수학한 사이라더니 친구의 딸을 구해줬기 때문일까?’

고개를 가로 저었다. 단순히 그런 호감의 표시라기엔 너무 과했기 때문.

해신해운에 큰 이익을 안겨줄 수 있는 합의안을 먼저 제시하고, 그것도 모자라 나에게 개인적인 호감을 드러냈다. 그럴 이유로는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뭔가 바라는게 있을 텐데 말이지.

내가 상념에 빠져 골몰하고 있자 현재형 차장은 가방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그의 손에는 소화제로 보이는 약이 들려있었다. 한 입에 털어 넣었다.

“요즘 속이 영 안 좋네요. 소화도 잘 안되고. 특히 이런 큰일을 마치고 나면 속이 더 쓰리답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식욕도 없고…….”

그는 나를 보며 멋쩍은 듯 웃어보였다.

“삼항사님도 젊을 때 몸 관리 잘하십시오.”

어색하게 미소를 짓는 현재형 차장의 얼굴을 바라보자 나도 모를 불안감이 엄습했다.

‘속이 쓰리고, 식욕부진이라고?’

아! 혹시?

전생의 기억이 빠르게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과거에 법무팀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

해신해운 법무팀의 에이스라고 불리던 젊은 사내변호사가 일에 매진하느라 위암을 늦게 발견해서 수술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는 내용.

어느덧 택시가 현재형 차장의 숙소인 호텔 앞에 도착했다.

나는 그를 배웅하기 위해 차에서 함께 내렸다.

“차장님, 아무리 바빠도 건강관리를 잘하십시오.”

“네?”

“안색도 그렇고 눈 밑에 다크 서클도 심해보입니다.”

“하하하. 오늘 협상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런가 보군요.”

“음……, 기분 나쁘게는 듣지 마시고 한번 건강검진을 받아보시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하하, 아직 뭐 크게 걱정할 나이는 아닙니다.”

“사실 제가 얼마 전에 아버지와 통화를 하면서 들은 이야기가 있거든요. 친척 어른이 속이 쓰리고 식욕이 없다고 해서 병원으로 갔더니 위암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조기에 발견해서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그, 그래요? 다행이군요.”

“네, 비슷한 증상이라고 하니 제가 갑자기 걱정이 다되네요. 하하하. 오늘 좋은 성과를 거두셨으니 회사에서 승승장구할 일만 남지 않았습니까.”

“하하하. 승승장구요?”

“농담이 아니고요. 몸이 건강해야 앞으로 임원으로 승진도 하시고 할 것 아닙니까?”

“그, 그렇군요. 어쨌든 걱정해줘서 고맙습니다. 한국에 들어가면 한번 챙겨 봐야겠네요.”

내가 정색하며 몇 번을 당부하자 그는 알았다고 돌아가서 꼭 검진을 받고 연락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 약속을 들은 후에 나는 택시에 올라 탔다.

움직이는 택시 안에서 돌아보니 그는 떠나가는 택시를 향해 계속 손을 흔들고 있었다.

지금 그에게 위암 증상이 나타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지금이 아니라도 좋았다.

가까운 미래에 혹시라도 이상 증상을 느껴 그가 조기에 진단을 받을 가능성이 생겼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한 일이었다.

앞으로의 일은 이제 그의 선택에 달린 문제였다.

* * *

- 선박 “M.V. 비너스"호 선교

항구에 도착하자 비너스호는 지금 막 하역 작업을 마무리하고 선적을 준비 중이었다.

나는 선박으로 돌아가 빠르게 복귀 신고를 하기 위해 이희영 선장을 찾았다.

“그래, 삼항사 갔던 일은 잘 마무리 되었나?”

“네, 선장님.”

내가 크게 미소를 지으며 뜸을 들이자 다그치는 사람이 있었다. 김호영 이등항해사였다.

“야, 빨리 말해 궁금해 죽겠다고!”

“아마 들으면 깜짝 놀래실 겁니다.”

나의 호언장담에 관심 없어 하던 일등항해사도 근처로 다가왔다.

“협상이 원만하게 진행되었습니다. AP와 해신해운 사이에 MOU도 체결했습니다.”

“MOU!"

내 말을 듣고 이등항해사가 크게 소리쳤다.

“하하하. 근데 그게 정확히 뭐지 MOU가?”

“…….”

이 무식한 새끼.

"형, 그것도 몰라요?“

“하하하. 나만 빼고 다 아나보네?”

“이항사 공부 좀 해! 삼항사한테 이런 소리를 들으면 안 되지. 선박에서도 가끔씩 레터를 발행하는 일이 있잖아. 이런 법적인 부분도 기본적인 내용을 숙지하고 있어야 된다고 몇 번을 말해줬어!”

이때다 싶은 일등항해사의 잔소리가 이등항해사를 향해 쏟아졌다.

이등항해사는 감히 일등항해사에게 반항할 생각은 하지 못하고 나를 바라보며 입을 삐죽거렸다.

나는 그의 시선을 회피하고 말을 이어갔다.

“뭐, 아무튼 이번에 작성한 건 계약서랑 비슷한 거라고 생각하시면 되요. 실제로 이번 MOU는 말이 MOU지 양사가 합의한 내용을 적은 거라 법적인 구속력이 다 있는 내용이니까요.”

“오!”

김호영 이항사가 분위기를 보고 감탄사를 터트렸지만 무슨 소리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눈치는 여전했다.

“그래, MOU의 내용은 정확히 무슨 내용인가?”

이희영 선장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내가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기대에 찬 눈빛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이런 일은 아무리 경력이 많은 선원이라고 하여도 경험해볼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이들의 눈빛은 호기심으로 가득차 있었다.

“AP에서 해신해운에 5년 동안 최저가로 선박유를 공급하는 것을 확약하겠다는 내용입니다.”

“……!”

“뭐?”

이희영 선장은 입을 다물었고. 일등항해사는 놀라서 크게 소리쳤다.

‘이 사람이 이렇게 표정이 다양한 사람이었나?’

이희영 선장의 얼굴이 시시각각으로 표정이 변하고 있었다. 놀라움, 의구심, 기쁜 표정까지.

협상에 간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런 결과를 얻어올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질 못했을 테지.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마 해신해운에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겠지.”

일등항해사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회사의 전체 비용 중에서 선박유 비용이 어마어마하다고 들었으니까.”

“네, 일항사님. 전에 들으니까 기름 값이 비쌀 때는 과장을 좀 보태면 40% 가까이 될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나는 사람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아마 좋은 소식이 있을 것 같습니다.”

“무슨 소린가?”

“이렇게 큰 성과를 냈으니까요. 아마 회사에서 큰 포상이 있지 않을까요?”

“그래? 하하하.”

사람들은 내 말에 기분이 좋은지 크게 웃어보였다.

사실 크게 기대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무슨 이유에서 인지 삼항사의 말대로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 * *

- 선박 “M.V. 비너스”호 선교

비너스호는 선적 작업을 마치고 빠르게 두바이항을 벗어나서 수에즈 운하가 있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수에즈운하는 유럽으로 들어가는 관문. 수에즈운하를 지나면 우리 배는 유럽으로 향하게 된다.

나는 유럽의 항구들을 거친 후 영국 펠릭스토우 항구를 마지막으로 비너스호에서 하선해 2개월간의 휴가를 갖게 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곧 휴가를 떠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들떠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불안감이 몰려오고 있었다.

과거로 돌아온 이후로는 이상할 만큼 촉이 좋았다. 이럴 때는 항상 무슨 일이 생기곤 했다.

지지직!

아니다 다를까. 그때 선교에 놓인 무전기의 신호음이 시끄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브릿지! 갑판장입니다.”

“갑판장, 브릿지 삼항사입니다.”

“시. 심항사! 큰일입니다.”

“무슨 일입니까?”

“컨테이너 화물 안에서 밀항자가 발견됐습니다!”

“미, 밀항자요?”

나도 예상하지 못한 일에 말을 더듬으며 되물었다.

밀항자는 법적인 정식 절차나 운임을 내지 않고 선박에 몰래 승선해서 해외 등으로 출국하는 사람을 말하는 말이다.

문제는 선박의 선원들 입장에서는 밀항자는 여간 까다로운 문제가 아니라는 것.

밀항자가 있는 경우 나라에 따라서는 입항을 거부당할 위험도 있었고, 선박내 안전이나 화물을 관리할 때도 신경이 쓸 일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네, 두바이항에서 선적할 때 몰래 선박으로 숨어들어온 것 같습니다.”

“지금 어떤 상황입니까?”

“일단, 방금 발견해서 현장에 있습니다. 바로 연락드린겁니다.”

“음, 알겠습니다. 일단 자리에 대기하고 도망치지 못하게 하십시오.”

“네.”

“선장님을 호출해서 의논하고 다시 연락하겠습니다.”

무슨 일이지.

전생의 기억에 따르면 이번 항차에서 밀항자가 숨어든 사건은 없었다.

물론 이번에는 쓰나미 사건 이후 인도네시아와 싱가폴에서 체선이 장기화 되어 전생과는 두바이항구에 기항한 일자가 확연이 달랐다.

밀항이라.

하지만 큰 그림에서는 사건들이 변하지 않고 있기도 했다.

내가 영향을 주는 일들도 있겠지만 나와 무관한 사건들도 있었다.

이일은 어쩌면 내 과거의 기억 속 단편에서 벌어진 일이지도 몰랐다.

나는 전생의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작은 단서라도 찾기 위해서.

집중해서 기억을 떠올리자 과거의 기억들이 선명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번 생애로 돌아오면서 확연히 상승한 기억력 때문일까.

집중해서 전생의 기억을 떠올릴 때면 과거의 오래된 기억이지만 마치 오랜 명상 수련을 하면 얻을 수 있다는 능력처럼 선명하게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삼항사! 밀항자라고!”

내가 집중하는 사이 소리를 지르며 선교로 뛰어든 이가 있었다.

시끄러운 소리에 머릿속에 떠오르던 잔상이 빠르게 흩어졌다.

소리친 이는 소식을 듣고 선교로 빠르게 달려온 일등항해서 양화종이었다.

잠시 시간이 흐른 뒤.

소식을 들은 이희영 선장과 이등항해사 김호영도 선교에 모습을 드러냈다.

“삼항사, 밀항자가 발생했다고?”

“네, 선장님.”

“지금 어디에 있나?”

“컨테이너 화물 속에서 발견했다고 합니다. 감판에 있을 텐데 일단 선장님이 오실 때까지 대기하라고 했습니다.”

“음, 큰일이군.”

이희영 선장이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가뜩이나 지연되고 있는 항차에 이런 문제가 또 발생한 것이다.

연이어 발생하는 사고에 아무리 베테랑 선원으로 잔뼈가 굵은 이희영 선장이라고 하여도 당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별일이군. 예전에는 종종 있었지만 최근에는 잘 생기지 않는 일인데 말이지.”

이희영 선장의 말대로 밀항자가 발생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었다.

세계적으로 각종 테러 위협으로부터 기간시설인 항만을 보호하기 위해 보안이 강화되는 추세에 있었기 때문이다.

전생의 기억에도 이번 항차에 밀항자가 발생한 일은 없었다.

‘항구의 보안이 강화된 이후 밀항자들이 항구로 들어오는 것도 매우 힘든 일인데. 어떻게 들어온 거지?’

혹시?

불현 듯 내 머릿속에 빠르게 떠오르는 기억.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별개의 사건들이 조각 퍼즐처럼 하나씩 떠올랐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서는 하나씩 퍼즐이 맞춰지고 있었다.

< 띠링! >

+

<히든 퀘스트를 시작합니다.>

“지금 위험에 처한 사람이 비너스호에 있습니다. 이 사람을 목적지 까지 안전하게 이송하세요!”

세부 퀘스트 : 밀항자

클리어 조건 : 위험에 처한 밀항자를 목적지 까지 이송.

제한시간 : 목정항 도착시까지

보상 : 명성 + 20, 글로벌 인맥, 기술 [잠입 Lv.1] 획득

실패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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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항자(STOWA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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