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회 놈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소리치며 찰리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찰리도 제법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새끼. 그래도 줄은 제대로 섰구나.’
나는 가방 속에 준비해둔 물건을 꺼내들며 크게 소리쳤다.
“이 개새끼들아! 모두 동작 그만!”
내가 크게 소리를 지르자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쏟아졌다.
쾅!
나는 가방을 열어 플라스틱 통을 꺼내 바닥으로 집어 던졌다.
“기름! 기름이다!”
내가 집어던진 물건의 정체를 확인한 흑룡회의 조직원들이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나는 호주머니를 뒤져 라이터를 꺼내들었다.
“동작 그만. 안 그러면 전부 다 같이 죽는 겁니다!”
위협이 통한 것일까. 흑룡회의 간부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바닥에 쏟아진 기름 근처로 다가서며 냄새를 맡아댔다.
“진짜 기름이군? 이 미친놈이?”
“그렇소. 선박에서 기름 빼돌린 놈들을 상대하러 쫌 챙겨왔습니다.”
“선박유를 빼돌린 건 저놈이다! 우린 그저 돈을 주고 샀을 뿐이야.”
흑룡회의 간부가 손을 들어 부갑판장을 가리켰다.
“흥! 그래도 선박에 저질의 기름을 넣어서 바꿔치기 한 것은 네놈들이 아니냐!”
흑룡회의 간부는 내 일갈에 궁색해진 표정으로 별다른 답변을 하지 못했다.
“아무튼 쪽수를 믿고 달려드는 놈들이 있으면 다 죽는 겁니다.”
내가 가방을 들어보였다.
“글쎄, 겨우 그 정도 양으로 되겠는가?”
그는 내가 들어 올린 가방을 바라보았다.
내 가방의 크기가 좀 작아보였기 때문이다.
“뭐, 한번 들어와 보시던지?”
내가 라이터를 딸깍 거리자 이들도 한 발짝 뒷걸음 쳤다.
이들도 감히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는 상황.
“그럼, 원하는 게 무엇이냐”
“우리를 그냥 보내 주시오. 찰리 빚도 탕감해 주시고!”
“흥! 네놈 둘은 그냥 보내주겠다. 허나 저 필린핀 놈은 안 된다. 아직 청산한 빚이 많이 남았다.”
나는 들고 있던 기름 한통을 다시 그들을 향해 뿌려댔다.
“기름이다! 피해라!”
흑룡회 놈들은 내가 던진 기름통이 그들의 머리위로 날아들자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나는 라이터를 손에 쥐며 말했다.
“협상은 원래 주고받는 거 아닙니까?”
“이 미친새끼가!”
흑룡회 놈들과 나는 서로 눈치를 보며 대치 상태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드르륵. 덜컹.
그 순간 우리가 들어온 창고의 철문이 다시 열리더니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내들이 우르르 들어오기 시작했다.
새로 모습을 드러낸 이들 중 한명이 크게 웃으며 소리쳤다.
“이 미친놈들아! 모두 동작 그만!”
‘이놈들은 또 뭐야?’
나와 달리 흑룡회의 간부는 창고로 들어서는 자들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새롭게 들어선 무리 중 가운데서 걸어오는 중절모를 쓴 사내를 바라보는 흑룡회 간부의 미간이 잔뜩 구겨졌다.
“사, 삼합회! 네놈들이 여기까지 무슨 일이냐?”
흑룡회 간부는 제법 놀란 표정이었다.
건장한 중절모의 사내가 앞으로 나서며 모습을 드러냈다.
잘생긴 외모에 코트를 어깨에 걸치고 등장하는 그의 모습은 흡사 홍콩영화의 주인공 같은 모습이었다.
“흥! 말은 똑바로 해야지. 네놈들이 우리 구역에서 장난질을 친 놈들이 누군데?”
“무, 무슨 헛소리야?”
“항구는 이제 삼합회가 관리하는 구역이라고 분명히 말했을 텐데?”
‘삼합회?’
이들이 삼합회라고?
과연 새로 등장한 이들이 뿜어내는 기세는 예사롭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의 숫자는 약 30여명 정도에 불과해 보였다. 숫자로는 열세.
삼합회의 우두머리가 우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가 이곳을 정리할 생각이니. 그 라이터는 내려놓으시게. 불이 나면 소란스러워 질 수도 있으니.”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라이터를 슬그머니 호주머니 안으로 숨겼다.
“자네들은 어쩔 생각인가? 우리는 저놈들과 한판 붙을 생각인데? 구경만 하고 있어도 좋고, 아님 한 손 거들어주면 그것도 좋고. 하하하.”
삼합회의 우두머리가 웃음을 터트리더니 부하들에게 손짓했다. 삼합회의 조직원들이 소리를 지르며 흑룡회를 향해 달려들었다.
나는 이항사와 찰리를 바라보았다.
“우리도 돕자.”
이곳을 무사히 빠져 나가기 위해서는 삼합회 편을 드는 것이 좋겠지.
우리도 서로의 등을 맞댄 상태로 싸움에 가담하기 시작했다.
사실 우리의 도움이 필요 없을지도 몰랐다. 삼합회의 조직원들은 빠르게 흑룡회를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 * *
삼합회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흑룡회 조직원들은 전원 창고 가운데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리고 앞에는 흑룡회의 간부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피투성이가 된 채로.
삼합회의 우두머리는 마주 앉은 채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무슨 배짱으로 우리 구역에서 작업을 한 거지?”
“무슨 소리냐!”
“내가 항구에서 마약은 안 된다고 분명히 경고했던 것 같은데?”
"……!"
“내가 모를 줄 알았나? 내가 살아있는 한 마약은 절대 안 된다고 분명히 말했을 텐데.”
"……!"
“항구 근처로는 앞으로 얼씬 거리지 말게. 관련된 항만의 업체들서도 전부 손을 떼고. 그렇게 약조하면 오늘은 목숨을 살려주지.”
삼합회의 간부는 한쪽 구석에서 이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마약이라고?’
내 전생의 기억과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전생에서 몇 년 후 찰리는 삼합회의 운반책으로 마약을 운반하다가 한국에서 검거된다.
그런데 현생에서는 삼합회에서 마약을 금지시키고 있었다니?
삼합회의 우두머리가 나를 불렀다.
“바다 사나이들.”
“네.”
“이놈들은 그리 만만한 놈들이 아니라네. 아니 싱가폴에서도 아주 질이 나쁘기로 유명한 놈들이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놈들에게 덤빈 건가?”
“사실 잘 몰랐습니다. 그저 동료를 구해야겠다고 생각해서……."
“허허허.”
삼합회 간부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어댔다. 그리고 이어 말했다.
“우리 아버지도 뱃사람이셨지. 그리 의리 있는 분은 아니셨는데 말이지.”
그는 웃으며 나에게 명함을 건넸다.
'티알 트레이딩(TR Trading)의 대표?'
내가 바라보자 그는 웃으며 대답했다.
“나도 사실 번듯한 기업가라네. 해신해운에도 제법 물량을 실고 있다고 들었는데? 하하하.”
‘아! TR TRADING에서 TR이 삼합회(TRIAD)의 약자였구나!’
티알 트레이딩은 나도 잘 알고 있는 업체였다.
중계무역이 발달한 싱가폴의 수산물을 중계하는 무역회사로 제법 규모가 큰 회사였다.
전생에 나는 승선생활을 마치고 부산 지사 운항팀에서 육상근무를 시작한다.
그 이후 본사 컨테이너사업부의 관리부서로 발령이 나는데 그 당시 담당했던 업무 중 하나가 동남아지역 화주들의 계약(Service contract) 관리였다.
당시 싱가폴 출장 기간에 주요 화주들을 방문하기도 했었는데, 방문한 현지의 회사 중에는 티알 트레이딩도 포함되어 있었다.
‘티알 트레이딩이 삼합회에서 운영하는 회사였다니?’
그것도 놀라운 사실이었지만 문제는 전생에서 티알 트레이딩의 대표는 이 잘생긴 중년의 사내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 사람은 실눈에 야비한 인상을 하고 있어 도저히 잊어지지 않는 외모였기 때문에 아직도 또렷이 기억할 수 있었다.
나는 삼합회의 사람들의 면면히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발견할 수 있었다.
삼합회 우두머리의 뒤에서 서 있는 실눈의 사내.
그는 전생의 기억보다 훨씬 젊은 얼굴이었지만 그때 내가 만난 티알 트레이딩의 대표가 분명했다.
실눈에 야비한 인상. 저 사람이 분명했다.
그는 막무가내로 가격인하를 요구하고 해신해운을 상대로 갑의 지위에서 갑질을 하던 인물이었다.
무슨 이유에서 인지 싱가폴 현지의 영업사원들이 티알 트레이딩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했는데 어쩌면 이런 배경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삼합회의 우두머리가 상념에 빠져 있는 나를 보며 말했다.
“말한 대로 항구의 급유업체들은 내가 한번 정리를 하겠네. 우리 구역에서 그런 불미스러운 일이 있으면 안 되지.”
“감사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뭔가?”
“조심스러운 내용이라…….”
“음?”
삼합회의 우두머리가 손짓하자 삼합회 조직원들이 한발 물러섰다.
“혹시, 항구에서 마약을 금지 시킨 이유가 있으십니까?”
“음……, 배를 타셨던 아버지가 마약에 손을 대셨지. 내 개인적인 이유라네. 그런데 그게 왜 궁금한가?”
“그럼, 부하들을 조심하십시오.”
“그게 무슨 소린가!”
내 말이 불쾌했던 것일까 그가 버럭 소리를 지른 후 불같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삼합회에서도 마약을 취급해야 한다고 말하는 자들이 없습니까?”
“흥! 내가 눈을 뜨고 있는 한 그런 일은 없을 것이야.”
“그러니 조심하셔야지요. 돈이 되는 일이니 다른 마음을 품고 있는 자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
“가까운 곳에서 배신이 일어나는 법이지요.”
“…….”
그가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들은 것인지 아닌지 알 순 없었다. 그는 별 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도 이정도 했으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조언을 듣고 미래를 대비하는 것은 그에게 달린 일이었다.
한참 고민하던 그는 수하들을 향해 손짓했다.
그의 지시에 따라 삼합회의 조직원이 우리를 창고 밖으로 안내했다.
비너스호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삼합회의 우두머리는 창고 밖으로 나서는 나를 바라보며 그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
<보너스 퀘스트 달성을 축하합니다.>
“당신의 활약으로 찰리는 무사 귀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당신의 명성이 상승했습니다.(명성 + 5)
- 외국인 선원 찰리가 당신을 존경 합니다.
- 글로벌 인맥(삼합회)을 획득합니다.
- 고무고무킥 레벨(Lv.4)이 상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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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징계위원회
- 선박 M.V. 비너스호의 선교 (브릿지)
이희영 선장은 내가 건네준 연구소(LAB)의 선박유 검사 결과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음, 이게 이번에 급유한 선박유를 검사한 연구소의 결과지인가?”
“네, 선장님.”
“음······, 자네 말이 맞았군. 반신반의했는데 말이지. 부적합 판정이라니······.”
이희영 선장은 옆에 있던 김현호 기관장에게 결과지를 건넸다.
“기관장님 한번 보시겠습니까?”
김현호 기관장은 검사 결과지를 바라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를 바라보며 이희영 선장이 물었다.
“기관장님, 어떻습니까? 괜찮겠습니까?”
“수분함량도 그렇고, 장기적으로 선박 엔진 실린더 등에 데미지를 줄 수 있다는 의견이군요.
“음, 바로 운항이 불가한 상황입니까?”
“그렇진 않을 것 같습니다. 당장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사용하다보면 엔진에 데미지를 줄 가능성이 높을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이 사실을 몰랐다면 운항을 했겠지만 이제 선박유의 품질이 부적합 하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지금 상황에서 운항을 계속할 수는 없는 노릇이군요.”
선장이 손을 들어 올려 턱을 부여잡더니 인상을 잔뜩 구겼다. 머리가 아프다는 듯.
내가 두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사실을 안 상태에서 선박을 계속 운항하는 것은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그래 삼항사, 이유는 뭔가?”
“엔진고장이 생길 수 있다는 점도 그렇지만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운항을 계속하다가 사고 발생하면 보험사들이 담보제공을 거절할 수 도 있습니다.”
“아! 그래, 그런 문제도 있었군.”
이희영 선장은 선원들이 놓치기 쉬운 법적 쟁점을 내가 지적하자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눈을 동그랗게 뜬 선장을 바라보며 내가 말을 이어갔다.
“선장님, 다행이 현재 싱가폴 항구에 체선이 심해 운항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니 선박유를 교체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좋네. 그럼 바로 본사 운항팀과 법무팀에 연락해서 향후 조치를 지시받도록 하지.”
나는 선장의 말에 웃으며 대답했다.
“선장님, 본사에 연락하는 것은 내일로 미루면 어떨까요?”
“음?”
“오늘은 밤이 늦었으니 하루만 기다려 보시죠.”
“다른 이유가 있나?”
“아마 내일이면 좋은 소식이 있을 것 같습니다.”
선장과 기관장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