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비밀장부에는 흑룡회와 거래한 해신해운 선원들에 대한 정보도 물론 포함되어 있었는데 부갑판장 박문경에 대한 자료는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자료를 검토하는 선장의 안색이 심각할 정도로 굳어져갔다.
다행인 점은 전생과 달리 사건 초기에 이 사건이 발각된 것이다.
부갑판장은 우리나라의 다른 국적선을 승선하던 직원으로 해신해운에 입사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부갑판장이 해식해운으로 이직할 당시 함께 해신해운에 입사한 선원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현재 다른 선박에 승선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들이 공범관계에 있는 정황 역시 이 장부에 정리되어 있었다.
“이, 이럴 수가.”
“……!”
이희영 선장이 황망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긴 아무리 경력이 오래된 이희영 선장이라고 하여도 이런 일을 예상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실제로 전생에서도 이일은 밝혀지지 않았던 완전범죄였다.
전생에서는 결국 유혹을 이기지 못한 찰리가 삼합회의 마약을 운반하다가 검거되는 것으로 사건이 마무리되었기 때문이다.
회사가 파산에 이르는 순간까지도 이놈들이 해쳐먹은 범죄는 드러나지도 않았다.
자료를 건네받아 검토하는 기관장을 포함한 징계위원들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어갔다.
“부갑판장!”
이희영 선장이 벼락같은 소리를 내질렀다.
“감히 이런 짓을 하고도 들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나!”
“…….”
“자네와 몇몇 선원들이 빼돌린 벙커에 대한 장부일세!”
“…….”
“어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번 해보시게!
“…….”
“감히 이런 짓을 하고도 틀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나!”
‘선장님께 저런 면이 있었나?’
평소 합리적이고 냉철한 모습의 이희영 선장이 좀처럼 볼 수 없는 고성을 토해냈다.
불같이 분노를 쏟아내는 이희영 선장의 표정이 매서웠다.
부갑판장도 자신의 운명을 직감한 듯 보였다.
감히 변명을 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저 고개를 숙인채로 있을 뿐이었다.
얼마 후 그는 별다른 변명도 하지 못한 채로 그저 선교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시킨 이희영 선장이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럼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사람들도 예상하지 못한 사건에 섣불리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나는 손을 번쩍 들었다.
“선장님!”
“그래, 삼항사.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징계위원은 아니지만 이일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참관인 입장에서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래, 이일은 삼항사가 아니면 밝힐 수 없는 일이었지. 참으로 장한 일을 했네. 의견이 있으면 말해보게.”
“네, 제 생각에 찰리는 사건에 직접적으로 개입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가족의 병원비 때문에 부갑판장의 꼬임에 넘어간 측면도 있으니 여러 정황을 고려해서 가급적 선처 해주는 것이 어떻습니까?”
“음…….”
이희영 선장도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부갑판장은?”
“부갑판장은 단순히 본선에서 징계할 수 있는 수준의 문제가 아닙니다. 당장 하선 징계 조치를 하고 본국으로 소환해야 합니다. 그리고 본사 법무팀에 연락해서 부갑판장을 포함한 다른 선원들에 대한 수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경찰에 고소해야 합니다.”
“그래…… 아무래도 그렇겠지. 혹시 다른 의견이 있나?”
다른 징계위원들도 다른 의견을 제시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동의한다는 표시를 할 뿐이었다.
“삼항사.”
“네, 선장님.”
“관련 자료를 정리해서 본사 법무팀으로 보낼 보고서를 작성해주게.”
“알겠습니다.”
징계위원회가 마무리 되었다.
찰리에 대해서는 여러 정황을 고려해서 ‘훈계’ 조치를 내려 선처하기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사건의 주범인 부갑판장에 대해서는 즉시 비너스호에서 하선하는 것으로 징계위원회의 의결이 이루어졌다.
* * *
며칠 후.
나는 선교에서 커피를 한잔 마시며 당직 근무를 하고 있다.
최근 갑작스럽게 여러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했기 때문에 싱가폴 항구를 떠나 인도를 향해 가는 항해는 간만에 찾아온 평화로운 순간이었다.
선박 “M.V. 비너스”호는 그 사이 체선을 마치고 싱가폴 항구에서 무사히 하역작업과 선적 작업을 완료했다.
우리배는 다음 목적지인 인도의 뭄바이 항구로 향하고 있었다.
그 사이 제법 많은 일들이 일어났는데, 우선 부갑판장 박문경은 하선된 이후 본사에서 즉시 귀국하도록 조치하였다.
본사 법무팀에서는 이번에 입수한 비밀 장부와 관련자료들을 토대로 관련자들에 대한 고소를 할 예정이라고 알려왔다.
박문경 부갑판장 외에 다른 관련자들도 현재 승선중인 선박에서 즉시 하선조치 되었으며 모두 소환된 상태라고 한다.
그리고 찰리 훈계 조치 이후 선박에서 성실히 근무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는 이 사건 이후 반성하는 것인지 묵언수행이라도 하기로 한 것인지 말수를 줄이고 있었다.
찰리는 이 사건 이후 자연스럽게 외국인 선원들 사이에서 리더쉽을 발휘하던 리더의 역할도 내려놓았다.
사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그 다음 발생한 일이었다.
찰리의 뒤를 이어 외국인 선원들 사이에서 리더로 자리를 잡은 사람이 내 예상 밖의 인물이었던 것이다.
최근 우리 선박 비너스호의 최고 실세로 자리잡은 삼등항해사의 오른팔.
‘허! 참, 저 놈이 내 오른팔이라고?’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조타수를 바라보았다.
그는 조타키를 잡은 채로 멀리 바다를 응시하고 있었다.
제법 집중한 표정이 믿음직스럽게 느껴졌다.
‘하!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더니. 별일이네?’
외국인 선원들 사이에서 찰리의 뒤를 이어 리더로 급부상한 사내.
해신해운의 천재항해사로 불리는 비너스호 삼등항해사의 오른팔이자 최측근으로 꼽히는 바다사나이.
바로 조셉이었다.
+
<메인 퀘스트(#03) 달성을 축하드립니다.>
당신의 활약으로 비너스호는 성공적으로 도둑을 검거하였습니다.
보상 :
- 당신의 명성이 상승합니다.(명성 + 20)
- 당신에 대한 외국인 선원들의 충성심이 상승합니다.
- 찰리가 당신을 존경합니다.
- 이희영 선장이 당신을 신뢰합니다.
- 조셉이 메인 퀘스트 결과에 만족합니다.
- 기술 [기관술 Lv.1]을 획득했습니다.
+
* * *
- 인도 뭄바이 항구 근처
우리는 인도에서 무사히 작업을 마치고 출항을한 상태였다.
다들 아무런 사건 사고 없이 항구를 출항하자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보았다.
‘왜 나를 보냐?’
이건 살짝 억울한 일인데?
내가 사건을 일으키는 게 아니고 사건을 해결하는 거라고!
다른 사람들은 살짝 다른듯 보였다.
이희영 선장도 나에게 다가와 어깨를 살짝 두들겼다.
‘선장님까지 나를 그렇게 보는건 실망인데?’
어쩌다 이런 평가를 받게 되었는지 야속할 따름이었다.
다들 다음 항구에서도 별일이 없어야 되는데 라고 수근 거리며 나를 힐끔 거리는 모습도 보였다.
두바이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 띠링! >
또 시작인가?
+
<메인 퀘스트(#04)를 시작합니다.>
시나리오 진행에 따른 메인 퀘스트를 진행합니다.
“해신해운은 매출 감소에 따른 재무위기에 처해있습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협상 결과를 도출하세요!”
세부 퀘스트 : 협상
클리어 조건 : 해신해운에게 이익이 되는 협상 결과를 도출 할 것.
제한시간 : 두바이 출항 전까지
보상 : 명성 + 20, 글로벌 인맥, 사내 평가 상승
실패시 : ???
+
다음 기항지는 중동에서 가장 큰 항구인 두바이였다.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다음 항구에서는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곳에서는 제법 중요한 딜(Deal)이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물론 나만 알고 있는 계획이었지만.
* * *
- 두바이항 정박지
우리 선박 비너스호는 두바이 항구의 정박지에서 대기하고 있는 상태였다.
체선이 심한 것은 아니지만 하역까지는 하루이틀 정도의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나는 그 시간을 활용하기로 결심했다.
“삼항사, 뭐라고?”
나를 바라보는 이희영 선장의 얼굴은 황당하다는 표정 그 자체였다.
“법무팀에서 AP(Arab Petroleum)과 협상을 위해 두바이로 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법무팀에서 그 협상에 제가 동석해줬으면 좋겠다고 하네요. 허허허.”
“삼항사, 또 무슨 헛소리야?”
선장과 나누던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던 곰치 일등항해사 양화종이 대화에 참견하기 시작했다.
‘저! 또 저러네! 버릇을 아직 못고쳤군!’
하긴 반대의 입장이라면 나도 그리 생각했을 것이 분명했다.
나는 답답하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 저어며 방금 전 본사에서 수신된 이메일을 출력한 자료를 양화종 일항사에게 건넸다.
“일항사님! 헛소리라니요! 계속 그러시면 저 정말 섭섭합니다.”
“흥!”
양화종이 내 말에 콧방귀를 끼더니 서류를 낚아챘다.
그의 표정이 벌겋게 달아오르더니 소리쳤다.
“뭐야! 진짜네?”
“…….”
이 새끼는 그 동안 속고만 살았나.
누누이 말했지만 이놈은 엘리트 선원이라는 평가가 무색하게 단기기억능력이 상실된 놈이 분명했다.
최근 좀 잠잠했다고 지난 몇 주간 내가 보여준 위대한 업적을 그새 다 까먹었으니 말이다.
‘내덕에 승진할 놈인데. 이놈.’
전생대로라면 동기들 승진할 때 승진도 못하고 누락되서 일등항해사로 몇 년더 구를 놈인데!
억울하다 억울해!
일항사가 메일의 내용을 황당한 표정으로 읽으면서 선장에게 보고했다.
“선장님, 삼항사 말이 맞네요. 본사 법무팀에서 AP와의 협상에 삼항사가 동석해줬으면 좋겠다고 본선 일정을 확인해 달라고 요청을 진짜로 했습니다!”
“…….”
뭐야 이 반응은?
불과 얼마 전 내가 이룩한 업적을 이들에게 상기시킬 필요가 이어 보였다.
“일항사님! 제가 이런 일로 거짓말할 사람입니까?”
“…….”
“맞잖아.”
“동감.”
뭐지? 선장은 침묵. 곰치 일항사와 배신자 이등항해사가 한통속으로 대답했다.
“삼항사.”
“네, 선장님.”
“본사에서 왜 갑자기 자네를 꼭 찝어서 요청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이유가 있는가?”
“글쎄요, AP와 협상하는 것이라고 하니 아마도 싱가폴에서 벌어진 벙커(선박유) 사건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그 일을 제일 잘 알고 있는 제가 작성해서 본사로 올린 보고서를 보고 감명받은게 아닐까요?”
“…….”
“미친 새끼.”
“동감.”
이번에도 선장은 침묵. 곰치 일항사와 배신자 이등항해사가 한통속으로 대답했다.
이희영 선장이 골치가 아프다는 듯 머리를 한차례 가로젓더니 말을 이어갔다.
“뭐, 본사 요청이니 어쩔 수 없지. 두바이항구에 도착하는 예상일정은 본사 법무팀과 공유하도록 하게.”
“네, 선장님!”
내가 큰소리로 대답하자 선장이 나를 살짝 흘겨보더니 물었다.
“그래 이번에는 무슨 속셈인가?”
“네?”
“AP와 협상을 하러 간다고 하니까 궁금해서 말이야. 도대체 무슨 속셈인가?”
“우리도 좀 챙겨야죠.”
“뭐?”
나는 활짝 웃어 보인 후 대답했다.
“우리도 한몫 단단히 챙겨야죠.”
협상
- 두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